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0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무갈 황제 아크바가 숲으로 사냥을 나갔다. 저녁기도 시간이 되자 그는 말에서 내려와 땅에 자리를 펴고서 어디서나 열심 한 회교도들이 하는 방식으로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남편 때문에 심란해진 한 시골 부인이 걱정스럽게 실종된 남편을 찾으면서 그 옆을 달려갔다. 남편 찾는 일에 몰두해서 그 부인은 황제가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못 보고 그 한데 걸려 넘어졌다가 일어나서는 사과의 말 한 마디도 없이 숲속으로 달려갔다.
아크바는 이렇게 방해를 받아 화가 났지만, 착실한 회교도인 만큼, 기도 중에는 아무에게도 이야기 안하는 규칙을 지켰다.
그런데 기도가 끝났을 바로 그 무렵에 그 부인이 자기가 찾아낸 남편과 함께 즐겁게 돌아왔다. 부인은 황제와 수행원이 거기 있는 것을 보자 깜짝 놀라며 겁을 먹었다. 아크바는 그 부인에게 화풀이를 하며 소리쳤다.
“너의 그 무례한 행동을 해명하지 못하면 벌을 주리라.” 그 부인은 갑자기 겁 없이 돌아서더니, 황제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폐하, 제가 그만 제 남편 생각에 몰두해서 폐하께서 여기 계신 것조차 알아 뵙지 못하였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셨듯이 제가 폐하께 걸려 넘어졌을 때조차도 폐하를 못 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기도 중이셨고, 제 남편보다 한량없이 더 귀중하신 분께 몰두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폐하께서는 저를 알아보셨다는 것입니까?”
황제는 부끄러워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후에 그의 친구에게 털어놓으면서, 학자도 물라(스승)도 아닌 한 시골 부인이 그에게 기도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노라고 말했다. -개구리의 기도 제 1권, 앤소니 드 멜로 지음/이미림 옮김-
주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기도’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녀의 기도’입니다. 자녀들이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이 기도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 이 기도문을 외워서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성 없이 그냥 외워서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외워서 기도를 바치는 것보다는 글을 배워서 처음으로 기도문을 보는 사람처럼 그렇게 더듬거리지만 정성을 다하여 바치는 기도가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빈말이나 독백은 아무리 많이 해도 기도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살다보면 빈말이나 독백 없이 기도를 바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혼자 넋두리를 늘어놓거나 혼자서 중얼거리는 순간에도 나름대로 기도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떤 때는 기도를 바치는 순간에도 ‘지금 내가 하는 기도가 과연 주님께 기도를 하는 데 합당한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어떤 때는 망설이면서 마지못해 바치는 기도도 대부분 기복적(祈福的)이고, 내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면 ‘이런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주실 것인가?’하는 의구심으로 두려워질 때도 있습니다. 말없이 침묵으로 기도하면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데 사람들과 같이 기도하면 어떤 말을 하면서 기도해 달라고 주문을 받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도문을 만들어 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말을 잘하면서 기도한다고 좋은 기도는 아닐 것 같은데 빈말이나 독백을 자주 늘어놓으면서 기도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용서를 강조하십니다. 용서는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사실 용서보다 좋은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용서보다 어려운 기도도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용서는 어렵기도 하고, 좋기도 한 것입니다. 용서는 말로써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로써 실천하는 것입니다. 물론 말로써 용서의 표현을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으로 감정을 다스릴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활에서 실천할 때 진심으로 용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아주 천천히 바치면서 그 안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봉헌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용서한다, 사랑한다, 자비를 베푸소서, 사랑의 실천, 불쌍히 여기소서 등등 우리는 매일 수도 없이 기도를 한다고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빈말이고 독백일지라도 그냥 중얼거릴지라도 기도가 아닐지라도 자꾸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입이라도 거룩해지고, 마음이 조금씩이라도 움직일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삭막합니다. 말이 너무 거칠어지고 성격이 거칠어지고 포악해지고, 인륜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우리가 변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변해야 합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