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1.7.11.) 말씀/ 로마서 8:28
딜레이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얼마전 우스리스크 김효주선교사님이 출국 예정 잡아놓고, 코로나 확진 판결을 받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퇴원해서 비행기타고 귀국 준비하는데 서류에 이상이 있어 다시 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러시아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도 힘들었을 텐데, 코로나까지 걸리고, 음성 판정받고 또 1주일이 딜레이 되고,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14일 비행기 출항이 취소되고, 극적으로 11일 비행기표 두 장 남았는데 그 표로 출국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초대 한국교회에서 많은 부흥회를 인도하셨던 <밥 피어스>라는 목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홍콩에 들렀을 때의 일 이었습니다. 밥 피어스목사가 탓던 비행기가 딜레이 되어 늦은 밤에 홍콩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호텔에 가니 방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호텔에 갈 형편은 되지 못하였고 하는 수없이 호텔 직원에게 사정을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아다시피 이 밤에 내가 어디가서 호텔을 찾겠느냐? 나는 갈 수가 없으니 혹시 미국인중에서 혼자 투숙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간이침대를 놓고 조용히 자고 갈테니 그런 사람을 좀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 형편을 아는 호텔직원이 챠트를 열어보다가 한 미국남자가 혼자 쓰는 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라가 사정이야기를 하였더니 흔쾌히 승낙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밥 피어스목사는 올라가 잠시 어색한 인사를 하고 마련된 간이침대에 누웠습니다. 밤도 늦었고 오랫동안 비행여행을 하였기에 너무 피곤해서 곧바로 잠에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한 남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잠결에 듣는 소리지만 너무 구슬프게 우는 한 남자의 우는 소리에 눈을 떳습니다. 눈을 떠보니 같이 자는 그 남자의 울음소리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이기에 밤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저렇게 울고 있는 것일까? 내가 좀 도와주어야겠다 싶어 조심스럽게 불을 켰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자면서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체 무슨 일로, 무슨 슬픈 꿈을 꾸었기에 저렇게 잠꼬대를 하며 울고 있을까? 조심스럽게 밥 피어스목사는 그 남자를 깨웠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아까 내가 경황이 없어서...또 당신을 방해하기 싫어서 그냥 잤습니다. 제 소개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나는 밥 피어스라는 사람이고 목사입니다. 제가 당신을 깨운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제가 자다가 잠결에 너무 슬픈 울음소리를 듣고 눈을 떠보니 당신이 지금 울고 있었습니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제가 그 슬픈 울음에 당신을 좀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저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시면 제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참만에 그 사나이가 무거운 입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나는 네팔선교사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울고 있습니까? '' ''저는 네팔에 가서 선교를 하였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성경을 번역도 해보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지마는 아무런 성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실망을 하고 미국으로 다시금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교에 대한 소명을 간직한 한 자매를 만나게 해 주셨고 그 자매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까지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다시 선교지인 네팔로 왔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우리 걸음마를 뗀 아이가 동네 아이들과 더불어 흙장난을 하고 놀다가 흙 속에 있는 나병균에 오염이 되어서 그만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선교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제 걸음마를 뗀 내 아이...문둥병에 걸린 내 딸아이를 안고 지금 하와이에 있는 나병촌에 넣어놓고 혼자 네팔 선교지에 있는 사랑하는 내 아내에게로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밤 내가 잠을 자면서 하나님께 결단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는 선교사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무능합니다. 나는 선교비만 축내는 참 바보같은 선교사입니다. 이제 하나님 내 선교를 접겠습니다. 내가 네팔로 돌아가면 아내와 함께 보따리를 싸서 하와이로 가 내 딸아이를 치료하며 한평생 그렇게 살겠습니다. ''그렇게 결단의 기도를 하고 잠을 잤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잠을 자고 있는데 그 꿈에 우리 주님께서 찾아오셨는데 '주님께서 저를 한없이~ 한없이 슬픈 모습으로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시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너마저...너마저 이 네팔을 버리고 가면 저 불쌍한 네팔의 영혼은 어떻게 하겠느냐?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시면서 막 우시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자신의 가슴 속에 벅찬 감격이 찾아왔습니다. 자기가 하는 이 네팔선교가 실패한 것이고 잘못된 길인줄 알았는데 우리 주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를 보고 계셨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지금은 열매가 없지만 자기가 하는 이 일이 결코 실패하는 인생길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주님께서 인정해 주셔서 너무 감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한없이 울었다는 겁니다. 자기도 울고, 주님도 울고 함께 울고 있었노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 이었습니다. 이 네팔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밥피어스 목사님은 왜 비행기가 딜레이되었는가를 알게되었습니다. 큰 실망 속에서 모든 것을 접고 하와이로 돌아가려한 네팔선교사님을 위로하고 도우시도록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려 알기가 어렵습니다. 대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딜레이하시는 데는 어떤 뜻이 있는 것입니까? 로마서 8: 2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선한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위해서 모든 일, 모든 상황에 선한 뜻을 이루시는 분이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것은, pa'"(파스) 온갖, 전체, 전부 라는 뜻이고, 선이라는 ajgaqov"(아가도스)는 탁월한, 우수한, 좋은, 훌륭한 이란 뜻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삶을 간섭하시며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우리에게 유익하게 하시고, 아주 훌륭하게, 형통하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결과를 보니 비행기 놓친 것이 더욱 훌륭하고 좋은 일 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딜레이에는 어떤 좋은 뜻이 있는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딜레이에는 훈련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지시할 당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하겠다! 아브라함은 75세의 나이지만 말씀을 쫓아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도 하나님은 자식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당장 길을 떠나면 주실 것같이 말씀하셨는데...시간이 지나도 현실은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집에서 길리운 자 다메섹 엘리에셀이나 자식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습니다. 안 되겠다싶어 어쩔 수 없이 사라와 의논하고 첩 하갈을 통해서 자식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의 몸에서 난 자라야 너의 씨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 빨리 주시던지...그리고 또 시간은 계속 딜레이 되어 사라의 경수가 끊어지고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 나되어서 하나님은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25년이 걸렸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늦으실까요? 그 답이 22장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제는 이삭을 인해서 즐거워하고 행복할 때 하나님은 그 약속의 자녀 이삭을 모리아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전과 같았으면 아브라함은 “약속하여 주실 때는 언제이고 또 달라하십니까? 그리고 그 명령은 불가한 명령입니다.” 하고 항변했을 텐데 조금도 지체없이 순종하여 이삭을 데리고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모리아산에 올라 칼을 들어 이삭을 잡고자 할 때 하나님이 그를 멈추게 하시고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세기 22:12). . 이제야 나노라. 25년이란 세월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하고 키우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오병이어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의 일을 하실 때는 순식간에 이루시는 문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을 키우고 훈련하실 때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깨달으면 하나님의 딜레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 20년, 모세 40년,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40년, 바벨론 유스 70년...이었습니다. 왜 훈련이 필요합니까? 훈련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기술이 연마된 만큼만 쓰임받는 것입니다.
둘째로, 더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창세기에 요셉은 야곱의열 두 아들 중에서 가장 사랑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시기심 때문에 어린 시절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집에 가정에 들어가 일을 했습니다. 열심히 해서 총무가 되어 주인의 집을 유익하게 하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거기서도 열심히 성실히 본분을 다함으로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그들의 꿈을 해몽해주고 그 중에 술 맡은 관원장이 풀려나 전직을 회복하게 될 때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바로에게 부탁해서 자신의 누명을 풀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술 맡은 관원장은 그러고마 하고는 매정하게도 요셉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정처 없이 또 2년이란 세월이 옥중에서 흘러갔습니다.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때가 되자 바로가 요셉을 불러냈습니다. 시편 저자는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105:19)고 했습니다. 그는 나가서 왕의 꿈을 해몽하고 그 대처 방법까지 알려주고 애굽의 2인자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단지 출세가 아니라 이로서 세상에 닥치는 큰 기근에서 온 땅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에 귀히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일개 죄수가 하루아침에 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요셉은 자기를 판 형들이 꿈처럼 자기 앞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이 일을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요셉이 죽은 줄 알았던 야곱이 이 소식을 듣고는 뭐라고 합니까?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창45:28).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억을한줄 알았고 죽은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더 좋은 일로 축복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너무 시간을 끌고 딜레이 하실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힘이 듭니다. 의문이들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금도 급하지를 않으십니다. 결과를 보면 하나님이 언제나 옳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도 보십시오. 오리비 나사로가 죽자 마리아 마르다가 에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급히 오셔서 나사로를 고쳐달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듣고는 이틀을 더 머무십니다. 결과 오늘 내일 하던 나사로는 죽게 됩니다.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습니까? 그렇게 사랑하는 나사로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주께서 조금 일찍 오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텐데...왜이리 늦게 오셨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후 제자들과 함께 떠나시면서 우리가 거기 있지 않은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잘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죽었는데 뭣이 잘 될 일 입니까? 예수님은 부활의 믿음의 없어서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죽음 권에세 사로잡혀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부활의 믿음을 심어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나사로도 살아났고, 제자들과 마리아 마르다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당시 이를 본 많은 유대인들이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45)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무시아 앞에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는데 길을 계속 막힙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빌립보로 해서 유럽의 복음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사무엘 상을 보면 엘가나에게 두 아내가 있었는데 브닌나는 자식을 잘 낳는데 믿음이 있고 사랑받는 하나는 자식이 없어 멸시와 조롱을 받고 슬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중에 더 좋은 선물로 선지자 사무엘을 아들로 주십니다. 보통 성실한 사람들은 딜레이를 싫어합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시간 개념이 분명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칼같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좋아 합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딜레이에는 선한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시간 늦고 지각하고 딜레이 되는 것에 성급한 마음을 갖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딜레이 되는 동안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게임을 하거나 오락을 하며 기다립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딜레이 시간은 준비 시간입니다. 더 좋은 것을 받을 준비를 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열심히 가정 총무 일을 충실하니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죄수들을 성심으로 섬기다보니 왕을 섬기게 되지 않았습니까? 큰 그릇이 되기 원한다면 책도 읽고, 선교사가 되려면 어학도 공부하고, 성경 말씀도 열심히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충분히 기도할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준비가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실 때 받을 준비 잘 할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세 번째,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시간을 딜레이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생명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후서 3:9절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어떤 사람들은 주의 약속이 더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더딘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승천하실 때 곧 오실 것같이 말씀 하시면서 깨어 준비하라고 하셨는데 벌써 2,000년이 지났습니다. 정말 더딘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더딘 것은 게을러서 더딘 것이 아닙니다. 행정착오도 아닙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인줄 믿습니다. 아직도 복음이 전파되지 않고 믿지 못하고 있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시기 위해 좀 더 지체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오시면 사실 인류는 불행입니다.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한 6:39). 우리도 사실은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시간에 대해서 조금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사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빠르고 늦은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밥도 느리게 먹는다고 핀잔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밥 발리 먹는 것이 무엇이 중요합니까? 질 씹어서 소화를 잘 해야지요. 저도 시간에 꽤 민감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좀 느긋하려 합니다. 시간은 속도의 개념보다도 숙성의 개념이 더 중요합니다. 기다림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답답한 것 같지만 기다려야 식물도 잘 자라서 좋은 열매를 맺게 되고, 음식이 맛있게 숙성이 됩니다. 하나님나라도 생명이 충분히 열매 맺는 시간이 필요하다보니 하나님은 딜레리를 잘 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지각하고 더딘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 입니까? 어떤 사람은 모태에서 어떤 사람은 20대에, 어떤 사람은 60이 넘어서, 어떤 사람은 90세에, 임종 자리에서 고백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딜레이하시는 데에는 선한 뜻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첫째, 훈련하시는 의미, 둘 때, 더 좋은 것을 주고자하시는 의미, 셋째, 한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자하시는 의미입니다. 이제 우리도 딜레이하시는 하나니의 선한 뜻이 무엇인가 배우고 생각하고 준비해서 우리의 모든 삶속에 아름다운 열매 맺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