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눈이 내리면 나는 눈 덮인 산에서 토끼몰이 하던 생각에 빠지곤 한다. 여럿이 산 위에 올라서 산 아래로
소리를 내며 좁혀 들어간다. 토끼는 앞다리가 짧아서 위로 도망가는 것은 능숙하지만 아래로 달리다가는 그대로 처박히거나 쩔쩔매다가 오도 가도 못해서 잡힌다.
앞다리가 짧은 토끼는 대신 아랫다리가 발달해서
하체가 풍성하다. 토끼의 앉은 모습은 여성의 앉은 모습과 같다. 그래서 토끼는 음과 양 중 음을 대표하는 동물로 분류한다. 특히 십이지 중에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달에서 토끼가 방아를 찧는 모습도, 음을 상징하는 달에 사는 토끼의 본질을 나타낸 것이다.
토끼
고기도 음의 작용을 한다. 특히 소갈이수(消渴羸瘦)라 하여 목이 말라서 물을 찾으며 몸이 마르는 증상을 잘
치료한다. 의서를 보면, 극히 중증인 것도 불과 두 마리 정도를 고아먹으면 좋아질 정도다.
현대 의학을 염두에 두면,
당뇨 증상을 치료하는 것으로 보면 정확할 것 같다.
불같은 양기를 식혀서
성욕을 줄인다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양기가 약한 사람은 먹어서는 안 될 고기다. 그렇다면, 용왕이 얻고자 했던 별주부전의 토끼 간은 어떨까? 실제로 토끼 간은 눈을 밝게 해준다. 특히
결명자를 넣어서 환약을 만들어 복용하면 눈을 밝히는 것으로 적고 있으니 용왕이 탐낼 만도 했다.
토끼가 즐겨먹는
식물 중
토사자(免絲子)가 있다. 토사자는 새삼씨를 부르는 다른 말이다. 예로부터 양기를 북돋우는 최고의
약물로 각광을 받았다.
이름에 얽힌 일화가 흥미롭다. 옛날 주인의 토끼를 기르던 하인이 잘못해 토끼
허리를 부러뜨렸다. 주인의 질책이 두려워 콩밭에 숨겼는데, 토끼가 죽기는커녕
팔팔하게 뛰어다녔다.
콩밭에 있던 식물을 먹고 다 나은 것이다. 토끼를 치료한 이 식물을 관찰한 하인은
열매를 얻어 허리 아픈 아버지의 병환을 치료하였다. 그러고는
약초 이름을 지었는데 토끼의 다친 허리를 치료했다고 '토', 잡초의 줄기가
실타래처럼 얽혔다 하여 '사', 이렇게 토사자라고 불렀다.
영조 때 유중림이 지은 <산림
경제>는 토사자를 놓고 이렇게 적고 있다.
"토사자를 가루를 만들어 참새 알 흰자와 함께 환약을 빚어 70알씩 따뜻한 술로 먹는다. 남자의 정액이 차고 맑아서 정자가 없는 것을 치료한다. 이것을 먹으면 정액이 자궁에 바로 흘러들게 할 수 있어서 자식을 얻는 신비한 처방이다."이수광도 <지봉유설>에서 이런 약효를 그대로 언급하며, 토사자를 기운을 북돋는 약물로 설명한다. 이수광은 너무 많이 먹으면 열이 올라와서
종기가 생기는 부작용도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신농본초경>도 똑같이 약효를 설명한다. '주속절상(主續絶傷)' 즉 '골절상으로 부러지거나 끊어진
상처를 이어준다'는 것. 이렇게
국내의 여러 의서에서 약재의 효능을 적고 있듯이, 토사자는 국산이 최고다.
중국의 본초서인 <명의별록>도
조선의 냇가나
연못, 밭, 들판에서 토사자가 산출하는 것으로 적고 있다.
신묘년(辛卯年)의 '신(辛)'은
자루가 두껍고 끝이 날카로운 단검의 모습이고, '묘(卯)' 또한 가을의 금기를 상징해 살 것과 죽을 것을 심판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연초부터 심상치 않은 정국을 보니, 늘 조심하며 지혜롭게 사는 토끼의 모습에서 배워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