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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막 6:34-44)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가 병원에서 위암판정을 받았습니다. 큰 충격과 함께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자신이 중병에 걸린 것은 개척교회 시절에 고생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 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신학대학의 학장이었던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습니다. “노트를 한 권 사다가 사모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이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습니다. 역시 사모님이 말했습니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 내려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서 감사의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또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믿음의 증거입니다.하나님은 감사로 사는 사람들의 심령에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William Law는 "최대의 성자는 고행, 금욕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도 감사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도 "선한 사람은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악인은 없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한다."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행복이지요!
반대로 불평이 많은 사람은 모든 것이 귀찮습니다. 그래서 불행입니다. 불평이 많은 사람은 수박을 먹어도 왜 이렇게 씨가 많으냐고 불평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수박을 먹으니 속이 다 시원해서 좋다고 감사하면서 맛있게 먹습니다. 불평이 많은 사람은 장미꽃을 봐도 꽃보다는 가시를 보고 불평하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사합니다.
1. 없어도 감사합니다.
오래 전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 세브란스병원 심장병동에 가면 무명의 시인이 쓴 시가 걸려있습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여러분, 병들고, 고독하고, 일이 계획대로 안되고, 가족 때문에 걱정하고, 먹고 살기에 힘드는데,감사할 수 있습니까? 네.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깨닫게 되고, 주님과 가까워지고, 교만을 반성하게 되고,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은혜가 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며, 힘들고 어려운 살림살이 가운데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맥추감사주일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2. 광야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어 조용한 시간을 가지시기 몹시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을 떠나 좀 쉬기 위하여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배타고 가시는 방향을 보고는 사람들이 먼저 그곳에 와 있었습니다. 뱃새다 광야,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빈들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남자 장정만 5천명이니,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2만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것은 예수님께 오면, 뭔가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병든 사람은 고침받을 수 있었습니다. 속상한 사람들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시당하던 사람들은 예수님께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차별당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접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슨 큰 죄를 지은 사람들도 예수님께만 나오면,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비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34절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이제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가면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쭙습니다. “선생님, 여기는 가게도, 빵집도, 식당도 없는 빈들입니다. 날도 저물어 가는데 사람들을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서 뭐든 좀 사먹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 사람들은 빵 사먹을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임을 예수님께서 잘 아셨습니다. 그렇다고 제자들에게 먹을 것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을 먹일 돈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제자들에게 돈이 없는 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이 사람들을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합니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1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우리 돈으로 약 10만원쯤 된다고 계산해보면. 2백데나리온, 2천만원 정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인생은 빈들, 광야입니다. 광야에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불가능한 일도 많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빈들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니, 굶주린 2만명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이제 눈앞에 목적지 가나안땅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명기 2: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남자 장정만 60만명,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300만명이 족히 넘는 이스라엘 백성은 먹을 양식, 마실 물이 하나도 없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먹을 양식인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셨고, 바위에서 물이 터져나오게 하여 마시게 해주셨습니다. 길이 없는 사막에서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 앞서 길을 인도해주셨습니다. 광야에서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같은 우리 인생길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막에서도 주님과 함께 살면, 그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통치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병원에 입원한 성도님들을 심방하면서, 도리어 제가 은혜받고 올 때가 있습니다. 저는 혼자 이런 상상을 하며 병실에 들어갑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워하실까? 많이 힘드실텐데, 뭐라고 위로해드릴까?’ 그것은 기우였습니다. 얼마나 반갑게 웃으면서 맞이해주시는지 모릅니다. 환자가 환자처럼 보이지 않고, 방문한 저에게 도리어 힘이 되어주십니다. 걱정을 한 제가 도리어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는 가난하여도 실제는 부요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부요하시기 때문입니다. 병들어도 크게 염려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못 고칠 병이 없는 전능하신 의사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성도들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3.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난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돈도 없지만 돈이 있어도 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살 곳도 없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38절,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예수님께서 찾는 것은 지금 너희에게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알아보고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이 찾을 때 한 어린이가 점심 도시락으로 가져온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열쇠였습니다. 아주 적고 미미한 것이지만 이 어린아이에게는 소중한 양식입니다. 이것을 먹지 않으면 굶을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예수님께 내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기적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겨자씨와 같이 작고 미미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그곳에 하나님이 함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어린이가 왜 예수님께 내어놓았습니까? 예수님을 통해 깨달은 은혜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어 어린아이는 내가 굶어도 예수님께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감사가 있습니다. 은혜를 깨달으면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 순간순간이 하나님의 은헤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욥은 엄청난 재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운데 하나님앞에 욥1:21,22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내가 지금 먹고마시고 쓰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욥은 말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성도의 고백입니다. 여기 어린아이가 자기가 먹지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에수님께 자기의 소중한 음식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여기에 기적의 통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을 갖고 수많은 사람들을 풍족하게 먹이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을까요?
41절 이하에 그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41-44절)“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주님께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나누어주게 하셨습니다.
여기 “축사하시고”란 단어는 헬라어로 “율로게오”인데, 감사기도하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한사람의 한끼 식사, 그것도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갖고 수 만명을 앉혀 놓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한 사람의 도시락이라도 있으니 감사합니다. 주신 것이 비록 작은 어린이의 도시락이지만 이 어린이가 자기가 먹어야 할 도시락을 예수님을 위해 내어놓았다는 것도 감사하고 자기가 먹지않으면 굶어야 할 텐데 예수님을 먼저 생각한 것도 감사하고 하여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감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감사가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져야 감사합니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 왕으로 한창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 조지아주의 어느 시골 벽지 학교 여교사 마르다 베리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 피아노 한 대를 놓고 싶은데, 1천달러를 기증해주실 수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포드는 늘 그렇듯이 의례적인 편지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 10센트만 달랑 봉투에 넣어 보내 주었습니다.
헨리 포드로부터 10센트를 받은 여교사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1천 달러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10센트를 헛되이 쓰고 싶지 않았던 여교사는 밤새 고민을 했습니다. 다음 날, 그녀는 10센트를 들고 가게로 가서 땅콩종자를 구입했습니다. 그녀는 학생들과 땅콩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구슬땀을 흘러가며 땅콩농사를 정성스럽게 지은 학생들과 여교사는 잘 여문 땅콩을 수확해 감사의 편지와 함께 헨리 포드에게 보냈습니다.
헨리 포드는 크게 감동받아 그 학교에 1천 달러가 아닌 1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10센트에 감사했더니, 10센트의 10만배나 되는 1만 달러라는 수확을 가져온 것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 안에 기적의 씨앗이 숨어 있습니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감사하십시오. 현재 있는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문제 가운데서도 감사하십시오.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 해결책도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해결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월급 200만원을 받아도 기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더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00만원은 받아야 하는데, 고작 200만원 밖에 주지 않다니...’ 어떤 사람은 적게 받고도 감사합니다. 일할 수 있는 게 감사합니다. 200만원도 오히려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김치 하나, 멸치반찬, 이렇게 조촐한 식탁을 앞에 두고 ‘반찬이 이게 뭐냐?’고 투덜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부른 사람입니다. 배부른 사람, 교만한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배고픈 사람, 겸손한 사람이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이것도 과분하다는 인식, 이런 겸손한 마음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2만명이 넘는 많은 사람 앞에서 한 사람의 점심 도시락이 어디 붙일데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보잘 것 없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여기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에, 이런 기적을 날마다 경험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광야에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없어도 감사합니다. 겸손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어느 장관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그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가진 돈이 적어서 값싼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깨어보니 구두가 없어졌습니다. 밤새 도적을 맞은 것이었습니다. 화가 잔뜩 나서 욕을 하면서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가도록 내버려 두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때 친구 하나가 헌 신발을 빌려주며 주일이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마지못해 교회에 갔습니다. 예배드리는 사람들 중에서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도드릴 때에도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젊은 정치가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고 두 다리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신발이 있어도 신을 수가 없구나. 나는 신발만 잃어버렸으니 신발이야 또 사서 신으면 되지만 이렇게 남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그 장애자를 통한 감화가 이 사람의 삶에 새로운 변화를 주었습니다.
그 후 그는 언제나 감사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항상 감사할 조건들을 찾았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였습니다. 현재는 아픔이 있지만 미래를 바라보고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는 독일의 재무장관이 되어 국가를 위해 크게 일하는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우연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한 어린아이의 감사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플 텐데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감사하며 자기가 먹어야 할 도시락을 내어놓았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받은 작은 도시락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기적은 이렇게 감사할 때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받아도 감사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헤아리며 하나님앞에 감사할 때 감사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것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놀랍게도 자기도 배불리 먹고 함께 있었던 배고픈 2만명의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 12바구니나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기적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감사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앞에 감사하고 언제나 오늘 항상 감사하는 믿음으로 나아감으로 감사의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