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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건물 관리 그리고 세입자
사실 전 건물주가 곧 계약을 할 듯하다가 계약 보류를 선언하고 뒤로 돌아 설 때 아득했다. 이미 종중이사회에서 팔기로 결정을 했다고 하니 팔 것은 분명한 데 그들은 한 동안 왜 보류를 했던 것일까. 말로는 이사 한 사람이 지난겨울 사겠다고 데리고 온 사람은 지금 팔려는 금액보다도 높은데 그냥 돌려보내고 이게 무슨 경우냐 하며 반발을 해서 그렇다는데 그 말이 정말 사실인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장조카가 사려고 건물을 보러 온 사람을 몰랐을 리 없다. 장조카는 그런 사람이 없고 만약 그렇다면 한 때 자기가 사려 했으니 그 사려는 사람이 자기가 아니냐 하며 반문을 했다.
그렇다면 다운계약서를 하고 일부를 현찰로 받아 챙기자 하는 문제로 경영진 간에 문제가 불거져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 이유에 대해선 지금도 의문이 들지만 나는 그 상황, 만약 그렇다면 깎아준 금액을 다시 올려주고서라도 또 다른 구매자와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했었다. 그만큼 이 건물이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다. 사랑이 그러하듯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이나 생각하는 것만 계속 믿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을 한다. 나 같이 집착이 강한 사람은 이 증상이 더 심하다. 아마 그들이 내 의중을 알아차렸다면 그들은 깎아준다는 2천 만 원을 다시 올려 받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신경전이 오고가는 사이, 일을 그르칠 까봐 다시 올려주자는 생각이 굴뚝이었다. 이를 참아낸 것이 나로선 천만다행한 일이다. 실은 내 성격을 잘 아는 아내가 묻어 두고 한 달 후쯤 다시 이야기가 오고가도 늦지 않다고 몇 번의 충고 내지 훼방을 했다.
나는 계약 하고 21일 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내 바로 잔금을 치루는 또 하나 무리수를 두었었다. 아내는 그러다가 실수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나는 더 볼 것이 없다며 강행을 했다. 내 생각은 이러했다. 늦춰 잡아 8월 중순 쯤 잔금을 치룬 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입주자들이 매달 월세를 선금으로 25일쯤 주는데 이를 경과해버리면 계산도 복잡해지고 그 선불을 놓쳐버리고 말지 않겠는가. 그로 나는 짧은 기간의 성사를 위해 어쩔 수없이 잔금도 내지 않고 건물을 누비고 다니며 설쳐 댔다. 입주자들은 웬 놈인가 하며 흘끔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듯싶었다. 사실 그들은 그간 마음 편하게 지내온 사람들이다. 종중회가 주인이니 아무래도 개인과 달리 건물에 대한 관심도 적고 신경도 덜 쓰고 상호 편하게 지냈던 것 같다.
총무가 이렇게 말을 했었다. “전기하고 소방 관리비는 원래 사용자 부담 원칙이라 그들이 부과를 해야 하는데 그냥 내주었습니다.” 나는 건물을 인수하면 두 가지 난제에 우선 봉착할 것이란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 연유로 나는 잔금도 지불하기 전 일을 착수했다. 5백 만 원을 들여 주차장에 콘크리트 타설을 해서 지저분한 모습을 지우고 건물 입구에 대리석하고 타일 깨진 것을 교체했다. 지하층에서 물이 샌다고 해서 그것도 고쳐주었다. 거기에 전 주인이 녹이 슨 채 흉측하게 서 있는 기계식 주차설비에 페인트칠을 하니 모습이 확 달라졌다. 건물을 깔끔하게 한다는데 싫어할 입주자들은 아무도 없다. 나는 뭔가 새로운 의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거기에는 이런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즉 건물 구조가 노후화로 문제가 되면 내가 해결하지만 사용자가 해야 할 일은 마땅히 입주자가 해야 한다.
건물관리가 쉬운 게 아니다. 건물에는 전기관리 소방관리 승강기관리가 거의 필수다. 법에 관리자를 선임하도록 아예 명시되어 있다. 전기는 쓰는 용량이 76kw이상이면 전기관리자를 두게 되어 있는데 쓰는 용량에 따라 관리비가 또 다르다. 다행히 저압반만 있어서 큰 관리비는 소요되지 않았지만 도처에 쓸 돈이 도사리고 있다. 나는 새 주인이 되자마자 우선 종전 소방관리자를 교체했다.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가져간다 싶어서였다. 나는 직장에서 비록 원자력분야이기는 하지만 시설책임을 맡아 10년간 보직을 달고 다녔던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낯이 익을 수밖에 없다.
25일 새 주인이 되자마자 나는 깨끗한 건물을 위해 조금 돈을 들여 단장을 했다고 전하며 그간 승강기만 적용을 했었는데 앞으로는 전기관리비와 소방관리비를 사용자 부담원칙에 따라 부과하겠다고 명기를 했다. 그리고 월세가 선불임을 고려하여 새 입금 통장을 알려주었다.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싶어 조금은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도 그들은 납득을 하는 눈치였다. 며칠 새 나와 아내는 그들의 전기 값 계산이나 수도 값 계산 때문 전 주인에게 과외공부도 했었다. 공통전기 사용의 경우나 수돗물의 경우 통합 고지서가 나오면 그들이 협의한 분배원칙에 따라 나누는 방식인데 일부는 반발하여 별도 계량기를 달아 계산이 생각처럼 단순하지는 않았다. 그 뿐 아니다. 아내는 엄마가 송암 건물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전 소방협회에 2급 소방관리자 과정을 등록하고 일주일간 교육을 받고 시험에 합격을 해 소방관리사가 되었다. 그래도 전문 소방업체의 소방관리자는 별도로 두는 편이 낫다. 이는 년에 한 번 소방종합테스트를 실시하고 소방서에 보고서를 내야 하는데 별도 그 비용이 75만 원정도 돼 그럴 바에는 차라리 관리자를 두고 알아서 하는 게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나는 화재 보험의 경우 2년간 불입했다는 돈을 거슬러주고 기존 것을 그대로 승계를 했다. 식당이 두 군데나 있어 이는 당연한 방비책이다.
그런데 정작 제일 중요한 문제는 지금 부터다. 8명의 세입자중 계약이 만료된 사람이 5명이나 있다. 나머지 3명은 계약 만료가 도래하는 시점에 해야 하는 게 맞다.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이 생겨 새 주인이라고 나가라고 강제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세입자는 기간이 안 됐지만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 있다. 나는 그 대법원 판례까지 예시하며 새 주인이니 나갈 사람은 나가도 된다고 알려주었으나 어느 누구도 나가지는 않았다. 말이 그렇지 정말 장사가 안 되면 모를까 권리금 문제도 있고 쉽사리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계약 갱신은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우선 나는 주변 월세시세를 다 알아보았다. 물론 장조카 도움이 컸다. 동네 부동산은 자기한테 맡겨두면 앞으로도 골치 아프지 않게 쭉 관리를 해주겠노라고 했지만 나는 들은 척도 안했다. 어느 건물의 경우 부동산이 주인행세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가 주인도 되기 전 그곳을 왕래할 때 나를 경계의 눈빛으로 본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 그랬을 것이다. 정말 조심스런 이야기, 그들의 생활 전선이며 먹고사는 생존이 달린 이야기가 아닌가. 겨우 그들은 내 요구를 승낙해주었다. 갑의 횡포라는 말이 횡행하는 요즘 세상,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잘 넘어섰다 싶다. 나는 그들이 정말 돈 많이 벌고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 새 주인이 되고 5일째던가. 일이 터졌다. 지하층에서 화장실문만 열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연락이 왔다. 장조카는 옆 건물이 한창 보수를 했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정화조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다. 지하층이니 역류가 발생할 소지가 높고 메탄가스는 자칫하면 폭발까지 한다. 마음이 급했다.
정화조 청소를 한지 3년이 다되어간다고 했다. 분명 정화조다 싶기는 한데 주말이라 유성 구청도 놀고 이런 때 어디에 연락을 하는 것인지조차 몰라 당황스러웠다. 인터넷을 뒤졌다. 정화조란 단어를 쳐댔지만 해답은 안 나왔다. 알고 보니 정화조 청소를 그들은 위생처리라고 말을 하고 표기도 그렇게 한다. 그런데 유성구는 위생처리 업체가 한 군데 밖에 없다. 사실 대전에서 제일 넓고 부자동네가 유성이라고 하는데 이상했다. 월요일 아침 9시가 되자 한빛 위생공사란 곳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새벽 5시 나는 똥 푸는 현장에 서 있었다. 냄새나는 작업인지라 새벽을 이용하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겼다. 사용자 부담 원칙에 따라 또 그들에게 금액을 나누어 내도록해야만 한다. 당초 예상가격으로 45만원이라 했는데 내가 현장에 있어서인지 금액이 줄었다. 주인이 새벽 5시 나와 있을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그런 그들이 가면서 이상한 말을 했다. “원래 2년이 지나 신청하면 벌금이에요, 생선 기름이 많이 나오던데 거절 할 수도 있는데 봐 준겁니다. 저희들이 깔끔하게 처리하니 다음에도 꼭 신청하세요.” 생색을 내면서 또 자신들을 선택하라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유성에서는 독점이던데 무슨 이런 말을. 아무래도 수상했다. 그리고 안 사실이다. 유성지구는 나중에 개발된 지역으로 거의 대부분 오수관로가 매설되어 있다. 송강동도 나중 매설관로가 생겨 신청을 하면 이제는 바로 직결되어 정화조가 필요 없다. 그러니까 정화조를 그냥 써도 되고 아니면 오수관로로 변경해도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도로를 살펴보니 오수관로 맨홀이 보였다.
하루는 승강기 관리자란 친구가 전화가 왔었다. 승강기가 오래된 제품이니 버튼만이라도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가격이 2백5십 만원, 나는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는 새 주인 간보기라고 생각했다. 건물관리는 늘 문제가 생기고 또 돈도 들어간다. 그 사이 119에 전화를 해서 말벌 집 처리도 했고 공용전기 용량도 낮춰 기본요금을 줄이기도 했지만 알면서도 아직 처리 못한 것도 제법 있다. 못 쓰는 에어콘 실외기가 위험천만으로 난간에 매달려 있다시피 한데 사다리차 접근이 안 돼 방치되어 있고 다른 동네는 기계식 주차 설비의 문제점이 많아 10년이 경과된 건물에 한해서 당초 주차설비의 반 정도 주차공간이 확보되면 주차설비를 철거해도 된다는 조례가 완화 적용되는 동네도 많이 생겨났는데 유성구청은 아직 시행을 하지 않고 있다. 올해는 승강기 안전사고가 어느 해보다도 많은 해였다. 나는 시의원에게 이의 시정을 건의 했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2년 지나면 퇴직인 만큼 내 노후 책으로써 건물관리에 신경을 많이 쓸 작정이다. 건물은 작은 문제점이 생길 때 바로 해결을 하면 큰 문제가 안 생긴다. 이를 방치하면 얽히고설켜 복합적인 문제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세입자와의 관계로 피드백 된다.
건물주와 세입자, 문득 국회의 여당과 야당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간단히 말해 이런 구도는 자체가 칼과 방패의 모순과도 같이 싸우는 구도로써 같은 맥락이다 싶다. 소속된 정당은 특정한 이념의 결사체로 각각 정책기조가 다르다. 그들을 지지하고 성원하는 사람들의 성향이나 기반은 같을 수 없다. 그래서 국회의원이나 정당은 자신들을 밀어준 세력이나 지지층을 대변하기 위해 골몰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지역구에 국가예산 한 푼이라도 더 편성되도록 온갖의 작전이 동원된다. 치열한 머리싸움에서 국가예산이 지원되기도 하고, 지역의 숙원사업이 ‘염불’에 그칠 수도 있다. 협상을 통해 타협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화로써 풀 수 없는 경우에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끊임없는 논리를 개발하고 설득하기 위 한 전략이 구사되는 것이다. 명분대결의 마당인 셈이다. 그 저변에는 보수와 진보라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대칭적 유권자가 존재한다.
사실 우리사회는 국회활동이 냉소되거나 밉게 보는 경향이 지나치다. ‘무능한 국회’로 묘사되는 것이 관행화되고 무식한 사람들의 무지막지한 전장(戰場)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일상화되어 있다. 국회에서 상대의 멱살을 잡거나 논리부족으로 말꼬리를 잡는 경우, 치고 박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 망치를 들고 기물을 부수거나 유리를 깨고 탁자에서 뛰어 굴리고 하는 행위는 국회의원으로써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자신을 뽑아준 지지기반의 의견을 대변하는데 어떻게 웃으면서 고분고분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지면 당장 자신의 지역구에 불이익이 스며들고, 그것은 다음 선거의 고배를 가져온다. 어떤 법안이든 뒷짐지고 하품할 여유로 살펴서는 안 된다. 어느 면 치열하고 보다 처절하게 싸워야한다. 그 기조에는 자신을 선택한 주민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하고 넓게는 국민의 안녕과 나라의 안위가 전제되어야 한다.
정치사회화는 세상을 배우는 지혜다. 비단 국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상이 다 그렇지 아니한가. 다소 미운 구석이 있더라도 일정한 옹호는 반성을 자극케 하고, 칭찬은 더 긍정적 결과를 유인한다. 국회와 정단간의 활동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는 국회나 정당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상대가 있는 이상 어디에든 존재한다. 내 건물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과 조직의 이익을 담보하기 위한 가치, 삶의 지혜와 슬기를 배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한마디로 적과의 동침이 국회이고 또 건물주와 세대주의 관계다. 똥 푸는 아저씨가 오수관로 연결로 자기 일거리가 줄어들까봐 다 치우고 가면서 ‘오수비가 알고 보면 훨씬 비싼 겁니다.’ 하는 말의 뉘앙스처럼 누구든 자기 이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싸우기도 하며 또 상생을 모색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그들과 상생의 길로 돈도 많이 벌고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