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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133)
[무림공적]
광혈지옥비.
천하제일무공으로 알려진 무기가 가져온 파장은 점점 그 크기를 부풀려 마침내 강호 전역을 강타하는 폭풍이 되었다.
그 폭풍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곳은 다름 아닌 천붕회 소속 네 곳이었다. 그들의 충격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들이 천붕회를 결성한 가장 큰 이유는 묵안혈마 백산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천붕회를 결성했고, 그가 소림의 사숙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소림사를 천붕회에 넣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본인이 묵안혈마라고 외치는 자가 나타났다.
하남성 개봉의 개방 총타.
기다란 탁자를 앞에 두고 네 명의 인물이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다. 그들은 개방방주 호연작을 비롯한 천붕회 소속 문파의 수장이었다.
“그를 공적으로 지목했을 때 나타날 결과를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침묵으로 일관하던 현진자가 굳은 얼굴로 일행을 향해 물었다.
“알고 있소이다. 하지만 귀광두는 너무 많은 인명을 살상했소이다. 설사 그가 정의를 위해 그 일을 했다 하더라도 용서될 수 없습니다. 벌써 천 명이 넘었습니다.”
호연작은 확고한 얼굴로 말했다. 공적(公敵), 지금 일행이 논의하고 있는 사항이었다.
“물론 그가 찾아가서 죽인 자들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공적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 자는 묵안혈마를 사칭하고 있소이다. 우리 천붕회를 발족하게 하였던 그분을 말이오. 그것만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소이다.”
“무량수불!”
현진자는 무심결에 도호를 읊고 말았다. 이들이 귀광두를 무림공적으로 선포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호연작이 마지막에 말했던 것이리라.
묵안혈마, 그는 천붕회의 우상이다. 우상이 되는 가장 큰 조건은 다름 아닌 죽은 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천붕회의 우상을 자처하는 자가 나타났다. 그것도 광혈지옥비를 휘두르며 강호를 향해 자신이 묵안혈마라 외친 것이다.
물론 여기 있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그가 묵안혈마 본인이라는 말을 믿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를 공적으로 지목해야 할 이유는 동창무인들 때문이오. 그의 손에 죽어간 동창무인들이 칠백입니다. 그런 자를 무림에서 두둔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를 두둔하는 곳은 가장 먼저 동창의 표적이 됩니다. 일벌백계의 본보기로 초토화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소림을 희생양으로 쓰자는 말입니까?”
“아니외다, 장문인. 소림은 스스로 선택을 했소이다. 귀광두가 남경왕부 여식을 구하러 갔을 때, 요식행위에 불과할지라도 그들은 귀광두를 파문시켜야 했소.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동창무인 이백 명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을 했어야 했소이다.
“소림은 말을 해소이다. 소림 제자들은 남경에 간 적이 없다고 말입니다.”
답답한 듯 현진자는 조금 목청을 돋웠다. 이들을 상대로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이미 의견 조율은 끝난 상태고,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이들을 향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저 답답해서 해본 소리일 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간단합니다. 천붕회와 북황련, 남천벌, 그리고 마교 명의로 귀광두를 무림공적으로 선포하고, 소림사에 요구할 겁니다. 강호 공적인 귀광두를 소림에서 잡아오라고 말입니다.”
“허! 정녕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입니까?”
“우리로선 방법이 없소이다, 장문인. 귀광두를 잡아오라는 요구조건을 내건 것도 우리로선 모험입니다. 소림사는 마지막 기회를 얻은 겁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이기도 하고요.”
침중한 얼굴로 호연작은 입을 닫았다. 천붕회로서는 할 만큼 했다. 한 명을 희생시켜 소림사를 살리느냐, 아니면 귀광두와 같이 무림공적이 되느냐는 소림의 결정에 달린 것이다.
“잔인하군요. 그동안 같이한 세월이 삼십 년인데.......”
허탈한 얼굴로 현진자는 일행을 보았다. 귀광두가 남경으로 떠난 날부터 소림은 지금의 상황을 대비했고 그들은 매일매일 수십 명의 제자들을 발탁수행을 보냈다. 그런 소림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 모인 자들이다.
“잔인하다고요? 우리 개방이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평생 동안 개방을 위해 살았던 파면신개를 파문시켰습니다. 단지 봉선군주와 친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데 소림은 기껏 속가제잡니다. 그 정도 일을 못한다면 멸문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겁니다.”
호연작은 매몰차게 말했다. 이번 일의 시작은 전부가 귀광두 때문이었다. 만일 그가 소림의 속가제자로 천붕회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주하연을 구하기 위해 남경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알았소이다. 이번 일은 서명을 하겠소이다. 하지만 다른 협조는 기대하지 마시오. 윗분들과 상의를 해 봐야겠지만 우리 무당은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소이다. 그것도 살아남는 방편의 한 가지지요. 하지만 시기는 잘 택해야 할 겁니다. 하후장설이 어디까지 원할지는 누구도 모르니까.”
“충고 고맙소이다, 그럼.”
씁쓸한 얼굴로 현진자는 밖으로 나왔다.
다음날.
강호 천붕회 소속 네 문파 수장들이 서명한 포고문이 강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강호 동도들이여.
수천 년 세월을 우리는 강호 무림을 지켜왔소. 나라가 위급할 때는 정사 무인들은 기꺼이 목숨을 버렸고, 외세가 침입했을 때는 정사가 합심하여 그들을 몰아냈소.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이 나타났을 때 역시 우린 정사(正邪)를 나누지 않았소.
강호 동도 모두가 하나 되어 악인을 처단해 왔소.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천붕회 소속 네 문파는 용단을 내렸소.
반역자로서 강호를 종횡하고 있는 귀광두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소. 그의 손에 죽어간 무임들이 벌써 천을 헤아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는 강호 무림인들을 살해하고 있소. 그는 살인에 미친 살인마에 불과할 뿐이오.
반역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죄를 인정치 안고 있소이다. 그런 그를 우리는 용서해서는 안 되오. 상식이 있는 자라면 살인마가 강호를 종횡하는 걸 묵과해서는 아니되오.
우리 천붕회를 비롯한 북황련, 남천벌, 마교는 귀광두를 무림공적으로 선포하는 바이오.
누구도 그를 도와서는 안 될 것이오. 귀광두를 돕는 자 또한 그와 같이 무림공적이 될 것이며, 그에게 동조하는 자 또한 귀광두와 같이 반역자가 될 것이오. 귀광두의 목을 취하는 자 강호 영웅이 될 것이며, 귀광두의 목을 취하는 자 황실에 충성한 백성이 될 것이오. 물 한 모금, 술 한 잔, 밥 한 그릇도 줘서는 안 되오. 이 조치는 귀광두의 목을 취할 때까지 유효할 것이오.
그리고.
귀광두의 사문인 소림사에 두 가지를 요청하겠소.
수천 명을 살해한 살인마이자 반역자인 귀광두를 당당 파문시키시오. 소림의 제자를 파견하여 귀광두를 잡아 관에 넘겨주시오. 위 두 가지를 실행하지 않으면 소림 또한 귀광두의 동조자로 간주할 것이며 그 후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소림의 책임이오.
개방 방주 용개 호연작.
호연작의 서명 아내로 천붕회 소속 세 가주의 서명이 나란히 찍혔고, 포고문 옆에는 북호아련, 남천벌, 마교의 수장들의 동조 포고문이, 그리고 맨 우측에는 백산과 주하연의 초상화가 걸렸다.
천붕회 포고문을 접한 무인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광혈지옥비를 얻음과 동시에 무림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푼 자들과 씁쓸한 얼굴을 한 부류였다. 맨 마지막에 쓰인 소리 또한 귀광두의 동조자로 치부하겠다는 말 때문이었다. 귀광두를 잡는 데 협조하지 않으면 소림마저도 무림공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우회적인 협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붕회가 무슨 권리로 강호 공적을 지목하고, 소림에 요구를 하는지 따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림공적으로 선포된 이상 귀광두를 두둔하는 발언은 일체 금지 되었고, 그는 정사를 막론하고 죽여야 할 악인이 되고 말았다.
동네 아이들은 귀광두를 죽이는 놀이를 할 터이고, 귀광두 역할을 했던 아이의 심장에 목검을 찌른 아이는 동네 영웅이 될 것이다.
두 패로 나뉜 일반 무인들과는 달리 각 문파나 가문의 수뇌들은 굳은 얼굴로 소림사가 있는 숭산을 주목했다. 강호 무림의 요구를 수용하여 귀광두를 파문시킬지가 그들의 최대 관심사였던 것이다.
수많은 무림 문파가 명멸해 갔지만 지난 천여 년 동안 무림의 태산이 되었던 소림사가 아닌가. 오죽했으면 무당파와 더불어 태산북두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데엥!
오경(五更)을 알리는 종소리가 소실산을 타고 흐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지만, 금일 소실산을 타고 흐르는 종소리는 유난히 구슬프다. 재차 종소리가 들려오자 각 전각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리고 승려들이 꼬리를 물고 차례로 전각을 빠져나왔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참선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소실산 어귀나 각 숲에서도 밤이슬을 맞은 스님들이 소리사로 향했다. 누군가 그들의 행렬을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양이라 하여 안행(雁行)이라 했던가.
전각을 비롯한 숲에서 나온 승려들은 앞서 나온 동료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묵언수행이라도 하는 것이지 기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본인들의 처소가 아닌 각 전이나 산에서 밤을 보낸 건 이래적인 일이었지만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길게 이어진 안행의 행렬이 멈춰선 곳은 소림의 최심처인 천불전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천불전 앞 광장에 도착한 스님들은 가만히 무릎을 꿇고 불공을 드리기 시작했다. 각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웅얼거림은 어느새 웅장한 진언이 되어 천불전 앞을 가득 메웠다.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십여 명의 스님들.
방장인 무광 대사를 비롯하여 지객당 당주 무장 대사, 계율원주 무연 대사, 백의전 전주 무오 대사 등, 소림을 이끌어 가는 수뇌들과 양심당에 기거하는 원로들이었다.
“방장! 저들을 전부 죽일 작정입니까! 저들이 죽는 게 부터님의 뜻이란 말입니까!”
밖을 쳐다보던 계율원 원주 무연 대사가 무광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며칠 전 강호 전역에 뿌려진 포고문. 천붕회 수장들의 서명이 찍힌 포고문은 소림을 충격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귀광두를 파문시키지 않으면 소림은 무림공적이 될 것이라 하였다. 귀광두를 잡아오지 않으면 소림은 반역도당이 될 것이라 하였다.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소림이 어떤 곳이던가. 천여 년 동안 정의를 수호해 온 곳이다. 천여 년 민심의 상처를 치료했던 곳이다. 그러한 소림이 아닌가.
그런데 방장인 무광의 조치는 수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극비로 다뤄야 할 포고문을 모든 소림 제자에게 알려 버린 것은 물론이고 두 사람 이상 모이는 걸 금지시켰다. 두 사람 이상 모이는 걸 금지시킨 조치는 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수십 명이 한꺼번에 잠을 자던 처소는 텅 비어 버렸고, 제자들은 불전이나 소실산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도대체 귀광두가 누굽니까! 그가 누군데 그렇게 두둔하십니까?”
급기야 무연 대사는, 단지 소림의 존장이라고만 알고 있던 그의 정체에 대해 묻고 말았다. 요몽 사숙의 제자라고 알려졌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사형의 태도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사제, 사제는 지금 이 사태가 귀광두 그분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무광은 나지막이 물었다.
“그럼 아니란 말입니까? 귀광두가 아니었던들 지금의 위기는 오지 않았을 겁니다. 이 모든 게 귀광두 때문 아닙니까?”
“그분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사람은 우리였네. 오지 않겠다고 했던 그분을 극구 설득하여 이곳으로 모신 사람은 우리였던 말이네. 그리고 지금의 사태는 그분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는 건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걸세. 그분도 소림처럼 희생양으로 선택되었을 뿐이라는 걸 말이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우리 소림은 벗어날 길이 있소이다. 귀광두를 잡아온다면 소림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무연은 재차 소리쳤다. 또다시 반복이다. 지난 삼 일간 방장과 설전을 벌였던 사항. 무연은 귀광두를 잡아 소림을 살리고자 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했다. 한 명이 죽어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 아니냐며 강변했다.
“일단 살아남는다면........”
“방장 사형!”
무연이 말을 잇는 순간 방장실 문이 열리며 건장한 승려가 들어왔다. 팔대호원의 수장인 무성대사였다.
“그래 얼마나 남았던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무성이 들어오자마자 무광은 다짜고짜 물었다.
“간밤에 오백 명 정도가 떠났습니다. 그리고.......”
“설마 제자들에게 떠날 시간을 주기 위해?”
무연은 앓는 듯 중얼거렸다. 둘 이상 모이지 말라고 하였던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알아챘다. 사형은 제자들에게 소림을 떠날 시간을 준 것이다. 여럿이 함께 모여 있으면 떠나고 싶어도, 분위기 때문에 가지 못할 제자들이 생길까 봐 일부러 그렇게 했던 거였다.
가장 친했던 동료와 상의하여 소림을 떠날 것인지, 아니면 남을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게 하였던 것이다.
“광자를 포함해 아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성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다른 이들은 전부 떠나도 그들만은 남아 있을 줄 알았었다.
“그들밖에 떠나지 않았단 말인가. 좀 더 많이 떠나길 바랐는데.......”
“보십시오, 사형. 소림의 기둥이라는 광자 일행마저도 떠났습니다. 이래도 귀광두를 두둔하실 겁니까? 사형이 싫다면 저라도 해야겠습니다. 팔대호원과 사대금강을 동원하여 귀광두를 잡아오겠단 말입니다!”
무연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천 명에 달했던 승려들 중 오백 명은 탁발수행을 보냈고, 오백 명은 소림을 버리고 야반도주를 했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형인 무광은 더 많은 제자들이 떠나지 않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승려가 절을 버리고 도망을 쳤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무광은 태연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무연을 보면서 물었다.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건가? 소림 제자의 목을 잘라 만천하에 공개하면 세인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가? 위대한 소림이라며 칭송할 것 같은가? 아닐 걸세, 제자의 목을 잘라 삶을 도모한 비겁한 소림으로 기억할 거네. 나는 그런 소림이 되는 걸 막고 싶은 것뿐이네. 사제나 난 잠시 살다 갈 뿐이지만 소림은 영원히 가야 하기 때문이네. 우리는 소림의 주인이 아닐세.”
“사형!”
무연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사형인 무광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던 까닭이다. 귀광두는 핑계일 뿐, 강호 무림이나 동창은 소림의 몰락을 원하고 있다.
남경왕부의 사건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곳에 소림이 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강호 무림인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림에게 그곳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라고 한다.
귀광두의 목을 잘라서.
“휴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귀광두가 아니더라도 소림의 몰락은 정해진 수순인 것이다. 사형의 말처럼 귀광두 또한 희생양으로 선택된 인간에 불과했다. 사형인 무광대사를 쳐다보며 무연은 한숨처럼 말했다. 그동안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이고 묻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말씀을 해 주십시오. 사형이 그분이라 칭하는 귀광두가 누구인지.”
“죽음까지 안고 간다면....... 아니군, 아무도 믿지 않는데.”
무광은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스스로 묵안혈마임을 밝혔지만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공연히 숨겼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문대로일세. 그분은 광혈지옥비의 주인이고, 오십 년 전 자네들이 보았던 분일세.”
“설마........”
무연을 비롯한 안쪽에 있던 모든 이들은 경악한 얼굴로 무광을 쳐다보았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십팔나한이 떠났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말이다. 그의 후예도 아니고 묵안혈마 본인이라니. 무림인일면 삼십 년 전에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무림인들이 광혈지옥비에 대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지금껏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요인 대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무슨?”
일순 실내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요인을 향했다.
“광혈지옥비는....... 천살성을 타고난 영혼만을 받아들인다. 광혈과 천살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파멸안이 탄생하는 거고. 그리고 천살성은 오백 년마다 한 번씩 태어나는데 그분이 바로 백산 사숙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무연은 더듬거렸다. 백산을 왜 모르랴. 오십 년 전, 그가 소림을 방문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자신들이 아닌가. 더구나 백산 사조의 동생이라는 살우 사조께는 무공까지 전수 받았다.
“나도 처음엔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분의 손목과 발목에 있는 광혈지옥비를 보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그분은 백산 사숙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때 결심했다. 다시는 당신을 버리지 않겠노라고. 묵안혈마가 아닌 귀광두로 살게 해 주겠노라고. 그런데 그분은 다시 광혈지옥비를 꺼내 들고 말았다. 왠지 아느냐, 바로 천붕회와 소림을 위해서였다. 강호 무림과 동창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그렇게도 버리고자 했던 과거를 꺼내고 말았단 말이다.”
“아미타불!”
무연을 비롯한 일행은 약속이라도 한 듯 불호를 읊었다.
“난 무연 사제를 비롯한 자네들이 떠나주기를 바라네. 비록 동창이나 강호 무림인들의 추격을 받겠지만.......”
“쿡! 사형은 방금 했던 말을 번복하시는군요. 우리는 백여 년간 소림을 살다가는 사람들일 뿐이지만, 소림은 수천수만 년 동안 영원하다는 말씀 말입니다.”
편안한 미소를 지은 무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는가?”
“벌써 삼 일을 굶었습니다. 아침 공야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됐는가. 그러고 보니 나도 시장기가 도는구먼. 같이 가세.”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무광은 무연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를 따라 나머지 수뇌들이 하나 둘씩 일어났다. 수뇌들이 자리를 옮기자 반야심경을 읊고 있던 모든 승려들이 천불전으로 들 때와 마찬가지로 길게 줄을 지어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두 사람 이상 모여 있지 말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했기에 공양을 마치면 그들은 또다시 산으로 불전으로 흩어질 것이다.
차분한 가운데 마지막을 준비하는 소림과 달리 잔뜩 상기된 얼굴로 숭산을 쳐다보는 자들이 있었다. 그곳은 공현 현아였다.
“장철웅! 상황은?”
안으로 들어선 장철웅이라는 자를 향해 짤막하게 묻는 인물. 금위의 영반 천태진이었다. 천붕회 포고문이 전국으로 나돌자마자 천태진은 선발대를 대동하고 하남성으로 들어왔다. 소림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간밤에 오백여 명 정도가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지금 소림사에는 천여 명 정도가 남아 있는 걸로 압니다.”
보고를 하는 이는 거령권이란 별호를 가진 진무사 장철웅이었다. 장철웅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에게 있어서 소림은 결코 남이 아닌 탓이었다.
영반 바로 아래 직책인 진무사가 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소림 권법이었다. 소림의 속가제자였던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거령권은 소림 권법에서 유래했다. 출셋길을 열어 주었던 소림 권법이 이번에는 소림을 치는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
“절반이라....... 앞으로 삼백여 명 정도가 더 도망가면 그때 시행한다.”
“존명!”
깊게 고개를 숙인 장철웅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도망가는 소림 승려를 두고 보는 것 또한 동창제독 하후장설의 계책이다. 소림을 멸문시킨 다음, 도망친 소림 승려를 잡는 다는 명목으로 동창과 금의위 무인들은 전국을 누비고 다닐 것이고, 그 표적은 천붕회 소속 네 문파가 될 것이다. 바야흐로 강호 무림을 장악하기 위한 대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네 생각은 어떠냐? 귀광두가 찾아 올 거라고 보느냐?”
“십중팔구는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맞다. 놈은 이곳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수많은 무림인들을 이끌고 소림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귀광두를 쫓아왔던 무림인들은 보게 될 것이다. 관을 거스르면 어떻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병력은 어찌 됐느냐.”
“지금 오군도독부 산하 오만 정병이 하남으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화기는 불랑기(佛郞機) 이백 문을 준비했습니다.”
장철웅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불랑기, 군에서 쓰이는 철포 이름이다. 명나라에서 개발된 철포가 아닌, 구주(歐洲) 무역상을 거쳐 들어온 철포를 바탕으로 제조된 장비다. 바퀴 달린 수레를 이용하기에 이동이 쉽고 그 살상력 또한 대단하여 유효사거리는 무려 천 장에 달했다. 소림을 불태우라고 했던 하후장설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천태진의 선택은 불랑기였다.
“좋다! 불랑기가 도착하는 대로 소림사 전면 삼백 장 주변으로 배치하라!”
“알겠습니다, 영반합하!”
장철웅이 밖으로 나가자 혼자 남은 천태진은 허공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귀광두? 큭, 별호하고는........”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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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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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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