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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산(395M)
1.산행구간: 영도유림아파트-선불사-봉래산-자봉-손봉-둘레길-복천사-산제당-대흥사-남포동
2.산행일자: 2013. 11.30(토요일)
3.산행거리 :
4.산행참가자:아내
5.구간별 거리 및 소요시간 :
6.코스별 산행시각
◎ 울산 출발 (09:30)
◎ 노포동 (10:20)
◎ 남포동 영도다리(11:10)
◎ 영도다리 도개행사(12:00~12:20)
◎ 영도유림아파트 103동 입구(12:30)
◎ 선불사(12:32)
◎ 봉래골 그린공원(12:35)
◎ 봉래산체육공원/헬기장/전망대(12:55)
◎ 삼거리/봉래산 정상0.46km,해돋이 배수지0.61km,복천사0.9km,산제당0.33km(13:05)
◎ 송신소/kbs,mbc(13:08)
◎ 봉래산/봉래산 손봉0.85km,목장원1.61km,봉래산체육공원0.46km,백련사1.48km(13:15)
◎ 휴식(13:20~13:40)
◎ 안부/봉래산정상0.2km,봉래산 손봉0.66km,광평고등학교0.71km,봉래산체육공원0.59km,목장원1.46km(13:42)
◎ 자봉(13:47)
◎ 휴식(13:50~14:40)
◎ 손봉(14:57)
◎ 이정표/목장원1.47km,봉래산 정상0.85km(15:04)
◎ 이정표/봉래산 정상1.24km,손봉0.39km,목장원1.08km,고신대0.51km(15:15)
◎ 목장원 삼거리 /봉래산 정상1.61km,봉래산 손봉1,47km,복천사1,86km,백련사1,18km(15:25)
◎ 이정표/목장원1.06km,복천사0.23km봉래산 정상0.6km(15:55)
◎ 복천사(16:01)
◎ 산제당(16:08)
◎ 대흥사(16:20)
◎ 영도대리(16:45)
◎ 남포동 18번 완당집(17:00)
◎ 자갈치사장 곰방어집(17:30~20:00)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놓아-불러-봤다-찾아-를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홀로-왔-다.
일가-친척 없는-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몸은 국제-시장-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행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떴-다.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가 울러퍼지는 영도다리.............
퉁명스런 확성기로 잠시 도개행사기 있사오니 시민여러분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라는 멘트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3년 11월 30일 11시 55분....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부둣가...
그리고 영도 다리위...
12시 정오의 싸이렌 소리가 울리고....그리고
조용하게 다리가 들립니다.
천천히 들리는 다리...
주변에서 들린다...들린다....올라간다라는 소리
조용하던 사람들 입에서 감탄사 소리와 함께 자조섞인 한숨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유난히도 히껏히껏한 백발의 머리를 가진 노년충의 많은 분들이 지켜보는 영도다리 도개 행사...
그행사를 한지 오늘로서 3일째이지만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셨네요.
지난 11월 27일 오후 2시30분 47년만에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도개가 공식으로 재개 된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매일 12시부터 15분간에 걸쳐 도개행사를 한다 하는데요.
여기서 도개라함은
돛이나 굴뚝이 높은 큰 배가 다리에 걸리지 않고 그 밑으로 운항할 수 있도록 상판을 들어주는 기능을 가진 교량을 말하는것이라 합니다.
영도 다리는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56호(2006년 지정)로 일제 강점기인 1934년 세워진 부산 영도구와 중구 대청동을 잇는 부산 최초의 연륙교(길이 214.6m, 폭 18.3m, 높이 7.2m)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일엽식 도개교라 합니다.
개통 당시 육지 쪽 상판 31.30m를 하루 2∼7차례 들어 올렸으나 교통량 증가와 다리 하부에 상수도관이 놓이면서 1966년 9월1일 도개를 중단됐다고 하는데요.
부산시의 요청에 롯데가 보수비용 1천100억원을 투입, 영도 다리를 확장하고 보수과정을 거쳐, 도개(跳開) 기능을 회복 했다죠.
해서 6차선 규모의 다리는 47년 만에 도개 기능을 회복, 매일 정오에 교량 상판이 들어 올려질 예정이라 합니다.
6.25 동란과 피란시절의 애환과 근대사 아픔 고스란히 간직한 영도다리...
그 영도다리가 생긴건 1926년도라 합니다.
일제 시대때이죠
일본인 야마모토 우타로라는 사람이 설계를 하였다는데요
가동교의 전문가로 특허를 가지고 있었다 합니다.
하지만 설계만 하고 정작 완공은 지병으로 인해 사망함으로 보지 못했다는 후문이기도 합니다.
그당시만으로 보면 대단한 업적이 아닐수 없음이죠
비록 일본인이간 하지만....
1926년부터 영도다리 건설을 검토하기 시작, 6년 간의 공사를 거쳐 1934년 11월 23일 영도다리를 준공, 개통했다 합니다.
길이 214.6m, 폭 18.3m, 높이 7.2m 규모였다고 하는데요.
도개교는 길이 31.3m, 너비 18m였으며 고정되어 있는 다리가 길이 153m, 육교가 길이 15.09m였다고 하는데요.
도개교 부분은 최고 80도까지 들어올려졌고 저속으로 올릴 때 4분, 고속으로 올리면 1분30초 만에 완전히 들어올려졌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시대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한 보급과 수송로 구축을 위해 영도다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대륙 침략을 위해 영도에 조선소 같은 대규모 중공업시설을 짓고 생산된 군수물자를 옮기는데 영도다리를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다리가 준공된 1934년까지 수십만 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동원됐고 많은 이들이 공사과정에서 희생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죠.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5만명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합니다.
역사를 들여다 보면
한국전쟁 때 영도다리는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이 전쟁 와중에 헤어진 이들을 만나려고 다리 밑을 찾으면서 우리나라 1호 만남의 광장 역할을 했다합니다.
특히 피난민들의 예술작품 소재인 영도다리....
그리고 그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영도다리...
영도
영도...
영도는 예로부터 말(馬)과 인연이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
목마장으로 유명해 그림자 조차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빨리 달리는 명마,즉 절영 명마를 생산한 섬으로 절영도가 줄어져 영도란 이름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도 안의 봉래산은 동쪽바다 한 가운데 있어서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는 상상속의 영산이라하며.봉황이 날아드는 산이라는 의미죠.
또 봉래산을 일제시대에는 고갈산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목이 마른 산 혹은 말라서 없어지는 산이란 뜻인데요. 일본이 산의 기세를 꺾어 한반도 점령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서였죠.
◎ 울산 출발 (09:30)
11월 30일
산엘 가자는 이야기가 없는걸로 봐서 모두 마음이 게을러 졌나 봅니다.
하기사 그도 그럴것이 춥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뭄이 웅크러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밖에 나가는것 보다 실냐 활동을 하게 되고 또 바람을 맞으며 나가는것 보다 집안에 있으며 싶고 하는게 인간이지 싶습니다.
그러니 누가 야외 활동을 하고 싶겠습니까...
오늘도 아내와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둘이서라도 가자고....
그러다 보니 고산 위주로 다니던 계획은 낮은산 그러니까 쉬이 다녀올수 있는 그런곳을 골라골라 다녀 오곤 하게 됩니다.
해서 지난주는 해운대 대천공원에서 출발 장산을 둘러 보기도 하고...
오늘은 지난 3일전 영도다리 도개행사를 했다 해서 그곳도 둘러보고 그리고 간김에 영도 봉래산을 둘러볼 요랑으로 준비를 합니다.
뭐 준비라기보다 12시에 도개행사를 한다하니 울산에서 몇시에 출발하면 그곳에 시간내 도착할것인가 그게 준비입니다.
오늘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해서 09시 30분 집을 나섭니다.
◎ 영도다리 도개행사(12:00~12:20)
먼저 차를 무거 삼거리 아세아농기계앞 공터에 주차를 시키고 1127번 버스를 탑니다.
노포동까지는 정확히 50분이 걸립니다.
그리고 노포동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데요
남포까지는 40분정도....
각 출구마다 영도대교 의 이정표가 있긴 하지만 먼저 자갈치방향의 길목인 4번출구를 따라 나섭니다.
갯내음이 비치는 바닷가...
너무 일찍온듯한데 많은 분들이 벌써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네 들이고...
간혹 젊은 분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바닷가 난간에 자리를 잡고 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또 다리위에도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한 모습이지만 모두들 도개행사를 보러온이들로 보일뿐입니다.
그렇게 얼마후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가 울러퍼지는데.....
한발자국씩 앞으로 달려 드는 모습입니다.
또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라는 멘트가 계속되고 있고...
그렇게 얼마후 12시 싸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다리가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올라갈때마다 주변에서 탄식섞인 한숨소리가 이어지더니 이내 하늘 높이 올라가 있네요
순간 와~라는 소리가 이어 집니다.
그리고 다시 내리는 시간만큼 짧게 느껴 본적이 없을만큼 금방 내려 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어지는 왕복 6차선 도로
오가는 바쁜 발걸음만큼 사람들도 차들도 달리기 시작합니다.
약 15분간의 걸친 도개행사....
교통및 인원통제도 하고......
그리고 올라갑니다.
하늘 높이.....
발딱 들었습니다.
파란 하늘과 붉은 다리가 어울리는....조화로움
영도 다리 상판......
중앙동을 바라보면서.....
다시 원위치 되고....
아쉬움속에 뒤돌아서는 인파들.....
다시 일상생활로....
◎ 영도유림아파트 103동 입구(12:30)
오늘도 내일도 계속되리라 생각하면서 영도 다리를 건넙니다.
영도경찰서앞에서 택시를 타고 봉래산 산길 들머리로 실어 달라하니 유림아파트 앞쪽에 내려다 줍니다.
봉래산 산행은 세번째인데요
처음엔 영도 어울림문화공원에서 손봉 자봉 봉래산으로 이어지는 산길...
그리고 두번짼 신선동 공영주차장에서 대흥사 방향으로...
그리고 오늘 그 세번째입니다.
새마을 경로당 앞으로 난길따라 올라갑니다.
담장 너머로 선불사도 보이고.....
들머리인셈이죠
요렇게 생긴 이정표도 서 있고.....
봉내골 그린공원이네요
이런 운동 기구시설도 있고....
◎ 봉래산체육공원/헬기장/전망대(12:55)
봉래2동 유림아파트 103동이 보이는 길목인셈이죠
또 그리고 신축중인 봉래동 유진캔슬아파트와 새마을 경로당 사잇길이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셈입니다.
가파른 포장길...
눈오면 어떻게 하나라면서 올라서는데 담장너머로 선불사가 시야에 들어 옵니다.
이를 지나 잠시 올라서면 봉래산 숲길이라는 이정표와 함께 봉래골 그린공원이라는 현판을 단 문이 시야에 들어 옵니다.
더구더나 삼나무 숲으로 이뤄진 숲길.........
왼쪽에는 운동기구시설들이 자리하고 있고...
또 봉산 약수터라고 이정표도 세워져 있고...
하여간 길따라 올라섭니다.
완만하게 올라서는 길이라 그리 힘들지 않고 올라서지만 이내 땀이 베여 나오곤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날이 따스하기도 한것이겠지요
그렇게 얼마후 팔각정 정자가 있는 전망대에 올라서는데요
그 뒷쪽으로는 안테나가 있고...
먼저 정자로 올라서는데요
툭터인 조망이 시원스럽게 합니다.
북항대교가 발아래로 지나가고..
그리고 그옆으로 감만부두의 콘테이너항만 그리고 이어지는 신선대와 이기대며 오륙도 까지...
장산에서 이어지는 황령산과 엄궁산, 시약산 구덕산 승학산이 부산을 에어 싸고 있는 모습입니다.
더구더나 2014년도 개통한다는 북항대교...
이미 다리공사는 다한듯 보입니다만 접속도로가 아직 공사중인가 봅니다.
그렇게 함참이나 보다 다시 올라섭니다.
팔각정에서 본 부산 항...
남항도 보이고...
헬기장과 봉래산 영도 송신소 안테나들....
이정표와 지도
◎ 봉래산/봉래산 손봉0.85km,목장원1.61km,봉래산체육공원0.46km,백련사1.48km(13:15)
헬기장을 지나 이어지는 포장길....
지금은 황령산으로 옮겨가고 일부만 남은 시설물의 KT건물 그리고 KBS 송신소 정문을 지나 MBC송신소 옆길따라 올라섭니다.
395m의 봉래산입니다.
영도 삼산할매앞에 선 봉래산 정상....
395M 1등 삼각점이 자리하고 있는 봉래산
그앞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이 삼각점은 1910년 6월 한국의 대삼각본점"절영도(봉래산)와 거제도(옥녀봉)를 求點으로 대마도 1등삼각점 유명산(有明山)과 어악(御嶽)을 여점(與點)으로 사각망을 구성하여 관측 게산하였다.
이 두 삼각점을 모체로 전국에 대삼각본점 400점을 설치하여 토지조사를 시행한 역사적 할술적으로 중요한 삼각점이며 현재 이곳의 삼각점 표시는 1992년 11월10일 부산광역시에서 재설치 하였다.
삼각점 측량성과
번호및 명칭 :부산 32 (당시 절영도)
종.횡선 죄표:X=-32,4053.45m Y=4971.35m H=394.60m
소재지 : 부산광역시 영도구 청학동 산51-10
2002.10.23 영도구청장
봉래산 정상에서보는 부산 시가지는 날씨가 좋아서인지 참 좋아 보입니다.
북항대교는 더더욱 선명하게 다가오고..
또 감만부두의 콘테이너항은 토욜임에도 불구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까지..
오륙도의 바위섬은 오늘도 물이 차서 여섯개의 섬으로...
또 남항대겨를 분주히 움직이는 차량들 너머로 송도해수욕장이 햇살에 반짝이고...
항구를 드나들 순서를 기다리는 거대한 선박들이 남항에 정박해 있고....
그런 모습을 볼수 있는곳이 이곳 봉래산 정상입니다.
따스한곳을 골라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내려섭니다.
봉래산 정상에서 본 부산항.....
봉래산 정상에서 본 오륙도
봉래산 정상에서 본 북항다리
봉래산 정상에서 본 감만부두
봉래산 정상에서 본 신선대와 이기대
봉래산 정상에서 본 남항대교
잠시 쉬면서 본 남항 대기 선박편.....
자봉도 보이고....
이안부를 지나 올라서면 자봉입니다.
◎ 자봉(13:47)
안부를 지나 올라서는길에 자봉입니다.
팔각정 정자도 하나 만들어 놓았고 그아래 산불감시초소도 있고...
이곳 전망대에서 보는 그림은 영도의 해양대건물과 주변 모습이 시야에 들어 옵니다.
자봉의 정상 표지석을 카메라에 담고 일어 서는데 전화가 옵니다.
친굽니다.
내려오는길에 오늘 이차저차 해서 봉래산 가는데 오지 않을거냐는 카톡에 뭐 빡시게 자전거 탄다는등 하더니만 온다더니 기어코 오기는 왔는가 봄니다.
올려면 좀 일찌 오지..
같이 산행했으면 좋았을텐데라면서 기다립니다.
복천사 지나 절반 올라왔다니...
따스한 양지바른곳에 앉아 기다리길 20여분...
땀을 잔뜩 흘린채 나타 납니다.
고향 동네 친구지만 참 오랜만입니다.
계중하다 안한지도오래되고...
명절때 잠깐 얼굴만 보지만 이렇다할 이야기도 없었고..
가끔 통화는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야기도 없었던터라 오늘 부산 온김에 연락이 닿았지만...
산행한지도 오래 되었답니다.
그러니 올라온다고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땀을 엄총 흘렸네요
연락한 내가 죄지...
어째튼 이런 저런 이야기와 함께 또 2~30여분을 자봉에서 보냄니다.
자봉 정상 표지석입니다.
전망대에서 보는 영도내 해양대가 있는 우도와 그주변 입니다.
손봉이죠
손봉에서 본 태종대이죠
손봉에서 본 해양대 건물입니다.
임도길인 둘레길 따라서....
목장원을 뒤로 하고 오른쪽 복천사 쪽으로....
가는길에 부산시가지를 내려다 봅니다.
요런 산길도 지나고....
복천사도 지나고....
이런 산길을 지나면 ........
◎ 산제당(16:08)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길은 손봉을 거쳐 내려서는데...
임도길입니다.
영도 어울림문화공원으로 가는길을 버리고 목장원쪽으로 가다 삼거리에서 다시 둘레길인 복천사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지난번에 내려왔던 길도 만나고..
그리고 운동시설이 있는 모퉁이에서 임도는 끝나고 산길이 이어집니다.
오르내리는 길이 그리 힘들이지도 않고 다닐수 있어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수있어 참 좋은길입니다.
그렇게 길은 복천사를 지나 산제당 관음사까지만 둘레길을 이용 그리고 대흥사쪽으로 하산하기로 합니다.
다음에 오면 봉래산 둘레길까지 하번 이용해볼 생각입니다.
신선동 날머리입니다.
다시 영도다리를 건너서....
◎ 남포동 18번 완당집(17:00)
봉래산 둘레길을 벗어나 내려서는길은 대흥사앞으로 이어지는데요
버스를 이용 남포동 완당집으로 이동할생각이었지만 갇다보니 어느새 오전에 들렀던 영도다리에 서 있네요
친구가 완당 맞보고 가라는데 완당이 뭐냐니...
그르켜 주지는 않고 그냥 먹으보면 안다니...
완당.........
남포동 완당가게를 찾아 가는데요
한국완당의 원조라는데요
18번 완당이라는 가게 입니다.
1947년부터 이어져 온다는데요
완당은 두께피가 3mm에 불과한 아주 앏은피로 된 만두국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3mm의 만두피에 콩알만한 속을널어 만두를 빚는것인데요
마치 이곳에는 카운터 옆에 만두를 빚고 있더군요
아마도 장사 수단이 아닐까 싶지만 그래도 어색해 보이기도 하지만 나름 그런 모습이 괜찮네요.
자료를 보면
완당은 만두국의 일종인 중국음식 훈탕에서 그 기원을 찾을수 있다 하는데요
훈탕이 일본으로 건너가 특유의 세련된 문화에 녹아들며 완탕(雲呑)이 되었다고 합니다.
국물 위에 떠 있는 모양이 구름을 닮았다고 해서 운당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도 불리어 지기도 했는데요
18번 완당의 창업자인 고 이은줄 옹이 14세 때 일본에 건너가 완당을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이 옹이 1947년 부산 중구 보수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완당집을 차리며 한국의 완당이 되었는데요
중국과 일본의 완당 원조격은 피가 훨씬 두껍다고 하는데요.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려와 일본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완탕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감탄을 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서구 부용동의 원조 18번 완당은 이 옹의 큰아들인 이용웅(69)씨가 올해로 63년째 되는 최초의 완당 음식점 맥을 이어가고 있고.
남포동에는 이 옹에게 직접 배운 요리사 최맹호씨가 역시 18번 완당집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씨는 빠른 손놀림으로 시간당 70∼80개의 완당을 빚는다 하는데요 갖 빚어낸 완당이 나비를 닮았다며 나비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왜 18번일까?
가장 잘하는 노래를 18번이라고 한다해서 가장 잘하는 완당, 가장 맛있게 만들자는 뜻에서 18번 완당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추울때 따스한 국물이 그리울때 딱 제격인듯 합니다.
친구덕분에 색다른 맞을 보았네요
◎ 자갈치 시장 곰장어집(17:30~20:00)
마파람 게눈감추듯 한그릇 비우고 남포동 거리로 나서는데...
젊은 남녀들이 어우러져 있는 거리...
길이 비좁을정돕니다.
남포동 명물인 씨앗호떡은 긴줄로 그맞을 대변해주는듯...길게만 길게만 늘어져 있고...
불빛축제를 한다는 남포동 거리는 아직 밤이 아니라는 이유로 덩그러니 철사 망만이 시야에 들어 오고..
그렇게 친구 와이프까지 불러내어 자갈치 곰장어 집으로 이동합니다.
매콤하게 버물린 곰장어...
연탄불 화덕이 좋아 그냥 앉아 소주잔에 추억을 담습니다.
그렇게 한잔 두잔 한병 두명 세병을 비우고 갈길이 급하여 서둘러 울산으로 돌아 옵니다.
부산 올때와 똑같은 교통수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