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은 대를 이어서 가난하고 부한 사람들은 대를 이어서 부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라면 우리는 그런 사회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절망적인 가난만이 대물림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래서 모세의 법은 가난과 빈곤이 대물림될 수 없도록 안식년과 희년 제도를 만들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제도는 유명무실하게 되고 말았으며 형식과 행사만 남고 그 정신과 제도는 사문화되고 말았다. 가난은 대물림되고 가난에 가난이 중첩되어서 부한 자들은 자신들의 부를 기반으로 더 부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들을 남의 집 노예로 팔아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왔다.
(느 5:1)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느 5:2)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느 5:3)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느 5:4)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귀족들은 가진 재산을 가지고 고리대금을 하여 더 부를 취하고 결국 백성들은 자신들의 가옥과 전답도 저당 잡혀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들이 벌어졌다. 백성들의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탓하기 전에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그런 탐욕은 정죄 되어야 하며 견책받아야 하건만 버젓이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 포로기 이후에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느 5:6)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느 5:7)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이 세상은 자기 능력껏 살아가는 것이 풍속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표준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무지와 무능력을 기회로 돈을 벌고 필요 이상의 배당을 받아서 자신의 배를 불리는 것은 자랑해야 할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자랑거리가 되고 교회는 이런 일에 대하여 어떤 책망도 하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연히 교회에서도 용인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무지와 약점과 불행을 이용하려는 모든 시도는 하늘 책에 사기로 기록된다“(선지 652)
다른 이에게 손실을 주고 자신의 이익을 얻는 방법은 사탄의 세계 곧 약육강식의 세상에서나 통용되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 시민다운 삶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느 5:8)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느 5:9)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느헤미야는 총독으로서 그들의 불법과 몰인정을 책망하고 자신의 앞장서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선행에 앞장섬으로 다른 이들의 동참을 이끌었다. 세상이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의 표준이 될 수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유일한 표준은 주님께서 산 위에서 설교하실 때 주신 황금률 곧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신 이 말씀이다.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의 눈물과 손실을 이용해서 부를 취하지 않게 하소서. 하늘이 인정할 수 없는 재물을 얻고 웃음 짓지 말게 하시고 불의한 방법으로 세상에서 안락하게 살기보다는 오히려 밤낮 수고하여 빈곤의 빵을 먹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정직한 하루를 살게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