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샹송의 소원을 풀었네요.
요즈음이야 외국노래라 하면 팝송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샹송, 칸소네, 그리고 남미의 스페인 노래가 라디오에 자주 나오곤 하였지요. 저는 팝송도 좋아했지만 샹송이나 칸초네, 남미의 노래도 참 좋아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샹송은 왠지 팝송보다는 좀 더 고급스럽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특히 어린 저의 가슴에 확 필이 꼽힌 노래는 아버지가 사다주신 이브 몽땅의 LP판에 있던 Les feuilles morrtes(고엽)이었습니다. 앞 부분에 독백처럼 중얼거리는 중후한 이브몽땅의 목소리가 너무나 멋이 있었고 어린 마음에 나도 한 번 흉내를 내보고 싶었지요. 그렇지만 불어는 영어와 독어와는 달리 제대로 배우지 않고서는 아예 읽을 수가 없었지요.
대학 들어와서 교양 외국어를 선택할 때 고등학교 때 배웠던 독어를 택하지 않고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던 불어를 택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저의 성향도 작용을 했겠지만 샹송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불어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어렵더군요. 일단 읽는 규칙이 너무 복잡하고 게다가 동사변화가 백수십 가지가 되니 앞이 캄캄하더군요. 게다가 초반에 수업을 몇 번 땡땡이를 치고 나니 나중에는 아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중간고사 때 16점을 받았습니다. 그 때 평균점수가 90점이 훨씬 넘었다고 들었는데 참으로 처참한 성적이었습니다. F를 받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기말에는 좀 더 열심히 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더군요. 결국 22점을 받았습니다. 다행히도 제보다 더 간 큰 학생들이 있어 F는 받지 않고 D제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샹송 부르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영어와 저의 전공인 중국어외에 4년전에는 일본에서 1년간 미친 듯이 공부를 해서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작년에는 교내 국제학술대회에서 일본어로 논문을 발표도 하였고 올해 초에는 일본인이 쓴 종교철학사상에 관련된 『의식과 본질』이라는 책을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계획으로는 내후년 쯤에 다시 외국에 해외연수를 나갈 때 스페인에 가서 1년간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영어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언어가 스페인어이기 때문에 스페인어만 공부하면 대략 전세계 어디에 가도 언어소통에는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여름 방학 중에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비교하는 책을 집필하는 도중에 서양문화를 본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희랍어와 라틴어 공부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희랍어와 라틴어는 불어보다는 몇 배나 어려운 언어인데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더 나이 먹기 전에 일단 도전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오랜 명상을 통해 집중력과 이해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는 쉽게 잘 이해가 되었고 복잡한 동사변화들도 대충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희랍어와 라틴어를 공부하다보니 갑자기 옛날에 나를 좌절시켰던 불어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올랐습니다.
마침 기회가 왔습니다. 사실 부산에 살고 있는 막내 여동생이 불문학 박사이고 대학에서 불어를 가르친 지가 20년이 넘은 불어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그 동생이 8월초에 애들을 데리고 저의 집에 놀러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막내에게 오빠를 위해서 불어특강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동생은 낮에는 애들을 데리고 에버랜드에서 놀고 저녁 먹은 뒤에 4시간씩 저를 위해 특강을 해주었습니다. 이틀에 걸쳐서 기초 발음부터 시작하여 기본적인 문장구조와 동사변화 등을 배우고 나니 대략 밑그림이 보이더군요. 그리고 난 뒤에 혼자서 문법책을 보면서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니 일주일만에 사전만 있으면 웬만한 문장의 독해는 충분히 가능해졌습니다. 제 스스로 생각해도 집중력, 이해력, 기억력 등의 학습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불어에 대한 복수를 마친 뒤에는 드디어 샹송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의 귀에 익숙한 샹송들의 음원을 구입하고 인터넷에서 가사를 찾아내어 해석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시중에 나와 있는 샹송 가사 번역들은 엉터리 번역이 너무 많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 웬만한 것은 스스로 해석하고 아주 까다로운 것들은 같은 학교의 불문과 교수들에게 물어가면서 번역을 다 해서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이브몽땅, 에디뜨 삐아프, 아다모, 앙리꼬 마샤스, 미셸 폴라네프를 위시하여 수많은 샹송가수들이 부르던 명곡들을 그 가사를 음미하며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지요. 요즈음은 출퇴근 시간에는 항상 샹송을 들으면서 운전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중에 몇 곡들은 이제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 가운데서 몇 곡을 택해서 저의 레파토리로 삼았는데 그 첫 번째는 역시 어릴 때 동경하였던 이브몽땅의 「Les feuilles morte」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쟉크브렐의 「Ne me quitte pas」를 택하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팝송으로 된 「If you go away」를 워낙 좋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창시절에 음악교과서에서 배웠고 나나무스꾸리의 목소리에 우리에게 친숙한 「Plasir d'amour」를 좋아하고 미셸 폴라네프가 부른 「Hollidais」,「Qui a tue grand maman」를 자주 부릅니다. 둘 다 박인희씨가 「사랑의 휴일」,「사랑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서 불렀네요. 후자는 한 때는 운동권에서 「오월의 노래」로 불렸고 겨울연가에서는 이루마의 피아노연주로 배경음악으로 자주 나왔던 음악이죠. 그리고 「눈이 나리네」로 널리 알려진 아다모의 「Tombe la neige」도 워낙 유명한 노래라 한 번씩 부릅니다.
아직은 너무 바쁜 일들이 많아 음악에 몰입하기는 어려운데 나중에 좀 시간이 나면 레파토리로 만들고 싶은 노래들이 많습니다. 저는 아다모의 노래 가운데서는 「J'aime」를 참 좋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건씨가 「너를 사랑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불렀고 특히 카라벨리 악단의 연주곡으로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곤 했지요. 앙리코 마샤스의 「L'amour c'est pour rien」, 이 노래는 탱고풍의 노래로 유주용씨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번안해서 불렀지요. 「Solenzara」, 이 노래도 유주용씨가 「추억의 소렌자라」로 번안해서 불렀네요. 송민도씨가 「장미빛 인생」으로 번안해서 부른 에디트 빠아프의 「La vie en rose」, 박재란씨와 최양숙씨가 「사랑의 찬가」로 번안해서 부른 「Hymne a l'amour」도 워낙 고전적인 샹송이죠. 그리고 배인숙씨가 번안해서 부른 「누구라도 그러하듯이」의 원곡인 「Un poete」도 꼭 부르고 싶은 노래입니다. 그 외 우리말로 번안되지 않은 샹송으로서 영화 「셀부르의 우산」의 주제가인 「Les parapluies de cherbourg」도 참 좋은 곡이고 조르쥬 무스타키의 「Ma solitude」, 「Il est tro tard」도 워낙 좋은 곡이죠.
사실 이렇게 많은 노래를 다 레파토리로 삼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릴 적에 좋아하였던 노래이기 때문에 그냥 불러보고 싶어요. 그리고 외국어 학습의 목적도 있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외국어를 배우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그 외국어로 된 노래를 좋아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주 중얼거리면서 부르다보면 그 외국어에 저절로 친숙해지죠. 샹송을 늘 듣고 부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불어에 아주 가깝게 다가서 있더군요.
아무튼 몇 달 동안 책 쓰느라, 외국어 배우느라 참 바빴고 때로는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샹송이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느라 카페에 자주 들어오지도 못했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멋지게 샹송을 불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기대하시라.^^
너른돌
첫댓글 대단하시네요, 기대합니다.
저도 처음 일본어 입문할때 2시간만에 히라가나 ,가다가나를 다 익혔는데요.
집중력은 가끔은 희망을 주기도 하지요.
역시 대단한 너른돌님이십니다.
느 므 끼뜨 빠
혹시, 아닐까요
로드
조 형기
테이크 미 홈, 컨
도전 정신이 부럽기도,,,,,,,,
대단하십니다
ㅉㅉㅉ
하나또하나님, 바이올렛님, 즐겁게님, 반갑습니다.
느 므 끼뜨 빠~ 일 포 뚜블리에~, 뚜 뾔 수불리에~, 키 상퓌 데자~
쟉크 브렐만큼 감정을 넣어 부르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감정 잡고 부른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바이올렛님은 이번 수요일 남이섬에서 아마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ㅉㅉㅉ 존경스럽습니다 집중력 이해력
저도 들을수 있겠네요 10월9일날
환골탈태하심을 축하^^
기대하고 있을께요~!9일을~~~
마마님과 마담올리브님은 9일날 뵐 수가 있겠군요.
그때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두둥~^^
명동지기님은 못오시나요? 요즈음 기타 실력 많이 느셨겠지요.^^
달력에다 누가 빨간색으로 칠해놔서
얼떨결에 쉬게 돼서 갑니다^^
저야 아직 팝송 몇개 하는 정도입니다...
너른돌님의 학구열은 차말로 대단하십니다..
다음에 꼭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유유자적님, 오랫만입니다.
요즈음도 유유자적하게 잘 지내고 계시죠?^^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어학에 탁월한 유전인자를 타고 나신듯요 집안 모든분들이
정말 궁금하시다는 너른돌님이 ㅎㅎ
왜 너른돌이신지가 이해가 쪼깨 되는 아주 짝은? 쬐~~~~깐한 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