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5.2.6.목요일 성 바오로 미키(1564-1597)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히브12,18-19.21-24 마르6,7-13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로서의 기본적 자질
“희망과 사랑, 이탈의 자유와 섬김”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우리 믿는 이들의 신원은 분명합니다. 당시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안으로는 주님의 제자, 밖으로는 주님의 사도’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자랑스런 신원이자 사명입니다. 이런 정체성이 또렷해야 방황하지 않습니다. 옛 현자의 말씀도 우리의 신원확립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의심의 끝에서 발견하는 것은 결국 의심하는 나 자신이다. 의심하는 나를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을 의심 속에 살아야 한다.”<다산>
“도끼를 잃어버리니 이웃집 아이가 의심스러웠다. 도끼를 찾은 다음 이웃집 아이를 보니 도끼를 훔친 아이 같지 않아 보였다.”<열자>
사람이 물음이라면 주님은 답입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사도로서의 정체성이 또렷해 질수록 방황하지 않고, 참나의 겸손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끊임없는 자아초월(自我超越)로 겸손하고 온유하며 지혜로운 주님을 닮아감으로 참나가 되는 길뿐이겠습니다.
어제 읽은 내용도 믿는 이들의 삶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사람들의 9까지 습관입니다. 1000명이 넘는 암말기 환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어느 호스피스 전문의가 가르쳐준 삶의 지혜입니다.
1.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하라.
2.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3.집착하지 마라.
4.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5.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라.
6.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중히 하라.
7.삶과 죽음에 의연하라.
8.삶의 의미를 찾아라.
9.거짓 희망을 버리고 진짜 꿈을 꾸어라.
이 모두를 일거에 해결해 주는 주님의 제자로서, 사도로서의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며, 우리 삶의 희망이자 꿈입니다. 이런 주님께 희망을 두고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사랑하며 살아갈 때 저절로 이탈의 자유요 진정 주님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 바오로 미키(1564-1597)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입니다.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치하에서 선교하다 체포된 사람들은 작은형제회 수사 6명, 예수회 수사 3명, 일본인 신자 15명으로 24명에 후에 자진하여 체포된 2명의 일본인 신자 2명, 도합 26분입니다.
체포된 이들은 1597년 1월3일 교토를 출발하여 처형지인 나가사키 근처 해안까지 걸어 이동했습니다. 교토에서 나가사키의 850km 순교의 길은 세계 역사 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멀고도 먼 길입니다. 미키 성인도 이들과 함께 겨울추위가 절정인 1월 내내 걷고 또 걸어 2월6일 바로 오늘 나가사키의 골고타’라고 불리는 나가사키 해안 근처 니시자카(西板) 언덕에서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합니다. 33살 일본 청년 미키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 전 마지막 남긴 말도 감동입니다.
“나는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지만, 단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죽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죽게 됨을 기쁘게 생각하며,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내려 주신 커다란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저를 박해한 이들을 용서합니다. 그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박해하는 이들을 가엾게 여기십니다.”
미키 성인은 사제품을 받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지만 순교할 수 있음을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1627년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62년 6월8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동료순교자들과 함께 26위의 일본 성인중의 한명으로 시성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일편단심의 사랑과 믿음이 이런 이탈의 자유와 기쁨속에 순교를 가능하게 했음을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무소유의 복음 선포가 가능했던 것도 순전히 주님 사랑에 기인한 초연한 이탈의 자유에 있음을 봅니다. 물론 이들의 파견활동이 가능했음은 도처에서 믿는 이들의 ‘환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음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 향한 이탈의 사랑이 ‘소유가 아닌 존재’인 주님이자 스승인 예수님만을 따르게 했고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로써 본질적 사명 수행에 충실하게 했음을 봅니다. 제자들이자 사도로써 자유는 전적으로 섬김의 자유임이 다음 대목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었다.’
참으로 파견받은 사도로써 주님을 닮아 본질적 섬김의 사명 수행에 전력을 다했던 주님의 제자들이었고 바로 우리의 본질적 사명 역시 섬김의 사랑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지칠줄 모르는 선교열정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바로 히브리서가 말하는 궁극의 희망이자 꿈을 상징하는 천상 예루살렘입니다.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새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습니다.”
바로 거룩한 미사전례가 거행되는 오늘 지금 여기가 시온 산이요 천상 예루살렘의 실현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오늘 지금 여기서 부터 천상 예루살렘의 꿈과 희망을 앞당겨 살 때 지칠줄 모르는 열정에 샘솟는 섬김의 선교활동입니다. 결코 속화되어 오염되거나 부패 변질됨이 없이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로써 본질적 사명 수행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