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노인복지관(관장 장곡스님)은 지난 10일(수) 관장을 비롯한 자원봉사자 16개 팀 100여 명과 함께 ‘2019년 자원봉사자 수련회-행복 메신저, 힐링 여행’을 전북 진안군 마이산 벚꽃축제와 꽃 잔디 동산 등지를 다녀왔다.
이번 수련회는 아름다운 꽃들이 봄을 알리는 4월을 맞아, 자원봉사자들의 그동안 수고에 보답하고 격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날 내린 봄비가 안개로 바뀌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9시 정각 버스편에 올랐다.
버스창가로 다가오는 초봄의 풋풋함을 바라보며, 복지관에서 마련해준 간식을 나누며 중간 휴게소에서 조금 쉬었다 정오쯤 마이산 입구‘고향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이어 삼삼오오 자유롭게 마이산 답사에 나섰다. 분수 호수를 지나 돌탑에 이르렀다. 말의 두 귀처럼 생겼다 해서 불리는 마이산(馬耳山)을 유명하게 만든것은 바로 이갑룡(1860~1957) 처사가 쌓았다는 신비의 돌탑이다.
80여 개의 돌탑을 홀로 쌓았는데 접착제나 시멘트로 붙인 것도 아니며, 홈을 파서 끼운 것도 아닌데 1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폭풍우가 몰아쳐도 약간 흔들리기만 할 뿐 아무 탈 없이 서 있다. 똑같은 크기의 돌을 쌓아 올린 외줄 탑과 피라미드형 돌탑으로 구성돼 있고 그 높이는
10m 내외나, 20m 정도 되는 것도 있다.
탑사 대웅전에서 예불을 마친 장곡 스님이 환하게 웃고 있다.
탑사 대웅전에 예불을 마친 장곡 관장님은 “조선 효종 대군의 16대손 이갑룡 옹은 25세 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을 생식하며 수행 중‘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하는 석탑을 쌓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후 기도로 밤을 보내며, 낮에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
30여 년간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다 돌탑의 기단을 쌓고 상단 부분에 쓰인 돌은 전국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왔다. 이렇게 모은 돌을 팔진 도법과 음양 이치법과 기공법을 이용해 돌탑을 쌓았다”고 설명한다.
오행을 뜻하는 오방탑(五房塔)의 호위를 받고 있는 돌탑의 우두머리 천지탑은 제일 높은 곳에 있고 규모 또한 가장 큰 한 쌍의 탑으로 20m 정도의 높이다. 돌탑에 사용된 돌의 크기는 수박 크기 만한 큰 돌덩이부터 손가락만 한 작은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돌을 포개 얹어 외줄기의 돌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박종복 기자 일행이 돌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갑룡 처사는 승려 생활을 하지 않아 당시는 사찰 이름도 없어 사람들은 돌탑이 있어 탑사라 불렀다. 이갑룡의 손자 이왕선이 태고종에 사찰등록을 하면서 ‘한국불교 태고종 탑사’란 이름이 붙여졌다. 대웅전은 1986년에 완공되었고 1년에 120만 명 정도의 관람객이 찾는다”고 관리인이 귀뜸했다.
호남의 명산 마이산(馬耳山)은 용이 서해로 날아 뛰어드는 형국으로 음양합덕(陰陽合德)의 지리(地理)가 닮아 있는 부부 산이다. 마이산 암봉의 물길은 섬진강(蟾津江)의 발원지요, 수봉은 금강(錦江)의 수원지로서 그 물길이 대전(大田)과 계룡산을 돌아 서해로 흘러 수(水)태극을 이루고 백두대간이 뻗어내려 마이산으로 해서 대둔산(大屯山), 계룡산(鷄龍山)으로 이어지는 맥은 산(山)태극의 형세이다.
인근의 꽃 잔디 동산도 둘러 보았다. 이기선(75) 씨가 예순다섯 나이에 고향의 선산(先山)을 가꾸기 시작해 혼자 힘으로 모은 자산으로 13만㎡(4만여 평) 꽃 잔디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꽃 잔디 축제'를 할 정도다. 축제가 아니라도 구경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찾았다.
봉사단 일행이 꽃 잔디 동산에서 즐거워 하고 있다.
오후 5시경 대전에 도착한 자원봉사자들은 “매년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등, 힐링 여행을 위해 힘써 온 서구노인복지관 임직원께 감사하며, 앞으로 복지관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다짐한 하루였다. <구항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