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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7월 11일 화요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어려서 장마가 오기 전에 사람들은 서둘러 보리와 밀을 거두어들여야 했습니다. 바짝 마른 보리를 보리밭에서 수확할 때면 정말 바쁘답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보리가 너무 부스러지기 전에 정성들여 베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보리를 짚으로 단을 매어서 지게에 지고 집 마당으로 날라 오는 것입니다. 마당을 깨끗이 쓸고 고르게 한 다음에 탈곡을 하고, 아직 부서지지 아니한 보리나 밀 이삭을 도리깨질로 두드려 모두 털어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쓸 만한 보릿대는 간추려서 밀대방석을 반들 때 쓰거나 밀짚모자를 만들 때 쓰고 부스러기는 두엄을 잘 얹어서 거름으로 만들거나 불 소시개로 씁니다.
마당에 있는 보리는 꺼럭이 얼마나 많은지 보리타작을 하면 온몸이 땀과 보리 꺼럭으로 따갑고 쓰라리기까지 합니다. 보리를 모두 모아 놓고 풍구로 알곡을 가려내거나 죽 가래로 공중에 퍼 올려서 먼지나 부서진 부스러기를 바람에 날려 버리고, 알곡을 일차로 고릅니다. 그래도 보리나 밀이 바닥에 있는지 살펴서 고은 빗자루로 골고루 쓸어서 모은 다음에 키질을 합니다. 그래서 모래와 돌을 골라내고, 쭉정이와 깜부기와 귀리를 모두 골라 쓸어버리고 알곡만 모읍니다. 알곡을 다시 말로 되어서 가마니에 담아 마루나 광에 쌓아 놓고 마당을 치우면 큰 추수가 일차적으로 끝납니다.
이제 어린 아이들과 엄마들은 보리밭으로 갑니다. 보리를 베어 거두어들일 때 많은 이삭들을 일부러 남겨둡니다.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이 이삭을 주어가라고 남겨두기도 하고, 아직 덜 익은 보리나 밀을 일부러 남겨두는 것이 일반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부잣집에서 보리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거두어들이면 사람들이 인색한 사람들이라고 뒤에 대고 욕을 하기도 합니다. 떨어져 흩어져 있는 보리 이삭을 주워 담으면서 사람들은 그 밭주인의 인심과 후덕한 행동을 감사한답니다. 아이들이 하는 일이 따로 있습니다. 밭 둑 근처에 있는 쥐구멍을 찾는 일입니다. 쥐구멍을 찾으면 쥐들이 얼마나 많은 보리를 양식으로 모아 놓았는지 그걸 빼앗아 오는 일입니다. 그 보리를 가지고 보통은 모아서 동네 친구들이 노는 배구공이나 축구공을 사는 것입니다. 그 때는 그게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쥐구멍 파서 공 살 것이라고’ 미리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추수를 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야 한답니다. 일손도 많이 필요하고, 역할도 각각 다릅니다. 그 일에 숙달된 사람들은 일손도 빠르고, 빈틈이 없이 준비도 잘합니다. 어설픈 사람들은 일이 돌아가는 일머리를 모르기 때문에 돈과 품은 많이 들어도 능률은 잘 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산성과 효율성의 문제는 어려서 타작을 하면서 많이 느낀 경영학의 실제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추수하시는 방법을 가만히 묵상해보면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먼저 주님은 일꾼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을 훈련시키십니다. 말 못하는 이는 말을 잘 할 수 있도록 고쳐주시고, 여러 고을과 마을을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고쳐 주십니다. 전혀 가동 할 수 없는 농기구도 모조리 손을 봐 주시고, 당신의 손에 아주 적합한 도구로 만드시고, 당신은 직접 그 모든 것을 수선하시는 수선공으로 나서십니다. 씨를 뿌리고 흙을 덮어주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고, 병해충을 잡아주고, 밀과 보리를 베고, 지게로 져 나르고, 타작하고 하는 모든 일꾼이 더 많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꾼은 의욕이 하나도 없어서 기가 꺾여 있습니다.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는 주인들에게 시달리고, 지금처럼 살아서는 앞날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 그들의 기를 꺾어 놓습니다. 이제 그들이 기운을 차릴 수 있는 것은 주님의 격려뿐이랍니다.
타작할 마당도 깨끗이 쓸어야하고, 쭉정이나 귀리나 모래를 골라 버릴 수 있는 키들도 준비해야 합니다. 키질하는 기술은 연마하지 않아도 주님께서 키질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불에 때워버릴 쭉정이나 귀리나 모래는 불에 태우실 것이니 우리가 먼저 불을 놓아 가려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모든 알곡까지 다 태워버릴 수가 있답니다. 먼지나 부스러기를 날려 버리는 풍구(風具)는 준비하되 바람은 성령께서 불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먼지와 부스러기는 모두 날려주실 것입니다. 불지도 않는 바람을 탓하며 내 입으로 바람을 불려다 꺼럭이 들어와 큰일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악마가 모아 놓은 알곡들을 되찾아 와야 하는 일도 이제는 아이들과 여자들이 할 일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이 모아 놓았는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빠져 있답니다. 매일 그렇게 애써서 모아 놓은 알곡들을 지금도 악마는 기회를 노리면서 제 굴 속에 훔쳐가고 있답니다. 우리가 찾지 못하는 동안 새끼들은 번식할 것이고, 그 새끼들은 또 다시 모두 기승을 부리며 알곡들을 도둑질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아이들이 그 쥐구멍을 모두 찾아내서 되찾아 오는 버릇이 들어야 합니다. 애기 때부터 주일학교부터 선교의 일꾼을 만들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도록 한데 어울리도록 축구공도 사주고, 배구공도 사주어야 합니다. 정말 악마들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일꾼은 많이 필요합니다. 두 손을 놓고 당할 수만은 없습니다. 주님처럼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선교하고, 가슴에 응어리 진 모든 것을 풀어줄 사람들이 되어야 한답니다. 주님께서 일꾼들을 보내 주시기를 간청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기도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2,23-33
그 무렵 야곱은 밤에 23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야뽁 건널목을 건넜다.
24 야곱은 이렇게 그들을 이끌어 내를 건네 보낸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냈다.
25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26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27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그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30 야곱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지만, 그는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그곳에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었다.
31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32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33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짐승의 엉덩이뼈에 있는 허벅지 힘줄을 먹지 않는다.
그분께서 야곱의 허벅지 힘줄이 있는 엉덩이뼈를 치셨기 때문이다.
축일7월 11일 성 베네딕토 (Benedict)
신분 :수도원장, 설립자
활동 지역 :누르시아(Nursia)
활동 연도 :480?-547년?
같은 이름 :베네데토, 베네딕도, 베네딕또, 베네딕뚜스, 베네딕투스, 베네딕트, 분도
서방교회 수도 생활의 아버지인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누르시아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Scholastica, 2월 10일)는 그의 쌍둥이 누이동생이다. 그는 청소년기에 로마(Roma)에서 수학하면서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분열과 갈등을 겪는 교회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도시 생활의 윤리적 타락과 유혹에 환멸을 느껴 고향 근처의 고요한 광야를 찾아갔다. 그는 500년경 로마 동쪽 내륙의 엔피데(Enfide)라는 작은 산골 마을로 가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준비 없는 독거 생활이 영성 생활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동방교회의 사막 은수자처럼 살기 위해 장소를 찾다가 인적이 드물고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수비아코(Subiaco)의 한 동굴에 정착하게 되었다.
성 베네딕투스는 3년 동안 그 동굴에 살았는데, 자신을 그곳으로 인도한 로마누스(Romanus)라는 은수자가 가끔 밧줄에 매달아 내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고독 속에서 철저한 금욕생활을 실천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온갖 육신의 유혹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그는 온전히 독수자가 되어 기도와 성경 말씀으로 사는 것이 소망이었지만, 그의 성덕과 엄격한 생활이 주위에 널리 알려지자 인근 주민들이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비코바로(Vicovaro)에 있는 한 수도공동체에 알려져 그들로부터 원장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성 베네딕투스의 엄격한 규칙에 반대해 마침내 그를 독살하려고까지 하자 다시 수비아코의 동굴로 되돌아왔다.
그 후에도 수많은 제자가 그를 찾아 몰려왔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원장의 지도하에 있는 12개의 수도원을 조직하고 일과표의 하나로 육체노동을 실천하도록 했다. 수비아코는 곧 영성과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자 인근 본당의 사제인 플로렌티우스가 그의 활동을 시기해 죽이려고 하자, 그는 다른 수도자들의 안전을 위해 몇몇 제자들과 함께 수비아코를 떠나 529년경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로 이주해 자리를 잡았다. 그는 아폴로 신에게 헌정된 이교도의 신전을 파괴하고 우상 숭배에 물든 인근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으며, 530년경에는 서방교회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는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인근 피우마롤라(Piumarola)에 여자 수도원을 설립하고 쌍둥이 여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에게 초대 원장의 직분을 맡겼다. 그의 성덕과 지혜 그리고 기적에 대한 명성이 계속 퍼져나가면서 또다시 많은 제자가 몰려왔다.
그는 그동안의 체험을 통해 흐트러진 수도 생활을 바로잡고 서방교회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래서 그는 수도자들을 단일 수도원 공동체로 조직하고, 상식을 존중하면서 올바른 금욕생활 속에서 기도와 독서(Lectio Divina) 그리고 노동을 실천하도록 한 명의 원장 아래 있는 공동체 생활을 규정하는 규칙서를 썼다. 이렇게 해서 성 베네딕투스의 수도 생활 정신을 온전히 담아 서방교회 수도 생활의 기초가 된 “수도 규칙”(Regula Monachorum)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가 만든 “수도 규칙”은 순종과 정주 그리고 신심을 강조했는데, 이후 서방교회에 새로 설립되는 수많은 수도원의 규칙에 적용되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수도 생활의 모토를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로 정해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기도와 노동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수도자들을 지도하고 교황의 고문을 담당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도 힘썼다. 또한 동고트족 토틸라(Totila) 왕의 침공으로 황폐해진 롬바르디아(Lombardia)를 재건하는 데 정열을 쏟았다. 한번은 그의 명성을 듣고 토틸라 왕이 그를 찾아와 먼저 신하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들여보냈지만 단번에 그가 가짜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성 베네딕투스는 토틸라 왕에게 전쟁을 멈추도록 강력히 요청하였다.
그는 547년경 3월 21일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에서 선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선종하고 얼마 후에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는 6일 전에 미리 무덤의 문을 열어놓도록 했다. 그리고 선종 당일 마지막 성체를 영한 후 두 수도승의 팔에 의지해 양팔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선 채로 선종하였다. 그의 축일은 선종한 날인 3월 21일이 사순시기와 겹치는 관계로 이미 8세기 말부터 여러 지방에서 7월 11일로 옮겨 축일을 기념해 왔다. 그리고 1969년 전례력 개정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보편 전례력에서 7월 11일로 확정되었다. 동방정교회는 3월 14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성 베네딕투스는 1964년 10월 24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검은색 수도복을 입고 수도 규칙서나 그를 독살하려 했던 일을 상징하는 뱀이 들어 있는 잔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그리고 독이 든 빵을 물고 있거나 날아가는 까마귀와 마귀를 물리치는 십자가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는 베네딕토 형제님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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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