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들녘의 코스모스
한가위 날 고향 선산(先山)으로 성묘 가는 길은 한가롭다. 황금빛으로 물든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그 신작로 양편에는 하늬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낯선 나그네를 반기는, 가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정겨운 모습이다.
그 길로 이어지는 곳에는 회룡포와 삼강주막이 나온다. 볕 좋은 가을날, 두 명소(名所)를 잇는 좁은 산책로를 따라서 걷고 싶다. 강변에는 억새와 수크령이 꽃이 되어 날리고, 들길은 온갖 들꽃이 풍경으로 늘어서 있다. 그 들녘을 지나 강을 건너 한없이 걷고 싶다. 옆에는 동행이 있어도 좋고, 혼자이어도 괜찮다. 주변의 풍광을 흠뻑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들녘에서 가녀린 코스모스꽃을 보지 못하면 가을은 빛을 잃게 된다. 미풍에도 흔들거리는 그토록 연약한 중심을 가진 꽃에 왜 너무나 거대한 중압감의 이름으로 짓누르는지 모르겠다. 그 이름은 우주이고, 질서이며 조화이기 때문이다. 그 우주(cosmos)는 곧 질서(order)이고 조화(harmony) 그 자체이므로 동어반복(同語反覆)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문화에 따라, 이 꽃의 상징 또한, 다양하다. 멕시코에서는 신(神)과 영혼의 상징으로, 그리스에서는 자연과의 조화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종교의식으로, 이슬람에서는 찬란한 천국의 은유와 예술의 모티브로, 불교에서는 명상에 쓰여, 우주와 깨달음의 길로 대표된다. 피타고라스는 우주(Kosmos)를 항성의 신성한 본체라고 생각하여 이 꽃을 조화와 질서의 꽃으로 여겼다.
이뿐 아니라 코스모스의 꽃말은, 아름다움(美, beauty)의 의미로 화장품(cosmetic)이란 말이 파생되었고, 90년대 일본에서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운동(World Kindness Movement)이 추진되었을 때 친절(kindness)로 대표되었으며, 강한 생명력으로서의 자립(Self-Reliance), 8개의 꽃잎은 한계를 탈피하는 속성으로서의 무한성(無限性, Infinity)으로, 그리스에서는 그 꽃의 속성인 복원력, 회복력을 높이 사서 활기(Resilience)의 상징으로 부른다.
한편 이 꽃의 원산지는 멕시코로 국화과에 속한다. 멕시코에서는 ‘Mexican Aster’(별)로 영어로는 ‘Garden Flower’(노지 화초, 露地花草)로, 라틴어 학명은 ‘Cosmos Bipinnatus’라 불린다. 여기서 ‘Bi’는 둘(twice), ‘pinnatus’는 영어로는 ‘pinnate’를 의미하여, 겹(twice) 깃꼴의 잎(갈라진 깃털 잎, divided leaf)을 나타낸다.
이제 남는 것은 꽃잎을 뜻하는 ‘Cosmos’의 유래이다. 16C 스페인 탐험대가 멕시코에서 발견하여 스페인에 소개된 꽃으로, 그 당시 식물학자인 신부가 꽃잎의 아름다운 배열에 매료되어 질서의 꽃을 뜻하는‘Cosmos’라고 칭했다고 한다.
처음 유럽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는 정원의 장식용으로 심어졌으나, 꽃 자체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담장을 뛰쳐나와 들꽃이 되어 가을들녘을 수놓는 친근한 꽃이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 가녀린 꽃잎과 줄기가 미풍에 흔들일 때마다 우주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나 조바심이 난다. 오늘도 꽃마당에 가득 핀 꽃을 보며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생각해 본다.
2023.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