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0장]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15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1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설교]
어제 본문에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죽을병에서 고침 받고 회복되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히스기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곧바로 그 은혜를 쏟아버리는 죄를 범합니다. 그 죄가 무엇일까요? 바로 ‘교만’ 혹은 ‘자기 과시’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당시 바벨론의 왕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사자들을 보냅니다. 당시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은 이후에 등극하게 될 산헤립에 비하면 사실 형편없는 왕이었습니다. 때문에 히스기야는 지금 자신에게 사자들을 보내온 바벨론 왕의 편지를 마음 한편으로 계속 무시했습니다.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언하자면, 실제 사료에 의해서도 당시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은 정말이지 아주 권위 없고 보잘 것 없는 왕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브로닥발라단은 소위 산헤립에게 밀려나 망명자 신세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명목상으론 바벨론 왕이지만, 실제 권력은 이미 산헤립에게 넘어간지 오래입니다. 실제로 산헤립은 주전 703년경에 브로닥발라단을 강제로 폐위시키고 자신이 직접 바벨론의 왕좌에 오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사건은 바로 이러한 일이 있기 직전 혹은 그 이후로 추정되는데요. 실질적인 왕으로서의 권위가 있기보다는 명목상 이름만 있는 허수아비 왕으로 사자들을 보낸 것입니다. 그러니 히스기야 입장에서는 이 왕이 대체 뭐하는 짓인가?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 한편에선 계속 이 왕을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히스기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브로닥발라단의 사자들을 데리고 소위 ‘자기 과시’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본문 13절이 딱 그런 내용입니다. 히스기야는 브로닥발라단의 사자들을 데리고, 자기 왕궁 창고로 가서 갖가지 보물들과 무기들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보여주는 것은 당연히 어떤 의미가 있느냐? 우리 왕국의 힘은 이정도로 막강하니, 함부로 우리 왕국을 넘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대의 왕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외국에서 사신들이 오면 자기 나라의 국력을 과시하고, 자기 나라의 선진 기술을 뽐냈습니다. 왜요? 우리는 이만큼 세니까 절대 얼씬거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혹은 우리는 이만큼 세니까 애초에 우리한테 한 수 접고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찌 보면 히스기야가 벌이고 있는 이 행각은 사실 그 당시 일반적인 관념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내 나라는 이렇게 힘이 세니, 우리한테 함부로 하지 마!’ 이렇게 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 현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 기법입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이렇듯 히스기야가 자기를 과시하고, 또한 남 유다의 국력을 자랑할 때, 하나님께서 보이신 반응은 어땠을까요? 본문 16절 이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히스기야에게 심판의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본문 17절,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본문 18절,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무슨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사실상 앞으로 약 100년 뒤, 남 유다 땅에 실제로 들이닥칠 패망을 예견합니다. 곧 왕궁의 모든 것, 또한 남 유다의 온 백성이 지금 히스기야가 무시하고 있는 바벨론 땅으로 끌려갈 것입니다. 비록 지금 히스기야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희희낙락거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앞으로 닥칠 심판을 말씀하심으로써, 지금 히스기야가 벌이고 있는 행각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려 주십니다.
다시 말해 지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히스기야는 지금 어떠한 죄를 범하였느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위 하나님의 은혜란 것을 받아 누렸던 히스기야는 돌연 오늘 본문에서 지금껏 자기가 누렸던 모든 은혜를 전부 쏟아버렸습니다. 어쩌면 사사시대 당시, 하나님께서 그토록 경고하셨듯이, 히스기야는 마치 하나님 없이 자기가 스스로 왕이 된 것처럼, 그렇게 자기를 과시하고 드높였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히스기야를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히스기야가 범한 죄가 무엇이며, 이 죄가 이끌어가게 될 멸망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자기 과시. 어쩌면 교만. 이 죄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크고 무거운 죄인지를 다시금 묵상해시며 성찰해보십시오.
자기 과시라는 것은 사실상 어떻게 보면 오늘날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범하기 쉬운 죄입니다. 특히나 자기 과시라는 것은 어쨌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대단히 능력 있는 사람인 것처럼, 도덕적인 사람인 것처럼, 유능한 사람인 것처럼, 탁월한 사람인 것처럼 남들에게 과시하려는 욕구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욕구에 있어서 특히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아주 버젓이 드러내놓고 자기를 과시하고 또한 이것이 마치 옳은 일인 것처럼 행하고 있습니다. SNS, 인스타그램, 자기 과시용 과소비, 자기 과시용 말과 행동. 오늘날 일반 사회뿐 아니라 실제 교계 내에서도 이러한 ‘자기 과시의 문화’가 버젓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을 조금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시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오늘 본문 속 히스기야의 경우를 생각하며, 이러한 ‘자기 과시의 문화’가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나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는지를 깊이 묵상해보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듯이, ‘자기 과시의 문화’는 결국엔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부인하고, 또한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히 낮추는 ‘자기 부인의 문화’를 통해 극복될 수 있습니다. 자기 부인의 문화?! 어쩌면 자기를 과시하길 원하고, 또한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하는 우리 죄인의 본성과는 전혀 맞지 않은 문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자기 부인의 문화’가 오늘 우리 삶과 또한 우리 교회 공동체의 삶 깊숙이 뿌리 내리기를 위하여 함께 기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