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8월 18일 성녀 헬레나(Helen)
신분 / 황후
활동연도 / 250?-330년
같은이름 / 헤레나, 헬렌
성녀 헬레나(Helen)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Helena)는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의 드레파눔(Drepanum)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270년경에 로마(Roma)의 장군인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를 만났는데,
그녀의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둘은 결혼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콘스탄티누스가 태어났다. 293년에 남편 콘스탄티우스는 그리스도교의 박해자
중 한 명인 막시미아누스 황제 휘하에서 카이사르(Caesar)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헬레나와 이혼하고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의붓딸인 테오도라(Theodora)와 결혼하였다.
306년 막시미아누스 황제가 사망하자 콘스탄티누스의 휘하 군인들이 그를 황제로 선포하였고,
312년 10월 12일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격파하고 승리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로 입성하였다.
그 후 그는 그의 어머니인 헬레나에게 ‘아우구스타’(Augusta)라는 칭호를 드렸다.
헬레나가 언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녀의 노력으로 밀라노(Milano) 칙령을
반포하게 하여 로마 제국 내에서 그리스도교를 인정하고, 투옥된 모든 신자들을 석방하였다.
그녀는 이때부터 그리스도교적인 모든 일을 도우면서 수많은 성당을 짓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다.
그 후 아들이 동서 로마제국 모두를 장악한 뒤에 만년에 접어든 헬레나는 325년경에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성지에 오래 머물면서 갈바리아(Calvaria) 언덕에 성당을 세웠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성녀의 상징은 십자가이며, 이콘에서 십자형의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인은 오직 헬레나뿐이다.그녀는 330년 8월 18일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트(Izmit)인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사망하여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안장되었다.
세 개의 십자가 중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찾다(부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52-60년, 프레스코, 136 x 290cm, 이탈리아 아레초 성 프란치스코 성당
성녀 헬레나 - 세 개의 십자가 중 예수님 십자가를 찾다
고종희(한양여대 교수)
콘스탄티노 대제 어머니로서 신앙심 남달라
교회, 수도원 세우고 모범적 봉사의 삶 살아
제대 뒤쪽 벽에 그려진‘진짜 십자가의 전설’
골고타 언덕과 등장인물 15C 풍경으로 바꿔
콘스탄티노 대제는 313년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
그동안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해 지하에서 비밀리에 미사를 봉헌해 왔고,
많은 성인과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다가 순교했는데 밀라노 칙령 이후 신자들은 마음 놓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성녀 헬레나(250~330. 8.18)는 이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독실한 신자로서 세례를 받았고, 아들인 황제 역시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성녀 헬레나는 소아시아 비티니아의 드레파눔에서 태어나 로마제국의 군인이었던
콘스탄티오 클로로스와 결혼하였고, 274년 두 사람 사이에서 콘스탄티노 대제가 탄생했다.
헬레나의 남편은 군대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차기 황제가 될 수 있는 부제로 임명되자 아내와 이혼하고
당시 황제였던 막시밀리아노의 의붓딸 테오도라와 결혼한다.
사실 부제로 임명되는 조건 속에 황제 혈통을 이어받은 여인과 재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로써 그는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며, 그의 뒤를 이어 306년 아들 콘스탄티노도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된 후 콘스탄티노는 어머니에게 ‘고귀한 여인’이라는 지위를 내려 각별히 공경했다.
헬레나는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베들레헴에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는가 하면 감옥에 갖혀 있던
신자들을 풀어주었고, 고아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다가 330년 경에 세상을 떠났다.
성녀 헬레나에 관해서는 그녀가 예수님이 못박혀 돌아가신 십자가를 되찾았다는 전설이 내려져
온다. 성녀가 골고타 산에서 십자가 세 개를 발견했는데 그중에서 어느 것이 예수님이 못박혀
돌아가신 십자가였는지, 다시 말해 진짜 십자가인지를 식별해 냈다는 일화에 관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아레초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는 15세기 르네상스 최고의 거장 중의 한 사람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진짜 십자가의 전설>이라는 벽화가 있다.
이 벽화는 성당의 제대 뒤쪽을 모두 그린 것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십자가가
아담의 무덤에서 자란 나무로 만든 것인데 628년 우여곡절 끝에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전설을 여러 장면에 걸쳐 그린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성녀 헬레나는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를 세 개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어느 것이
그리스도를 못 박은 십자가이고 어느 것이 두 강도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헬레나는
세 십자가를 놓고 신의 뜻을 기다렸고, 때마침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못박혔던 십자가에 시신이 닿자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그림 오른쪽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나체의 젊은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고,
앉아 있는 귀부인들 중에서 검은 옷에 흰 베일을 쓴 검소한 차림의 여인이 성녀 헬레나이다.
배경에 보이는 건축물은 15세기 중반 아레초의 주택 특징을 보여주며,
오른쪽에 보이는 궁정풍의 세 남성은 작품을 주문한 가문 사람들이다.
화가는 무대인 골고타 언덕과 등장 인물들을 당시의 풍경으로 확 바꾸어 놓는 재치를 발휘했다.
이 그림을 보고 이게 어째서 골고타 언덕이냐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당대에도 지금도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