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제가 잠깐 언급했던 대로(재회(1)),
그 해 2003년 이래 제가 살아가는 모습 중 '시월'을 보면,
아래 두 가지가 그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꽃 향기' 같은 건 그리 신경 쓰지도 않고 살아왔었는데,
'몽상'이래 봄에는 '매화', 가을엔 '산국'의 항기를 쫓기도 하는 삶으로 변화했고,
또 한 가지는... '감'이란 과일과 더욱 친해지기도 해서,
그 마을 '둔터니'에서는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 세상에서 살았지만, 그래서 곶감깎는 것도 배워서(그 할머니는 지금 돌아가셨지요.) 직접 깎아 말린 뒤 주변(서울) 사람들과 나눠먹기도 했었는데,
그 이후로 여태까지 서울에서도 곶감을 깎아놓고 사는 삶을 유지하고 있는 거지요.
어디 그 뿐입니까?
거기서 머물지 않고, 감의 풍성함 속에 살았던 기억 때문에 이제는 서울의 아파트에서도,
베란다에 '대봉시'를 펼쳐놓고... 하나씩 익을(홍시로 바뀔) 때마다 쏙 쏙 빼 먹거나 저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하나씩 주면 좋아하기에, 그런 재미로 살고도 있는 거지요.
그러다 보니, 급기야 저에겐 이런 그림도 탄생했던 거구요.(아래)
물론 그 모습은 올해라고 다를 바 없었습니다.
(우리 까페 대문에 나오듯) 비록 올해는 그 시기가 조금 늦어졌지만(다른 땐 시월에 했었는데, 올해는 뭐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11월 초에야 겨우('둔터니' 마을에 다녀온 뒤),
감을 사다가 깎아서... 곶감을 만드느라 베란다에 매달아 두었지요.(아래)
그랬더니 요즘 곶감 말리기에 적합한 조건이어서(춥고 건조한 기후) 그런지,
며칠 사이에도 꾸덕꾸덕 말라가는 모습인데요,
근데요,
그와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요,
올해는 감의 작황도 안 좋은가 봅니다.(봄에 감꽃이 필 때는 냉해에, 여름은 또 너무 더워서)
그러다 보니 또 당연히 감값도 오를 수밖에 없어서겠지만,
지난번 '둔터니' 마을에서 돌아온 뒤,
올해는 너무 늦었네! 그래도 빼먹을 순 없지...... 하면서 감을 사려고 했더니,
한 상자에 25,000원인가? 그랬거든요?
그 때도,
좀, 비싸네...... 하는 심정이었지만,(아마 다른 해는 그보다는 쌌을 겁니다.)
하는 수 없이 샀고,
바로 깎아... 곶감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위 사진 참조)
그 때요,
제 생각으론 그 한 상자의 대봉시를 다 곶감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감 꼭지가 없는 건 매달 수가 없어서, 꼭지가 있는 것만을 깎아 매달아 둘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한 상자 중 꼭지 없는 나머지는 베란다 바닥에 펼쳐놓고 익히게 되었던 건데,
몇 개 되지 않다 보니,
좀 싸지면 한 상자 더 사다가 놓자!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아침도 상당히 추웠는데, 그래서 밖에 나가기 싫었는데,
장을 봐와야 먹고 사는 거라,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갔는데(장봐 오는 게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대봉시'가 좋은 건 한 상자에 5만 원, 조금 잔 건 35,000원이드라구요.
가격이 떨어지면 사오려고 했는데, 며칠 전보다 만 원이나 더 올랐는데도 씨알은 더 잘드라구요.
(제가 다니는 청과가게는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데도 그 정도라면 일반 가게에서는 더 비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선뜻 사지지가 않았고,
몇 번을 망설이다가,
그래도 시늉이라도 하자. 하면서, 만 원짜리 '연시' 한 상자를 사다 놓았답니다.(아래)
그래도, 베란다에 감이 이 정도는 있어야... 허전한 마음이 좀 채워지는 기분이어서지요.
근데요,
그것과는 달리('대봉시'야 그 용도로 사용하고 먹지만),
그냥 먹을 수 있는 '단감'도 한 봉지(15개 5천 원) 사왔는데요,(아래)
제가 단감 열 다섯 개를 다 고를 즈음,
"우리 단감 사갈까?" 하는 한 여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는데요,
"보기엔 맛있게 보이네!" 하고 맞장구를 치는 소리도 이어졌는데, 바로 이어서... "근데, 언니! 사지 마! 저 감 깎아먹으려면 머리에 쥐가 날 거 같아!"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감이 너무 잘다 보니, 깎아봤자 별로 먹을 것도 없을 거라는 얘기였지요. 그러니까 깎는 수고에 비해서, 먹을 것도 없으니 차라리 사지 말자는 얘기 아니었겠습니까?)
그 순간 저는,
피식! 웃고 말았답니다.(웃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러면서 살짝 뒤돌아 보니, 50대로 보이는 자매인지(?) 두 여인이 좀 닮은 것 같기도 하더라구요.
자전거 뒤에 '연시' 한 상자, '단감' '귤' '양파' '가래떡' 등을 싣고 돌아오면서 저는,
비록 깎으면서 머리에 쥐가 날 감일지라도, '그래도 그 게 어디냐?'고 열심히(?) 장을 봐오는 제 자신이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가을은 깊어만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