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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9:1
은혜의 기억은 쉽게 자기 과시로 변하곤 합니다. 간증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자랑의 악취가 담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병에서 회복된 히스기야에게 바벨론의 사신들이 찾아왔습니다. 위로와 축하의 방문이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히스기야 왕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들어내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공주야! 바벨론은 앗수르에 의해 군사적 위협을 받고 있었고, 주변 국가들과 반앗수르 동맹을 추구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략에도 구원을 받았고 죽을병에서도 치유를 받았다.
Memories of grace often easily turn into self congratulation. Testimonies must not contain the stench of boasting, rather than the fragrance of Christ. The Babylonian envoys came to Hezekiah, who had recovered from his illness. It must have been a visit of comfort and congratulations. The problem was that it became a mirror that revealed where King Hezekiah’s heart was turning. Princess, Babylon was under a military threat from Assyria, and sought an anti- Assyrian alliance with the neighboring states. Hezekiah was delivered from Assyrian invasion and healed from a deadly dis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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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식을 전해들은 바벨론 왕은 기회로 여겨 사자를 보내 화친을 시도한다. 병 나은 것을 축하하러 바벨론 왕이 보낸 사신 앞에서 히스기야는 의기양양하다. 그리하여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강한 지를 과시하기 위해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이 자기 목숨을 물론이고 이 나라의 안녕을 책임지는 유일한 분이고, 이 나라의 번영은 저 금석덩어리와 상관이 없는데 그는 금세 은혜를 잊고 생명 없는 것들에 자신의 생명과 나라의 생명을 걸고 있다.
Upon hearing the news, the king of Babylon saw an opportunity and sent a messenger to seek peace. Hezekiah is overconfident before the envoy sent by the king of Babylon to congratulate him on his recovery from illness. Thus, he showed everything he could to flaunt how strong his own country was. God is, of course, the only one responsible not only for His own life but also for the well being of this nation, and the prosperity of this country has nothing to do with that heap of gold and stone, yet he quickly forgets His grace and stakes His life and the life of His nation on things that have n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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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가? 죽을 때까지 우리의 싸움은 겸손을 향한 싸움이다. 주님과 주님의 은혜만 남고 다 껍데기다. 내 것이 아니다. 그런 걸 인정할 때까지는 자기부정의 싸움이 중단 되서는 안 된다. 히스기야를 살리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히스기야를 죽이실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나라, 자신의 명예인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금과 은과 무기들이 결코 이 나라의 미래와 상관이 없음을 증명하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How foolish a human being one is? Until we die, our struggle is a struggle for humility. Only the Lord and His grace remain; everything else is just a shell. It's not mine. Until such things are acknowledged, the struggle of self denial must not cease. God, who raised up Hezekiah, could kill Hezekiah anytime, whenever. It is the same to his own country, his own honor, Israel. It is very simple to prove that this gold, silver, and weaponry have nothing to do with the future of this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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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믿음 없음은 이 나라가 얼마나 하나님을 자기 필요할 때만 찾는 존재정도로 알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가 자랑했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이동하고 그의 자손은 환관이 되고 그의 백성이 포로가 되는 날, 비록 그가 보지 못한다 해도 모두가 뼈아프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굳이 다 잃고 나서 깨달아야 하는가? 이사야의 심판 통보를 받은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하면서 수용한다.
The king’s lack of faith shows how little this nation understands God as something it seeks only when it is needed. When everything he boasted about is taken to Babylon, and his descendants become eunuchs, and his people are taken captive, even if he cannot see it, everyone will have no choice but to painfully acknowledge that God is God. Why must one realize it only after losing everything? Hezekiah, who received Isaiah’s declaration of judgment, accepts it, saying, “The word of the LORD i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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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인정도 포함된다. 얼마나 자책하였을까. 얼마나 후회가 되었을까, 그리고 속으로 고백한다.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이기적인 고백은 아닌 듯하다. 후손들은 멸망해도 나는 편하게 살다 죽는다는 뜻은 아니다. 긍정적으로 묘사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존중한다면 지금 당장 멸망해도 할 말이 없는데 그나마 긍휼히 여기셔서 자격 없는 자신들에게 평안과 견고함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고백이다. 진정한 회개는 죄의 결과까지 수용하는 것이다. 유다가 바벨론을 환대한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드러내며 사는가, 아니면 나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가? 유혹은 형통할 때 교만을 통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아는가?
It also includes acknowledging one’s own fault. How much did I blame myself. How much regret must it have felt, and I confess it to myself. “Peace and security shall be with me in my lifetime.” It doesn’t seem to be a selfish confession. It does not mean that even if my descendants are destroyed, I will live and die in peace. If we respect the author’s intention to portray it positively, this is a confession of gratitude for the fact that, even if they were destroyed right now, there would have been nothing to say, they were at least shown mercy and given peace and steadfastness to themselves, though unworthy. True repentance is accepting even the consequences of sin. Why did Judah welcome Babylon? Am I living by revealing what God has done, or am I revealing myself? Do you know that temptation comes through pride when things are going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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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역사적 배경(1-2)
a.므로닥발라단의 사신 파견:1
b.히스기야의 환대:2
히스기야를 찾아온 이사야(3-4)
a.이사야의 질문과 히스기야의 답변:3
b.이사야의 질문과 히스기야의 답변:4
이사야의 심판 선포(5-7)
a.만군의 여호와의 말씀 선포:5
b.재물의 약탈:6
c.일부 왕족의 사로잡힘:7
히스기야의 반응(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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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1a)
바벨론 왕(1b)
므로닥발라단이(1c)
히스기야가(1d)
병들었다가(1e)
나았다 함을 듣고(1f)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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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2a)
사자를 인하여 기뻐하여(2b)
그에게(2c)
궁중 보물 곧 은금과(2d)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2e)
모든 무기고와(2f)
보물고에 있는 것을(2g)
다 보였으니(2h)
궁중의 소유와(2i)
전 국내의 소유를(2j)
보이지 아니한 것이(2k)
없는지라(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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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선지자 이사야가(3a)
히스기야왕에게(3b)
나아와 묻되(3c)
그 사람들이(3d)
무슨 말을 하였으며(3e)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3f)
히스기야가 가로되(3g)
그들이(3h)
원방 곧 바벨론에서(3i)
내게 왔나이다(3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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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가 가로되(4a)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4b)
무엇을 보았나이까?(4c)
히스기야가 대답하되(4d)
그들이(4e)
내 궁전에 있는 것을(4f)
다 보았나이다(4g)
내 보물은(4h)
보이지 아니한 것이(4i)
하나도 없나이다(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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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가(5a)
히스기야에게 이르되(5b)
왕은(5c)
만군의 여호와의(5d)
말씀을 들으소서(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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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날이 이르리니(6a)
네 집에 있는(6b)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6c)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6d)
모두 바벨론으로(6e)
옮긴바 되고(6f)
남을 것이 없으리라(6g)
여호와의 말이니라(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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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네게서 날(7a)
자손 중에서(7b)
몇이 사로잡혀(7c)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7d)
되리라 하셨나이다(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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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가(8a)
이사야에게 이르되(8b)
당신의 이른바(8c)
여호와의 말씀이(8d)
좋소이다(8e)
또 가로되 나의 생전에는(8f)
평안과 견고함이(8g)
있으리로다. 하니라(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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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과 재력을 과시한 히스기야_Hezekiah showed off his national power and wealth.
형통할 때 오는 유혹_the temptation of fortune
이사야의 책망 그러나_Isaya's reproach, b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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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와 유다의 운명을 끝내시기로 작정하신 주님, 형통한 것은 주의 은혜이오니 후회 하는 히스기야처럼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허세부리지도, 세상과 동맹하지도 않고 똑바로 살겠습니다.
Lord, who has resolved to end the fate of Hezekiah and Judah, may Your grace bring you prosperity, and so that, like Hezekiah who regrets, there will be no regrets. I will live uprightly, neither boasting nor forming alliances with the world.
2026.8.31.mon. Clay
신학 비평//
은혜를 자랑할 것인가, 은혜 주신 분을 자랑할 것인가? — 이사야 39장은 히스기야의 실패를 단순한 허영심의 문제보다 깊게 다룹니다. 38장에서 죽음 앞에 선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39장에서 형통해진 히스기야는 바벨론을 향하여 자신의 보물창고를 엽니다. 고난이 하나님을 찾게 했다면, 형통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온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더 위험한 시험은 때로 고난이 아니라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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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바벨론 사신의 방문은 단순한 병문안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에 맞설 세력을 모색하고 있었고, 히스기야에게도 정치적 동맹은 매력적인 선택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어떻게 예루살렘을 구원하셨고 자신을 죽음에서 살리셨는지를 보여주기보다 은과 금과 향료와 무기고를 보여주었다.*은혜의 간증이 어느새 자기 능력의 전시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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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여줌”의 신학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보여주는지를 통해 실제로 무엇을 의지하는지를 드러냅니다. 히스기야가 자랑했던 바로 그것들이 훗날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은 그래서 역설적입니다. 하나님보다 자랑했던 것은 결국 빼앗기고, 하나님보다 의지했던 제국은 결국 자신을 사로잡는 제국이 됩니다. 우상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마침내 우리를 지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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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8절의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를 완전한 회개로만 읽는 데에는 약간의 긴장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는 겸손으로 읽을 수 있지만, “나의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에는 자신의 시대 이후에 닥칠 재앙에 대한 안도감의 그림자도 남아 있습니다. 성경은 히스기야를 완벽한 영웅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은혜를 크게 경험한 사람조차 다시 자기중심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인간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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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사야 39장의 핵심은 단순히 교만하지 말자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나는 무엇을 나의 안전이라고 생각하는가?입니다. 재산도, 국력도, 인맥도, 성공도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순간 우상이 됩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의 싸움이 겸손을 향한 싸움이라는 말씀은 정확합니다. **진정한 겸손은 가진 것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아는 것입니다. 고난에서는 하나님을 잊지 않으려고 싸워야 하고, 형통에서는 내가 하나님이 되지 않으려고 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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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드러내며 사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이용해 나 자신을 드러내며 사는가? 주님, 형통도 주의 은혜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받은 은혜로 나를 과시하지 않게 하소서. 히스기야처럼 뒤늦은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세상의 힘보다 주를 의지하며, 나를 드러내기보다 나를 살리신 하나님을 드러내며 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