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드 인 갓(Made in God)(잠16:9)
2013.8.18(김상수목사)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세상을 살다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과 환경이 나를 누를 때가 있다. 어려운 환경과 현실들 앞에서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슬퍼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려운 시련이 왔을 때, 대체로 ‘이게 다 내 운명이고, 내 팔자거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체념감과 열등감 그리고 가슴에 불(화병)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가하면 반대로 또 어떤 사람은 현실상황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안되면 되게 하라! 중단 없는 전진! 하면 된다!’라는 등의 신념을 갖고 현실을 극복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과거에 고 박정희대통령이나 일관된 원칙을 강조하는 지금의 박근혜대통령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것이 항상 자신의 뜻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드 것을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부터가 창조자가 아니고, 창조물이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는 하나님을 떠나서 죄와 사망의 그늘에 앉게 된 불완전하고 또 불완전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신념이나 노력이 나 어떤 심오한 깨달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주지 못한다.
가령 모래밭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가 양손 가득히 모래를 한움쿰 쥐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쥐었다해도 그 모레가 그대로 있는가?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뭐 좀 한 움큼 힘차게 잡은 것 같은데 눈 깜짝할 사이에 손가락 사이로 스스로 빠져 나가고 만다. 인간의 노력이 마치 이와 같다.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달린다해도, 훗날 어느 한 순간 깊은 질병이나 한순간 ‘악~’하는 순간의 사고에 모든 신념과 열매들이 모래성 무너지듯이 무너져 내리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그때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인생의 비애감과 함께 깊고 깊은 허무의 골짜기에 빠져든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역사 그리고 최근의 일련의 사건들에 이르기 까지 이러한 모습들을 수 없이 보아왔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내 힘, 내 머리, 내 노력’로는 안된다. 그래서 잠언 16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또한 시편 127편 1-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1-2)
이 말씀들처럼 우리 인생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따로 계시다. 그분이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내가 집을 세우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과 좋은 사람을 만나서 잘 살아보겠다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꿈꾸며 노력한다고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다 된다면, 이 세상에 못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일류대학이나 일류회사에 취업을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정하신 일반은총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부분적으로 노력한 만큼 열매를 거둔다. 그러나 거기 거기까지다.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잠언 16장 3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
또 예레미야 33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
이 말씀처럼 우리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우리의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결정하시는 결정권자이기시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친히 이루어 가시는데, 나는 이것을 신수성가(神手成家)라고 부르고 싶다.
신자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자수성가(自手成家)의 신념(信念)이 아니라, 신수성가(神手成家)의 신앙(信仰)이다. 무슨 제품이든지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면 그 물건을 만든 국가를 표시한다. 우리나라 제품에는 made in Korea라는 문구가 들어간다. 이 말을 우리 인생에 한번 대입해 보자. 내 인생은 made in Me인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made in God일 뿐이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고린도후서 6장 10절에서 고백한 사도 바울의 고백은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어야 한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오직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우리들이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첫 마디가 뭔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이 고백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Almighty) 하나님,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Maker)’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는 오직 믿음만이 필요하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강조한 것처럼 ‘오직 믿음’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지니라”(롬1:17)라는 말씀 그대로다.
진실로 그러하다. 자기 힘과 신념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사람은 세상을 이길 수가 없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를 않다. 오직 믿음으로 가야 된다. 신념보다 강한 것이 믿음 즉 신앙이다. 왜냐하면 신념은 자기에게서 우러난 것을 믿지만 신앙은 전능하신 자, 창조주 여호와를 바라보고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made in Me가 아니라, made in God이다.
믿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차이가 무엇이겠는가? 믿음이 있는 없는지는 환란과 고통, 인생의 위기들이 엄습해 왔을 때, 믿음 없는(또는 적은) 사람은 세상적인 논리나 자신의 신념 또는 생명 없는 죽은 막대기 같은 미신, 우상, 사주팔자, 점쟁이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의지하다가 결국은 낙망하고 쓰러진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려는 반응을 보인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 보다 앞서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고난이 왔을 때 비록 일시적인 염려와 근심 고통 속에 흔들릴 수는 있어도, 그 고난에 지배당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믿음으로 그 고난을 극복하고, 역이용해서 결국은 더 높이 날아오른다(시42:5). 어린이 찬양 중에 이런 내용을 가진 찬양이 있다.
“주님만 생각할래. 딴 생각을 않을래. 주님만 따라 갈래 딴 데 가지 않을래. 주님만 따라가면 참된 기쁨 얻겠네. 주님만 따라가면 면류관을 받겠네...”
그렇다! 딴생각 안하고, 딴 데 가지 않고, 오직 주님만 따라가면 된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승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믿음으로 주님만 따라가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보다 앞서지 않는 것이다.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은 이러한 믿음의 선진들에 대한 기록이다. 믿음으로 신수성가하고, made in God 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중에서 요셉(Joseph)의 경우를 보자. 그는 아버지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17세 소년이 형들에게 배신당하여 은20에 노예로 팔려가고 애굽까지 끌려가 거기서 종살이하고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으나 억울하게 누명쓰고 감옥에까지 가야만 했었다. 이 당시의 상황만을 보면 그의 인생에 누가 소망이 있다고 말해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속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은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했다.
요셉의 생애를 대표할 수 있는 말씀들을 보라. 다음에 열거한 성경구절들은 요셉이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에 섰을 때, 그가 어떤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주는 내용들이다. 이 말씀들 가운데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을 찾아보라.
*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할 때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창39:2)
*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할 때 :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창39:3)
*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 :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39:23)
* 바로왕이 꿈 해석을 요청할 때 :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41:16)
* 형들이 용서를 구할 때 :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 야곱이 죽은 다음에 형들에게 :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19-20)
* 요셉이 유언 : “24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50:24-25)
이 말씀들 가운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어 지는 것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하나님은”라는 말들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요셉은 범사에 철저하게 자신의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철저하게 이 믿음의 반석 위에 인생의 집을 건축해 갔다. 성경에 기록된 요셉에 대한 내용들을 보면 어느 한 군데도 ‘내가 뭘 좀 했다’라는 식의 표현은 한 군데도 찾을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러한 요셉이 자수성가(自手成家)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요셉은 믿음 안에서 신수성가(神手成家)했던 것이다. 요셉의 인생을 성경귀절들 속에는 보이지 않는 made in God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찍여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가질 믿음의 내용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선진들 특히 요셉의 생애의 중요한 길목마다 기록되고, 고백되어졌던 이 말씀들을 대하면서 성령님이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시간에 그것을 붙잡으라.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 살 때 우리 눈에 현실이 분명히 보이지만 분명히 알자. 현실이 전부가 아니다. 현실은 하나님의 손아래에 있을 뿐이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신수성가를 이루어 가신다. 신념이 아니라 신앙 위에 믿음의 집을 지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