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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사진·조남진 기자, 글·장일호 임지영 기자 / 김경민 김수지 김재욱 박초롱 허은선 인턴기자 지난 1년간 숱하게 막혔던 ‘행진.’ 1월9일 마침내 도로가 열렸다. 경찰의 통제 아래 두 개 차선이 비워졌다. 유족들은 서울역에서 영결식을 마친 오후 2시 50분 운구차를 앞세워 용산참사 현장으로 출발했다. 영결식에 참여했던 시민 5000여명(범대위 추산)도 함께였다. 지난여름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3보 1배를 하던 중 가로 막힌 자리에 비가 내렸다면, 1월9일 마지막 가는 길엔 눈이 흩날리며 가는 넋을 위로했다.
영결식의 개식사를 맡은 이강실·조희주 상임장례위원장은 “용산은 민심과 인권을 지키는 망루였다. 또 다시 우리사회가 용산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민주주의와 인권의 망루를 세우자”라고 말했다. 또 “남은 과제는 산 자에게 맡기고 편하게 가시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영하의 날씨에 발을 동동 거리면서도 시민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도 제법 눈에 띄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온 김 아무개씨(36)는 진혼무가 올려지는 무대를 아이들에게 가리키며 “돌아가신 분들 잘 가시라고 위로하는 춤이야”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조사를 위해 단상으로 올라온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죽는다고 해서 영원히 죽는 건 아니다”라며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20여년 전 아들 이한열 열사를 가슴에 묻었던 배은심 대표는 “유족들의 모습이 20여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검은 상복을 입고 1년 내내 여기저기 호소하러 다녔던 유가족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린다”라고 말했다. 또 배 대표는 “고인들이 묻힐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묻힌 문익환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민주열사들이 두 팔 벌려 웃으며 고인들을 외롭지 않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 날 영결식이 이뤄지던 서울역 광장에서는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이 범국민장으로 치러지는 장례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져, 영결식에 참석한 시민들과 잠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1보 1시 :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용산참사 희생자 다섯 명(고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은 1월9일 오전 9시 ‘이승에서의 마지막 밥’을 받았다. 발인 제사를 드리는 유족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영하6도의 추위 속에서 고 이상림씨의 며느리인 정영신씨는 연신 흐느꼈다. 울고 있는 정씨 얼굴의 코끝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인 남편 이충연씨는 아내 정씨의 눈물을 닦아주며 “울지마”라고 다독였다. 이충연씨는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키기 위해 잠시 ‘외출’ 중이다. 1심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 받고 서울구치소에 갇혀있는 이씨는 지난 1월6일 밤 장례식 참석을 이유로 구속 집행 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져 외출했다. 그는 거의 1년만에야 아버지의 영정에 분향할 수 있었다. 사회를 맡은 이성호 장례위 문예위원장은 “장례는 치르지만 아직 해결 못한 게 많다. 갈 길이 멀다”라고 말했다.
발인을 마친 유족들은 운구차를 타고 국립극장-장충단공원-퇴계로를 거쳐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역에 12시 도착한다. 영결식은 김태연 장례위 상임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되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조사와 안치환의 조가 등이 이어진다. 영결식이 끝난 뒤 오후 2시부터 용산참사 현장까지 행진한 뒤 참사 현장에서 진혼굿 등 노제가 치러진다. 노제가 끝나면 고인은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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