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일주일… 황금빛 들녘 사라진 봉산마을 지난달 27일 발생한 경북 구미의 화공업체 가스누출 사고로 인근 농작물들이 말라 죽는 등 극심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3일 한 농민이 손대기만 해도 부스러지는 포도나무 잎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권효 동아일보 기자 boriam@donga.com

추석을 며칠 앞둔 지난달 27일 경북 구미시 산동면에서 발생한 불산가스 누출사고 후유증이 심각하다. 사고 당시 5명이 사망한 뒤 더는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현장 주변 반경 700m 이내 지역의 숲과 들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마을 주민 수백 명이 두통과 메스꺼움에 시달리고 있고 가축들도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가을 수확을 앞둔 평화로운 시골마을을 하루아침에 폐허로 만든 불산가스. 도대체 불산가스가 뭐기에 이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을까. 그리고 화학무기 재료는 아닐 텐데 이렇게 위험한 물질을 어디에 쓰려고 만들었을까.
●불소에 헌신한 화학자들

불산은 형석을 황산에 녹여 얻는다. 형석은 칼슘과 불소의 염으로 화학식은 CaF2다. 제공 위키피디아 제공

불산(또는 불화수소산, hydrofluoric acid)은 불화수소(hydrogen fluoride)를 물에 녹인 액체다. 따라서 이번에 누출된 건 엄밀히 말하면 불산가스가 아니라 불화수소가스다.
불화수소는 수소원자 하나와 불소원자 하나가 만나 만들어진 분자로(분자식은 HF) 끓는점이 19.5도로 지금 같은 계절에는 아침저녁에는 액체, 낮에는 기체다. 불화수소는 물과 잘 섞이기 때문에 가스를 마시면 기관지와 폐 조직에 금방 흡수돼 불산이 된다.
불산의 구성 원소 가운데 하나인 불소는 우리 귀에 익숙하다. 불소를 넣은 치약 때문이다. 하지만 불소만큼 화학자들을 애먹인 원소도 없다. 불소 연구의 출발점은 16세기 형석 발견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광물학자인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는 금속 제련을 쉽게 해주는 광물을 발견해 ‘플루오레스(fluores)’라는 이름을 붙였다. ‘흐른다’는 뜻의 라틴어 ‘fleure’에서 따온 말로 이 광물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도 녹아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뒤에 이 광물의 이름이 fluorspar 또는 fluorite 즉 형석이 됐다.

형석 발견에서 불산 발견, 불소 규명에 이르는 과정에서 많은 화학자들이 헌신했고 상당수가 병을 얻거나 심지어 제롬 니클레(왼쪽 위) 같은 사람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Education in Chemistry 제공.

17세기 독일의 유리장인인 하인리히 슈반하드는 유리병에 담은 황산용액에 형석을 넣으면 유리가 뿌옇게 됨을 발견했다. 그는 이 현상을 이용해 유리표면을 가공할 때 이 용액을 썼다.
18세기 스웨덴의 화학자 카를 셸레는 슈반하드의 발견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이 용액이 유리를 부식시킨다고 결론내렸고 아마도 형석이 황산에 녹으며 어떤 산으로 바뀐다고 추측하고 이를 불산이라고 불렀다.
불산은 점차 화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프랑스의 과학자 앙드레-마리 앙페르도 그 가운데 한명이었다(앙페르는 원래 화학에 심취했었으나 훗날 물리학으로 연구방향을 돌렸고 그의 업적을 기려 전류의 단위를 ‘암페어’라고 부른다).
1810년 앙페르는 불산의 특성이 염산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여기에는 염소와 비슷한 미지의 원소가 들어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형석이 칼슘과 이 미지의 원소로 이뤄져 있다고 추측했다(훗날 형석의 화학식이 CaF2로 밝혀졌다!).
앙페르는 자신의 생각을 당시 최고의 화학자였던 영국의 험프리 데이비에게 편지로 알렸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데이비도 결국은 수긍해 1811년 이 미지의 원소를 fluorite(형석)에서 따와 ‘fluorine(불소)’이라고 명명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불소를 순수한 상태로 분리해 정말 새로운 원소임을 입증하는 것. 앙페르와 데이비는 물론 많은 화학자들이 실험에 뛰어들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불소는 워낙 반응성이 커 불소분자(F2)가 만들어지자마자 금방 다른 원소와 반응해 불소이온(F-)의 염(salt)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불산에 닿은 손가락이 손상된 모습. 아주 고농도가 아니면 불산은 강산이 아니기 때문에 노출이 되도 하루 이틀 정도는 별 이상을 못 느낀다. 그러나 피부 속으로 침투한 뒤 해리된 불소이온이 체내 칼슘이온과 결합해 염을 만들면서 칼슘 결핍이 돼 조직파괴가 일어난다. Charles Eaton 제공

결국 불산을 갖고 실험하던 화학자들은 몸이 상하거나 심지어 죽기도 했다. 앙페르도 앓았고 실험을 많이 했던 데이비는 눈과 손가락을 다쳐 고생했다. 프랑스의 화학자 제롬 니클레는 불산가스를 과도하게 흡입해 목숨을 잃었다. 불소를 분리하려다가 죽은 화학자들을 기려 ‘불소 순교자(fluorine martyrs)’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소 분리의 영광은 프랑스 화학자 앙이 무아상에게로 돌아갔다. 무아상은 이 업적으로 1906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제공 미국 국회도서관 제공

결국 불소 분리의 영예는 프랑스의 화학자 앙리 무아상에게 돌아갔다. 1886년 무아상은 전기분해를 이용해 불소(F2)기체를 얻는데 성공했다. 백금과 이리듐의 합금이 불소의 공격을 견딘다는 걸 운 좋게 발견해 이 합금을 전극으로 쓴 결과다. 이 업적으로 무아상은 1906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불소이온은 칼슘을 좋아해그런데 불산이 우리 몸에 들어와 어떤 일을 벌이기에 이런 무시무시한 결과로 이어지는 걸까. 일부 언론에서는 불산이 황산이나 염산처럼 강산이기 때문에 독성을 띠는 것처럼 설명하지만 사실 불산 자체는 강산이 아니다.
다만 불산 농도가 높아질수록 급속도로 산성이 커진다. 불산이 위험한 건 오히려 산성이 크지 않아 불화수소(HF) 대부분이 불소이온(F-)으로 해리되지 않아 조직에 침투하기 쉽기 때문이다. 세포막은 지질이기 때문에 이온은 잘 통과하지 못한다.
따라서 불산 농도가 아주 높지 않다면 처음 접했을 때는 증상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 이번 누출사고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하루 이틀 지나자 몸에 이상이 느껴졌을 것이다. 불산이 혈액과 조직으로 침투하면 작업을 시작한다.
체내에 들어온 불산의 일부는 수소이온과 불소이온으로 해리하는데 불소이온이 체내 칼슘이온(Ca2+)이나 마그네슘이온(Mg2+)을 만나 불용성 염을 만든다. 이렇게 불소이온이 소모되면 불산이 또 해리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결국 불산이 전부 해리된다.
칼슘이온과 불소이온이 만나 만든 염의 화학식은 CaF2, 바로 형석이다. 결국 우리 몸 안에 미세한 돌가루가 쌓이는 셈이다! 불소이온이 뼈에 도달하면 뼈를 이루는 칼슘을 빼낸다.
그 결과 체내 칼슘이온과 마그네슘이온 농도가 떨어지면서 몸에 이상이 생긴다. 특히 칼슘이온이 결핍되면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는데 칼슘이온은 중요한 생리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칼슘이온은 다양한 생체신호를 전달하는 고리이고 세포끼리 붙어있게 하는데도 관여한다. 또 혈액 내 칼슘이온 농도는 신경세포의 활동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인체는 체내 칼슘이온농도를 엄격하게 조절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불산이 들어와 칼슘이온을 빼앗아 가면 몸은 대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칼슘이온이 극단적으로 떨어지면 호흡근육이 굳어져 질식사한다.
●우리 몸에 불소 3~6그램 있어지금까지 얘기를 보면 불소는 절대 우리 몸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원소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몸에는 불소가 꽤 존재한다.
물론 불소이온 또는 그 염의 형태로! 혈액의 불소 농도는 0.5ppm(1ppm은 100만 분의 1) 정도이고 연조직은 0.05ppm 정도 된다. 뼈에는 무려 2000~12000ppm. 그 결과 우리 몸의 불소를 다 합치면 3~6그램이나 된다.
이게 웬일인가 싶겠지만 우리 몸이 건강하려면 소량의 불소가 있어야 한다. 즉 불소의 독성은 불소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불소가 과잉으로 몸에 들어왔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몸은 왜 불소가 필요할까.
위에서 보듯 우리 몸에 있는 불소 대부분은 뼈와 이에 들어있다. 뼈는 무기질 성분이 45% 정도인데 무기질의 주성분은 칼슘과 인산으로 이루어진 염(인산칼슘)이다. 그런데 불소가 섞여 들어가 인산칼슘 일부를 불화인회석(fluoroapatite)로 바꾸는데 그 결과 뼈가 튼튼해진다. 치아의 법랑질에 불화인회석의 비율이 높을수록 구강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유기산의 부식력에 더 잘 견디기 때문에 충치가 덜하다.
수돗물에 불소처리를 하고 치약에 불소를 넣는 이유다. 실제 여기에 첨가하는 건 불소분자가 아니라 불소이온의 염인 불화나트륨(NaF)이다. 나트륨이온과 불소이온으로 해리된 뒤 불소이온이 치아표면의 인산칼슘에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불산가스를 마셨을 때와 똑 같은 반응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들겠지만 농도가 낮기 때문에 뼈의 칼슘을 빼내는 대신 불소이온이 참여하는 반응을 한다.
참고로 치약에 들어가는 불소 농도는 최대 1000ppm이고 수돗물에는 0.5~1ppm 수준이다. 치약이나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는데 반대하는 사람도 많지만 임상적으로는 충치예방 효과가 꽤 있다고 한다. 참고로 불소 처리된 물을 1리터 마시면 불소 0.5~1밀리그램을 섭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반대가 심해 수돗물에 불소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
한편 식품에서 섭취하는 불소의 양은 하루 0.3~3밀리그램 정도다. 거의 모든 식품에 조금씩 들어있는데 특히 고등어(27ppm)와 야채(건조중량 기준 3~20ppm)에 풍부하다. 불소를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실험동물에게 불소를 완전히 제거한 사료를 먹이자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빈혈과 불임이 됐다고 한다. 역시 중요한 건 양이다!
●테프론과 고어텍스는 불소 덕분?

달라붙지 않는 프라이팬이 코팅재료로 유명한 플라스틱 테플론의 구조(일부). 탄소(회색 공) 골격에 불소(연두색 공)이 결합된 고분자다. 위키피디아 제공

아무튼 인류는 자연계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불산(불화수소)을 대량으로 만들고 있다.
불소는 지구에서 13번째로 많은 원소이지만 대부분 형석처럼 불산이온의 염 형태로 존재한다. 전 세계에서 매년 만드는 불산의 양이 40만 톤이나 된다! 지구촌 인구로 나누면 한 사람당 60그램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렇게 엄청난 양이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불산은 주물의 모래 제거(녹여내므로)와 금속표면 처리 등 산업공정에서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지만 다양한 물질을 만드는 재료로도 없어서는 안 되는 화합물이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예를 하나 든다면 테팔이라는 프랑스 주방용품 회사 이름의 원조가 된 플라스틱 ‘테플론(teflon)’이 있다.
클로로포름과 불산을 반응시켜 만든 사불화에틸렌(C2F4)을 중합해 만든 고분자인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가 바로 테플론으로 광범위한 온도에서 안정하고 다양한 물질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특히 표면이 매끄럽고 어떤 물질도 달라붙지 않는다. 1959년 테팔은 테플론을 코팅한 프라이팬을 출시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기능성 옷 하면 떠오르는 고어텍스(Goretex) 역시 PTFE를 변형해 막으로 만든 것으로 빗방울을 튕겨내지만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어 땀은 배출할 수 있는 구조다. PTFE의 놀라운 안정성은 불소 원자가 분자 골격인 탄소 원자와 단단히 결합해 꿈쩍하지 않기 때문이다.
●9월 19일은 ‘불소의 날’3월 14일이 ‘파이데이’인 것처럼 9월 19일을 ‘불소의 날(fluorine day)’로 하자는 말도 있다. 불소의 원자번호가 9이고 질량 이19이기 때문이다. 날을 정해 기념할 만큼 사연이 많은 원소라는 뜻이다. 한편 9월 28일은 불소를 분리한 무아상의 생일날이다(1852년). 9월 27일에 구미 사고가 터졌으니 공교롭다는 생각이 든다.
200여년 전 불산을 연구하다 새로운 원소의 존재를 확신한 앙페르는 자신의 편지에 동의한 데이비가 명명한, 플루오라이트(형석)에서 따온 플루오린(불소)이란 원소명 대신 다른 이름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냥 가자”는 당대 최고 화학자 데이비의 반응에 포기해야 했다. 불산을 연구하다 혼쭐이 난 앙페르가 제안한 원소 이름은 ‘프쏘린(phthorine)’으로 그리스어 ‘프쏘로스(phthoros)’에서 따왔다. 프쏘로스는 ‘파괴하다’라는 뜻이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구미 산동 봉산면주민, 불산 가스 흡입 이상 유,무진료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