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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5월 21일 목요일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홍]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바오로 사도에게 예루살렘에서 당신을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라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아버지께 기도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는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2,30; 23,6-11
그 무렵 30 천인대장은
유다인들이 왜 바오로를 고발하는지 확실히 알아보려고,
바오로를 풀어 주고 나서 명령을 내려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바오로를 데리고 내려가 그들 앞에 세웠다.
23,6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사두가이들이고 일부는 바리사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바오로는 최고 의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7 바오로가 이런 말을 하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중이 둘로 갈라졌다.
8 사실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하고,
바리사이들은 그것을 다 인정하였다.
9 그래서 큰 소란이 벌어졌는데,
바리사이파에서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 강력히 항의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10 논쟁이 격렬해지자 천인대장은 바오로가 그들에게 찢겨 죽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려가 그들 가운데에서 바오로를 빼내어
진지 안으로 데려가라고 부대에 명령하였다.
11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0-26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 됨은 한쪽이 소유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너는 내 것이야.”라고 말하는 관계가 아니라 “내 안에 너 있다.”라고 말하는 관계, 서로 존중하며 함께 있어 주는 관계입니다. 한쪽이 소유하는 관계에서는 소유하고 나면 관심이 식어 버립니다. 소유하면 존중하기보다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참된 일치는 너와 내가 서로 안에 머무는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산헤드린’, 곧 최고 의회 앞에 섰습니다.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은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바오로의 한마디에 두 파벌은 다투기 시작합니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가정 안에서도 사회 안에서도 우리는 나뉘어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 젊은이와 노인, 지역과 인종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기 기준에 맞추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앞두시고 삼위일체처럼 사람들도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를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악기들이 저마다 고유한 소리를 내면서도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서로 다르시면서도 완전한 일치를 이루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기도합시다. 다른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며 함께 머무는 법을 배웁시다. 우리가 하나 될 때, 세상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내셨음을 믿게 될 것입니다.(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공평함이 아니라 질서가 일치를 만듭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22-23)
찬미 예수님! 부활 제7주간 목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위해 바치신 그 유명한 '대사제의 기도'의 절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반복하시며 피를 토하듯 간절히 부르짖으시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나(일치)'입니다.
예수님은 왜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이 부자가 되게 해달라거나 병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시지 않고, 오직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을까요? 그리고 그 일치를 이루기 위해, 당신이 아버지께 받은 '영광(은총과 진리)'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깊고도 숭고한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가 가진 아주 큰 착각 하나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부모가 자녀들에게 유산을 'N분의 1로 공평하게' 나누어 주면, 형제들이 다투지 않고 우애 있게 일치하며 살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와 심리학은 정반대의 끔찍한 진실을 증언합니다. 공평한 분배는 일치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동급이라는 '교만'을 부추겨 피 터지는 싸움을 만듭니다.
이 비극을 명백히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9세기 유럽을 호령하던 카롤링거 제국의 루도비쿠스 1세(경건왕 루트비히) 이야기입니다. 그는 샤를마뉴 대제의 아들로 거대한 제국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세 아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제국을 세 명에게 아주 완벽하고 '공평하게' 나누어 주고 싶어 했습니다. 측량사들까지 동원하여 땅의 크기와 세금 수익이 1원 한 푼까지 똑같도록 영토를 3등분으로 갈라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아버지가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평하게 재산을 받은 아들들은 '내가 너와 동급인데, 왜 네 땅이 내 땅보다 더 기름져 보이느냐'며 서로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아들들은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고, 형제들끼리 수십 년간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영토 전쟁을 벌였습니다.
결국 베르됭 조약을 끝으로 위대했던 제국은 산산조각 나 영원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의 영적 권위와 질서 없이 인간적인 계산으로 나눈 '공평한 분배'는, 평화가 아니라 가장 잔혹한 형제의 난을 부르는 도화선이 될 뿐이었습니다. (출처: 에두아르 페루아, 『프랑스 역사』)
오늘 복음에서 참된 어머니이자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일치가 '공평한 분배'가 아니라 '거룩한 질서의 확립'을 통해 이루어짐을 명확히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전체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사제 기도를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예수님은 은총을 무턱대고 군중에게 뿌리지 않으십니다. 철저한 '질서'에 따라 기도하십니다.
첫째, '당신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니다(1-5절).v 둘째,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사도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6-19절).
셋째, 그 사도들의 말을 듣고 믿게 될 '모든 신자들(백성)'을 위해 기도하십니다(20-26절).
은총과 영광은 수평적으로 똑같이 뿌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예수님께,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들에게, 그리고 사도들로부터 백성들에게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수직적 질서'를 탑니다.
이 기막힌 질서의 원리는 이미 구약성경 민수기 11장에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백성을 이끄는 짐이 너무 무거워 고통받을 때, 하느님은 70명의 장로를 세워 도우라 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장로들에게 하늘에서 새로운 영을 각자 공평하게 쏘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은 "너에게 있는 영을 덜어내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겠다" (민수 11,17)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라는 머리(수위권)에게 주어진 영이, 그 아래 장로들에게 흘러가고, 마침내 온 백성을 살리는 거룩한 위계질서입니다. (출처: 『주석 성경』 민수기 11장)
시편 133편은 이 거룩한 질서 안에서 피어나는 형제들의 완벽한 일치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 수염을 타고 흘러내리는 기름, 아론의 수염을 타고 그의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기름 같아라." (시편 133,1-2).
기름(은총과 진리)은 옆으로 퍼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머리에서 수염으로, 그리고 옷깃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대사제이신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인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고, 그 반석 아래 사도들이, 그리고 사도들 아래 백성들이 결속되는 이 거룩한 위계질서가 세워졌을 때, 비로소 교만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인간의 마음들이 권위 아래 복종하며 완벽한 '하나(일치)'를 이룬 것입니다.
건축 공학에서 건물을 짓는 모습을 보면 이 신비가 아주 명확하게 풀립니다.
건물을 지을 때 수백 장의 흩어진 벽돌들을 가져다 아무렇게나 쌓아 올리면, 아무리 단단한 벽돌이라도 작은 바람에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수백 장의 벽돌이 '완벽하게 일치된 하나의 성벽'이 되려면 반드시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위에서 아래로 곧게 떨어뜨리는 '다림줄'입니다. 다림줄은 벽돌들이 좌우로 삐뚤어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똑바로 정렬되도록 기준을 잡아주는 '수직적인 질서'입니다. 영적으로 이 다림줄이 바로 주님의 '진리(말씀에 순종하는 권위)'입니다.
둘째는 단단한 벽돌들 사이를 메우고 부드럽게 융합시키는 시멘트 '모르타르'입니다. 이 모르타르가 굳어지면 수백 장의 벽돌은 하나의 거대한 통바위가 됩니다. 영적으로 이 모르타르가 바로 우리를 서로 끈끈하게 붙여주는 '은총(성령)'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다림줄(질서)이 없으면 아무리 끈끈한 모르타르(은총)를 발라도 건물이 삐딱해져 결국 스스로의 무게를 못 이기고 미끄러져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사랑과 은총의 분배만으로는 공동체가 서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세워주신 질서(다림줄)에 철저히 순종할 때만, 그 은총이 우리를 영원한 성전으로 묶어낼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질서로 기적 같은 일치를 이룬 역사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성 이냐시오 로욜라가 세운 '예수회'입니다.
16세기, 예수회원들은 전 세계 오지로 뿔뿔이 흩어져 험난한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통신 수단도 없던 그 시절, 뛰어난 지성과 강한 개성을 지닌 수많은 수도자가 어떻게 분열 없이 그토록 완벽하게 '하나 된 하느님의 군대'로 움직일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성 이냐시오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과 진리를 바탕으로 세운 가장 철저한 영적 질서, 이른바 '시체와 같은 순명(Perinde ac cadaver)' 때문이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만레사 동굴에서 성령의 엄청난 은총을 체험했지만, 그 은총을 개인의 영성을 뽐내는 도구로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은총의 빛 안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과 장상에게 완벽히 순종하는 것만이 교회의 분열을 막고 하나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는 진리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는 회원들에게 각자의 지식이나 영적 체험을 평등하게 주장하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습니다. "시체가 저를 씻기는 이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듯, 하느님의 대리자인 장상의 명령이라는 다림줄에 너희의 자아를 꺾어 복종하라." 이처럼 하느님이 세우신 위계질서에 완벽히 순복하는 체계가 잡혔을 때, 그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다투지 않고 일사불란한 성령의 무기로 결합했습니다. 은총과 진리는 교만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질서에 순종하게 함으로써 일치를 완성하는 힘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출처: 성 이냐시오 로욜라, 『예수회 회헌』)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고 계십니까? "주님, 저에게 더 많은 은총을 주십시오. 쟤보다 내가 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저도 쟤만큼 공평하게 주십시오!" 이 기도의 끝이 오직 나의 성공과 이익, 형제들과의 수평적인 비교를 향해 있다면, 우리는 방금 전 유산을 똑같이 나눠 가지고도 아버지를 감금하고 피 터지게 싸웠던 카롤링거 제국의 아들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과 진리라는 위대한 유산을 내려주시는 유일한 목적은 '일치'입니다. 그리고 그 일치는 우리가 가정에서 부모님의 권위를 존중하고, 본당에서 사목자인 신부님의 말씀에 순명하며, 직장과 사회에서 하느님이 세워주신 질서에 복종할 때만 맺히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사제들에게 ‘불문율’이 하나 있습니다. 꼭 묻지 않아도 아는 것입니다. 전에 있던 성당은 되도록 가지 않는 것입니다. 군 생활도 비슷합니다. 제대했으면 다시 근무했던 부대로 가지 않으려 합니다. 사제가 전에 있던 성당엘 가지 않으려는 것과 제대한 군인이 다시 부대에 돌아가지 않으려는 것은 비슷하지만 이유는 다릅니다. 제대한 군인이 다시 부대로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군 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징병제’입니다. 원하지 않아도 남자는 의무적으로 군에 입대합니다. 20대의 피 끓는 청춘이 3년간 군 생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남자들은 누구나 군 생활에 관한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힘들었기에 더 진한 추억이 되는 것입니다. 사제가 전임 본당에 가지 않으려는 것은 후임 신부님에 대한 배려의 차원입니다. 후임 신부님이 사목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저도 특별히 초대받지 않았으면 전임 성당에 가지 않았습니다. 혹 교우들이 후임 신부님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후임 신부님을 위해서 기도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4곳의 본당에서 8년 동안 보좌 신부로 지냈습니다. 첫 본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행성 출혈열’로 병원에 입원했던 일입니다. 어머니의 정성과 의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건강이 회복되었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뒤로는 ‘덤’과 같이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당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2년 동안 본당 신부님을 ‘3분’ 만난 일입니다. 덕분에 사제관을 3번 옮겼습니다. 불필요한 짐들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세 번째 본당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사제관’입니다. 성당 신축으로 사제관을 따로 얻어야 했습니다. 사제관에서 성당은 6정거장 정도 거리에 있었습니다. 미사에 늦지 않도록 늘 긴장하며 지냈습니다. 걸어 다닐 때는 운동도 되고 좋았습니다. 네 번째 본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본당 신부님’입니다. 책을 좋아하셨던 신부님은 제게 좋은 책을 권해 주셨습니다. 본당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하셨고, 제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네 번째 본당에서 보좌 신부를 마치고 드디어 본당 사제가 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하나 됨’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나를 중심으로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내 생각, 내 기준, 내 경험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일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갈등과 분열의 시작이 됩니다. 원의 중심이 나 자신이라면, 주변의 모든 점은 서로 다른 거리와 방향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중심이 하느님이라면, 우리는 모두 같은 거리에 서게 됩니다. 서로 다르지만,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인간의 삶을 설명했던 세 명의 심리학자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쾌락’을 추구한다고 했습니다. 아들러는 ‘권력과 우월성’을 추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전혀 다른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의미’를 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프랭클은 극한의 상황, 죽음이 가까운 수용소 안에서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줍니다.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쾌락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의미’, 곧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중심으로 하나 되려 했습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기득권을 중심으로 하나 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은 하느님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다른 사람을 품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여전히 학연, 지연, 혈연, 이념, 생각의 차이로 나뉘고 있습니다. “나와 같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서로 멀어집니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 함께 서 있다”라는 믿음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서로 가까워집니다. 신앙은 나를 중심에 두는 삶에서, 하느님을 중심에 두는 삶으로의 전환입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사제의 불문율도 결국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지 않기 위해 물러나는 것, 다른 이를 위해 자리를 비워 주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 됨’을 위한 작은 실천입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서로 다른 상처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중심에 둘 때, 그 모든 다름은 갈등이 아니라 ‘조화’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 기도가 우리의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나>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21)
믿음을 들이는 믿음
믿음에 스미는 믿음
믿음 안에 믿음
하나 이루는 믿음
믿음으로 하나
하나인 믿음
희망을 들이는 희망
희망에 스미는 희망
희망 안에 희망
하나 이루는 희망
희망으로 하나
하나인 희망
사랑을 들이는 사랑
사랑에 스미는 사랑
사랑 안에 사랑
하나 이루는 사랑
사랑으로 하나
하나인 사랑
이룸을 들이는 이룸
이룸에 스미는 이룸
이룸 안에 이룸
하나 이루는 이룸
이룸으로 하나
하나인 이룸
돌봄을 들이는 돌봄
돌봄에 스미는 돌봄
돌봄 안에 돌봄
하나 이루는 돌봄
돌봄으로 하나
하나인 돌봄
섬김을 들이는 섬김
섬김에 스미는 섬김
섬김 안에 섬김
하나 이루는 섬김
섬김으로 하나
하나인 섬김
돋움을 들이는 돋움
돋움에 스미는 돋움
돋움 안에 돋움
하나 이루는 돋움
돋움으로 하나
하나인 돋움
살림을 들이는 살림
살림에 스미는 살림
살림 안에 살림
하나 이루는 살림
살림으로 하나
하나인 살림
오늘의 성인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er Magallanes Jara)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멕시코(Mexico)
활동연도 : 1869-1927년
같은이름 : 끄리스또발, 크리스또뽈, 크리스터퍼, 크리스토발, 크리스토퍼, 크리스토포루스, 크리스토폴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Cristobal Magallanes Jara)로도 알려진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또는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하라)는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 중에 반란을 선동했다는 날조된 혐의를 받고 미사를 봉헌하던 중에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죽임을 당한 순교자로서 가톨릭 교회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1869년 7월 30일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州)의 토타티케(Totatiche)에서 농부였던 라파엘 마가야네스(Rafael Magallanes)와 클라라 하라(Clara Jara)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목동으로 일하던 그는 19살 때에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 있는 산 호세(San Jose)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30세에 과달라하라에 있는 산타 테레사(Santa Teresa)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같은 도시의 한 학교에서 교목신부로 봉직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토타티케의 본당신부로 임명된 후 학교와 목공예품 상점을 설립하고, 칸데라리아(Candelaria) 댐 건설을 돕는 등 고향의 발전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멕시코 서부 시에라마드레 산맥(Sierra Madre Mts.)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후이촐족(Huichol)의 복음화도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아스카프탄(Azqueltan)에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 마을에 선교 기관을 설립했다. 1914년 정부로부터 과달라하라의 신학교를 폐쇄하라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 그는 자신의 본당에서 신학교를 열 것을 제의하였다. 1915년 7월 토타티케에 개교한 신학교는 빠르게 성장해 다음해 이미 17명의 학생이 등록했고, 학칙과 두 명의 교수를 파견해준 과달라하라 교구의 호세 프란치스코 오로스코 이 히메네스(Jose Francisco Orozco y Jimenez) 대주교로부터 승인도 받았다.
그는 무장반란에 반대하여 많은 저술과 설교를 했으나 오히려 그 지역의 크리스테로 반란을 도모했다는 부당한 고발을 당해 체포되었다. 1927년 5월 21일 농장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중에 체포된 그는 얼마 안 남은 소지품마저 사형 집행인에게 주었고 그들의 죄 또한 용서해주었다.
그리고 아무런 재판도 없이 4일 후인 5월 25일 할리스코의 콜로틀란(Colotlan)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 칼로카 코르테스(Augustinus Caloca Cortes) 신부와 함께 순교하였다. 그는 사형 집행인에게 “나는 결백하며, 나의 피로써 나의 멕시코 형제들이 일치할 수 있기를 하느님께 간구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크리스테로 전쟁과 관련하여 희생된 24명의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사제와동료 순교자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멕시코 정부 당국은멕시코에 어용(用) 천주교회를 세우려고 음모를 꾸몄다. 그리고 이에 동조하지 않는 고위 성직자들과 성교회에 충실한 주교들을 추방하고 그 자리에 자신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앉히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멕시코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을 모두 추방하였고 공권력을 이용하여 각종 학교와 신학교를 강제로 폐쇄하였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자 교황 비오 11세(재위 1922-1939)는 멕시코의 주교들과 함께 멕시코 국민이 신앙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멕시코 권력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이러한 노력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공권력을 강압적으로 이용하여 교회를 강제로 폐쇄하였다. 또한 사제들을 잡아 가두었고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여 온 평신도들에게는 교회를 떠날 것과 앞으로는 미사에 참례할 수 없다고 엄중하게 경고하였다.
이때 교회 당국의 지도하에 이루어지는 평신도의 조직적 활동인 ‘가톨릭 액션’은 이러한 사태에 저항하면서 정부가 홍보하는 세속적인 인본주의가 허구라는 것을 알리고 이러한 때일수록 신앙생활을 더 잘해야 한다고 신자들을 격려하였다.
멕시코 정부는 가톨릭 액션에 속한 사제와 평신도들을 박해의 표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할리스코에서 15명의 사제가 순교하였고, 사카테카스에서는 4명이 순교하였으며,치와와) 콜리마.두랑고. 과나후아토. 게레로. 모렐로스.)에서는 각각 한 명씩 순교하였다.
순교자 모두 순교하기 전 소름 끼칠 만큼 참혹하게 고문을 당하였고 순교자 대부분은 총살형에 처해졌다.
세 명의 평신도인 다비드. 마누엘. 살바도르는 그들의 교구 사제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와 함께 순교하였다.
이 모든 순교자는 그 가혹했던 박해 시기에 참된 신앙을 위해 죽기까지 모든 희생을 감수한 또 다른 멕시코 사람들의 표상이 되었다.
‘가톨릭 액션’ 활동에 속한 순교자들은 다음과 같다.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1869-1927),
로만 아다메 로살레스.로드리고 아길라르 알레만.훌리오 알바레스 멘도사.루이스 바티스 사인스.아구스틴 칼로카 코르테스.마테오 코레아 메가야네스.
아틸라노 크루스 알바라도. 미겔 데 라 모라.페드로 에스케다 라미레스.마르가리토 플로레스 가르시아.호세 이사벨 플로레스 바레라.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
살바도르 라라 푸엔테.페드로 데 헤수스 말도나도 루세로.헤수스 멘데스 몬토야. 마누엘 모랄레스.후스티노 오로나 마드리갈.사바스 레예스 살라사르.호세 마리아 로블레스 우르타도. 다비드 롤단 라라.
토리비오 로모 곤살레스.예나로 산체스 델가디요.트란쿠일리노 우비아르코 로블레스.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 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2년 11월 22일 크리스토발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을 시복하였고, 2000년 5월 21일 그들을 모두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에서 신앙을 위해 순교한 이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늘 성인으로 선포된 분들 대부분은 재속 사제들이며, 세 분의 평신도들은 그 어려운 박해의 시기에 사제들을 돕는 데 열성적이었습니다. 이분들은 당신들이 사랑하는 조국 멕시코 땅에서 가톨릭 종교에 대한 증오를 촉발하는 종교 박해가 심각해졌을 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맡은 직책을 잘 수행하기 위해 적극 투신하였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자신들의 박해자들을 명백하게 용서하면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평온하면서도 침착하게 그리고 자유로운 태도로 순교하였습니다
이분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교회 공동체의 물질적 복지 향상에도 기여하면서 이 공동체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삶의 결실로서 드러난 하느님께 대한 성실한 믿음과 가톨릭 신앙에 대한 충직한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전 세계 모든 교회와 특히 멕시코 사회에 큰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멕시코 전역에 불어 닥친 박해의 광풍 앞에서 온갖 시련을 꿋꿋이 견뎌온 교회는 이제 성인으로 선포된 이분들의 신앙에 대한 증거로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이 사회를 살아가는 멕시코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와 조화 속에 살면서 복음이 지닌 풍부한 가치로 이 사회를 변혁시키기를 축원합니다.
교회는 박해를 받을 때 수많은 사제와 수도 성소자가 생겨났고 많은 가족이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바대로 양성되었으며, 멕시코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젊은이들은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자라나기 때문에 앞으로 교회는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 사제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의 빛나는 모범이 하느님께 대한 여러분의 신앙을 쇄신시켜 가는 데에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신앙이 멕시코 사회를 끊임없이 변혁하는 원동력이 되어 정의와 형제애 그리고 조화로움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게 되기를 빕니다"
성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25일이다.
교회와 역사, 송영웅 바오로
성 훌리오 알바레스 멘도사(Julio Alvarez Mendoza)
활동년도 : 1866-1927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율리오, 율리우스 ,줄리어
성 훌리오 알바레스 멘도사는 1866년 12월 20일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州)의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4년 사제품을 받은 후 일생 동안 할리스코의 메코아카네요(Mechoacanejo) 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그는 목장 지역을 방문하며 성당에 나오지 않는 이들을 찾아나섰고, 성체성사에 대한 깊은 신심을 갖고 있었다. 멕시코 정부의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심해졌을 때도 그는 농장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산속의 계곡에서 세례성사를 집전했다. 결국 그는 1927년 3월 26일 사제직을 계속 수행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며칠 동안 말안장에 묶인 채로 아마로(Amaro) 장군이 있는 레온(Leon)까지 끌려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3월 30일 산 훌리안(San Julian)에서 총살형으로 처형되었고, 그의 시신은 일생을 보냈던 본당 근처의 쓰레기 더미 위에 버려졌다. 그는 죽기 전에 "나의 죄라면 하느님의 직무 안에 머문 것일뿐, 당신들 모두를 용서한다"는 말을 남겼다.
성 훌리오 알바레스 멘도사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후스티노 오로나 마드리갈(Justino Orona Madrigal)
활동년도 : 1877-1928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유스띠노, 유스띠누스, 유스티노, 유스티누스, 저스틴
성 후스티노 오로나 마드리갈은 1877년 4월 14일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州)의 아토약(Atoyac)에서 매우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모를 돕기 위해 몇 년 동안 신학교 과정을 중단하고 일을 하는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소를 지켜 27세의 나이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헌신적인 사목자로서 고아들과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돌보기 위한 수도회로 ‘성심의 클라렛 형제회’를 설립하였다.
반가톨릭적인 멕시코 정부가 교회에 대한 박해를 강화하고 있을 때 그는 피신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나는 살든지 죽든지 이곳에서 나의 양떼들과 함께 하겠다.”며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교구 신자들에 대한 사목을 계속하기 위해 그는 본당의 보좌인 성 아틸라노 크루스 알바라도(Atilano Cruz Alvarado) 신부와 함께 인근 목장 주택을 피신처로 삼아 몸을 숨겼다. 그곳에서 두 사제는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며 사목직을 계속하기 위한 계획을 논의했다. 1928년 7월 1일 이른 새벽, 40명의 정부군이 목장을 급습해서 그의 방문을 열었을 때 그는 용감하게 “그리스도 왕 만세!”를 외쳤고, 즉시 군인들이 쏜 총탄에 맞아 순교하였다.
성 후스티노 오로나 마드리갈은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살바도르 라라 푸엔테 (Salvador Lara Puente)
활동년도 : 1905-1926년
신분 : 평신도,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성 살바도르 라라 푸엔테는 1905년 8월 13일 두랑고(Durango) 대교구에 속한 멕시코 중북부 두랑고 주(州)의 베르린(Berlin)에서 태어났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키 크고 강인한 젊은이였던 그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모든 이들에게 좋은 표양을 보였다. 그는 남편을 잃고 홀로된 어머니를 효성스런 마음으로 돌보았고, 자신의 일터인 광산에서도 맡은 책임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신앙생활에 열심이었고, 반교회적인 혁명 정부에 당당히 맞서던 가톨릭 액션(Catholic Action) 멕시코 청년회에 투쟁적 사도로 참여하고 있었다.
군인들이 성 다비드 롤단 라라(David Roldan Lara)와 성 마누엘 모랄레스(Manuel Morales)와 함께 그를 체포하기 위해 도착했을 때 그는 기쁨에 찬 목소리로 “나 여기 있소.” 하고 응답했다. 그는 평소와 같은 미소를 띤 얼굴로 친구이자 사촌형제인 성 다비드 롤단 라라와 함께 나란히 걸어서 처형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성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Luis Batiz Sainz) 신부와 성 마누엘 모랄레스가 총에 맞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고, 1929년 8월 15일 총살형을 받고 하늘나라로 들어갔다.
성 살바도르 라라 푸엔테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사바스 레예스 살라사르(Sabas Reyes Salazar)
활동년도 : 1883-1927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사바
성 사바스 레예스 살라사르는 1883년 12월 5일 과달라하라(Guadalajara) 대교구에 속한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州)의 코쿨라(Cocula)에서 태어났다. 그는 과달라하라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1911년 사제품을 받은 후 과달루페(Guadalupe)의 몇몇 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가톨릭 교회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박해가 계속될 때 그는 산 후안 데 로스 라고스(San Juan de los Lagos) 교구에 속한 할리스코의 토토틀란(Tototlan)에서 은밀히 사목활동을 하고 있었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그는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느님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고, 자주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또한 교리교육뿐 아니라 과학과 상업, 미술과 음악 분야에서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양성하는 데도 관심이 많았다. 당시는 사제로서 사는 것이 매우 위험한 박해시기였기 때문에 토토틀란을 떠나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그는 “나는 여기 머물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 기다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1927년 성주간이 시작될 때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프란치스코 비스카라(Francisco Vizcarra) 신부와 그의 동료신부들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성 사바스 레예스 살라사르 신부 외에는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군인들은 모든 분풀이를 그에게 쏟아 부었다. 그를 성당 기둥에 단단히 묶고 3일 동안 음식과 물도 주지 않으면서 다른 사제들이 숨은 곳을 말하라며 혹독한 고문을 자행했다. 군인들은 성체를 축성한다는 이유로 그의 두 손을 불태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참아냈다. 1927년 4월 13일, 성주간 수요일에 그는 마을 외곽의 공동묘지로 끌려가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죽기 전에 그는 온힘을 다해 “그리스도 왕 만세!”를 외치며 하늘나라로 갔다.
성 사바스 레예스 살라사르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미겔 데 라 모라 (Miguel de la Mora)
활동년도 : 1874-1927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마이클, 미가엘, 미구엘, 미카엘, 미키
성 미겔 데 라 모라는 1874년 6월 19일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州)의 테칼리틀란(Tecalitlan)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농장일과 농사를 배워 훌륭한 일꾼이 되었다. 그는 십대에 콜리마(Colima)의 신학교에 입학해 1906년 콜리마 주교좌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1912년에는 주교좌성당의 참사위원이 되었다. 멕시코 정부의 가톨릭 교회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체포되었다가 사제직 수행을 금지하라는 경고와 함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1926년 정부가 강제로 성당을 폐쇄하고 공적인 전례를 법으로 금지했을 때 친구들은 그에게 피신하라고 권고했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다.
그래서 그는 정부군의 플로레스(Flores) 장군으로부터 끊임없는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플로레스 장군은 그에게 바티칸 교황청과 무관하게 정부가 지원하던 어용(御用) 가톨릭 교회에 동참하도록 강요했다. 장군의 괴롭힘 때문에 그는 할 수 없이 콜리마를 떠나 엘 린콘 델 티그레(El Rincon del Tigre)에 있는 형의 목장으로 피신해야 했다. 정부의 회유와 강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는 1927년 8월 7일 아침에 사복 차림으로 형과 함께 콜리마 방면으로 가던 중 체포되었다. 성 미겔 데 라 모라 신부의 도피에 격노한 플로레스 장군은 그를 마구간에 가두고 거름 한가운데 세운 말뚝에 묶은 후 형이 보는 앞에서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그는 처형장으로 침묵 중에 걸어가면서 자신의 믿음과 성모님에 대한 사랑을 선포했고, 손에는 묵주를 쥐고 기도문을 외우며 총탄에 스러져 갔다. 8월 7일 정오의 일이었다.
성 미겔 데 라 모라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마테오 코레아 메가야네스(Mateo Correa Megallanes)
활동년도 : 1866-1927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마두, 마태오, 마태우스, 마테우스, 매튜
성 마테오 코레아 메가야네스는 1866년 7월 23일 멕시코 중부 사카테카스(Zacatecas)의 테페치틀란(Tepechitlan)에서 태어났다. 그는 1881년에 장학금을 받고 사카테카스의 신학교에 입학하여 1893년 27살의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젊은 사제로서 그는 후에 사제가 되고 순교하게 될 복자 미겔 프로(Miguel Pro, 11월 23일)에게 첫영성체를 해주었다. 그는 1898년 콘셉시온 델 오로(Concepcion del Oro)의 본당신부로, 1908년에는 콜로틀란(Colotlan)의 본당신부로 임명받았다. 1910년 가톨릭 교회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이어지자 몸을 숨겼고, 1926년에는 발파라이소(Valparaiso)의 본당으로 발령받았다.
1927년 교회에 대한 정부의 박해가 계속되는 와중에 그는 한 병든 여인에게 노자성체(路資聖體)를 영해주다가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정부에 대항하는 크리스테로(Cristero) 무장 세력의 일원이란 죄로 고발을 당해 사카테카스 감옥에 수감되었고 곧이어 두랑고(Durango)의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1927년 2월 5일, 그는 정부군의 장군인 오르티스(Ortiz)로부터 가톨릭 교회를 박해하는 정부에 대항하다 잡힌 몇몇 크리스테로 수감자들의 고해성사를 들어줄 것을 요청받았다. 그는 장군의 요구에 응해 수감자들의 고해를 들었다. 그러자 장군은 그들의 고해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고, 그는 고해의 비밀은 알려줄 수 없다며 강요한다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군은 그의 머리에 직접 총을 겨누고 위협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다음날 새벽, 그는 두랑고 변두리에 있는 묘지로 끌려가 머리에 총알을 맞고 순교하였다.
성 마테오 코레아 메가야네스 신부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마르가리토 플로레스 가르시아 (Margarito Flores Garcia)
활동년도 : 1899-1927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마르가리또, 말가리또, 말가리토
성 마르가리토 플로레스 가르시아는 1899년 2월 22일 멕시코 남부 태평양 연안에 있는 게레로(Guerrero) 주(州)의 탁스코(Taxco)에서 태어났다. 그는 칠라파(Chilapa) 교구에 속한 아테낭고 델 리오 게레로(Atenango del Rio Guerrero) 본당의 신부로서 3년의 사목활동 중에 사제직에 대한 깊은 헌신을 보여주었다. 그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박해 때문에 교구 밖에 머물고 있을 때 성 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David Uribe Velasco) 신부의 영웅적인 순교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자신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순교하기를 원했고 장상의 허락을 받고 교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사제로서의 자신의 여정을 시작했고 거의 그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체포되어 게레로의 툴리만(Tuliman)으로 끌려가 사형을 선고받았다. 자신을 처형하려는 군인들에게 그는 잠시 기도할 시간을 청해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 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일어서서 머리에 총알을 맞고 순교함으로써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일치를 이루었다. 1927년 11월 12일의 일이었다.
성 마르가리토 플로레스 가르시아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다비드 롤단 라라(David Roldan Lara)
활동년도 : 1902-1926년
신분 : 평신도,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다윗, 데이비드
성 다비드 롤단 라라는 1902년 3월 2일 두랑고(Durango) 대교구에 속한 멕시코 중부 사카테카스(Zacatecas) 주(州)의 찰치위테스(Chalchihuites)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아기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로부터 정성어린 양육을 받았다. 그는 어릴 때 두랑고의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가족들의 생계를 돌보기 위해 나와서 광부가 되었다. 결국 그는 다시 신학교로 돌아가지 못했고 평신도로 남았다. 그의 친구들과 동료 노동자들은 그의 활기차고 관대한 성품과 지성과 친절함을 지닌 그의 성품을 칭찬했다. 그는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감독으로서 착하고 신심 깊으며 정직한 일꾼이었다. 약혼녀에게도 그는 순수하고 완벽한 젊은이였다.
그는 가톨릭 액션을 위한 멕시코 청년회(the Mexican Youth for Catholic Action)의 책임자로서 자신의 본당신부인 성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Luis Batiz Sainz) 신부를 보좌했다. 그는 멕시코 정부의 박해로 인해 교회가 처한 상황에 고뇌하면서, 설령 그것이 순교를 의미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 충실한 신앙인으로 남기를 소망했다. 그는 정부의 반종교적 헌법에 저항했고, 종교 자유 수호를 위한 전국 연맹(the National League for the Defense of Religious Liberty, LNDLR)의 부의장으로서 활동했다. 성 마누엘 모랄레스(Manuel Morales)와 사촌형제인 성 살바도르 라라 푸엔테(Salvador Lara Puente)와 뜻을 같이했던 그는 그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26년 8월 15일, 성 마누엘 모랄레스와 성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 신부가 총살당한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성 다비드 롤단 라라와 성 살바도르 라라 푸엔테 역시 총살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다비드 롤단 라라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마누엘 모랄레스 (Manuel Morales)
활동년도 : 1898-1926년
신분 : 평신도,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성 마누엘 모랄레스는 1898년 2월 8일 두랑고(Durango) 대교구에 속한 멕시코 중부 사카테카스(Zacatecas) 주(州)의 메시야스(Mesillas)에서 태어났다. 충실한 그리스도인이자 세 명의 어린 자녀의 아버지요 남편이었던 그는 착하고 책임감 있는 노동자였다. 또한 그는 가톨릭 액션(Catholic Action)의 회원으로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열심히 영성생활을 실천했고 성체성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ㅓ그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반종교적인 헌법의 철폐를 위해 투신하는 기구인 종교 자유 수호를 위한 전국 연맹(the National League for the Defense of Religious Liberty, LNDLR)의 의장으로서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1926년 8월 15일, 교구사제인 성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Luis Batiz Sainz) 신부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루이스 신부의 석방을 위해 긴밀히 움직였다. 그는 군인들이 와서 그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루이스 신부를 돕기 위한 계획을 짜느라 자신이 활동하던 연맹의 회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체포되어 감옥에서 자신의 사목자와 만나게 되었다. 얼마 뒤 그들은 도시 외곽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그는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니 목숨만을 살려주라고 간청하는 신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자 그는 큰소리로 “신부님, 저는 죽지만 하느님은 죽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저의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 왕 만세! 과달루페 성모 만세!”라고 크리스테로의 모토를 외쳤다. 군인들은 총을 쏘아 그를 살해했다. 이날 그는 뜻을 함께 했던 성 다비드 롤단 라라(David Roldan Lara)와 성 살바도르 라라 푸엔테(Salvador Lara Puente)와 함께 순교하였다.
성 마누엘 모랄레스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 (Luis Batiz Sainz)
활동년도 : 1870-1926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누수,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코,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성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는 1870년 9월 13일 멕시코 중부 사카테카스(Zacatecas)의 산 미구엘 메스키탈(San Miguel Mezquital)에서 태어났다. 그는 12살에 소신학교에 들어가 1894년 1월 1일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신학교의 영성 지도신부, 사카테카스 교구 찰치위테스(Chalchihuites)의 본당신부 그리고 콜롬부스 기사회(the Knights of Columbus)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사목적 열정과 본당을 운영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가톨릭 노동자와 학교를 위한 연수회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어린이와 어른에 대한 교리교육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했고 성체신심에도 매우 열정적이었다. 그는 “주님, 저는 순교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비천한 종이지만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저의 피를 한 방울 한 방울 흘리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1926년 멕시코 혁명정부에 의해 성당이 강제로 폐쇄되기 전, 종교 자유 수호를 위한 전국연맹에서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무장반란의 가능성까지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는 강력하게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결국 정부에 의해 성당이 폐쇄되고 박해가 본격화되자 그는 민가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1926년 8월 14일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를 처형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그는 사카테카스로 이송한다는 구실로 가톨릭 청년 멕시코 연맹(the Mexican Association for Catholic Youth) 소속의 세 평신도 회원인 성 다비드 롤단 라라(David Roldan Lara), 성 살바도르 라라 푸엔테(Salvador Lara Puente), 성 마누엘 모랄레스(Manuel Morales)와 함께 도시 밖으로 끌려 나가 길가에서 총살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 (David Uribe Velasco)
활동년도 : 1889-1927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다윗, 데이비드
성 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는 1889년 12월 29일 칠라파(Chilapa) 교구에 속한 멕시코 남부 태평양 연안 게레로(Guerrero) 주(州)의 부에나비스타 데 쿠에야르(Buenavista de Cuellar)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칠라파의 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1913년 3월 2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여러 지역에서 본당사목을 수행했는데, 반가톨릭적인 멕시코 정부의 폭력에 직면하여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는 게레로의 이괄라(Iguala)에서 본당사목을 하며 개신교와 정부에 동조해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되려는 세력이 득세하던 지역에서 힘들게 사제직을 수행해야 했다.
1926년 가톨릭 교회의 공적인 전례 거행이 금지되고 성당마저 폐쇄되자 그는 은밀히 사제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1927년 4월 7일 체포되어 모렐로스(Morelos) 주의 쿠에르나바카(Cuernavaca)로 끌려갔다. 그를 체포한 군인은 만일 그가 가톨릭 교회를 반대하는 헌법에 서명하고 정부에 의해 설립된 어용(御用) 천주교회의 주교가 되는 것을 수용하면 모든 형태의 보장과 자유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그는 굳건한 믿음으로 이 모든 제의와 회유를 거부했다. 감옥에서 쓴 마지막 글에서도 그는 박해자들이 자신을 모함해 적용한 모든 범죄 사실에 대해 결백하며,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모든 원수들을 용서한다고 했다. 그는 1927년 4월 12일 모렐로스 주의 산 호세 비스타에르모사(San Jose Vistahermosa) 역 근처로 끌려가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성 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로만 아다메 로살레스 (Roman Adame Rosales)
활동년도 : 1859-1927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로마노, 로마누스
성 로만 아다메 로살레스는 1859년 2월 27일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州)의 테오칼티케(Teocaltiche)에서 태어났다. 그는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서 사제직을 위한 공부를 계속해 1890년 11월 30일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여러 본당에서 사목하며 동정 마리아께 대한 깊은 신심을 보여주었고, 교리교육과 영신수련 지도 그리고 본당 부속학교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동정 마리아의 딸들과 밤샘 성체조배회’를 설립하였고, 여러 목장들에 많은 경당을 건립하였다.
가톨릭 교회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고 헌법으로 교회의 문을 닫게 했을 때도 그는 민가에서 자신의 사제 직무를 계속 수행하였다. 하지만 그는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다. 야우알리카(Yahualica)로 보내진 그는 며칠 동안 음식도 물도 없이 묶여서 지냈다. 1927년 4월 21일 그는 빈 무덤으로 끌려가 총살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유해는 후에 발굴되어 노치스틀란(Nochistlan)으로 옮겨졌다.
성 로만 아다메 로살레스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성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 (David Galvan Bermudez)
활동년도 : 1881-1915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멕시코(Mexico)
같은 이름 : 다윗, 데이비드
성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는 1881년 1월 29일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州)의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서 태어났다. 그는 14살 때 신학교에 들어갔고 우수한 학생이었으나 성소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 3년 동안 신학교를 떠나 살았다. 그는 일을 하며 여자를 만나고 방탕한 생활을 보내기도 했다. 한 번은 술에 만취해 자신의 여자 친구를 때려 체포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제성소에 대한 부르심을 무시하며 더 이상 무시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1년간의 근신 기간을 보낸 후 신학교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1909년 5월 20일 비로소 사제품을 받은 그는 아마티탄(Amatitan)에서 신학교 강사가 되었고 이어 지도교수가 되었다.
그는 멕시코 혁명이 진행되던 시기에 부상자들의 상처를 돌보고 그들의 고해를 들으며 생활했다. 그는 시가전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과달라하라로 가던 도중 호세 아라이사(Jose Araiza) 신부와 함께 체포되었다. 호세 아라이사 신부는 후에 몸값을 내고 감옥에서 풀려났다. 감옥에서 그는 동료 수감자들을 위로하며 자신의 처형 몇 시간 전까지도 그들에게 정성껏 고해성사를 주었다. 1915년 1월 30일, 그는 과달라하라에서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사제의 신분으로 살해를 당했다.
성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신부와 24명의 동료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