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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8:1
질병은 시간을 다르게 흐르게 만듭니다. 바쁘게 지나가던 하루가 갑자기 길어지고, 당연하게 여기던 숨과 햇빛과 아침이 낯설만큼 소중해 집니다. 인간은 늘 내일이 계속 될 것처럼 살아가지만, 몸이 무너지는 순간자기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공주야! 기쁨의 순간 슬픔이 찾아왔다. 강대국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구원받아 기뻐하는 것도 잠시 뿐 그때에 히스기야에게 청천병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게 생긴 것이다.
Disease makes time flow differently. A day that had been passing busily suddenly becomes long, and the breath, sunlight, and morning that I once took for granted grow so precious that they feel unfamiliar. Humans always live as if tomorrow will go on forever, but the moment their bodies collapse, they come face to face with the fact that their lives are finite. Princess! Sadness came at the moment of joy. Even the joy of being saved from the threat of the mighty Assyrian state was only temporary, and then something like the plague of the blue heavens struck against Hezekiah. Hezekiah became sick and was doomed to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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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기도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히스기야가 보여준다. 공주야!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가 선지자를 통해서 확증 받는 그의 죽음,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그의 기도를 보라. 자신이 진심으로 살아온 것을 기억해달라고 한다. 그가 했던 과오(애급 의지)를 생각하면 좀 뻔뻔한 내용이지만,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돌이켜 하나님을 의지 했던 순간을 떠올린 것이다.
He-se-giya does not give up. The only thing he could do was pray. What is prayer? Hezekiah shows what it means to put one’s trust in God. Princess, look at His Beggar, who was made sick and doomed to die, and how his death is confirmed through the prophet, yet how his prayers do not give up. He asks that you remember that he has truly lived. It may seem a bit shameless when you think of the mistake he made (a desperate reliance on faith), but it was a moment when he received God’s warning, reflected on it, and relied on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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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런 기도마저 응답하여 18년을 더 연장하여 주신다. 무조건 내 뜻을 관철시키는 떼쓰는 기도의 모범이 아니다. 가장 정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기도, 어떻게 응답하실지 몰라도,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이 기도 역시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다 맡기는 기도만큼이나 아름다운 기도다. 앞에서는 단 한 절만 그의 기도가 나와서 그냥 나 잘 살았으니 그거 보고 살려주세요. 라고 너무 당당하게 기도한 것처럼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God answers even such prayers and extends it by another 18 years. It is not a model of prayer that throws a tantrum just to get my way. A prayer that honestly expresses one’s heart—though we do not know how it will be answered this prayer, too, is as beautiful as the one that entrusts everything to “Do as You will, Lord.” Only one verse of his prayer comes out in front of me, so please look at that and let me live well. I thought it was as if I had prayed so boldly, but that was no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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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처지를 원통해하기도 하고, 자기 죽음이 두렵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하나님 말고는 믿고 의지할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돌아왔고, 그리하여 마음이 평안 해졌다. 정말 기도다운 기도다. 이렇게 솔직하게 우리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아뢰는 것이 기도 아닌가, 이런 혼란과 두려움과 염려를 뚫고 나온 신뢰가 정금 같은 신뢰 아닌가,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참 안심이다. 히스기야의 비장의 카드가 무엇이었는가?
He said that he was resentful of his own situation and that he was afraid of his own death. Then I returned to the thought that there was nothing to believe in or rely on other than God, and through that, my heart found peace. It’s truly a prayer like a prayer. Isn’t this, by speaking our hearts so honestly and as they are, what prayer is? Isn’t the trust that emerged through such confusion, fear, and worry like pure gold? His human side is truly reassuring. What was His-King’s trump c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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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으면 스올에서 찬양하지 못하고 신실함을 바랄 수도 없으니 살려달란다.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경험하여 두고두고 당신의 신실함을 찬양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예 응답해주실 것을 믿는다고 못박아버린다. 그의 기도는 왜 기도응답을 받고 싶어 하는가라고 묻게 한다. 누구 좋으라고 기도 응답해달라는 것인가? 물론 나에게 좋은 일이지만, 그 기도 응답이 하나님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를 묻지 않으면 기도가 아니다. 나는 주어진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는가, 아니면 은혜로 여기는가?
He says, “If he dies, I will not be able to praise him in Sheol, nor can I hope for his faithfulness; please let him live.” It is asking for an opportunity to experience God’s omnipotence and to praise His faithfulness again and again. And then firmly declares that they believe you will respond at all costs. His prayer makes us ask why he wants to receive an answered prayer. Who are you asking to answer your prayers for? Of course, it is good for me, but if you do not ask what relevance the answer to that prayer has to God, it is not prayer. Do I take the time I have for granted, or do I regard it as a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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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의 약속(1-8)
a.히스기야의 발병과 사망 통지:1
b.히스기야의 반응:2-3
c.간구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4-8
히스기야의 글, 감사기도(9-20)
a.머리글:9
b.탄식:10-13
c.간구:14-17a
c.구원:17b-20
히스기야의 치유(21-22)
a.처방전을 주는 이사야:21
b.징조를 구하는 히스기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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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에 히스기야가(1a)
병들어 죽게 되니(1b)
아모스의 아들(1c)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와(1d)
그에게 이르되(1e)
여호와께서(1f)
이같이 말씀하시기를(1g)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1h)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1i)
하셨나이다(1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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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가(2a)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2b)
여호와께 기도하여(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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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되 여호와여(3a)
구하오니(3b)
내가 주의 앞에서(3c)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3d)
주의 목전에서(3e)
선하게 행한 것을(3f)
추억하옵소서 하고(3g)
심히 통곡하니(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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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여호와의 말씀이(4a)
이사야에게(4b)
임하니라 가라사대(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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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가서(5a)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5b)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5c)
여호와께서(5d)
이같이 말씀하시기를(5e)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5f)
네 눈물을 보았노라(5g)
내가 네 수한에(5h)
십 오년을 더하고(5i)
너와 이 성을(5j)
앗수르 왕의 손에서(5k)
건져내겠고(6l)
내가 또 이 성을(6m)
보호하리라(6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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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7a)
네게 이룰 증거로(7b)
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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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아하스의(8a)
일영표에 나아갔던(8b)
해 그림자를(8c)
뒤로 십도를(8d)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8e)
하라 하시더니(8f)
이에 일영표에(8g)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8h)
십도를 물러 가니라(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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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히스기야가(9a)
병들었다가(9b)
그 병이 나을 때에(9c)
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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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기를(10a)
내가 중년에(10b)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10c)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10d)
하였도다(1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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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 말하기를(11a)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11b)
뵈옵지 못하리니(11c)
생존세계에서(11d)
다시는 여호와를(11e)
뵈옵지 못하겠고(11f)
내가 세상 거민 중에서(11g)
한 사람도(11h)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11i)
하였도다(11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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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거처는(12a)
목자의 장막을 걷음 같이(12b)
나를 떠나 옮겼고(12c)
내가 내 생명을 말기를(12d)
직공이 베를 걷어(12e)
말음 같이 하였도다(12f)
주께서 나를(12g)
틀에서 끊으시리니(12h)
나의 명이(12i)
조석 간에 마치리다(12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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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침까지(13a)
견디었사오나(13b)
주께서 사자 같이(13c)
나의 모든 뼈를 꺾으오니(13d)
나의 명이(13e)
조석 간에 마치리다(1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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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비 같이(14a)
학 같이 지저귀며(14b)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14c)
나의 눈이 쇠하도록(14d)
앙망 하나이다(14e)
여호와여 내가(14f)
압제를 받사오니(14g)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1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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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15a)
또 친히 이루셨으니(15b)
내가(15c)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15d)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15e)
내가 종신토록(15f)
각근히 행 하리이다(1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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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16a)
이에 있고(16b)
내 심령의 생명도(16c)
온전히 거기 있사오니(16d)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16e)
나를 살려주옵소서(1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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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옵소서(17a)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17b)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17c)
주께서 나의 영혼을(17d)
사랑하사(17e)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17f)
나의 모든 죄는(17g)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1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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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부가(18a)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18b)
사망이(18c)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18d)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18e)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1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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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산 자 곧 산 자는(19a)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19b)
주께 감사하며(19c)
주의 신실을(19d)
아비가 그 자녀에게(19e)
알게 하리이다(1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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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나를(20a)
구원하시리니(20b)
우리가 종신토록(20c)
여호와의 전에서(20d)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20e)
노래하리로다(2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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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이르기를(21a)
한 뭉치 무화과를 취하여(21b)
종처에 붙이면(21c)
왕이 나리라 하였었고(2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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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도 말하기를(22a)
내가 여호와의 전에(22b)
올라 갈 징조가 무엇이뇨(22c)
하였었더라(2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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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치명적인 질병과 절체절명의 기도_
Hezekiah's deadly disease and the prayer of desperation.
두려운 얼굴의 하나님과 끝까지의 신뢰_
God with a fearful face and trust to the end.
하나님을 향한 선한 설득_good persuasion for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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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선고를 받은 절박함 속에서도 기도하며 믿음을 지키는 히스기야를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미말에 진실 되고 선하게 살되, 전심으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 유다가 망하지 않는 것도 히스기야를 살려주시는 것도, 다윗과 세운 언약 때문인 것을 기억합니다. 특별히 주용 이가 운동과 성경묵상을 시작하였사오니 흥미를 붙여주시고 새로운 시온의 대로가 열리게 하옵소서. 수랩의 장막터를 넓혀주시고 이 땅의 교회에 향한 당신의 긍휼 가운데 소망의 빛을 끄지 마옵소서. 속히 악을 심판하시어 수년 내에 주의 일이 부흥케 하옵소서.
Thank you for allowing us to meet Hezekiah, who prays and keeps his faith even in the desperation of receiving the death sentence. Lord, help me to live truthfully and kindly in my last words, and to live with all my heart. Lord, we remember that Judah’s failure to fall and His sparing Hezekiah were all because of the covenant made with David. Especially, Ju-yong has begun exercising and meditating on the Bible; please give him interest and open a new path to Zion. Enlarge the place of the veil of the Holy Lamb, and do not let the light of hope go out in your mercy toward the church of this land. Judge evil swiftly so that Your work may flourish within a few years.
2026.8.30.sun. Clay
신학 비평//
나는 주어진 시간을 당연한 권리로 사는가, 아니면 다시 받은 은혜로 사는가? 이사야 38장은 단순한 질병 치유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이라는 한계 앞에서 인간의 신앙이 얼마나 정직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앗수르라는 거대한 제국의 위기는 하나님의 개입으로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군대로 막을 수 없는 적이 찾아옵니다. 죽음입니다. 성 밖의 산헤립은 물러갔지만, 죽음은 히스기야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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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것은 히스기야가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합니다. 이것은 믿음 없음의 증거가 아닙니다. 성경의 기도는 인간적인 두려움을 제거한 뒤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두려움 자체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만이 성숙한 기도이고 “살려주십시오”는 낮은 수준의 기도라고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겟세마네의 예수께서도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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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는 말도 공로를 내세우는 거래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에게도 정치적 오판과 불신앙이 있었습니다. 그의 호소는 완전무결함의 주장이 아니라 언약 관계 안에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간구에 가깝습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논리보다 먼저 기도와 눈물을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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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나님을 설득하여 하나님의 뜻을 꺾었다기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절규까지 자신의 섭리 안으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주신 하나님을 향한 선한 설득이라는 표현이 좋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팔을 비트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까지 숨기지 않는 신뢰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교정이 있습니다. 본문은 히스기야에게 18년이 아니라 15년을 더하셨다고 기록합니다(38:5). 그리고 그 15년은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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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다”고 함께 말씀하십니다. 개인의 생명과 공동체의 구원이 다윗 언약이라는 더 큰 구원의 역사 속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또한 17절은 이 장의 신학적 중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여기서 조심할 점도 있습니다. 이것을 모든 질병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교육하기 위해 보내신 것이라는 일반 공식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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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가 자신이 통과한 고통을 사후적으로 신앙 안에서 해석한 고백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고통 자체가 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통조차 평안으로 변환하셨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라는 질문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질문을 끝까지 하나님께 가져가면서 이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와 무엇을 이루시는가?라고 다시 묻게 합니다. 특히 아름다운 것은 히스기야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점차 변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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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죽기 싫어서 울지만, 마지막에는 살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전하기 위해서 살겠다고 합니다.아비가 그 자녀에게 주의 신실을 알게 하리이다. 바로 여기서 생존이 소명으로 바뀝니다. "살려주십시오”가 “살려주시면 전하겠습니다”로 변합니다. 기도 응답의 최종 목적이 자기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상에서 던지신 “누구 좋으라고 기도 응답해달라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 장을 정확하게 찌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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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해 그림자가 열 도 뒤로 물러간 징조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인간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흘러간 하루도, 젊음도, 실패도 되돌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림자를 뒤로 물리심으로써 시간의 주인이 히스기야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히스기야에게 주어진 15년은 그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 이 장의 핵심은 단순히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가 아닙니다. 모든 간절한 기도가 수명 연장으로 응답되는 것도 아닙니다. 더 깊은 복음은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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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피하는 것이 믿음의 승리가 아니라, 죽음의 얼굴 앞에서도 하나님께 얼굴을 돌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히스기야는 처음에는 벽을 바라보았지만 결국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뒤 믿은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통과하면서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표현처럼 이것은 참으로 정금 같은 신뢰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은 우리에게 조금 더 날카로운 질문을 남깁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15년을 더 주신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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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이미 그 ‘더 주신 15년’ 가운데 하루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때 아침과 햇빛과 숨과 사람과 말씀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받은 시간은 감사에서 끝나지 않고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히스기야에게 회복된 생명의 목적이 “아비가 그 자녀에게 주의 신실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 역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질병은 시간을 느리게 만들지만, 은혜는 그 시간을 깊게 만듭니다. 그리고 신앙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다시 받은 시간을 누구를 위하여 사느냐를 묻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