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라는 말은 이상하다. 두 글자밖에 되지 않는데 그 안에 한 사람의 생애가 다 들어 있다. 불러 보면 어린 날의 부엌이 돌아오고,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떠오르고, 밥물이 넘칠까 솥뚜껑을 살피던 등이 보인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잠시 어린아이가 된다. 나이가 들어 세상의 이치를 조금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다가도 엄마 앞에서는 다시 철없던 딸이 된다.
엄마의 얼굴을 바라본다. 희어진 머리카락이 이마를 감싸고 깊은 주름이 얼굴 곳곳에 내려앉았다. 젊은 날에는 없었던 길들이다. 눈가에서 시작된 길, 이마를 가로지르는 길, 입가에 조용히 머문 길. 그 길을 따라가면 엄마가 살아온 시간이 보이는 것 같다. 자식을 낳고 키우며 수없이 웃고 울었던 날들, 없는 살림을 쪼개며 가족의 끼니를 걱정했던 날들, 아픈 자식 머리맡에서 밤을 새우던 시간들이 주름 한 줄 한 줄에 새겨져 있다.
어릴 적에는 엄마가 늙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언제나 엄마인 줄 알았다. 아침이면 먼저 일어나 밥을 짓고, 저녁이면 늦게까지 집 안을 살피는 사람.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전에 알아차리고, 내가 아프면 대신 아파할 것처럼 이마를 짚어 주던 사람. 엄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꽃다운 청춘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엄마도 한때는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던 소녀였을 것이다. 봄날에는 꽃을 좋아하고, 가을이면 낙엽을 밟으며 누군가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예쁜 옷을 입고 싶었고 가 보고 싶은 곳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으면서 엄마의 이름 앞에는 수많은 역할이 붙었다.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정작 자신의 이름은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나는 엄마의 손을 생각한다. 젊었을 때는 크고 단단해 보였던 손이다. 그 손으로 쌀을 씻고 나물을 다듬고 빨래를 했다. 아이의 열이 오르면 밤새 물수건을 갈아 주었고, 학교 가는 자식의 옷깃을 여며 주었다. 시장에서 돌아올 때면 양손 가득 봉지를 들고도 자식이 좋아하는 과자 하나를 잊지 않았다. 엄마의 손은 늘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들고, 닦고, 씻고, 만들고, 건넸다.
그 손이 이제는 가늘어졌다. 손등에는 세월이 만든 굵은 핏줄이 드러나고 손가락 마디마다 살아온 시간이 머물러 있다. 예전에는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엄마의 손을 잡게 되었다. 아주 작은 변화인데도 마음 한쪽이 저려 온다. 삶은 그렇게 소리 없이 자리를 바꾸는가 보다.
엄마는 늘 자식에게 좋은 것을 먼저 주었다. 생선 한 마리를 구워도 살 많은 가운데 토막은 자식 앞으로 밀어 놓고 자신은 머리나 꼬리를 먹었다. 과일을 깎으면 예쁜 조각은 식구들 접시에 놓고 모양이 흐트러진 것은 자신의 몫으로 삼았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먹었다. 엄마도 맛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엄마도 이거 좋아해?” 철이 들어 물었을 때 엄마는 대개 웃으며 말했다.
“나는 괜찮다. 너 많이 먹어라.”
그 말이 왜 그렇게 오래 마음에 남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괜찮다’에는 얼마나 많은 마음이 숨어 있었을까. 힘들어도 괜찮다고 했고, 아파도 괜찮다고 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필요 없다고 했으며 자식이 걱정할까 봐 속상한 일이 있어도 별일 아니라고 했다. 엄마의 괜찮다는 말은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가족을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그 말을 조금씩 이해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좋은 것을 나누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자신의 힘듦을 감추면서까지 상대의 하루를 지켜 주는 일이다. 엄마는 평생 그렇게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비가 오면 자신이 먼저 젖었고 바람이 불면 자식 앞을 막아섰다. 우리는 그 뒤에서 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하면서도 울타리가 얼마나 오래 비바람을 맞고 있었는지 몰랐다.
가끔 어린 시절의 저녁이 그립다. 해가 지고 골목에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이면 어디선가 밥 짓는 냄새가 났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가도 엄마가 이름을 부르면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을 열면 따뜻한 방과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된장찌개가 보글거리고 김이 오른 밥그릇 옆에는 김치와 나물이 놓였다. 화려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세상 어느 식탁보다 따뜻했다. 지금 생각하면 음식이 아니라 엄마의 기다림을 먹고 자랐던 것이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집이라는 곳이 따뜻했던 것은 벽과 지붕 때문만은 아니었다.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불을 끄지 않고 기다리던 사람, 밥은 먹었느냐고 가장 먼저 묻던 사람. 세상에서 잘했느냐고 묻기 전에 배고프지 않으냐고 물어 주는 사람이 엄마였다.
세상에는 많은 사랑이 있다. 뜨겁게 시작되는 사랑도 있고 어느 날 조용히 멀어지는 사랑도 있다. 그러나 엄마의 사랑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봄이라고 더 피어나지도 않고 겨울이라고 시들지도 않는다. 자식이 잘났을 때만 사랑하지 않고 부족할 때도 품어 준다. 돌아서도 기다리고 넘어져도 다시 손을 내민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상처받고 돌아온 날이면 마음속으로 가장 먼저 엄마를 찾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늘 늦게 깨닫는다. 엄마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살다가 어느 날 희어진 머리카락을 보고 놀란다. 천천히 걷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세월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알아차린다.
나는 이제 엄마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좋아했느냐고. 어디에 가고 싶었느냐고. 젊은 날 어떤 꿈을 꾸었느냐고. 누구의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로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다. 너무 늦기 전에 오래 앉아 그 이야기를 들어 주고 싶다. 우리가 자라는 동안 엄마가 우리의 말을 끝없이 들어 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엄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차례다.
엄마 곁에 노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화려한 꽃다발이 아니라 소박한 한 송이라 더욱 마음이 간다. 긴 세월을 견뎌 온 엄마에게 뒤늦게 건네는 꽃처럼 보인다. 꽃은 말이 없지만 나는 그 작은 꽃에 마음을 얹어 본다. 엄마, 이제는 조금 천천히 걸어도 돼. 좋은 것은 엄마가 먼저 먹어도 돼.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해도 돼. 평생 자식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으니 이제는 엄마가 가운데 앉아도 돼. 나는 엄마의 주름을 다시 바라본다. 그것은 늙음의 흔적만이 아니다. 한 가족을 품고 여기까지 걸어온 생의 문장이다. 지울 것도 감출 것도 없는 엄마의 자서전이다. 한 줄에는 사랑이 있고 한 줄에는 눈물이 있으며, 또 한 줄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인내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나도 엄마의 나이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엄마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엄마를 완전히 이해하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식은 평생 엄마가 내어 준 사랑의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오래 엄마를 바라보고 싶다. 손을 한 번 더 잡아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도 아끼지 않고 싶다. 마음속에만 넣어 둔 말은 세월 앞에서 너무 쉽게 늦어지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두 글자를 가만히 불러 본다. 그 안에서 밥 냄새가 나고 오래된 집의 불빛이 켜진다. 어린 내가 뛰어오고 젊은 엄마가 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세월을 건너온 지금의 엄마가 조용히 웃는다.
세상에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이 많지만 엄마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오래전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이름을 마음 가장 따뜻한 곳에 놓아둔다. 엄마. 그 이름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난 사랑이며,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끝내 다 읽지 못할 한 권의 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