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 Promocorea 대표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수도 바르셀로나에도 겨울이 왔다. 최저기온은 영상 4~5도를 오르내리지만 지중해의 습한 공기로 인해 실재로 느껴지는 온도는 이보다 낮다. 독립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발코니에 걸린 깃발들은 이제 색이 바랐고 힘없이 걸려있다. 뒷골목 여기 저기 채 지우지 못한 독립 관련 구호와 낙서들은 차가운 바람 사이에서 도시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다.
찢겨나간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 실시 요구 벽보
자료원: 필자 자체 촬영
바르셀로나의 올 겨울이 유난히 더 춥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기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외부인의 시각으로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카탈루냐 분리독립 시도의 여파가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일상을 잔뜩 움츠려들게 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한 주민 투표 이후 지금까지 2개월 동안에 카탈루냐에 본사를 둔 2500여 개의 기업들이 서류상 본사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 물론 물리적인 이동이 아닌 서류상의 이동이라 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카탈루냐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주요 기업들이 포함된 기업 탈출 러시는 심리적으로 위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카탈루냐 지역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인 관광 분야의 위축도 두드러진다. 지난 10월의 경우 카탈루냐를 제외한 스페인 타 지역에서는 관광객 수가 늘어났는데 반해 카탈루냐는 4.7%가 감소했다. 영국의 Brexit 여파로 런던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유럽 의약품청(European Medicines Agency)의 이전 유치를 두고 암스테르담과 경쟁했던 바르셀로나의 패패를 놓고 그 책임소재를 따지는 중앙정부와 독립주의자들 간의 공방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매번 10만 명 이상의 이동통신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전시회 MWC 2018의 타 지역 개최도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카탈루냐가 독립을 원하는 이유는 역사적인 배경과 경제적인 이유에 기인한다. 1714년의 자치권 상실, 그리고 1939년 프랑코 집권 이후 약 40년간에 걸친 중앙정부로부터의 탄압의 역사에 대한 반발과 이에 대한 보상 심리가 역사적인 배경이라면, 카탈루냐가 스페인 경제에 큰 기여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1997년부터 시작된 스페인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았고 자신들이 번 돈으로 다른 지역을 먹여 살린다는 불만이 경제적인 이유다. 2014년부터 거세게 일어난 분리독립 움직임을 이와 같은 두 가지 배경을 잘 설명해준다. 2014년은 1714년 자치권 상실 300년이 되던 해였고, 경제위기의 정점에 달했던 시기였다. 당시 카탈루냐 정치지도자 아르뚜로 마스(Arturo Mas)는 이를 잘 이용했다. 주민들 사이에 잠재돼 있던 독립의 열망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럼 과연 카탈루냐가 독립할 수 있을 것인가? 객관적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어려워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BBC는 카탈루냐 의회가 승인한 카탈루냐 독립선언 다음 날인 10월 28일 분석 기사를 통해 ① 국제사회의 불인정, ② 독립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와 재원의 불충분, ③ 주민들의 분열 등을 카탈루냐 독립을 어렵게 하는 3가지 요인으로 꼽았다. 당사자인 카탈루냐 주민들 역시 독립 획득은 회의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최근 조사에 따르면 66%에 달하는 카탈루냐 주민들이 독립은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난 10월 1일에 있었던 주민투표 이후 금방이라도 이룰 것 같았던 카탈루냐 독립이 이렇게 갑자기 사그라진 것은 한여름 밤에 열린 모닥불 파티로 비유할 수 있겠다. 독립이라는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모닥불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어둠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이 밝아오면서 모닥불은 스러지고 어둠에 싸여있던 주변, 예를 들면, 자치권을 박탈하는 헌법 155조의 적용, 기업 탈출 러시와 같은 것들이 실체를 드러내자 지난여름 내내 펼쳤던 모닥불 파티가 얼마나 감성적인 파티였는지를 알게 됐다.
다가오는 12월 21일에는 새로운 카탈루냐 의회를 구성하는 지방 선거가 실시된다. 독립을 추진했던 카탈루냐 주지사 카를레스 푸지데몬(Carles Puigdemont)과 4명의 정치인들이 벨기에로 도망가 있고, 부지사 오리올 준케라스(Oriol Junqueras) 등 8명의 정치인들이 교도소에 있는 상황에서 실시되는 이상한 선거다. 이번 선거는 그 결과에 따라 독립 추진세력에게 다시 한 번 회생의 기회를 주는 선거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최근 몇 년 동안 스페인의 발목을 잡았던 카탈루냐 독립 움직임을 청산하는 선거가 될 수도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독립 추진으로 발생한 후유증을 치료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카탈루냐 독립 움직임이 한국에는 아무 영향이 없어 보인다. 한국과 멀리 떨어져있기도 하고 한국과는 무관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들과 비즈니스맨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주 3회로 운항을 시작한 대한항공은 주 4회로 증편했고 내년 여름에는 아시아나 항공도 취항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래저래 카탈루냐 사람들과 비즈니스 접촉 기회가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카탈루냐 독립에 관한 것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이는 비단 카탈루냐 사람들뿐만 아니라 타 지역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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