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1
김지명
약속 장소로 간다. 지리산에 단체로 등산하가려고 이른 새벽 어둠을 헤치고 집을 나선다. 모두가 모이기로한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랐다. 새벽이라 버스는 몇 사람과 장사꾼들의 물건을 싣고 빠르게 달린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아무도 보이지 않지만, 소슬바람은 버스를 스다듬고 지나간다. 관광버스는 이마에 현수막을 걸고 산악인을 기다린다. 남보다 먼저 도착하여 버스 앞에서 아는 사람이 오나 기대하고 기다렸다. 한두 명씩 오자마자 바로 차에 오른다. 앞자리에 앉으려고 출입구 문에서 가까운 의자에 혼자 앉았다. 건장한 젊은 청년이 올라오더니 산행 대장이라고 인사하더니 지루함을 없애려고 남녀를 동석시킨다. 여자 둘이 앉은 자리에서 한 명을 대려와 내 곁에 앉힌다.
쌍쌍이 앉은 등산객들은 흐뭇하다는 듯 빙글에 웃는다. 이런 분위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조금도 어색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산행은 자주 하지만, 중년에 남녀가 나란히 앉아 등산하기는 처음이다. 장거리 여행에서 사내들끼리 앉으면 발생하는 것은 졸음뿐인데 남녀가 함께 있으니 미소와 엔도르핀이 생성되는 느낌이다. 양극과 음극이 합쳐지면 전등에 불이 밝혀지듯이 남녀를 동석시키니 부끄러움보다 얼굴엔 엷은 미소가 생긴다. 안전 산행을 위하여 반드시 남녀는 이인 일조가 되어야 한다고 산대장은 강조한다.
단체 산행을 자주 하지 않아 이런 당황스러운 자리가 처음이다. 대장은 등산 코스와 산행시간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한다. 이 산악회의 특징은 파트너로 맺어주면서 즐거운 산행을 유도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졸거나 줄잔을 나누자는 남자들도 여인이 곁에 있으니 친구에게도 고개 돌리지 않는다.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말동무를 옆자리에 앉혔으니 등산 마치고 집에 갈 때까지 함께하라고 강조한다. 행복한 여행 즐거운 산행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이는 산행 대장이다.
버스 안은 아주 훈훈한 분위기다. 관광버스는 산악인을 태우고 남해 고속도로로 시원하게 달려가지만, 차 안에는 쌍쌍이 앉았다. 초면의 아주머니는 고향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화하면서 유머까지 덧붙인다. 이런 산행을 처음 하므로 수줍어서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할지 어리벙벙하다.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처음 보는 남자를 친구 대하듯 잠시도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수다를 늘어놓는다. 미소 보이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아주머니는 애교스러운 언행으로 자신을 소상히 소개한다며 이름은 조미숙이라고 알린다.
미숙은 지천명이 넘어서부터 산에 다니는 재미를 붙였다고 하면서 수다를 늘어놓는다. 아주머니는 나이가 들어 뉘늦게 산에 다니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한다. 동안이라서 그런지 십 년은 젊어 보인다고 했더니 빙그레 웃는다. 아무리 많게 보아도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인다고 미숙의 기분을 돋웠다. 이름이 뭐인지 말해주면 좋겠다. 아하 멋쟁이 이름은 지명이라고 밝혔다. 미숙이 깔깔 웃으면서 뭐! 베트남에 호지명, 지명수배자! 아니면 탈랜트 지명이란 말인가 하면서 능청을 피운다. 미숙이라는 여인은 방정꾸러기 아니 빈 깡통 같아 보였다. 멍하니 앉아만 있었더니 자꾸만 말을 시킨다. 아주머니의 얼굴만 쳐다보아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여인은 상당히 유머 스러워서 단체 나들이에 반드시 필요하겠다고 했다. 여인은 초면을 초월하여 여유만만하게 농으로 수다를 떤다. 지명이란 이름은 너무나 흔하여 찾아보기 어렵겠다고 하더니 다음 산행 함께하도록 간곡히 부탁한다. 다음에 만나면 맛 나는 것을 대접할 테니 미숙의 배낭을 짊어질 수 있는지 묻는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배낭을 두 개 짊어지라는 게 아니고 미숙의 배낭과 합치자고 하지만,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미숙은 내 배낭까지 메겠다고 기어이 달라고 한다. 왜 그렇게 하려고 하는가 하고 물었다. 곁에 있고 싶다고 덧붙인다. 그제야 미숙의 마음을 알았다.
처음 보는 사람 같지 않고 고향 친구처럼 느껴진다. 미숙을 처음 만났지만, 시골에서 같이 자라던 또래처럼 만만하게 대하니 편안한 느낌이다. 등산할 때 주의할 점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형식적으로 대충 말한다. 내가 미숙에게 산행 상식을 상세하게 이해시켰다. 절대 처지지 말고 따라붙어야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 끼쳐서는 더욱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깔딱 고개를 올라갈 때는 보폭에 호흡을 맞추어 천천히 올라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앞서 걸으며 산행 상식을 듣고 있던 미숙은 고개 돌려 바라본다. 다음 산행은 반드시 같이 가자고 신신부탁 한다.
미숙은 앞으로 영원히 산행 친구하기를 원한다. 강인한 체력으로 타의 모범이 되겠다며 산행에 자신감을 나타낸다. 등산 전문가라고 부축이더니 산행 친구하길 원한다. 미숙은 전문 산악인으로 판단하고 반드시 산행 친구하자며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한다. 함께 등산하려면 빙벽도, 암벽도 올라야 하고 자일에 매달려 양팔 힘으로 바위를 올라야 하는데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미숙은 특수산행이 아니고 워킹 하는 산에는 자신감 있다고 아양을 떨며 황소 웃음 보인다. 산엔 놀러가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건강을 테스트하고 체력단력을 위한 활동하자고 했다.
수다쟁이 미숙은 잠시도 그냥 있지 못하고 귀를 즐겁게 한다. 말 많은 여자가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자꾸 말을 시켰다.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때 산행 대장은 남강휴게소에서 10분간 휴식시간이라고 한다. 미숙에 잠시 바람도 쐬고 내리자고 부탁한다. 화장실 다녀오면서 나를 부르더니 맛있는 간식 먹자고 부른다. 미숙은 놓치지 않으려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차에 올라도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수다를 늘어놓는다. 뒷좌석에 앉은 아저씨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미숙이 안 된다고 소리 지르니 산행 대장이 다가와 아기 달래듯 타이르며 정해준 자리에 앉아서 가자고 간곡히 부탁한다.
휴식을 마치고 출발하면서 산행 대장은 낙오 없이 안전하게 산행하기를 대원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남해 고속도로로 달려가는 관광버스는 조용한 분위기며 스피커로 통해 경음악이 흘러나온다. 창가에 앉아 고개를 돌려 차창 밖으로 바라보았다. 들판은 짙은 녹색으로 펼쳐져 싱그러움이 무르익어간다. 두 시간을 달려왔지만, 지루하기보다는 미숙의 애교스런 대화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목적지아래까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미숙 아주머니의 수다가 재밌었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