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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려 토론방 발해유민들이 고려관련해서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진것은 아닐듯
선구자 추천 0 조회 46 24.05.08 21:51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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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5.09 00:29

    첫댓글 발해 유민들도 다양한 사람들이 섞인 공동체인 만큼 서로간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다를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자국을 멸망시킨 거란에 대한 적대적인 시각은 발해의 대다수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다 갖고 있던 것은 분명하지요 정안국 등 후발해나 고려로 귀순하는 발해 유민들이나 반거란주의에서는 서로 동일할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발해의 전왕조 고씨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 평양을 남쪽 왕건의 고려가 보유하고 있었고 왕건의 고려도 전왕조의 국호를 차용해서 채택한 국가라 거란에게 멸망당한 발해인들의 입장에서는 왕건의 고려를 믿을만한 동족 국가로 여길수밖에 없는 법이지요

    그리고 동여진은 성종때까지만 해도 고려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1차 거란의 침략때 거란의 침략 정보를 고려에
    전해주기도 한게 동여진이었을 정도로 님이 언급한 세가지 부류의 발해 유민들은 반거란주의에서 다 동일한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왕건이 이를 의식 안할수가 없게 되죠 그리고 발해의 태자 대광현이 귀순하고 왕건이 그에게 자신의 왕족 성씨인 왕씨성을
    하사하여 그를 친족의 예로 우대한 것을 보면 민족적인 친연성이 존재 안한다고 볼수가 없습니다

  • 24.05.09 00:39

    발해의 왕실인 대씨 일족을 비롯한 발해의 핵심 지배층은 고구려인이었고 발해를 다민족 국가라고 보는 것도 미국과 같은 다민족 다인종 국가로 동일하게 보는 무분별한 일반화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겨질수밖에 없네요

    발해의 민족 구성이 여러 계열이 있어도 기본적으로 당시 일반적인 신분제 국가의 특성상 지배계층과 피지배 계층으로 나뉠수밖에 없는 법이지요 다양성을 중시하고 혈연적 민족 차별을 금기시 하는 현대 민주 국가 같은 성격으로 발해를 보는건 금물이고 지배계층에 고구려계가 다수일수밖에 없는게 사료 근거로 확인되었고 그래서 왕건이 대광현에게 왕씨 성을 내린 것도 발해 왕실과 자신의 고구려 혈통과의 관계 떄문이었지요 그럼으로 왕건이 만부교 조치를 취한 것은 발해 유민들이 자국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밖에 없는 점이었고

    왕건은 만부교 사건을 일으키고 훈요십조에서도 거란을 짐승 같은 야만 국가라고 적대하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였으면
    왕건과 발해 유민들의 관계가 혈연적 민족적 동질 같은 절대적 유대성을 띠고 있는지 알수가 있을 것입니다
    후대 왕들의 외교정책의 기준이 되는 자신의 유명에 거란 배격을 완고하게 명시한것을 보면 알수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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