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에 질토래비가 연재물로 이어지는 내용중에서/ 기록자는 문영택 이사장 외 이사진들
(185) ㈔질토래비 창립 5주년 및 총서 창간호 출판에 즈음한 한라산 특집
세계 최다의 오름 왕국…백록담 중심에서 해안까지 360여 개 솟아
고려 말 혜일 스님 시에서 한라산 명칭 첫 등장…서천암지에 시비
거룩한 산 의미 하늘산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했다 전하기도
대통령 경호 차 제주에 오던 특전사 군인들이 산화한 사건을 기리는 기념비인 원점비.
▲한라산 중턱에서 산화한 장병들 그리고 원점비
관음사 코스 등정 길 중 1000고지를 오르다 보면 오른쪽 귀퉁이에 숨은 듯 세워져 있는 ‘원점비’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원점비란 대통령 경호 차 제주에 오던 특전사 군인들이 산화한 사건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다음은 원점비 안내판에 적힌 내용이다.
“1982년 2월 5일 특전사 대원들이 대통령(고 전두환) 경호작전 임무수행을 위해 제주도로 투입(되던) 중 기상악화로 인해 이들을 태운 수송기가 현 위치(개미목 1,060미터)에 추락하여 탑승 중이던 장병 53명(특전사 47명, 공군 6명)이 장렬히 산화하였습니다. 이에 그들의 고귀한 희생과 숭고한 넋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항공기 추락 원점에 세운 비석(이 원점비) 입니다. 잠시 방문하시어 이 젊은 영혼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수전 사령부)”
원점비에 참배하러 가려면 등정 길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100여 미터 지나면 나타나는 자그마한 계곡을 건너야 한다. 젊은 나이에 희생하신 분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겠지 하고 찾아간 길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원점비에 오가는 사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한라산 등정 길은 경승 감상과 함께 과거와 미래와도 만나는 길이다. 그러기에 한라산이 품은 비경과 비사를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나본다.
▲세계 최다의 오름 왕국 한라산
46억 년이라는 오래된 지구의 나이에 비해 180만 년 전 솟아난 젊디젊은 땅 제주도. 물과 불과 바람이 빚어낸 화산섬 제주도 그 중심에 한라산이 있다.
그리고 한라산의 산정호수인 백록담을 중심으로 수많은 오름과 하천들이 해안까지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한라산이 윤곽을 드러나고 제주 곳곳에 오름이 솟아나는 시기를 대략 25만 년 전후로 추정한다. 제주 전역에서 화산활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마침내 한라산 중심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분출이 일어난다. 이때 생겨난 것이 한라산 백록담 화구벽을 이루는 조면암층이다. 한라산 화산활동의 마지막 시기인 4만 5천 년 즈음 지금의 제주도가 만들어지고, 특히 점성이 높은 거대한 아아 용암류가 흘러나오면서 오름 주변에 제주만의 특별한 지형인 곶자왈이 만들어진다.
또한 백록담을 중심으로 해안지역까지 제주 전역에 360여 개의 오름이 생기면서 제주만의 풍광이 완성되어 간다. 단일지역에서 화산활동으로 솟아난 오름의 수로는 제주도가 세계 최다라고 한다. 오름의 최대 군락지로 알려진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에트나 화산의 오름 수는 260여 개이다. 이처럼 제주도는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오름 왕국인 셈이다. 그래서 제주삼다인 돌·바람·여자에서, 이제는 여자보다 남자가 많은 시대인 만큼 자연 재화만으로 구성된 제주의 新삼다로 돌·바람·오름이라 칭해본다.
기록으로 전하는 한라산(탐라산)의 마지막 용암분출은 1002년과 1007년이다. 다음은 1450년 즈음 편찬된 고려사의 기록이다.
“탐라산 네 곳에 구멍이 뚫어져 붉은 빛깔의 물이 솟아나기를 5일 동안 하다가 그쳤는데 그 물이 모두 와석(瓦石)이 되었다. … 탐라 사람들이 말하길 ‘산이 처음 솟아나올 때 구름과 안개가 덮여 어두컴컴하고 땅이 진동함이 우레 소리 같기를 무릇 7주야를 하더니 비로소 구름과 안개가 걷히었는데 산의 높이는 100여 장이나 되고 주위는 40여 리나 되며 초목은 없고 산 위에 덮인 연기가 석류황(石硫黃) 같으므로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태학박사 전공지가 몸소 산 밑에 이르러 그 형상을 그려서 (임금께) 바쳤다.”
그러나 전공지가 그렸다는 그림은 전해지지 않는다. 위의 기록에 등장하는 탐라산은 비양봉, 군산, 송악산 등으로 추정되고 있다.
혜일선사 서천암비시.
▲한라산의 다양한 이름과 유래
한라산이라는 명칭은 영주10경 중 8경인 ‘산방굴사’를 창건한 승려로 전해지고 있는 혜일 스님의 시에 처음 등장한다. 고려 말 제주에 와 여러 편의 시를 남겨 시승(詩僧)으로도 불리는 혜일 스님은 제주에서는 오래전부터 ‘은광연세(恩光衍世) 김만덕 할망’과 ‘정조의 어승마 노정’과 함께 탐라3기(奇)라 불리어 오는 인물이다. 한라산은 혜일 스님이 수도생활을 하던 조공천(朝貢川=외도천) 상류인 광령계곡에 위치한 서천암을 노래한 다음의 시(靈邱淵:영구연)에서 비롯된다.
“한라산의 높이는 몇 길이던가(漢拏高幾仞:한라고기인) / 정상의 웅덩이는 신비로운 못(絶頂瀦神淵:절정저신연) / 물결이 넘쳐 북으로 흘러가니(波出北流去:파출북유거) / 저 아래 조공천을 이루었네(下爲朝貢川:하위조공천)…”
애월읍 광령리 사라마을 위쪽 무수천 계곡변에 있던 서천암지에는 지금 혜일 스님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폐사된 서천암지에서는 청자국화문흑백상감편, 분청사지백상감편 등의 도자기 편과 기와 조각 등이 발굴되기도 했다. ‘제주의 사찰과 불교문화(2006)’에 의하면 고려시대 시승인 혜일 선사의 제주에서의 활동 시기를 1275년과 1308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1770년대 제작된 제주삼읍총지도, 오름으로 에워싼 한라산 정상이 돋보인다
현존하는 최고의 전국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는 “진산 한라산은 주의 남쪽에 있으며 일명 두무악 또는 원산이라 부른다. 관에서 제를 행한다. 산이 (활처럼) 궁륭(穹窿)하여 높고 거대하며 그 꼭대기에 큰 연못이 있다.”라고,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과 탐라지(1653년) 등에는 “한라라고 말하는 것은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을 만큼 높기 때문이다. 혹은 두믜오름(頭無岳)이라 하니 봉우리마다 평평하기 때문이고, 혹은 두리메(圓山)이라고 하니 봉우리가 높고 둥글기 때문이고, 혹은 가메오름(釜岳)이라 하니 산봉우리에 못이 있어 물을 저장하는 그릇과 비슷하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으로도 불리는 한라산은 특히 거룩한 산의 의미가 깃든 하늘산이라 불리다가, 한자로 한라산으로 표기하였다고도 전한다.
한라산 중 가장 높은 곳인 혈망봉도 기록에 등장한다. 1609년 제주판관 김치의 ‘유한라산기’와 1841년 제주목사 이원조의 ‘탐라지’에 등장하는 한라산 최고봉의 이름은 ‘혈망봉’이다. 1702년 이형상의 탐라순력도 한라장촉과 1954년 편찬된 증보탐라지에도 혈망봉이 한라산의 최고지점으로 표기되었다. 제주의 민요와 신화에서는 한라산을 한로산, 하로산, 하로, 할로영(주)산, 한락산 등으로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