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163/200513]우렁이회와 우렁각시
요즘 뒷산 1급수 저수지에 민물새우가 안잡혀 ‘큰일’이다. 새우를 말려 한 봉지씩이라도 줘야 할 친구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책 겸 일삼아 하루 한번씩 올라가 쳐놓은 새우망을 건지는데, 수백 마리가 아니고 수십 마리가 고작이다. 대신 낮에 날씨가 따뜻해지니 ‘우렁이’(흔히 ‘우렁’이라 한다)가 저수지 가양(가)에 많이 눈에 띈다. 어제는 100여마리를 잡았다(정확히는 주웠다는 말이 맞다). 우렁요리하면, 우렁강된장이나 우렁된장찌개를 맨먼저 떠올릴 것이나, 우렁장을 담글 수도 있다. 우렁은 숙취 해소 뿐만 아니라 빈혈에도 좋다고 한다.
‘자연인친구’와 함께 이번에는 ‘우렁회’를 만들어먹자고 했다. ‘회’하니까 ‘날 것fresh’을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해치가 많기에 일단 여러번 껍질째 빡빡 문질러 씻은 후 뜨거운 물에 퐁당, 살짝 삶아 알맹이를 일일이 옷삔이나 대꼬챙이 등으로 빼낸다. 껍질을 버리고 알맹이만 밀가루에 범벅해 서너 번 빡빡 문지르면 깨끗해진다. 개울가에서 뜯어온 불미나리를 잘 씻은 후(혹시 거머리가 달라붙을 수 있다) 손가락 길이만큼 자르고 우렁이를 투하한다. 위생장갑을 끼고 양념(식초, 고추장, 볶은깨, 다진마늘, 약간의 미원, 설탕 등)을 넣어 조물조물하면 ‘우렁이회’ 완성.
돈 주고도 사기 힘든 ‘고급안주’ 한 접시를 마당 테이블에 올려놓은 후, 다음은 물어보나마나 동네 또래청년들 호출. 너도나도 여기저기 일터(논 로타리를 치다가, 복숭아농장에서 꽃을 따다가, 감나무밭에 제초제를 치다가, 그냥 지나가다가)에서 6명이 동시출현. 오후 4시반, 모두 새참타임에 잘 됐다. 농촌에선 소주를 작은컵에 따라 마시는 법이 없다. 무조건 종이컵 반절. 1병에 두 잔. 순식간에 ‘댓 병짜리’ 소주가 사라진다. 두꺼비 두 살짜리는 ‘양냑스럽다(번거롭다의 사투리)’며 우습게 안다. 그러고도 멀쩡하게 자기 할 일을 다 하는, 이 시대 농촌의 ‘마지막 청년’들의 자화상, 모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체이다. 초보농부는 그들의 '농사와 건강의 노하우'가 한없이 부럽다.
우렁이를 잡아 산에서 내려오면서 불쑥 ‘우렁각시’ 설화가 생각나, 자연인친구에게 말했다. “집에 가면 우렁각시가 밥상을 차려놓으면 좋겠다” 그 친구 대답이 걸작이다. “ 금상첨화”. 그렇다. 지난 1년여 동안(정확히는 작년 7월말부터) 일하다 끼니때가 되어 집에 들어왔을 때 ‘아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여러 번 생각했다. 날마다 생활이 반짝반짝, 정말로 윤택할텐데, 일도 신바람이 나 더 열심히 할 테고. 요리도 잘 하고 곱게 늙어가기에 예쁘기까지 한 나의 아내가 그리운 적이 어찌 무릇 기하가 아니었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합체合體’가 될까? 농담으로야 ‘주말부부는 3년, 월말부부는 10년 공덕을 쌓아야 되는 것’이라며 서로 약간은 자유로운 ‘졸혼卒婚’ 비슷한 생활을 자기위안으로 삼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날마다 행복 속에 드리운 고독’이란 표현이 딱 맞을 듯. 나는 하루에도 시도때도없이 아내가 그립다.
구전된 ‘우렁각시 전통설화’는 ‘선녀와 나무꾼 설화’만큼 슬프다. 총각이 우렁각시 말대로 사흘만 참았더라면 백년해로를 했을까? 그것을 못참아 원님에게 각시를 빼앗기고, 총각은 죽어 파랑새가 되고, 각시는 원님의 수청을 거절하다 굶어죽어 참빗이 되었다던가? 선녀의 옷을 훔친 나무꾼도 아내에게 옷 숨긴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백년해로를 했을까? 그렇다면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모를 일이지만 안타까운 결말이기에 ‘행복이라는 봇짐을 메고 눈부신 사랑을 했던’ 가수 김창남이 ‘선녀를 찾아달라’며 울며불며 애절하게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우렁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쓸모가 있다. 논의 잡초를 먹어치운다하여 친환경 '우렁이농법'도 오래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렁각시’는 진화를 거듭해 ‘남 모르게 선행을 하는 사람’의 상징어가 되었다. 왼손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든, 우렁 속에서 나와 총각의 밥상을 차려주는 신비의 여인이든, 이 시대 ‘우렁각시’는 우리의 선망과 추종의 대상이 아니던가. 나와 나의 영원한 우렁각시는 언제쯤 하나가 될-까. 우렁이회를 요리하면서 내내 우렁각시 생각에 쬐끔은 우울해진 날의 일기.
첫댓글 우렁이는 모심기전 논갈아 엎어놓으면 벌레며 새 풀 뜯어 먹으러 올라옵니다.
삶아서 새콤달콤 무쳐먹으면 별미입니다.
입에 침이 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