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 새해를 맞으며
며칠 전 올해 마지막 고등학교 동기생 모임을 가졌습니다. 한때 근 30 명이나 되던 동기생 서울 모임은 현재 회원이 일곱 명으로 줄었으나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매달 정해진 날에 거의 전원이 참석합니다. 이번 달엔 한 친구가 사정으로 결석을 했지만 마침 부산에서 온 동기 한 사람이 참석하여 결국 일곱 명이 소주로 건배를 하며 한 해를 보내는 조촐한 점심 모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경남 진주에 있는 5년제 중학교(지금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은 1943년, 그러니까 일제가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에 무모하게 도전한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가는 절박한 분위기 속에서였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났을 때 우리는 출판에 관심이 있는 몇 사람이 주동이 되어 졸업 50년 기념문집(紀念文集)을 내기로 했습니다. 그 때 조사한 결과 50년 전에 졸업한 98명 중 생존이 확인된 사람은 반이 좀 못 되는 47명이었습니다. 질병과 사고로 타계한 친구가 태반이었지만 그밖에 한국동란 때 전사한 사람, 그리고 국토분단의 비극에 희생되거나 행방불명이 된 사람도 꽤 많았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친구들이 부정기적으로 모이다가 지금 만나는 음식점에서 매달 모임을 가지게 된 지도 10여 년이 됩니다. 우리보다 3~4기 위인 서울소재 모 고등학교의 동기생도 이곳에서 비슷한 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그 분들은 하나 둘 회원이 줄어가다가 이젠 모이지를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모임은 작년과 재작년에 각각 두 사람씩 세상을 뜬 뒤로는 현재의 일곱 사람이 꾸준히 모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중 두 친구는 암 수술을 받았고 한 회원은 수술을 받지 않은 채 암 투병 중입니다. 다른 병으로 수술을 받은 친구도 둘 있습니다. 한국남자 평균수명을 훨씬 넘어 살았으니 이제 언제 죽어도 미련은 없다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5년은 더 살 자신이 있다는 친구도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많은 화제가 되고 있는 ‘95세의 생일에’라는 글은 65세에 정년퇴직한 분이 그 뒤 30년을 허송세월했다고 원통해 하였습니다. 진짜 95세인 분이 쓰신 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가장 후회한 것은 왜 30년이라는 소중한 이생을 무기력하게 낭비하면서 살았을까 하는 점입니다”라고 말한 이 글은 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만일 내가 정년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은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여기서 금년 97세의 고령에 아직도 현역 의사로서 암 말기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운동 또는 노인들을 위한 ‘신노인운동’ 등 정력적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의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 重明)씨의 말을 상기했습니다. 그는 최근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래 산다는 것은 그저 사는 세월을 연장한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오래 가진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무위도식(無爲徒食)하고 잠자는 시간은 빼고 자기 자신의 개발이나 사회공헌에 쓰이는 시간의 총화가 진정한 의미의 수명이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분은 하루에 잠도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습니다. 일세를 풍미한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그랬다 하지만 범상인(凡常人)으로서는 좀 따라 하기 힘든 일이지요. 우리 집사람이 가끔 하는 말에 “방학이 끝나 가는데 숙제를 다 마치지 못한 학생처럼 초조한 느낌을 갖는다”는 게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도 가끔 이와 비슷하게 히노하라 씨처럼 고매한 생각에서는 아니지만 그저 왠지 좀 초조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갑자생(甲子生)인 저로서는 2008년이 띠 해여서 그런지 대과 없이 지내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새해에는 위의 두 분 말씀처럼 좀 의식적으로 시간을 잘 이용하고 나름대로 내실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도록 노력하려고 다짐해 봅니다.
첫댓글 학교 졸업후 사회생활한 기간보다 긴 세월이 남아 있는 우리들....향후 30년 후의 모습을 미리 본 느낌이네. 벌써부터 체력이 딸리느니.... 이빨이 시원찮아서 먹는 것이 불편하는 둥.자식들 결혼시키야 되고....노후대비도 히야되고...뭐가 더 우선인지...혼란스럽네...
첫댓글 학교 졸업후 사회생활한 기간보다 긴 세월이 남아 있는 우리들....향후 30년 후의 모습을 미리 본 느낌이네. 벌써부터 체력이 딸리느니.... 이빨이 시원찮아서 먹는 것이 불편하는 둥.자식들 결혼시키야 되고....노후대비도 히야되고...뭐가 더 우선인지...혼란스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