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2017, 5, 14
고전10 : 23-33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덕”이라는 영어 단어는 structive 라는 단어로 건설적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을 하게 된 것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자유라는 말의 신학적인 개념을 가르치면서 나온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게 된 배경은 고린도교인들 중에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우상은 신이 아니라나는 확실한 이해로 우상에 드려진 제물들을 그들의 양심에 조금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믿음의 자유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던 자 중에 개종하여 이제 예수를 믿게 된 교인들 중에는 아직도 우상을 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행위요, 자신이 여전히 우상의 사람이라는 고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개종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된 그들에게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그들의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기보다 믿음에 앞선 형제들이 우상의 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는 것을 보고 그들도 따라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양심에 거리낌이 되면서도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행위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양심에 거리끼는 행위를 하는 것이 죄입니다.
양심에 거리끼는 행위를 한 것이 죄요,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다 죄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으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고린도교인들에게 너희를 따라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이 양심에 거리낌이 되면서도 우상의 제물을 먹는 행위로 하나님 앞에 죄 짓게 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면서 기독교의 진수가 되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24절에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믿음이 강하다는 고린도교인들에게 “너희는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 앞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삼가라,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이 너희를 따라 우상의 제물을 먹음으로 그들의 양심으로 하나님께 죄 짓고 있지 않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이 죄짓지 않게 하라.”하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하시는 말씀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이 상황에만 국한 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구원의 진수가 되는 아주 중차대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생명을 얻으려면 좁은 문 좁은 길로 들어가라.” 하시는 말씀과,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형제에 대한 거짓 없는 사랑으로 대하라.” 하시는 말씀과,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중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말씀의 문을 통과해야 할 그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몇 일전 중국에서 우리나라 유치원생들이 타고 가던 버스가 터널을 지나는 중에 불이 나서 13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생각만 해도 아주 끔찍한 뉴스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뉴스에 불타고 있는 버스를 누가 밖에서 창문이라도 깨고 구해 주었더라면 아이들 전부를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터널 안에서 아이들이 탄 버스에 불이 난 것을 처음에 본 사람들이 밖에서 유리창을 깨고 아이들을 창문으로 꺼내 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차량들이 그냥 지나쳐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뉴스대로라면 이 극악한 행위를 무엇이라고 해야 합니까?
이는 짐승보다 못한 행위 아닙니까?
버스에 불이 났을 때에 차를 타고 그 터널을 지나가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멈추어 서서 버스의 창문을 깨고 그 아이들을 구해 주었더라면 아이들 모두를 잃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차들이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 토록 악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귀의 영혼을 가진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본성은 아주 타락하여 다른 사람들의 유익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안전과 유익만 생각하는 아주 악한 본 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토록 악한 영들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람의 악한 영혼의 본성은 그냥 벗어지지 않습니다.
육신의 본성적인 악함을 하나님의 의에 말씀을 깨닫고 신뢰하고 순종하면서 벗는 것이며 진리를 순종함으로 정결하고 험 없고 티 없는 순결한 의의 영이 되는 것입니다.
순결한 의의 영혼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본래 사람의 영혼은 본질적으로 사악합니다.
어떤 철학도 어떤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수행도, 이 세상의 어떤 능력이나 지혜도 사람의 영혼의 악함을 벗기지 못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고매한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지혜가 깊은 철학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종교적인 수련을 받아서 나름대로 죄에서 떠나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의 본성적인 악함을 벗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지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 되지만 그러나 그들이 육신을 벗게 되면 그들의 이성도 함께 벗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이성은 육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몸을 벗으면 이성은 바로 소멸되고 사람의 영혼은 본성적인 악함만 남게 되고, 그 악한 본성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우리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철학도 세상에 어떤 종교도 세상의 어떤 지혜도 사람의 영혼의 본성적인 죄를 벗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철학도 어떤 종교도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오직 주의 의에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악한 본성을 벗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이 말씀은 내 말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믿고 거듭나서 새 영과 새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새 생명과 새 영을 얻은 그리스도인들만이 주의 말씀이 진리의 말씀인 것을 알기 때문에 주의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의의 말씀을 순종하는 그 순종으로 육신의 본성적인 악함을 벗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의 악함을 벗는 것이 구원입니다.
우리 주님은 구원 받는 믿음을 씨 뿌려진 4가지 밭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 밭을 좋은 밭이라하셨습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의 “좋은 밭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한 자니라.” 하신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구원 받은 믿음은 순종하여 열매를 맺는 믿음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씨는 우리 주님의 말씀이요,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 그 열매도 밭에서 난 것이 아니요, 씨에서 난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 그 씨와 열매도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사람 누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살겠습니까?
중생하여 사람의 생명이 아닌 우리 주님의 생명을 가져야 남의 유익을 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죄의 근원은 자기 유익만 구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나라 중생하라 성령을 받으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우리들의 육신의 멸망할 생명과 영원한 생명을 바꾸어 가는 일이라는 것을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성령이 자기 안에 계시며 새 생명의 실제를 아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육신의 생명을 희생시키며 주의 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육신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 여러분들의 영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누구든지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여러분의 육신을 벗는 길이요, 영원한 생명을 더해가는 길입니다.
이 뿐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에게 아름다운 의의 옷을 입히는 것이요, 또한 의의 면류관을 씌우는 사랑의 법이기도 합니다.
25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권하기를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하셨습니다.
당시 시장에서 파는 고기들은 먼저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으로 주님께 기도하고 감사하고 먹으면 다 깨끗하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불신자 중에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한 것입니다.
우상이 실제 어떤 신적인 존재라면 사도는 결코 이렇게 가르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이요, 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상과 귀신은 다른 것이요, 구별되어야 합니다.
귀신을 실제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도 귀신에게 제사한 것은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28절에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했습니다.
누가 너희를 초청해 놓고 차려 놓은 음식이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하면 그 음식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차려 놓은 음식이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필시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우상을 신으로 여기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하여 준 그 사람 앞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음으로 너희는 우상을 섬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29절에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너희 양심은 너희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란 말씀의 뜻은 너희 양심을 너희를 위해 쓰지 말고 남을 위해서 쓰라고 한 말씀입니다.
아직도 우상을 신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너희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삼가라 하는 뜻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이 너희를 따라 우상을 제물을 먹음으로 그들의 양심에 거리끼는 행위를 하여 하나님 앞에 죄 짓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너희의 자유가 그들을 죄 짓게 한다면 남에게 판단 받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의 약한 양심을 돌보아 주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하라는 사랑의 법칙입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여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이를 위해 우리를 새로 지으셨고 예비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새로 창조한 피조물답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30절에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이 말씀은 내가 감사하고 참여하고 있는 일에 남에게 비방을 받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자기는 감사하고 즐겁고 기쁘고 좋은 일이지만 그 일이 남에게 비방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는 32-33절에서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말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요, 친히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는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멸망할 육신의 생명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바로 이 말씀이 우리의 육신의 생명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진수가 되고 중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이유와 목적이 모든 행위의 이유와 목적이 주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은 일이라도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한 삶이 어떤 것임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 없이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삶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한 삶, 곧 여러분의 육신을 위한 삶은 죄의 종이요, 마귀의 종 된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위한 삶은 하나님의 뜻에 훨씬 벗어난 삶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죄의 종 된 삶과 마귀의 종 된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주의 의에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오직 그 한길이라는 것을 깨달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경험하고 느끼는 점은 내가 죄에서 떠나 정결한 삶을 사는 길은 내 안에 계시는 주로 말미암아 사는 것 오직 그 한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하시는 말씀은 내게는 당연하게 들리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24절의 “누구든지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하시는 말씀과,
29절의 “너희 양심은 너희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라.”고 하시는 말씀과,
31절의 “그런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하시는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구원을 이루는 진수가 되는 말씀입니다.
실제 이런 삶이 없이는 아무도 육신을 벗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한 때에 이 말씀들은 내가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았고 내가 아주 넘을 수 없는 절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한 때에 나는 같은 내용의 꿈을 수년 동안 수차례 꾼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꾼 꿈은 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큰 성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의 성벽은 너무나 높아서 내가 도무지 올라갈 수도 넘을 수도 없는 성벽이었고 더욱이 그 높은 성벽 위에서 보초들이 무기를 들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성을 탈출해 나가려고 무진 애를 쓰며, 계속해서 성벽을 돌며 탈출구를 찾는 꿈이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내용의 꿈을 수년 동안 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성벽에서 작은 구멍을 하나 발견하고 그 구멍을 통해서 그 성을 빠져 나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 꿈은 꾼 후 내 자신을 위한 육신의 삶에서 조금씩 점점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