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 따라 물결치던 그 들녘의 푸른 물결 한 줌 흙냄새 밴 기억들 맨발로 밟던 고요한 오후 들녘은 늘 거기 있는데 나만 먼 세월을 걸어 나왔구나
떠나온 시간은 가을볕에 말라버린 이삭 같아 손에 쥐면 바스러지는데 해마다 이맘때면 그리움은 뭉클 피어난다
내가 잊은 줄 알았던 이름들 풀벌레 소리와 어머니의 부름이 저물녘 들판에 다시 깃들어 꿈결처럼 나를 부르는 그리움 가슴을 메이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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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형윤 시인의 〈들녘〉은 시간의 흐름과 고향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담담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낸 아름다운 시입니다. 작품을 읽으며 마음에 남는 몇 가지 결을 짚어봅니다.
- 시간의 대비와 상실감
1연에서 "들녘은 늘 거기 있는데 / 나만 먼 세월을 걸어 나왔구나"라는 구절은 변하지 않는 자연과 나이 들어가는 인간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들녘과 달리, 화자는 멀리 떠나와 버렸습니다.
- 시각화된 그리움
2연에서 지나온 시간을 "가을볕에 말라버린 이삭"에 비유한 표현이 압권입니다. 손에 쥐면 바스러질 듯 덧없고 희미해진 과거의 기억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해마다 이맘때면" 그리움은 다시 뭉클하게 피어오릅니다.
- 청각적 기억의 소환
3연에서는 풀벌레 소리와 어머니의 부름이라는 청각적 요소를 통해 그리움의 실체를 구체화합니다. 저물녘 들판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이 소리들은 화자에게 가슴 메어오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시를 깊은 여운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푸른 물결 치던 들녘의 싱그러움으로 시작해 가을볕의 쓸쓸함을 지나, 결국은 어머니의 부름이라는 따뜻하고도 아련한 원초적 고향으로 회귀하는 감정선이 참 포근하면서도 가슴을 울립니다.
위형윤 시인 국방일보(구 전우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73), 공무원문학 시(17), 수필(03), 안양대학교 명예교수, 대학원장, 신학대학장, 일우중앙도서관장 등, 독일튀빙겐대학교 히브리문학(Ph.D.), 사)한국문인협회, 사)한국시인협회, 한국공무원문인협회 회장, 사)광명문인협회 감사, 시섬문인협회 이사 수상: 대한민국 교육문학 대상, 공무원문학상, 한국창작문학 대상, 시집: 《기도로 쓴 시편》, 《나는 늘 집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