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월)
내게 생일은 정말 중요한 날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내 생일을 의식하며 살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생일이 10달 남았든, 3달
남았든
언제나 ‘10월 8일’ 내 생일을 떠올렸다는 말이다.
‘일년 남았군.’ ‘석달
남았군’ ‘2주 남았군’
이렇게.
그리고 적어도 2주전부터는 생일 세레모니를 어떻게 할지 계획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곧 있을 내 생일을 통보하고 다녔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생일 파티 초대장을 친구들에게 돌려가며
꼭 생일 파티 행사를 치렀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생일이 거의 시험과 겹치거나 시험 직후여서
나는 시험 기간에 언제나 ‘미역죽’을
먹었다.
처음에는 시험에서 미끌어지는게 아닌가 하고 남들처럼 걱정했지만,
미역죽을 먹고 시험을 잘 본 후부터는 일부로라도 꼭 미역죽을 찾았다.
그리하여 생일을 끼고 일주일간 미역죽을 먹는 것은 일종의 문화가 되었고,
그 주는 ‘은탄절 주간’이
되었다.
중학교 때, 나는 바빠서 친구들과 생일 파티는 못할지언정
꼭 가족과는 ‘은탄절 주간’ 일주일
동안 생일을 축하했다.
주로 케이크에 촛불을 꽂고 생일 노래를 부르는 세레모니를
3차례 이상했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생일선물을 바라거나 요구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생일을 축하하는 그 시간을 좋아했고
스스로 그런 시간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냈을 뿐이다.
나는 생일이 정말 특별하다고 믿는다.
사실 그렇게 믿고 싶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 내 이름이 붙여진 하루가 있다면
그 하루는 최대한 나를 위해, 이왕이면 더 특별하게 보내는 게 좋지
않은가.
다른 때에는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못했던 것들,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던 것들을
이날만큼은 오직 나만을 위해 어떤 것도 아끼지 않고 하는 것이다.
나는 ‘생일’이 각자에게
적어도 일년의 한번은 숨쉴 구멍을 선사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 시간을 더 사랑할 수록
내 자신에게 더 큰 여유와 즐거움과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스스로의 생일을 너무 과하게 챙기는 게 아니냐 할지 모르지만,
17년간 내가 생일에 대해 가져왔던 지론은 이렇다.
나는 이번 생일 역시 그냥 흘려 보내고 싶지 않아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나는 혼자만의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멀리는 아니지만, ‘국회 도서관’으로.
책을 읽기에도, 공부를 하기에도,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는
희우 이모의 추천에
이곳이 바로 내 생일을 축하하기에 알맞은 장소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영과 헬스가 끝난 후에, 오전 10시쯤 지하철을 타고
국회 도서관으로 향했다. 9호선 국회의사당 역에서 내리니
1번 출구 바로 건너편에 국회 건물이 있었다.
처음에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 나는 솔직히 위축됐다. 이런 웅장한 건물에는 왠지
국회의원들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자녀를 둔 한 가족이 당당하게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용기를 내어 따라 들어갔다.
나는 미리 국회 도서관 사이트에서 회원가입을 하고, 청소년 신청서도
챙겨간 덕분에
비교적 쉽게 열람증을 받을 수 있었다.
필요한 물건만 투명가방에 넣고, 가방을 보관함에 넣은 후에
진짜 도서관 안으로 출입했다.
1층부터 5층까지 30개가 넘는 사무실과 열람실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 ‘청소년 자료실’ 같은
것은 없었다.
의회정보실장실, 경제산업조사실장실.
순 낯설고 어려운 이름으로 된 곳들 뿐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거의 30분간 방황하다가,
그나마 이름이 익숙한 ‘인문 자연과학자료실’로 들어갔다.
이제야 좀 익숙한 서가와 익숙한 책들이 보였다.
나는 신간도서들 중에서 ‘아몬드’라는
소설을 꺼내 들었다.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아몬드 애호가인 나를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마침 추천을 받았던 책이기도 해서,
나는 망설임이 없이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못느끼는
‘감정 불능증’ 소년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점차 감정을 알아가는 이야기다.
스토리의 전개는 조금 뻔했지만,
생일날 읽기에 무겁지 않고, 따뜻한 소설이었다.
나는 구내식당에서 4800원으로 식권을 사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 후에는 국회도서관 앞길의 산책로를 걸었다.
오후 4시까지 도서관 이곳 저곳을 배회하며 책을 읽었다.
나는 자신감이 생겨서, 인문 사회과학자료실을 나와
다른 열람실도 구경했다.
2학기 나의 목표는 ‘여행하듯
공부하자’이다.
어둡고 침침한 독서실 한 칸에 처박혀 문제집을 푸는 게 아니라,
도서관에도 가고, 카페에도 가도, 거리도
거닐며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강의도 보는 것.
그리고 오고 가는 길과 내가 머무는 공간 속에서도
즐거움과 배움을 찾는 것.
그런 의미에서 오늘 국회도서관으로의 나의 여정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나는 꽤나 많은 생일 축하 메시지들을 받았다.
학교를 안 다녀서 당연히 축하를 받는 것에 대한 기대도 없었는데,
정말 고맙게도 아침 일찍부터 나를 기억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생일날 이런 축하를 받을 때면 나는 언제나 후회와 다짐을 한다.
‘나도 좀 잘 챙겨줄 껄.’ ‘앞으로는
다른 친구들 생일 잘 챙겨줘야지.’
정말 길지 않은 ‘생일 축하해’ 한
마디인데도,
그게 어찌나 기분 좋고, 감사한지 모른다.
내 생일만큼이나, 다른 친구들의 생일은 그 아이들에게 특별할 수 있도록,
앞으로는 내 생일만큼이나 다른 친구들의 생일도 열심히 챙겨야겠다.
첫댓글 오가는 길과 머무는 공간에서 즐거움과 배움을 찾는 것!!! 은재의 2학기 목표를 엄마의 평생 목표로 삼고 싶다!!^^
발상 자체가 늘 사랑스러운ㅡ진취성, 용기 있는 실천, 자기혁신, 이런 요소들이 충만해서 사랑스럽다는 거야, 단순히 귀엽고 예쁘다는 게 아니고! 박수를 보낸다, 웃음을 터트리며 ㅡ 은재. 은재가 겨울에 도서관 창가 자리에서 노천 온천 기분을 즐기며 공부하고 책을 볼수 있는 소품들을 챙기고 있다. 3가지 정도? ㅡ기대하시라 소확행 소품.
은재는~ 참 선물과 같은 올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것 같구나.
누구에게나 다 주어지지는 않는 특별한 시간을 누리고 있는 것. 그대로도 참 귀한 선물이지만,
그 귀한 선물을 더욱 가치있고 빛나게 하는, 은재의 하루 하루, 한순간 한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은재는 참~~ ^^" 이라 읖조리며 미소짓고 있는 나를 또 발견한다. ^^
역시 은재구나~ 라며 네 글을 마무리했어~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을 만들면서 지내는 네 모습이 참 이쁘다~
코앞에 국회의사당이 있는데 도서관이 있는줄은 몰랐네~ 이번 기회에 한번 들러봐야겠다~~
사랑스런 은재 생일 축하한다.!!!!
오가는 길과 머무는 공간에서 즐거움과 배움을 찾는 것!!!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준형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