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 언약을 맺으리라!(렘31:31-33)
갈등
1. 송구영신 예배입니다. 2023년을 보내고 2024년을 맞이합니다. 지난 2023년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기쁘고 가슴 벅찬 시간이었나요? 슬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나요? 기쁨과 슬픔이 오고 간 시간이었나요? 오늘 오후에 설교 준비를 하는데 가수 전인권이 컬컬한 목소리로 부른 노래,‘걱정 말아요 그대’가사가 떠올랐습니다. 그가 걱정하지 말라고 부르짖으며 노래합니다.“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우리 인생 노래입니다. 지나간 것에 흡족히 만족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또 새로운 꿈을 꾸고 새해를 잠시 후에 시작합니다. 오늘 예레미야 말씀에 새 언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31절,“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하나님께서 날이 이르면-때가 되면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맺으리라고 선언하셨어요. 이스라엘 집은 북이스라엘을, 유다 집은 남유다를 일컫습니다. 이스라엘이 분열 왕국을 200여 년간 지냈기에 이런 표현이 성경에서 보입니다.
2. 31절, 새 언약이라는 말씀으로 인해 신약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구약성경이란 말 때문에 신약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고요. 새 언약이 먼저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점에서 무척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새 언약에 반대되는 옛 언약은 32절,“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의 내 언약을 깨뜻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옛 언약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었습니다. 마치 결혼식을 하듯이요. 그때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다 알 수 있게 임하셨어요. 이스라엘이 이 경험-하나님의 임재-후에 모세에게 특별 요청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시는 자기들에게 임하셔서 말씀하시지 않게 해달라고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그들이 너무 떨리고 힘들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모세,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 순종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감격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하니문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끝내 이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었다고 하시며,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습니까?
갈등 심화
3.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하다가 갈등을 겪습니다.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먼저 언약을 깨뜨리며 관계가 악화됩니다. 부부 사이에 누군가 언약을 깨뜨리면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라고 선언하시며, 이스라엘이 언약을 깨뜨렸지만 새 언약을 그들과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런 신의 모습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세상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을 새 언약은
33절,“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언약-율법은 본래 돌판이나 종이에 기록을 했습니다. 십계명은 돌판에, 율법은 양피지나 파피루스, 이후에는 종이에 기록했어요. 그런데 새 언약은 이런 것에 기록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하나님은 돌판이나 종이에 기록한 언약은 별 효용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아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새 언약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꽤 애착심을 가지신 모습이 보입니다. 세상 부부들은 부정한 배우자에게 애착심을 갖지 않아요. 맞바람을 피거나 쉽게 버립니다.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으세요. 이스라엘이 그렇게 방종하고 하나님을 떠나도 일편단심 민들레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사랑은 호세아의 삶을 통해서 잘 예언-말씀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고 새 언약을 통해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실마리
5. 성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또는 우리의 관계를 다양하게 말씀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목자와 양으로 비유합니다. 시23: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요10: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요15: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이런 비유들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절대 의존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반면, 하나님과 우리가 대등해 보이는 비유도 있습니다. 요15: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라 부르신다는 감격스러운 표현이에요. 우리가 더 이상 종이 아니라는 강조를 하시면서요. 또 대등해 보이는 비유가 남편과 아내 비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어떻게 대등할 수 있겠습니까? 비유로 그렇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이런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감을 의미해요.
6. 친구와 부부와 같이 우리가 자발적으로 성숙하게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기대감입니다. 친구는 신뢰 관계, 부부는 사랑의 관계를 대표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너무 쉽고 빠르게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깨뜨리고 말았어요.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처럼요.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강림하신 사건을 경험한 후 이스라엘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산꼭대기에 올라간 40일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3000명이 아론을 찾아와서 윽박질렀어요.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낸 신을 만들자고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론이 3000명의 함성에 기가 죽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협력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숭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진멸하고자 했지만, 모세의 생사를 건 중보기도로 가까스로 이스라엘이 진멸되지는 않았어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신부가 되어 언약을 깨뜨린 일은 이후 셀 수 없이 반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오래 참으십니다. 여호수아 이후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사사 시대에도 우상숭배는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주기적으로 그들을 일깨우기 위해 이웃 나라들이 선수 교체를 하듯이 침략하게 하셨어요.
7.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침략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때마다 사사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셨어요. 사무엘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왕이 되지 마시고 자기들에게 세상 나라들과 같이 왕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삐뚤어진 마음을 보시고도 허락하셨습니다. 대신에 왕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를 멸망시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전히 율법에 기초한 언약이죠.(옛 언약이 이어졌어요)
이스라엘의 습관적인 죄는 그치지 않았고, 끝내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오래 참으심에 마침표가 왔습니다. 주전 722년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게 하고, 136년 후 주전 586년 바벨론이 남유다를 멸망시키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에 멸망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맺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70년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향하고, 그들과 새롭게 맺게 되는 언약입니다. 이 언약의 실제는 그들이 귀향하고 400년이 지난 뒤 성탄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복음 제시
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멸망하게 하신 것은 그들로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죄가 무엇인지 알고, 죄 값을 치르게 하셨어요. 마치 죄수가 형기를 채우듯이요. 바벨론 포로 70년도 그런 의미였어요.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돌이키고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고 살기를 원하셨어요. 이것은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 새 언약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시겠다는 예언이 선포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일로는 새 언약이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랫동안 계획했던 그의 독생자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새 언약을 완성하게 하셨어요.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시고 부활하심으로, 새 언약이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자녀들)이 되어 다시는 이 관계가 깨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롬8:39)
기대
9. 오늘 오후 송구영신 메시지를 준비하며서 감동적인 예화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1141년 중세 독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바바리 족과 스와비아(스바벤) 족간에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바바리족이 싸움에 밀려서 군주인 울프 공작이 자신의 성 와인스버그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성밖에는 스와비아의 프레드릭 공작이 동생 콘라드 왕과 함께 성을 완전히 포위하였어요. 이때 울프 공작은 자기 백성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두 가지 조건을 걸고 항복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조건은 여성들은 죽이지 말고 살려 달라. 두 번째 조건은 그 여성들이 성 밖으로 나갈 때 그들에게 가장 귀한 것 한 가지를 가지고 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조건을 들어주면 항복을 하고 성을 바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스와비아의 콘라드 왕은 울프 공작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후 와인스버그 성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성문이 열리자 콘라드 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여인들이 자신의 남편들을 업고 힘겹게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이 가지고 나온 가장 소중한 것은 남편들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던 콘라드 왕이 놀라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콘라드왕은 여인들과 그 여인들이 업고 나온 남편들에게 자유와 안전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때 평화협정을 맺은 언덕(와이버 트로이)은 지금도‘여인들의 헌신’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10.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명입니다. 물질이나 명예, 그 무엇이 아니고요. 이 예화와 같이요. 내 생명이 중요하고, 가족들의 생명이 중요하듯이, 우리 이웃들-열방의 생명들이 모두 소중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 언약은 생명 언약입니다.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언약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생명을 너무 경시합니다. 최근 배우 이선균이 죽어간 경우처럼요.
내 생명도 중요하지만, 남의 생명도 소중합니다. 이 언약을 우리가 깨뜨리면 우리 인생은 어떤 소망도 없습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 찬양하며 기도합니다. 새해에는 생명의 역사가 많이 일어나게 하소서! 우리 교회 중보자들이 새해에 우리 교회의 괄목할만한 변화와 성장할 것이라는 비전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나를 통해서 가정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뭇 생명들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