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안에서 활동 중인 남녀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찾아가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아직도 많은 신자가 한국 교회 안에 어떤 수도회가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수도자들이 어떤 영성과 사도직을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사회가 복잡하고 어지러울수록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성의 원천이라고 불리는 수도회들의 풍부한 영성적 전통과 기도와 노동, 사도직을 통한 수도 체험은 영적 갈망이 큰 현대인들의 신앙에 복음적 활력을 불어 넣어줄 것입니다.
▲ 성가정의 카푸친 수녀회 수녀들과 카푸친 어린이집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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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푸친 어린이집 원아를 돌보고 있는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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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선 전철 역곡역에서 남부 방향으로 나와 10분쯤 걸어 오르니 주택가 안쪽으로 '카푸친 어린이집' 표지판이 보인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 '성가정의 카푸친 수녀회' 한국 본원이다.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족두리를 쓰고 한복을 입은 성모자상이 반겨준다. 다세대 주택들 사이에 적벽돌로 지은 3층 건물은 지상 1층과 2층 일부는 어린이집 교육공간으로 사용하고, 2층 일부와 3층이 수녀원과 가족 피정을 위한 공간이다. "어서 오세요. 저희 수녀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푸근한 인상의 나 마르타 원장 수녀가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한다. 마르타 수녀는 1996년 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할 때 같은 콜롬비아 출신 수녀 2명, 이탈리아인 수녀 1명과 함께 왔다. 수녀들은 처음 2년은 부천에 집을 얻어 살면서 한국말을 배우고 낯선 땅에서의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가장 가난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ㆍ자매들, 특별히 불우한 환경에서 가정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우리 수녀회의 주요 사명이죠. 저희는 아이들 안에서 늘 예수님을 만나요." 카푸친 수녀들이 한국에서 첫 사도직으로 선택한 것은 저소득층 가정의 영유아들을 돌보는 어린이집 운영이다. 만 1살부터 취학 전 어린이를 돌보는 카푸친 어린이집은 지역 학부모들이 선망하는 보육시설 중 하나다. 맞벌이 가정 자녀들을 위해 월~토요일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운영하고, 방학 때도 문을 열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유아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고 외국인 수녀들이 운영하는 덕분에 자연스럽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점도 사교육비가 부담스러운 저소득층 학부모들에게 인기요인이다. 최근 2010년도 원아모집에 100명 이상 지원해 4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일 정도다. 그러나 가급적 저소득층 맞벌이ㆍ다문화 가정이나 한부모 또는 장애인 부모를 둔 자녀들에게 우선권을 준다. 성가정의 카푸친 수녀회는 2003년 전주교구에도 진출해 결손가정 어린이들을 돌보는 공동생활가정(그룹홈) '아미고의 집'과 저소득층ㆍ한부모 가정 아동들이 방과 후에 이용할 수 있는 '프란치스코 지역아동센터'(공부방)를 운영하고 있다. 아미고의 집에서는 부모 이혼이나 가정 폭력 등으로 어린 나이에 큰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카푸친 수녀들의 헌신적 보살핌으로 웃음을 되찾아 구김살 없이 밝게 자라고 있다. 그래서인지 수녀회 창설자인 루이스 아미고 주교 이름에서 따온 '아미고'는 스페인어로 '친구'라는 뜻도 있지만 이 집에선 '아이들의 미래를 고귀하게 밝혀주는 가족'의 줄임말로 통한다고 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길 기대할 수는 없어요. 이들에게 예수님 사랑을 알려주고 교육을 통해 사회에 바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하느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지요." 이혼과 가정폭력,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가정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요즘 이러한 수녀회 정신은 더욱 막중한 소명을 느끼게 한다. 성가정의 카푸친 수녀회는 한국에 진출한지는 13년밖에 안됐지만 우리나라와는 인연이 깊다. "1935년경 우리 수녀님들이 처음 아시아에 진출할 때 홍콩이나 마카오를 통하지 않고 인천항에서 배를 내려 한국 땅을 거쳐 중국 본토로 들어갔던 것도 주님의 섭리가 아닐까 싶어요. 당시 전쟁과 정치적 상황 때문에 10여년 만에 철수했지만, 앞으로 한국 교회에서 회원을 양성하고 사도직을 발전시켜 중국과 아시아 복음화의 교두보로 삼는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아시아 복음화에 있어 한국 교회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에서 5년 동안 봉사한 경험이 있는 한국인 회원이 청원기 과정에 있고, 필리핀 관구에서도 중국인 수녀 2명이 수련 중"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에 파견돼 있는 카푸친 수녀는 모두 7명. 4명은 부천 본원에서 한국인 청원자 2명과 생활하고 있고, 3명은 전주에서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 한국인 지원자 한 명이 더 입회할 예정이다.
▲ 수녀회 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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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 수녀는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성소자 발굴에 어려움이 많다"며 "아직도 '카푸친 수녀회'라고 하면 '카푸치노'(Cappucino) 커피를 떠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주위 신부님들이 '성소자를 확보하려면 본당사도직에 나서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은 여력이 없어 주일마다 성당을 찾아다니며 수녀회 영성과 카리스마를 알리고 있어요." 현관 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하는 마르타 수녀의 인사를 뒤로 하고 수녀원을 나서는데 어린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겨울의 찬 공기를 기분 좋게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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