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장관은 전 재산 날릴 뻔한 전세 사기 피해자 만나서 한 약속은?
한국일보|최다원|2022.06.02.
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거주하던 정지영(34)씨는 전세 만료를 앞둔 지난해 3월, 보증금 대출을 진행한 은행으로부터 "집주인 A씨와 계약한 다른 임차인들의 대출 회수가 안 되고 있다"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정씨는 놀란 마음에 즉각 A씨에게 연락했지만 A씨는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돈이 없다"는 '배짱' 답변만 되풀이했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했던 정씨는 다행히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을 통해 보증금 2억6,500만 원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십 명의 피해자 중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임차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지워지지 않았다. 집주인에 대한 형사 처벌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6월 2일 전세 사기 피해자를 직접 만나 "①약자를 먹잇감 삼는 '악성 임대인'에 대한 징벌적 제재 규정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②주요 피해자인 2030 세대를 위해 보증료 부담을 낮춰 전세보증 가입률을 높이겠다"고 했다.
원 장관은 이날 HUG 서울북부관리센터를 찾아 전세보증 사고 추세와 대위변제 규모 등 피해 현황과 예방 대책 등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HUG 및 한국주택금융공사(HF) 관계자와 전가영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박현민 공인중개사, 전세 사기 피해자 등이 참석했다.
HUG는 전세반환보증 사고가 매년 증가 추세라고 설명했다. 전세반환보증은 전세계약 종료 시 임대인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 HUG가 세입자에게 대신 보증금을 지급한 뒤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2018년 372건에 불과했던 사고 건수는 2019년 1,630건으로 급등한 이후 2020년 2,408건, 지난해 2,799건으로 증가세다. 보증 사고 금액과 변제 금액도 지난해 각각 5,790억 원, 5,036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보증 사고의 대표적 원인으로는 '깡통전세'가 꼽힌다.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에 육박하는 매물을 '갭투자(전세 낀 매매)'로 매입했다가 새 임차인 확보에 애를 먹으면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거나 악의로 반환하지 않는 것이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 지어진 연립·다세대 주택의 전세 거래 6,642건 중 27.8%(1,848건)가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 90% 이상이었다. 지난해엔 500채가 넘는 주택을 갭투자로 사들인 뒤 임차인의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세 모녀 사건'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임차인의 대항력이 전입신고 다음 날 발생하는 법의 허점을 악용, 전입 당일 소유권을 변경하는 유형, 임대인의 세금 체납 사실을 숨기고 계약을 체결해 임차인의 보증금이 후순위로 밀리는 유형, 신탁회사의 동의 없는 계약을 맺는 유형 등이 사기 유형으로 분류됐다.
참석자들은 보증 사고를 일으킨 임대인에 대한 처벌 규정과 중개업계의 설명 의무를 강화하고 임대인에 대한 정보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증보험 가입 대상을 확대하고, 근본적으로는 사고 위험이 적은 양질의 전세 물량 공급을 확대하는 등 전세 시장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원 장관은 "임차인의 소중한 전세보증금을 전세 사기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라면서 "전세 사기 피해를 본 분들이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안까지 포함해서 ③이른 시일 내에 전세 피해 예방·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