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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0. 대민(주일낮)
불평과 시기하지 말라 (시37:1)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불평과 시기는 불만족의 표현입니다.
불평’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라’라고 하는데 ‘빨갛게 되다’, ‘화가 타오르다.’ ‘심히 뜨거워지다(불붙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불평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원망’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원망’은 헬라어로 ‘공귀조’라는 단어인데 ‘불평하다.’ ‘투정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화를 내면 가슴이 불붙는 것처럼 뜨거워지듯이 불평과 원망도 화를 내는 가슴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시기(猜忌)는 남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괴로울 때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기쁠 때에는 함박웃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자신의 경쟁자들을 보면서 자신보다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사실 성도라도 자신보다 처지가 못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보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생활하는 것을 보면 불평하고 시기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을 믿고 말씀 따라 살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말씀과는 다른 현상이 존재함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도 버젓이 존재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더욱 번창하고 득세하는 일들이 있고 오히려 바르고 진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어려움을 당하는 일들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회의를 갖기도 하고 심지어는 불평하고 시기까지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불평과 시기도 동기가 있습니다. 그 동기가 불순하고 악합니다. 불평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로서는 합당치 못한 일이요,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삶은 지옥 같은 사람이 됩니다.
혹시 우리들도 인생이라는 건반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부조리한 문제가 있고, 불평과 원망할 만한 문제가 있고, 불공평한 문제가 있는 세상에서 내가 하나님이 되고, 내가 기획자가 되고, 내가 경영자가 되고, 내가 심판자가 되어 몸부림치며 지쳐 있지 않는지 우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불평과 시기를 그치고 여호와를 의뢰하며 선을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도 된 우리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불평과 시기입니다. 왜냐하면 불평과 시기는 불신앙의 표본이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그들의 악함과 형통함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절대 악한 사람의 형통을 보며 실족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 된 우리는 불평하거나 시기하는 악한 습관에서 벗어나서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악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합니다. 악한자란 한마디로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그 악한 성격대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악한 행동에 대해 뉘우치거나 반성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오늘날의 악행들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최근에는 어린이들에 대한 악행기사가 많이 보도되었습니다.
6살짜리 아동을 발로 밟고 목덜미를 잡아 던지는 등 학대한 혐의를 받는 어린이집 교사가 구속되는 사건(조선일보 2021.03.18.)
남편을 닮았다고 2살 난 아들을 학대해 사망하게 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친모 사건(조선일보 2021.05.22.)
개똥을 먹이머 10세 조카를 물 고문해 숨지게 한 이모 부부의 엽기적 학대사건(한국일보 2021.06.08.)
보이스 피씽 사기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수법도 다양하며 계속적으로 새로운 수법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1) SMS 유혹 2) 악성링크 3) 현금 전달 4) 기관사칭 수법 5)저금리대출 수법 6) 통장이용 7) 수거책 가입활동
SNS 및 알바천국, 알바몬 등에 무차별적으로 홍보 글을 올려서 유혹하며, 단순한 서류배달 등으로 포장하며 건당 15~20만원 또는 2~3% 수수료 취득, 교통비 10만원 별도지급, 일당 수십만 원 보장,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VIP고객관리 및 절세 조력업무라고 속입니다.
성추행 사건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이 이 일로 사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였습니다.
정치인들의 권모술수와 거짓말도 늘어만 갑니다.
선거철만 되면 공약들이 난무한데 실제로 이루어지는 공약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결국 공약이 거짓말이 되고 마는 실정입니다.
폭력이 난무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폭력, 학교 폭력, 성폭력, 언어폭력, 사이버 폭력, 집단 폭력, 등등의 폭력으로 이 사회는 멍들어가고 있습니다.
음주 운전으로 인한 피해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음주 운전은 자기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묻지 마 범죄도 빈도수가 점점 더 많아집니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늘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영혼을 위협하는 이단 사이비들의 악한행위들도 과히 멈추지 않고 계속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단들은 실제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끼친 피해는 더 심각 합니다 재산, 시간, 몸, 생명까지도 큰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이단 사이비 단체들은 재산을 갈취하여 엄청난 재력으로 권력과 손을 잡고 사회 공헌을 하는 양 포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수많은 범죄가 악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기업하는 사람은 기업하는 사람대로 사람을 이용하여 악행을 저지르고 있고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하는 사람들대로 표 얻기 위해서 이용하려고 하고, 모든 사람들이 좀 있다는 사람들이, 힘 있다는 사람들이 자꾸 사람을 이용하여 악행을 일으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악행에 대하여 말씀 히고 있습니다.
1) "음란들"(포르네이아이): 부정한 여러 가지 성적인 행위들
2) "도적질들"(클로파이): 부당하게 남의 것을 취함.
3) "살인들"(포노이): 인격을 모독하거나 해침.
4) "간음들"(모이케이아이): 결혼한 사람의 부정한 성적 관계
5) "탐심들"(플레오넥시아이): 음욕이나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하는 일들.
6). "악독들"(포네리아이): 의도적인 악의가 있는 행위.
그리고 악한 성향을 나타내는 것들도 있습니다.
속임수, 음탕, 홀기는 눈, 훼방, 교만, 광패 등입니다.
이외에도 더 많은 악행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처럼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 들보다 더 잘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하셨습니다.
성도 된 우리들은 이제 우리에게 부당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들의 악한 행동을 규탄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할 수 없이 놀라운 자비를 가지고 그들을 만나 전도해야 합니다.
2.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옛날 우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농부가 염소와 나귀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무거운 짐을 묵묵히 잘 나르는 나귀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염소는 주인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했습니다. 염소는 시기와 질투를 느껴 나귀를 해칠 계략을 꾸몄습니다.
“나귀야, 너처럼 불쌍한 동물도 없을 거야. 주인은 네게 힘든 일만 시키니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니. 내가 한 가지 좋은 꾀를 가르쳐주지”
염소는 나귀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짐을 싣고 개울을 건널 때 자꾸 넘어지렴. 그러면 주인은 네 몸이 쇠약한 줄 알고 다시는 힘든 일을 시키지 않을 거야” 순진한 나귀는 개울을 건널 때 일부러 계속 넘어졌습니다. 주인은 평소 건강하던 나귀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수의사를 데려왔습니다. 검진을 한 의사 말했습니다. “나귀의 기력이 약해졌으니 염소의 간을 먹이면 금방 낫습니다.” 하고 일러주었습니다. 주인은 그 즉시 염소를 잡아 나귀에게 먹였답니다.
모든 시기는 열등감이 원인입니다
열등감이 선을 넘다보면 자기 자신과 타인을 향한 분노가 되고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면 시기가 됩니다.
그리고 시기심마저 통제하지 못하면 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시기심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또, 사울의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잠언14장3절에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시기는 자기의 뼈를 썩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시기심은 가질수록 자기 자신을 스스로 파멸하게 만듭니다. 남의 무덤을 파는 것 같으나 내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시기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마음의 큰 병입니다. 이것을 고치기 전에는 마음이 건강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나쁜 생각을 열거하시는 중에 '악한 시선'도 그 중의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7:22).
'악한 시선'이 바로 '시기심'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견뎌하는 마음입니다.
심리학에서는 타자들을 향한 인간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샤덴프로이데'(Shadenfreude)라는 독일어 단어를 사용합니다. '샤덴'은 '고통'이라는 뜻이고 '프로이데'는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두 단어가 합쳐져서 타자의 불행이나 고통을 좋아하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서로 비스듬히 기댄 채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서로에게 속해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은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기도 하고, 남의 불행을 바라기도 합니다. 그 마음이 평안할 리 없습니다. 우리 삶에 안식이 없다면 그 까닭을 곰곰이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하셨습니다.
"불의"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벧리야알”입니다. 극악(極惡)한 자의 행위인 바, 그 세력의 팽창으로 인한 위협은 무섭습니다. "사망", "창수", "음부" 등은 극도로 위험한 환난을 가리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의롭지 못하고 바르지 못하고 거짓을 말하고 시기하고 이간하고 분열시키는 악한 사람들이 흥왕 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 왜 이런 사람들을 그냥 두십니까” 라는 의구심에 찬 질문을 던진 적이 있을 것입니다
대체로 불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불의에 편승하는 유형입니다. 불의에 가담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개인 영달의 기회로 삼습니다. 반대로 불의에 항거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고통과 핍박, 심지어 죽음이 닥칠 것을 알면서도 불의와 투쟁함으로써 후대에 희망을 남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불의에 순응하는 유형입니다. 옳지 일임을 알면서도 생존과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불의에 굴복하는 대다수의 민중입니다.
진실로 성도 된 우리의 본향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늘 본향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하늘 시민권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비록 이 세상의 질서가 왜곡되고 불의한자가 판을 치고 이 세상에서 악인들이 형통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실의와 좌절에 빠져서 시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강하게 본향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3.도리어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골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사람은 마음에 품은 생각한 것을 내어 놓습니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게 되고, 싫으면 자기도 모르게 싫은 내색을 하게 됩니다.
마음에 생각한 것이 말로 나오고,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자기 집 주변이 더러우면 얼른 청소를 하듯이 마음에 미움, 원망, 불평, 시기, 음란, 거짓과 같은 오물을 쌓아두지 말고 청소해야 합니다. 청소가 늦으면 죄를 짓게 됩니다.
이와 같은 마음의 더러움을 청소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감사는 명약입니다. 감사하면 마음의 여러 가지 더러움이 청소됩니다. 감사하면 불평과 시기는 사라집니다.
감사는 어떤 감사이든지 최고의 언어이고 최고로 권위 있는 단어이고 최상의 정신입니다. 또한 감사라는 말 속에는 깊은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가 있는 곳에 넉넉함과 따뜻함과 푸근함이 들어 있습니다.
골로새서3장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는 조건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감사는 바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마음에 감사함이 있으면 세상 것이 다 감사할 것으로 보이고 마음에 불평이나 시기가 가득하면 세상이 다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보는 세상에 대한 눈이 바로 내 마음의 모습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은 한두 번 감사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습관적인 감사입니다. 감사가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됩니다.
아침에도 감사 저녁에도 하루 종일 감사 항상 감사하는 사람의 인격이 감사하는 자되게 합니다.
감사는 내가 가진 것을 생각할 때 시작됩니다. 없는 것을 보면 자연 원망과 불평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기에 가진 것들보다는 못 가진 것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한 사람이 100% 다 누리며 살기는 불가능합니다. 부자이면서 가정도 행복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머리가 좋은 이가 얼굴도 잘 생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런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세상은 어차피 어떤 것을 갖추면 다른 것은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가진 것보다는 못 가진 것을 더 크게 보기 때문에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감사생활이 사람의 행복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권이고 삶의 근본이고 삶의 복이고 삶의 의무입니다. 꽃에 향기만 있으면 언제고 벌과 나비는 날아오듯이, 믿음의 사람은 감사의 향기만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든지 임합니다. 하나님의 복도 곧 일어납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자산은 감사뿐입니다.
신앙생활을 깊이 들어가다 보면 어느 날인가 내 유일한 자산은 감사뿐이라는 것이 강하게 부딪쳐 오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불평과 원망과 시기가 없어지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평안과 기쁨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두려움이 없어지고 담대해지고 무슨 일을 당하든지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남다른 신령한 힘이 역사하는 것을 자신이 알게 됩니다.
성도 된 우리들은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다툼을 머리고 관용하고 화평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름답고 좋은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성도 된 우리들이 새사람이 되었어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도 우리가 계속해서 감사하지 않으면 감사생활에 문제가 생깁니다. 조금씩 불평이 틈을 탑니다. 점점 감사보다 원망불평이 많아집니다. 나중에는 감사는 간데없고 불평만 가득합니다.
시편37편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대개 사람들은 물론 성도 된 우리들은 악한 자가 잘 나가는 것을 보면 마음에 불평과 시기가 생깁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그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풀과 같기 때문입니다. 속히 베임을 당하게 됩니다. 저들은 푸른 채소와 같습니다. 곧 쇠잔해집니다. 저들이 형통한 것 같아 보여도, 그 성공에는 뿌리가 없습니다. 저들이 꾀가 많은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행악하는 자는 끊어집니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불평과 시기심이 보여주는 사람의 심리학적인 태도는 자존감이 아주 낮다는 것입니다.
열등감이 자기를 붙잡을 때 우리들 속에는 알게 모르게 불평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시기심이 가득하면 나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너도 성공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실패했는데 너는 더 큰 실패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품습니다. 자기처럼 잘못되기를 바라는 소모적인 욕망이 불평과 시기심이 생깁니다.
시기심 속에는 늘 좌절의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불평과 시기심이 반복되면 마음속에 쌓이기 시작하고, 내면적으로 점점 커지면 슬픔과 낙심이 됩니다. 낙심이 자기포기가 되고, 자기포기는 마음 안에서 응어리가 되어 한 맺히는 자리까지 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밖으로 표출되면 남에게 상처를 주는 언어가 되고, 마음속에 있는 분노가 공격적인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또는 직장이나 사회에서, 불평스럽게 여겨지는 일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내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힘겹게 한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서로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일에도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불만족스러운 일일지라도 시간이 가면 다 잊혀 질 수 있습니다.
또는 오히려 그것이 내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을 직접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는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뻐하는 자는 아무 것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회학자 ‘스탠디’라는 사람은 “요즘 시대는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는데 그것은 감사 불감증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칼뱅은 “감사생활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이라고 하면서 “만일 감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배은망덕”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감사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우리의 인생을 긍정적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의 방향이 뒤틀린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인생의 방향을 올바르게 잡은 사람입니다.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불평과 시기는 우리 신앙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특별히 악을 행하는 자들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로 인하여 불평하고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와 불의를 행하는 자들의 형통은 이 세상에서 뿐입니다. 결코 부러워하거나 불평과 시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도리어 구원받은 기쁨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1.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1)
2.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1)
3.도리어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골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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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늘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