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더듬’ 실속없는 영어 강의
<앵커 멘트>
요즘은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영어공부하느라 보통 힘든게 아닌데요,
대학가서도 영어부담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도 영어 강의로 인한 부담감이 한 원인이었는데요.
오늘 이슈&뉴스에서는 늘어나고 있는 대학가 영어 강의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먼저, 영어 수업 강의실을 안다영 기자가 둘러봤습니다.
<리포트>
영어로 강의하는 교수의 발음이 영 어색합니다.
질문하는 학생도 한 명 없이 수업은 일방적으로 진행됩니다.
<녹취>대학생(음성변조) : "저는 미국 살다 와서 영어 강의라고 기대했 거든요. 영어강의가 아니에요. 한마디로!"
강의가 끝나자 학생들이 교수를 찾아가 수업 시간에 궁금했던 내용을 우리말로 물어봅니다.
<녹취>대학생(음성변조) : "영어로 질문하고 싶으면 왠지 틀릴 것 같아서 질문을 못 하고 수업 끝나고 따로 교수님 찾아가서 이야기하거나…"
또 다른 영어 강의 수업, 교수가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영어로 강의를 진행합니다.
수업시간에 웃는 학생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살다가 온 학생들,
<인터뷰>방태양(고려대 영문과 4학년) : "(많으면) 1/3 정도가 외국 살다 온 애들이 있거든요. 그러면 수업 시간에 걔네들이 다 손들고 발표하고 그러니까. 처음에는 부럽기도 하다가 솔직히 얄밉기도…"
국내에서만 자란 토종 학생들은 강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부는 엎드려 자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수업 내내 딴 짓을 합니다.
<인터뷰>한서원(서강대) : "너무 졸린데요. 너무 졸리고 안 그래도 어려운 내용인데.. 그것도 영어로 하니까 따라가기가…"
교수가 영어로 강의하는가 싶더니 구체적인 예시와 설명부터는 우리말로 진행합니다.
<녹취>사립대 교수(음성변조) : "전달할 수 있는 교수의 능력도 자기 능력의 70~80%가 안 될 거고…"
영어강의가 힘들기는 교수도 학생과 마찬가집니다.
<앵커 멘트>
학생과 교수 모두 영어 강의를 반기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안 기자, 현재 대학가에서 영어 강의 비율이 얼마나 되나요?
<답변>
우선 최근에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로 문제가 됐던 카이스트를 볼까요?
전체 수업의 90%가 영어강의로 국내 대학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주요 중상위권 대학들을 살펴봐도 수업 3개 중 하나는 영어로만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체 어떤 수업들인지, 또 왜 이렇게 늘어난 건지 이철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농구 수업이 한창인 한 대학의 교양체육 시간입니다.
<녹취>강사 : "엇발로 해야지. 엇발로..."
강사가 농구 동작을 학생들에게 지도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 강의는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영어 강의 과목입니다.
실제로 일부 대학에서는 골프와 포크댄스 등 교양 체육 과목 대부분이 영어 강의라고 돼있습니다.
<녹취>영어 강의 교양 체육 수강생(변조) : "거의 한국말로 하고 가끔 영어로 해요. 영어 강의 수 늘리기 좋은 과목이어서…"
중문과 전공수업이나 한자 수업을 영어로 강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녹취>사립대 중문과 학생(음성변조) : "어쩔 수 없이 (영어 강의를) 받아 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별생각 없이 학교에서 하라고 하니까!"
왜 중국어나 체육 과목까지 영어 수업이 생겨나는 걸까?
국내외 일부 언론에서 실시하는 대학 평가 때문이라는 게 일선 교수들의 얘깁니다.
영어 강의가 많을수록 국제화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녹취>국립대 교수(음성변조) :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한국에서 좋다는 대학들이 외국 신문사에서 하는 등수에 올라가 보려고…"
대학 평가에 목멘 일부 대학들의 무분별한 영어 강의 도입에 웃지 못할 영어 수업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외부에 보여주고 평가받기 위한 영어 강의들이 많은데 학생들의 만족도는 어떻습니까?
<답변>
네, 서강대가 지난해에 학생들을 상대로 영어 강의 만족도를 조사해봤습니다.
그런데 만족한다는 대답이 30%도 되지 않았습니다.
만족률이 상당히 낮았는데요.
그 이유로 첫째가 학생의 영어실력 부족, 둘째는 교수의 영어 실력 부족입니다.
이렇게 영어 강의가 진행되다 보니 강의의 전달력이나 학문적 깊이가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긴다는 겁니다.
손은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일본 대학의 강의실입니다.
일본에서는 국제학부 등 일부 학과를 빼고는 영어 강의가 없습니다.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강의를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일본 학생이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영어로 수업 듣는 우리 학생이 일본 학생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녹취>국립대 교수(음성변조) : "일본 학생은 일본어 교재로 공부해요. 여기는 (한국 학생은) 같은 능력에서 조금 덜어내서 영어를 위해 써야된다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는 따라갈 수가 없죠."
영어 강의 열풍이 학문의 다양성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영어 강의가 가능한 사람이 우선 교수로 채용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강정인(서강대학교 교수) : "학문의 다양성 같은 게 약화 되고 학문의 영미 의존성도 더욱 심화 돼서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려할 만한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국제화를 내세우며 대학들이 앞다퉈 실시하는 영어 강의,
영어 하나를 위해 자칫 대학의 본연의 연구풍토를 희생시킬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KBS 뉴스 손은혜입니다.
입력시간 2011.05.6
첫댓글 한국 대학은 죽었다. 그 나라 지도자를 키우고 학문을 연구하는 상아탑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얼빠진 국민을 만드는 곳일 뿐이다. 그러니 그 대학의 총장이나 교수도 별볼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