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년 동안 무덤 속에 들어 있다가 10년 전 발굴돼 큰 감동을 주었던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 이야기가 가볍고 얕은 사랑이 일상화한 우리 시대에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으로 다가와 가슴을 친다.
무덤의 주인공은 고성 이씨(固城 李氏) 이응태(李應台·1556~1586). 아이를 뱃속에 둔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 부모·형제를 두고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이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이 안동대 박물관 3층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워늬 아바님께 샹백--병슐 뉴월 초하룬날 지비셔’(원이 아버님께 올림--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라는 제목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내 샹해 날다려 닐오대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쟈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 긔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난고.”(당신 늘 나에게 이르되, 둘이서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자식은 누구한테 기대어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가로 58㎝, 세로 34㎝의 한지에 붓으로 빼곡히 써내려간 한글 편지엔, 서럽고 쓸쓸하고 황망하고 안타까운 한 아내의 심정이 강물처럼 굽이친다. 함께 누워 속삭이던 일에서부터 뱃속 아이를 생각하며 느끼는 서러운 심정, 꿈속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애절한 간청까지 절절하게 녹아 흐른다.
“함께 누워서 당신에게 물었죠. 여보, 남도 우리 같이 서로 어여?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 같은가 하여 물었죠. 당신은 그러한 일을 생각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가득 쓰고도 모자라 위 여백까지 빽빽이…남편 호칭은 ‘자내’
한지 오른쪽 끝에서부터 써내려간 편지는, 왼쪽 끝까지 가득 채우고 모자라 위 여백으로 이어진다. 그러고도 모자라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나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다시 글 첫머리 쪽 여백에 거꾸로 씌어 있다. 여백을 활용해 쓰는 이런 편지 양식은 당시로선 일반적인 것이었다. 즉 종이가 귀하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할 말이 이토록 많다는 뜻을 표현하였다.
더 감동적인 건 함께 출토된 미투리다. 미투리란 삼껍질 등을 꼬아 삼은 신발이다. 여기서 나온 미투리는 삼과 머리카락을 함께 꼬아 삼은 것이다. 이 머리카락은 원이 엄마의 것으로 추정된다. 미투리는 한지에 싸여 있었는데, 한지엔 한글 편지가 적혀 있으나 훼손돼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 등 일부 글귀만 확인된다. 조 학예사는 “남편이 병석에 누운 뒤 쾌유를 빌면서 삼기 시작한 미투리”라며 “끝내 세상을 뜨자 함께 무덤에 넣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덤에선 아들 원이가 입던 옷(저고리)과 원이 엄마의 치마도 나왔다. 형(이몽태)이 동생에게 쓴 한시 ‘울면서 아우를 보낸다’와 형이 쓰던 부채에 적은 ‘만시(輓時)’도 있었고, 이응태가 부친과 주고받은 편지도 여러 통 발견됐다. 발굴된 의복은 40여벌에 이른다.
부친과 나눈 편지엔 전염병 관련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은 당시 전염병을 앓다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친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건 이응태가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다는 걸 뜻한다.
당시(임진왜란 전)엔 결혼하면 시댁살이와 함께 처가에 가서 사는 것도 일반적이었다. 임란 전엔 재산 분할도 아들·딸 차별이 없었다. 이런 인식은 편지에도 드러나 있다.
원이 엄마의 편지에 나오는 남편에 대한 호칭이 ‘자내’다. 지금은 아랫사람에게 쓰는 호칭(자네)으로 바뀌었지만, 임진왜란 전까지는 상대를 높이거나 최소한 동등하게 대우해 부르는 호칭이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도 소개되고 국제 잡지 논문까지
이응태의 무덤은 1998년 우연한 계기로 발굴됐다.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 지정으로 주인 없는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안동대 박물관쪽의 지표조사가 계획돼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동 어느 문중에서 입향조의 무덤을 찾기 위해 무덤들을 파다가 명정(무덤에 덮는 천)에 ‘철성 이씨’라 적힌 무덤을 발견하고 고성 이씨 문중에 알렸다고 한다(고성 이씨는 본디 철성 이씨로 썼다). 발굴은 고성 이씨 문중 입회 아래 진행됐고, 무수한 부장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내용은 다큐멘터리 저널 <내셔널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소개됐고, 2009년 3월엔 ‘원이 엄마 한글편지’와 출토물을 다룬 연구논문이 국제 고고학 잡지 <앤티쿼티> 표지논문으로 실리기도 했다.
원이 엄마의 한글편지 전문
원이 아버지께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임세권 안동대 사학과 교수 풀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