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현직 구청장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와 위증 및 무고 등의 혐의로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징역 1년3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이로써 양천구청민들은 구청장을 두 번이나 다시 뽑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연은 이렇다. 2010년 이제학 구청장이 당선되었고 당시 추재엽 현 구청장이 이제학 구청장을 자신을 고문전력자로 몰아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고소하였다. 이 재판에서 이제학 구청장의 허위사실 유포죄가 인정되어 이제학 구청장이 구청장직을 잃게 되어 2011년 10월에 치러진 재선거에서 추재엽 현 구청장이 당선되었다.
그런데 이제 추 구청장이 고문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히려 추재엽 현 구청장이 법정구속이 된 것이다. 재판부는 그를 이례적으로 법정 구속하면서 "추 구청장에게 무죄 추정의 원칙을 더는 유지하기 어렵고 범죄 사실의 내용에 비춰 항소심에서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까지 판단한 것이다.
양천구청장 사태를 보면서 우리나라 사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고 동시에 최근 있었던 곽노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오버랩되었다.
양천구청장 사건이 처음 법적 문제로 제기되었을 때 법원이 올바르게 판결했다면 양천구민들이 4년 동안 세 번이나 구청장 선거를 치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재판이 어린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선거는 더더욱 그렇지 않은가?. 특히 선거는 막대한 혈세가 드는 일이다.
직접 세 번이나 선거를 치러야 하는 양천구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지켜보아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마도 모두 나처럼 우리나라 사법부의 수준에 대해 절망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사법부의 역할과 소임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법부의 수준이 이 지경이 된 것을 보고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사법부가 정의를 구현하는 국가기관이라고 계속 가르칠 수 있을지, 또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워 도저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법부는 진실을 밝혀 정의를 구현하는 우리 사회 마지막 보루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를 인정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소임을 담당하고 있는 사법부의 무성의하고 무능력한 판결로 선출직 공무원이 하루아침에 그 직을 잃게 되었고, 오히려 자신의 과오를 숨기는 것도 모자라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고 명예훼손으로 몰았던 이가 재선되는 웃지못할 사태를 야기했다.
이미 여러 사람에 의해 지적되었듯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곽노현 사건은 처벌근거가 되는 법조항이 헌법재판소에서 심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상식적인 수순을 거부한 채 서둘러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법원 판결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해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음에도 소부에서 판결을 내린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 판결의 정당성에 심각한 이의가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이런 무리수를 두고 이루어진 곽노현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선거사범이 특별히 엄중한 처벌을 받는 이유는 민주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가장 큰 범죄행위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법부 스스로가 무능력하거나 직무유기에 해당되는 무성의한 판결을 하여 민의를 왜곡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양천구청장 사태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만일 곽노현 사건의 처벌근거가 되었던 선거법 232조 2항이 헌재에서 위헌 판결이 나면 서둘러 판결을 내린 대법원의 유죄 판결은 이제학을 양천구청장으로 뽑았던 양천구민들의 민의가 난도질당한 것처럼 곽노현을 서울교육감으로 뽑았던 1,300만 서울시민의 민의가 무참히 짓밟히는 꼴이 되고 만다.
더구나 대법원 판결로 인해 서울교육감은 두 달밖에 안 남은 12월 대선에서 곧바로 다시 선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곽노현 사건은 양천구청장 사태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양천구청장이야 내년 4월에 보선이 치러지니 적어도 두 명의 구청장이 존재하는 최악의 사태만은 피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곽노현 사건에 대한 헌재의 위헌 판결이 나면 무능하거나 혹은 스스로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리를 내팽겨친 사법부로 인해 12월 대선에서 당선된 새 교육감과 억울하게 직을 잃었다가 복귀해야 하는 곽노현 전 교육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두 번의 교육감 선거를 치르는 서울시민의 뜻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자고로 우리 역사를 보면 역대 왕들 중에 사회를 안정시키고 정치권력을 안정시키고자하는 이들은 하나 같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법을 정비하는 일을 하였다. 이는 그만큼 법의 권위가 사회의 안정과 정치권력의 권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물며 21세기 민주사회에서 법의 합목적성과 권위가 더욱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수 백 년 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꼴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 교사인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사법부의 권위에 대해 가르쳐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우리가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그 책임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한 이들의 억울함을 벗게 해 주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을 밝힘으로써 당시 정치적 판결을 내린 사법부와 권력의 본질을 우리가 잊지 말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켜내야 한다는 국민적 인식과 의지를 다지기 위함이다.
곽노현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태도를 문제 삼는 것도 단지 개인 곽노현이 억울함을 당할 것에 대한 우려 때문만이 아니라 2012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사법부가 정의의 최후 보루로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주어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최소한 법에 의해서만은 보호될 수 있는 사회임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삼권분립의 원칙이 살아 있는 민주주의 사회임을, 적어도 사법부는 국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마지막으로 기대어 진실을 밝혀줄 수 있는 정의의 보루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제발 곽노현 사건이 양천구청장 사태에서와 같이 끝없는 사법부의 위신 추락의 재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마지막 남은 헌재의 판결에서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무능하지도, 정치권력의 시녀이지도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