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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131)
[잘생긴 형님(?)이 있다오]
쏴아아!
잠시 주춤하던 빗줄기가 다시 힘차게 대지를 때린다. 위에서부터 흘러내린 빗물은 막부산을 청소라도 하려는 듯 거칠게 낙엽들을 쓸어내린다.
둥둥 떠내려가는 낙엽들을 무신한 눈으로 바라보는 자들. 귀광두와 주하연을 찾기 위해 밤새도록 막부산을 헤매고 다녔던 육대신마였다.
“저곳 어딘가에 있는 게 분명합니다.”
남궁정주는 폭포 옆 절벽을 가리켰다. 하루 동안 막부산을 뒤지고 다닌 끝에 남궁정주가 내린 결론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절벽이 아니라면 그들은 막부산을 빠져나갔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막부산을 빠져나간 흔적은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비가 쏟아지는 상황이지만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을 거라 남궁정주는 확신했다.
“그럼 저기 보이는 십여 장 절벽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말이냐?”
“확실합니다, 형님. 저곳에 없다면 그들은 막부산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래?”
남궁상순은 비틀린 미소를 머금었다. 귀광두와 주하연을 추격한 지 벌써 삼 일째. 아직 그들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했다.
“저 절벽을 부숴 보면 알겠지. 시작하세!”
“알겠습니다!”
남궁상순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육대신마 여섯 명은 각자의 검을 뽑아들고 절벽을 향해 몸을 날랐다. 가장 먼저 나아가는 남궁상순의 검에서 붉은 광채가 폭발적으로 솟구쳐 나오고, 그 다음 둘째인 남궁무장의 검에서 청색 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셋째인 남궁정주의 검에서는 녹색 강기가,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의 검에서도 백색과 검은색, 금색 강기가 흘러나와 전면 절벽을 향해 노도처럼 밀려갔다.
남궁세가 최강 무공의 하나인 제왕무적검강(帝王無敵劍?)이었다.
휘리링!
기이한 소성을 머금은 여섯 개의 강기가 광폭한 기세를 머금고 절벽으로 박혀들었다.
쿠웅! 콰앙! 콰과쾅!
첫 번째 소성은 미약했다. 하지만 연이어 쏟아진 검탄강기로 인하여 십 장 폭의 절벽은 허연 속살을 드러냈다. 붉은 광채가 노을처럼 퍼졌던 단 한 곳을 제외하고.
그곳은 백산과 주하연이 머물고 있던 조그마한 동굴이었다.
“결국 남궁세가까지 오고 말았는가!”
곤혹스러운 얼굴,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신수신룡 남궁세우. 일가를 이루지 못했던 그분을 사부로, 의부로 모셨다. 그런데 그분의 후예들이 자신을 잡기 위해 온 것이다.
주하연을 구해 나올 때 뒤쫓아 오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느 정도 시간을 줄 거라 여겼었다.
“오빠, 그냥 가요! 저들을 피해 도망쳐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하연은 말했다. 결코 차가운 비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백산과 남궁세가의 관계를 알기에, 그들은 결코 싸워서는 안 될 입장임을 알기에 하는 말이었다.
“어디로!”
어디로. 어디로 간단 말인가. 설련과 광치가 기다리기로 했던 남으로 갈 수도 없다. 남궁세가가 나섰다면 자신을 가장 적대적으로 생각했던 개방도 나섰을 것이다. 그들이 나선 이상 피할 곳은 없다. 북황련, 남천벌, 황실, 그리고 천붕회까지. 강호 무림이 자신을 쫓고 있다. 그들을 피해서 갈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 나오지!”
막연한 얼굴로 밖을 쳐다보는 두 사람의 귓전에 남궁상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리 와라! 이것도 너와 나의 업보라면 헤치고 나가야지.”
이내 표정을 바꾼 백산은 주하연을 번쩍 안아 올렸다.
“다리를 펴서 꽉 감아.”
며칠 동안 계속 해 왔던 자세라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뒤쪽에 있던 보퉁이를 당겨 주하연의 다리 안쪽으로 끼워 넣고 마안철겸을 풀었다. 오른쪽 다리를 먼저 감아 허리에 한 바퀴 돌리고, 이어 왼쪽 다리를 감아 다시 허리에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를 친친 둘러 두 몸을 하나로 고정시켰다.
“다리는 안 불편해?”
“괜찮아요. 아주 편해요, 침상에 누워 있는 것처럼!”
주하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웃어 주는 것이다.
“갈수록 예뻐지는 것 같아 큰일이네.”
“예뻐지는 게 무슨 큰일이람? 좋은 거지.”
“그거야 젊은 녀석들 말이지.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은 너무 예쁜 부인이 있으면 빨리 죽는단 말이다. 춘서를 팠으니까 복상사가 뭔지는 알지? 복상사의 가장 큰 원인은 예쁜 여자다.”
“풋!”
또 웃어야 한다. 애써 분위기를 밝게 하고자 하는 백산의 의도를 알기에.
“턱을 바싹 당기고, 가슴을 펴고, 팔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시선은 전면으로 향하라고 했겠다.”
낮게 중얼거린 백산은 전면을 가로막았던 진을 풀고 동굴을 나섰다.
“잘생겼군. 그리고 강자고.”
남궁상순은 혼잣말을 했다. 귀광두의 첫 인상은 참으로 좋았다. 며칠간의 치열한 싸움으로 몸도 마음도 지쳤을 커인데도 그는 훈훈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강자가 아니라면 결코 보일 수 없는 모습인 것이다.
“명예보다는 구차한 삶을 택한 모양이군, 남궁세가는.”
방갓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낯익은 얼굴이었다. 오십 년 전, 남궁무와 함께 남궁세가의 최고 신진이었던 인물. 남궁상순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던 자가 분명했다.
“맞네. 자네 입장에서 보면 우리 남궁세가는 구차한 삶을 택한 걸세. 하지만 자네는 강호를 적으로 돌리는 걸 선택했네. 누구의 선택이 옳은지 후대에 판가름 날 걸세.”
“잘못 알고 있다, 남궁상순. 나는 강호를 적으로 선택한 게 아니다. 주하연을, 아니 내 정혼자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런 나를 적으로 선택한 건 너희 강호 무림이다.”
“광오하군. 그럴 만한 실력이 있으니 긴말하지 않겠네. 우린 서로 선택이 달랐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을 뿐이니까. 준비하게.”
남궁상순은 내심 감탄했다. 그는 강호를 적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 강호가 자신을 적으로 선택했다 한다. 강호 무림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싸워보지도 않고,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천붕회 소속 네 문파를 비웃는 말이다.
남궁상순의 외침과 함께 주변에 있던 다섯 무인들이 둥글게 오행검진을 구축했다. 이미 뽑아든 검에서 오색의 광채가 솟구쳐 오르고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백산의 전신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맞다, 남궁상순. 남궁세가는 남궁세가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거고, 난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거다. 설사 그 선택에 대핸 대가가 죽음이라 할지라도.......”
팟!
일순 백산의 몸에서 시뻘건 혈기와 함께 열두 자루의 비도가 일제히 튀어 나왔다.
“헉!”
남궁상순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머리 위쪽부터 시작하여 원을 그리듯 둥글게 자리한 열두 자루의비도. 너무나 낯익은 광경이다. 오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뇌리에 박혀 있는 그 모습. 머리 위에 있는 비도가 검은색을 띄면 흑색지안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분명 그랬다. 묵안혈마가 생존해 있었을 때는. 하지만, 그가 이승을 떠난 지 삼십 년이 지났다.
“그 무기...... 광혈지옥비인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여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하지만 혈운 안에서는 부정도 긍정의 말도 없었다.
“지금 이 무기의 이름이 중요한가? 내가 광혈지옥비라고 하면 가문으로 돌아갈 테냐? 남궁세가로 돌아간다면 광혈지옥비라고 말할 테고, 가문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면 아니라고 하겠다. 이 선택 또한 네 몫이다, 남궁상순!”
“그 분이 후예를 두었던가.......”
쓰고 있던 방갓을 벗어 한편으로 던지 남궁상순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광혈지옥비를 착용할 수 있는 사람은 천살성을 안고 태어난 백산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로선 당연한 생각이었다. 다만 귀광두가 백산의 후예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남궁파천검진을 만드신 분은 자식의 가슴에 제왕검을 던져야 했던 남궁일몽 그분이셨네. 다신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며,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한 가문을 세우라며 만드신 검진이지. 그 검진을 남궁세우 그분께서 다시 다듬었네. 심검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도 펼칠 수 있도록 말이네.”
곤혹스런 얼굴로 백산을 응시하던 남궁상순은 자신의 왼손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대형!”
뒤쪽에 있던 나머지 인물들이 질겁한 얼굴로 남궁상순을 불렀다.
“그리고 백산 그분께서는 이런 말을 하셨네. 살아남는 자가 강자라고. 악마가 되어서라도 살아남으라고 말이네.”
손을 들어 동생들을 제지시킨 남궁상순은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그분께 드릴 수 있는 건 저 팔밖에 없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피를 쳐다보던 남궁상순은 혈도를 눌러 지혈시켰다.
“한 팔로 가능하리라 보느냐?”
착잡한 얼굴로 백산은 물었다. 어쩌면 혈삭마령인과의 대결 때보다 더욱 힘겨운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팔을 잘라 냈다는 것은 동귀어진도 불사하겠다는 말이다. 사부가 더욱 강하게 보강한 검진과 싸워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백산의 짐작대로였다.
“삼 초를 펼칠 수 있네. 다행히 남궁파천검진은 삼 초로 되어 있고. 그분의 가르침을 이었다면 잘 알고 있을 터. 최선을 다해 살아남도록 하게. 악마가 됨을 결코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네.”
남궁상순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다섯 명 안쪽으로 들어서자 남궁파천검진이 완성되며, 한 무더기로 변한 육대신마의 신형이 동시에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남궁상순을 중심으로 나머지 다섯 명은 허공답보의 경공술을 이용하여 회전하기 시작했다.
일순 그들의 몸에서 뿌연 운무가 흘러나와 육대신마의 신형을 가렸다. 그 속에서 나직한 남궁상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궁파천검진의 모든 초식은 우리 다섯 명의 내공을 하나로 합쳐서 펼치는 무공일세.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일세.”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남궁상순은 자신의 검을 허공으로 던져 올렸다. 순간 남궁상순 주변을 회전하고 있던 다섯 명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와 던져 올린 검 주변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다섯 마리의 용이 똬리를 트는 것처럼 서로 얽히더니 이윽고 거대한 용으로 변했다.
꾸아악!
착각이었을까, 승천하는 형국으로 서 있는 용이 커다란 울음을 토해내는 듯했다.
그리고.
“제왕무적탄(帝王無敵彈)!”
남궁상순의 입에서 왠지 슬픈 듯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와 막부산 전역을 타고 울렸다.
사라랑! 사라랑!
붉은 혈광 속에서 애명환은 나직이 울었다. 의부의 후예들이 그분이 보안한 검진을 가지고 왔다. 그런 그들과 싸워야 하는, 아니 그들을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하늘에서 죽음의 비가 내리니, 핏빛 바람이 불어오네.”
흑색지안의 검은 눈은 아무것도 봐서는 안 된다. 오직 심장이 뛰는 소리만 듣고 그곳을 향해 비도를 뿌려야 한다.
백산의 입에서 흘러나온 묵직한 저음. 춤을 추듯 슬쩍 들어 올린 빙천비에서 빗방울마저 얼려버리는 가공할 한기가 쏟아져 나왔다. 허공을 감아 치는 왼팔의 풍천비에서 핏빛 폭풍이 흘러나왔다.
둘이면서도 하나인 기운, 반투명한 빙천비 기운은 풍천비에 의해 더욱 단단하게 변했고, 이내 폭풍을 머금은 극빙의 기운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거대한 얼음의 폭풍이었다.
백산의 몸을 떠난 핏빛 얼음 폭풍은 전면에서 다가오는 백룡을 향해 빛살처럼 날았다.
쿠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내리던 빗물이 얼음으로 변해 사라지고 주변은 진공 상태로 변했다. 오른편에서 우르릉거리며 쏟아지던 폭포마저도 얼어붙다가 이내 조각으로 부서져 내렸다.
조금 전 육대신마의 공격으로 인하여 한 꺼풀 속살을 드러냈던 절벽은 이번에도 충격파를 견디지 못했는지 한 자 정도 깎여 나가며 또 다른 속살을 드러냈다.
“크윽!”
과앙!
나직한 비명 소리와 함께 두 번째 폭음이 울려 퍼졌다. 반탄력을 견디지 못한 백산의 신형이 뒤편 절벽에 박혀들며 나는 소리였다.
사라랑! 사라랑!
“검은 구름이 울부짖어, 분노한 하늘이 소리치네!”
일 장 깊이의 구덩이를 만든 백산은 그곳을 박차고 나오며 재차 노래를 불렀다. 힘차게 뻗어낸 왼손으로부터 운천비의 묵운명(墨雲鳴)이 시전되었고, 오른 발의 뇌천비에서는 분천뇌(奮天雷)의 초식이 흘러나왔다.
일순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뇌기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빗속을 뚫고 돌진했다.
“섬전검뢰풍(閃電劍雷風)!”
남궁파천검진의 이 초식은 온통 번쩍이는 뇌기를 토해내는 뇌룡(雷龍)이었다. 허공에 기둥이라도 만들어져 있는 듯 빙글빙글 돌아가는 뇌룡은, 백산이 만든 묵운명과 분천뇌의 기운을 향해 광폭하게 달려들었다. 쩍 벌어진 입은 금방이라도 뇌기를 토해낼 것처럼 섬뜩했다.
구구궁! 번쩍! 콰콰광!
“크윽!”
“커억!”
벼락이 치는 듯 폭음이 연이어 울리고, 양편에서는 묵직한 비명이 동시에 흘러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남궁파천검진을 펼치고 있는 여섯 명은 십여 장 뒤편으로 물러났고, 백산은 조금 전 뚫었던 동굴의 깊이를 더욱 길게 만들었다.
“우엑!”
백산의 입을 타고 붉은 피가 벌컥거리며 넘어왔다.
사라랑! 사라랑!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다. 애명환이 울고 하연이 울고 있기에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과거에는 그녀들을 잃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바로 곁에 하연이 있고, 광혈지옥비가 있다.
“크아악!”
백산의 입에서 짐승의 그것 같은 포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이어 묵직한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화염지옥이 탄생하니, 죽은 자의 혼마저 파괴하네!”
붉은 화염에 휩싸인 백산의 신형이 자신이 만든 동굴 벽을 가루로 만들며 튀어나왔다. 화천비가 극화의 기운을 쏟아내고, 사천비가 죽음의 기운을 사방으로 뿌렸다.
“하늘에서 죽음의 독비가 내리니, 금강보다 단단한 것이 부서지리라!”
독천비에서 흘러나온 앙천마마묵독공은 쏟아지는 폭우를 검게 물들였다. 금천비에서 흘러나온 철기(鐵氣)는 걸리는 모든 것을 부숴 버렸다.
“으음! 마지막까지 가야 하는가!”
남궁상순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나직한 노랫소리와 함께 전면에 십여 개에 달하는 기운들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전부가 심검의 기운을 간직한 기운들. 닿는 건 무엇이든지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가공할 기운들이 점점 하나로 뭉치고 있다. 이미 주변은 독 안개로 가득했고, 대지마저 검게 녹아가고 있다.
“행운을..... 제왕천풍검뢰(帝王天風劍雷)!”
포권을 취하듯 검을 들어 올린 남궁상순은 천둥처럼 고함을 질렀다. 지혈해 두었던 왼팔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치고, 주변에 머물던 다섯 명은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돌기 시작했다.
주변의 대기가 무섭게 빨려 들었다가 다시 창살처럼 터져 나왔다. 그것은 폭풍이었다. 하나의 폭풍이 흘러나와 화염폭을 막아내고, 또 하나의 폭풍이 튀어나와 검은 독기운을 쳐낸다. 육대신마 또한 강기의 폭풍을 쏟아내고 심검의 태풍을 펼치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백산의 노랫소리와 그것을 막아내는 육대신마의 남궁파천검진.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양편은 서로의 절기를 쏟아냈다. 백산의 입에서는 점점 많은 양의 피가 쏟아지고, 가슴에 안겨 있는 주하연마저 피를 토해낼 무렵, 붉은 혈광 속에서 절규하듯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든 한이 대지로 돌아갈지니, 무한토(無限土)!”
하늘을 잘라버릴 듯 번쩍 치솟아 오른 백산의 오른발에서 토천비가 천력을 쏟아냈다.
“더 이상 분노는 없어라! 광풍무한(狂風無限)!”
일순 주변은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흐르기 시작했던 폭포마저도 숨을 죽였다.
광풍무한. 백산의 머리맡을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천비비가 붉은 광채를 뿌리며 전면을 횡으로 갈랐다.
파르라니 죽어 있는 주하연의 얼굴 때문이었다. 피를 토하는 주하연의 입 때문이었다. 무슨 죄가 있다고, 아비를 왕야로 둔 게 죄가 된다면 이 세상 죄인 아닌 놈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갓 살아난 생명 아닌가. 이제 열여섯 살 소녀가 아닌가.
“커어억!”
열두 자루의 비도가 회수됨과 동시에 처절한 비명을 내지른 백산은 추락하듯 지면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남궁파천검진을 구축하고 있던 육대신마의 신형도 바닥으로 내려섰다.
“하늘의 뜻을 정녕 모르겠소이다.”
파악!
그 말을 끝으로 남궁상순의 신형이 머리부터 시작하여 가루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잠깐 나타났던 광혈지안의 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잘라낸 왼팔에서 흘러 나간 피 때문에 마지막까지 힘을 쓰지 못했던 것 때문인지, 남궁파천검진이 패한 이유는 남궁상순 본인만 알뿐이었다.
“오빠!”
이번에 주하연은 미소를 짓지 못했다. 쓰러진 백산은 꿈틀거리기만 할 뿐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입가로 끊임없이 피를 흘리며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발을 버둥거리고, 팔을 저어 보지만 그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말을 해요. 입을 벌려서 피를 뱉어내란 말이에요.”
울음을 터뜨린 주하연은 자신의 입술을 백산의 얼굴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의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하지 말라며 몇 번이나 눈으로 말했으나 주하연은 듣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세게 혀를 밀어 넣었다.
이윽고 백산의 입이 벌어지고 성급한 혀가 깊숙이 파고들었다. 두 사람의 입가로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백산의 입 안에 고여 있던 피.
‘울고 싶으면 울어요. 실컷 울란 말이에요.’
백산의 눈을 쳐다보며 주하연은 눈으로 말했다. 커다란 눈을 애써 끔뻑이며 터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있다. 그가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 또한 내상을 당해 움직일 기력이 없다.
백산의 입안에 고인 피가 전부 빠져나오자 주하연은 입을 뗐다.
“쿨록!”
입 안이 시원해지자 백산은 다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몸의 기가 빠져 버린 듯,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손을 뻗어 보았지만 맥없이 꺾일 뿐이었다.
“그대로, 지금은 이대로 쉬어요. 이대로.......”
“니미럴!”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몸에 힘이 돌아올 때까지만 쉬는 게 나으리라.
몸의 힘을 풀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지면을 향해 떨어지는 빗방울이 눈 안으로 파고들었다.
“괜찮아?”
“그래요, 하연인 괜찮아요. 오빠만 있으면 괜찮다고요.”
“그래. 다행이다, 별로 다친 것 같지 않아서. 괜찮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하연이 너만은 괜찮아야 한다. 너만은.......”
“오빠!”
주하연은 고함을 질렀다. 백산이 끝내 정신을 놓아 버린 것이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재빨리 손을 돌려 마안철겸을 풀었다. 몇 번이고 버둥거리던 주하연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백산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조금 전 두 사람이 박혔던 절벽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얼마나 피를 토하고 몇 번을 쓰러졌는지.
무릎이 까지고 팔꿈치에서 피가 흘렀으나 주하연은 멈추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차가운 빗속에 백산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뿐이었다.
십 장. 경공을 이용하면 한달음이고, 뛰어간다 해도 한달음이다. 그 거리를 주하연은 일다경이 넘게 기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발은 맨발이 되었으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나마 동굴이 낮아서 다행이네요.”
동굴이 낮아 백산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했다. 힘겹게 백산을 동굴로 끌어올려 맨 안쪽까지 옮겨 놓은 주하연은 그의 품에 너부러지듯 고개를 묻었다.
그녀 또한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던 탓이다. 조금 전 싸움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간혹 번개마저 쳐대며 하늘은 쉼 없이 비를 뿌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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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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