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마누엘이신 예수님(마 1:18-25)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밤, 온 세상이 어둠으로 덮여 있을 때, 하늘에서 눈이 내려와. 어둡던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늘 아침 교회에 오는 길에, 눈 쌓여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얀 눈꽃이 핀 나무들처럼,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언제나, 환하고, 밝고 아름다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분명하게 기록될 일을 경험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 역사의 한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이 아닌 총의 힘을 빌어,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무지몽매한 일을 목격하였습니다. 도저히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하여, 지금껏 기도하노라고 했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정치 지도자들을 위하여, 온 정성을 쏟아 기도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면서, 대한민국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정치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해야함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탐욕과 권력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물들지 않고, 오직 백성들의 행복과 평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지도자가 없을까요? 이 혼란스러운 난국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로운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웅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영웅을 만들어 보기를, 모든 백성들이 믿을 수 있는 지혜롭고 현명한 그런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 봅니다.
12월은 성탄의 계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요 10:10, 막 10: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신 분, 우리를 섬기시려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아낌없이, 십자가의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못난 우리를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오늘은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23절 말씀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진 바벨론이 쳐들어오는, 풍전등화와 같은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요? 한 줄기 빛이 그들의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이방 민족인 바벨론에게, 핍박을 당하고, 그들이 숨쉬고 살아왔던 나라를 빼앗겨야 하는 그 고통과 슬픔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권력과 탐욕과 사리사욕에 빠져, 백성을 전혀 돌아보지 않는 무능한 지도자들 때문에, 조국 이스라엘이 멸망해가는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지난 밤, 추운 날씨에, 수많은 사람들이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목놓아 외치는 이유를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그들은 자기들이 듣고 싶은 소리만을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백성들의 간절한 외침을 해석하려고 할 것입니다. 여야를 떠나, 그 누구도,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목소리에는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이 난국에, 권력 유지, 권력 쟁취가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백성들의 행복과 평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벨론이 침략해 들어와, 남유다가 멸망하게 될 때, 지도자들은 자기 살 길을 찾는데 바빴습니다. 어떤 지도자들은 바벨론에 동조하여, 지금껏 누려왔던 것들을 지키려고 했고, 어떤 지도자들은 애굽으로 피신하여, 남부럽지 않는 삶을 계속해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 남아있는 힘없는 백성들은 바벨론의 군인들에게, 모진 괴롭힘을 당하고, 살던 집은 불타버리고, 가진 재산은 몽땅 빼앗기고, 남아 있는 몸도,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에, 가장 큰 고통을 당해야 했던 사람들은 지도자들이 아니라, 힘없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들이 그런 고통과 아픔을 당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바벨론의 침략이 없을 때에는 평안했을까요? 행복했을까요? 그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바냐 3:3-4절을 보면,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부르짖는 사자처럼, 백성들을 괴롭히고, 재판장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했으며,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경솔하고 간사하게,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목소리 높여 외쳤고, 제사장들도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이든, 종교 지도자들이든,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이용했습니다. 그들 모두는 탐욕스러운 자들이었습니다. 믿을 만한 지도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반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망하지 않고, 유지된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간에, 불법과 탈법이 난무하고, 지도자들이 부패했을 때, 유다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온 영토는 바벨론의 말발굽 아래 철저하게 짓밟혔고,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고, 백성들은 쇠사슬에 묶여, 머나먼 바벨론 땅으로 끌려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만에 다시 돌아왔지만, 그 후에도, 그들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또다시 로마의 침략을 받아, 나라는 빼앗기고, 로마 황제의 잔혹한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로마 황제에게 잘 보여, 왕이 된 헤롯은 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로마 황제에게 아부하기에 바빴습니다. 백성들에게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거둬들인 세금을, 로마 황제에게 바쳐, 어렵게 얻은 왕의 자리를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행복과 평안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율법학자인 바리새인이나 제사장 후손인 사두개인 같은 종교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 황제와 유다에 파견된 총독 빌라도의 눈치 보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백성들은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백성들에게, 바라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구원자가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힘들면 힘들수록,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그들이 당하고 있는 그 모든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줄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그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한 줄기 빛이 그들에게 비쳤습니다. 바라고 바래왔던 구원자, 기다리고 기다렸던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들의 모든 죄와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시고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십니다.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살기 위하여,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버린 야곱 앞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아주 추운 밤, 광야에 홀로 있게 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광야에 홀로 있게 된 그날 밤, 야곱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어머니 리브가의 품을 떠나본 적이 없는 야곱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를 사랑하는 어머니 리브가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도 없고, 어머니 리브가도 없고, 미우나 고우나, 지금껏 항상 함께 했던 형 에서도 없고, 그를 돌보아 주었던 종들도 없는, 오직 홀로 있는 야곱에게, 찾아온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리라.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야곱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그는 몰려오는 두려움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힘을 얻어,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홀로 가야 하는 길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난 이후의 발걸음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습니까? 누가 우리와 항상 함께 할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누가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줄 수 있습니까? 누가 내일을 향하여 걸어가는 우리의 발걸음의 무게를 가볍게 해 줄 수 있습니까?
형들의 미움을 받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온 요셉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보디발의 집에서, 시키는 대로, 하루 종일 온갖 일들을 해야만 할 때, 하루의 고된 일들이 끝난 후, 하늘의 별들을 바라볼 때, 요셉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땅에 계시는 아버지 야곱이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동생 베냐민이 죽도록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가보지도 못하고, 소식도 전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 요셉은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창 39:2)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요셉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억울하다고, 목놓아 소리쳐 하소연한다고, 그가 뒤집어쓴 누명이 벗겨지게 될까요? 아무리 “나는 죄가 없다”라고 외친다 할지라도, 그의 외침에 귀 기울여 줄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몸부림을 친다고 한다면,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오히려 매질뿐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누명을 벗을 길이 없었기에, 감옥에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 순간에도, 그 캄캄한 감옥 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이 이스라엘 땅에 있을 때에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애굽 땅,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고,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야곱이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을 때에도 항상 함께 하셨던 것처럼, 야곱의 아들 요셉이 어디에 있든지, 항상 함께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다윗은 도망자의 삶을 산 적이 많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난 후에, 그의 삶에 평탄함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의 미움을 받게 되었고,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광야로, 동굴로, 골리앗의 나라인 블레셋으로 도망을 쳐야 했습니다. 살기 위하여 도망친 블레셋에서 죽임을 당할 처지가 되자, 미친 척을 하며, 다시 도망쳐 나와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그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들들간의 왕위쟁탈전을 보아야 했고,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한밤중에, 맨발로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가야만 할 때도 있었습니다. 살기 위하여, 죽지 않기 위하여, 이리저리,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그런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내가 도망자의 신세일 때에도, 주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장인 사울 왕이 나를 죽이려 할 때에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나를 지켜 주셨습니다.”
“왕의 자리가 탐이 난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나를 죽이려 할 때에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다윗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은 그와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여 주십니다.
시편 91: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환난당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고, 우리를 건져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난국에 처해 있는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고,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 어지러운 때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의지할 때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디에 가서 도움을 구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수준이 비슷하여 별다르지 않다”라는 말입니다. 기댈 곳이 어디 있습니까? 누구를 바라볼 수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 누구에게 소망을 둘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웃음을 찾아줄 수 있습니까?
여러분! 임마누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이 혼란스러운 땅에 오셨습니다. 이런 난국일수록, 우리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우리의 외침을, 우리의 목놓아 소리 지르는 것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항상 기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범사에 감사할 일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항상 기뻐할 일들만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범사에 감사할 일들만 많아졌으면, 아주 좋겠습니다.
성탄의 계절입니다. 다시 한번, 이 땅에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아주 아주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다가 가시면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6-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속히 우리에게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마지막 순간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나아갈 길을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시편 121편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은 낮이나 밤이나,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출입을 지켜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는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을 가까이 함으로, 이 땅에 사는 동안,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옵소서.
혼란스러운 우리나라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