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215)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28장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6)
안영(晏嬰)의 정치관은 확고했다.
사직(社稷)이 최우선이었다.
그는 오나라 현자 계찰과의 대화 이후 혜안(慧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그에게 3걸(三傑)과 진무우(陳無宇)의 교류가 상서롭게 비칠 리 없었다.
3걸의 일기당천 무용과 공실을 능가하는 진무우의 인기가 하나로 맞아떨어진다면, 제(齊)나라의 앞날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나라의 재앙은 뿌리 때 끊어버려야 한다.'
이때부터 안영(晏嬰)은 남몰래 고민에 빠졌다.
제경공에게 3걸을 멀리하라고 직간을 올리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자신의 뜻을 선뜻 밝히지 못했다.
제경공(齊景公)이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도리어 3걸에게 원한만 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평구 회맹 이후 노(魯)나라는 진(晉)나라에 대해 호감을 잃었다.
제(齊)나라가 부쩍 강성해지자 노소공은 제경공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친선 방문을 자청했다.
제경공(齊景公)으로서는 바라던 바였다.
노소공(魯昭公)을 맞이하여 잔치를 벌이고 극진히 접대했다.
노나라 신하 대표로는 숙손착(叔孫婼)이 참석했고, 제나라 신하 대표로는 안영(晏嬰)이 참석했다.
그 잔치 자리에서였다.
제경공과 노소공은 전각 위에 올라 술잔을 교환했고,
계단 아래로는 전개강(田開彊), 공손접(公孫接), 고야자(古冶子) 등의 무사가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호위하고 있었다.
두 임금이 얼큰히 취했을 때였다.
안영(晏嬰)이 취흥에 젖은 듯 제경공에게 아뢰었다.
"바야흐로 후원에 심어놓은 금도(金桃)가 익을 시절입니다.
두 군후께선 금도를 맛보시고 상수(上壽)하십시오."
금도(金桃)는 복숭아의 한 종류이다.
"금도? 좋지요.“
제경공은 정원을 담당하는 관리를 불러 명하려 했다.
그러자 안영(晏嬰)이 다시 재빨리 말했다.
"금도는 구하기 어려운 소중한 과일입니다. 신이 원리(園吏)와 함께 가서 직접 따오겠습니다."
안영(晏嬰)이 자리에서 일어나 후원으로 나갔다.
그 사이 제경공(齊景公)이 노소공에게 금도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제영공 때였다. 동해(東海)에 사는 백성 하나가 큰 씨를 하나 가지고 와서 말했다.
- 이것은 만수금도(萬壽金桃)라는 복숭아 씨입니다. 해외에 나갔다가 구해왔습니다.
본래 이름은 반도(蟠桃)라고 합니다만, 금빛이 돈다하여 금도라고도 합니다.
제영공(齊靈公)은 그 씨를 진상받아 후원에 심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났지만 매년 잎과 가지만 무성할 뿐 열매는 한 번도 맺지 않았다.
그런데 제경공代에 이른 그 해 열매 몇 개가 열렸다.
제경공(齊景公)은 그것을 아끼는 의미에서 후원으로 통하는 문을 봉쇄하고 잘 익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제 노공(魯公)께서 이렇듯 왕림하셨으니, 특별히 노공과 함께 맛보고자 합니다.“
"큰 광영입니다."
노소공(魯昭公)이 감사의 뜻을 표하고 났을 때 안영(晏嬰)이 원리를 앞세워 금도 여섯 개를 쟁반에 가지고 와 바쳤다.
복숭아는 크기가 주발만했고, 빛은 숯불 같았고, 향기는 코를 찔렀다.
보기에도 진귀한 과일이었다.
제경공(齊景公)이 안영에게 물었다.
"여섯 개뿐이오?“
"서너 개 더 있으나 아직 덜 익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잘 익은 것만 골라 따왔습니다.“
제경공과 노소공(魯昭公)은 금도 한 개씩을 먹었다.
그들은 독특하고 비상한 맛에 연신 찬탄을 금치 못했다.
제경공(齊景公)이 말했다.
"과연 듣던 바대로다. 내가 알기로 노나라 숙손대부의 어짊은 그 명망이 사해에 떨치고 있다 하오.
이번에 먼 길을 오느라 수고 많았으니, 이 복숭아 하나를 맛보오.“
숙손착(叔孫婼)이 겸양하며 대답했다.
"황공하오나 신이 어찌 제나라 재상 안자의 어짊을 만분지 일이나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 복숭아는 제(齊)나라 재상께 하사하십시오. 신은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럴 것 없이 두 사람이 하나씩 맛보면 되질 않소?“
제경공(齊景公)은 복숭아를 안영과 숙손착에게 하나씩 내려주었다.
두 사람은 복숭아를 받아 먹고 감사의 절을 올렸다.
이제 쟁반에는 두 개의 금도(金桃)만이 남았다.
이것이 바로 안영(晏嬰)이 노리던 바였다.
그는 다시 제경공에게 아뢰었다.
"아직 금도가 두 개 남아 있습니다.
주공에게는 하늘을 찌를 듯한 용맹스런 무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천하제일이라고 여겨지는 무사에게 금도를 내리시어 그 용맹을 널리 알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경공(齊景公)은 좋은 생각이라며 안영에게 지시했다.
"계하(階下)에 있는 신하들로 하여금 자신의 공적을 아뢰게 하되, 재상께서 그 경중(輕重)을 가늠하여 복숭아를 내리도록 하오."
안영(晏嬰)은 제경공의 분부를 받들어 두 개의 복숭아를 들고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여러 호위 무사들을 향해 외쳤다.
"그대들 중 자신이 가장 용맹스럽고 나라에 기여한 공이 크다고 생각되는 용사는 앞으로 나오시오.
내가 공적을 들어보고 주공을 대신하여 이 복숭아를 내려주겠소."
그러자 3걸 중 하나인 공손접(公孫接)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지난날 나는 주공께서 동산에서 사냥하실 때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일이 있습니다.
이 정도면 어느 누가 나를 천하 제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안영(晏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주공을 보호했으니, 그 공로가 크고 크도다.“
그러고는 복숭아 하나를 집어들어 공손접에게 건네주었다.
공손접(公孫接)은 의기양양하여 복숭아를 입 안에 넣고 씹었다.
이제 남은 금도(金桃)는 하나.
전개강(田開彊)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그는 재빨리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자신의 공을 말했다.
"호랑이를 때려죽인 것은 기이할 것 없습니다.
나는 국운이 달려 있는 서(徐)나라와의 싸움에서 두 번씩이나 복병을 내어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 적장을 목베고 적군 5백 명을 사로잡았습니다.
제(齊)나라가 오늘날 동방의 패자국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나의 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만하면 가히 복숭아를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안영(晏嬰)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전개강에게 복숭아를 내주었다.
순간, 계하의 호위 무사 중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3걸 중 하나인 고야자(古冶子)였다.
이것이 단순한 복숭아라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복숭아의 의미는 달랐다.
천하 제일의 용사를 상징하는 복숭아가 아닌가.
고야자(古冶子)는 두 사람의 행동이 괘씸하기도 하고 가소롭기도 하였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는 세상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는 치욕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성큼 한 걸음 나서며 두 사람을 향해 외쳤다.
"일찍이 주공께서 황하를 건너실 때 커다란 자라가 나타나 주공이 아끼시는 말을 몰고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간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헤엄칠 줄도 모르면서 강물로 뛰어들어가 자라를 잡아죽이고 주공의 말을 빼앗아왔다.
내 어찌 그대들에게 힘이나 용맹스러움이 뒤진다 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어서 복숭아를 내 놓아라.“
그러고는 두 사람을 노려보는 것이 당장에라도 칼을 뽑아들 기세였다.
분위기가 삽시간에 살벌해졌다. 안영(晏嬰)이 재빨리 제경공에게 아뢰었다.
"듣고보니 고야자(古冶子)의 용맹이 두 장수보다 열 배는 더 높습니다.
그러나 복숭아는 이제 없습니다.
우선 고야자에게 술을 한 잔 내리시고, 복숭아는 내년에 하사하십시오."
제경공(齊景公)이 고야자를 불러 위로했다.
"그대의 용맹이야말로 천하 제일이거늘 복숭아가 없으니 어쩔 수 없구나. 그대는 내년을 기약하도록 하라."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공손접(公孫接)과 전개강(田開彊)은 자신들의 경솔한 행동에 심한 부끄러움과 자책감을 느꼈다.
천하 제일의 용사임을 인정받고 싶어 결의형제인 고야자(古冶子)를 모욕한 셈이 되고 만 것이 아닌가.
공손접(公孫接)이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했다.
"아아, 나는 복숭아를 차지하려는 탐욕 때문에 두 나라 임금과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고야자(古冶子)에게 모욕을 주었다.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러고는 별안간 칼을 뽑아 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전개강(田開彊)도 칼을 뽑아들며 탄식했다.
"나는 보잘것없는 공로를 세우고도 복숭아를 먹었는데, 고야자(古冶子)는 천하 제일의 용맹을 발휘하고서도 먹지 못했다.
염치 없는 일을 저질러놓고 죽지 못하는 것은 참다운 용기가 아니다.“
그역시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다.
이 광경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고야자(古冶子)는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그는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이 죽은 것을 깨닫고 두 눈을 부릅뜬 채 하늘을 향해 외쳤다.
"부끄럽고 부끄럽구나. 남을 부끄럽게 하면서까지 나의 이름을 높이려 했던 것 또한 불의(不義)임을 어찌 몰랐던가.“
고야자도 끝내 칼로 자신의 목을 깊이 찔렀다.
눈 깜짝할 사이 3걸(三傑)이라 불리는 제(齊)나라 제일의 용사 세 명이 모두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
제경공(齊景公)은 놀라서 만류하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노소공(魯昭公)이 무안하여 얼른 위로했다.
"과인이 듣건대 제나라의 3걸은 천하에 보기 드문 용사들이라던데, 참으로 아까운 일입니다."
그러자 안영(晏嬰)이 앞으로 나서며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용맹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비록 약간의 공이 있었긴 하지만, 족히 화제에 올릴 만한 인물들은 못 됩니다."
노소공(魯昭公)이 의아하여 물었다.
"제(齊)나라에는 이런 용기 있는 장수들이 또 있다는 말이오?“
"있다뿐이겠습니까?
가만히 앉아서 국위를 만 리 밖에 떨치게 하는 장상(將相)만 해도 수십 명은 됩니다.
저들의 죽음이 제나라 앞날에 무슨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안영의 대답에 노소공은 제나라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렇게해서 안영(晏嬰)은 장차 있을 화근을 미연에 방지하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제경공(齊景公)은 3걸의 죽음을 몹시 애석히 여겼다.
그래서 그는 태산 근처 양보산 아래의 탕음리라는 곳에 공손접, 전개강, 고야자의 시신을 묻고 후하게 장사 지내주었다.
이것이 바로 이도삼살사(二桃三殺士)의 유래다.
- 복숭아 두 개로 세 용사를 죽이다.
기발한 계책을 써서 큰 효과를 올리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안영(晏嬰)이 남긴 일화 중 가장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다.
이도삼살사(二桃三殺士)의 유래는 <춘추좌씨전>이나 <사기>에는 나오지 않는다.
<안자춘추>에만 전해올 뿐이다.
이 때문에 이것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안자춘추(晏子春秋)> 역시 후대에 지어진 책이라는 설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꾸며진 얘기라고 단정짓기에는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
꼭 이대로는 아니겠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실제로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는 이런 시대였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