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장,
인애는 마음이 착잡해져온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 퇴원을 시켜 쫒아 버릴 입장이 아니었다.
더구나 싫던 좋든 자신은 그 여자의 딸인 것이다.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었다.
아무리 냉정하게 마음을 먹는다 해도 딸인 자신이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인 것이다.
“아버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인애야!
애비는 모든 것을 네가 결정하는 대로 해 주고 싶구나!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하겠니?“
”..........................“
“집으로 모셔 왔으면 싶네요.”
오정숙이 그들 사이를 끼어들며 말을 한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오.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내 집에 들여올 수 있겠소?
당신에게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사람이오.“
”그래도 그 방법뿐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인애가 직장을 포기하고 몇 달이 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어요?“
”........................“
“인애야!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그렇게 결정을 하도록 하자!
마침 인규도 한 달이면 두어 번 정도만 집에 잠시 다녀갈 뿐이니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냐?“
“어머니!
어머니의 마음은 고맙게 받아드리겠습니다.
허지만 아무도 없는 낮에 어머니께 어떤 횡포를 부릴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우리 가족들이 마음고생 또한 매우 심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요.“
“인애야!
우리가 그 모든 것을 감수하자.
그래야만 너도 그리고 인규가 안다고 해도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 아니냐?
혼자 있다 죽는다면 말을 하지 않아도 네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니?“
”아무리 그래도 우리 집으로는 데려올 수 없는 일이오.“
영우의 마음은 단호하다.
“여보!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씀을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우선 인애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으면 합니다.
인애와 인규를 낳은 생모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감수할 생각으로 남은 생애를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오정숙은 진심을 다해 말을 한다.
영우는 깊은 생각에 빠진다.
밉든 곱든 자신의 자식들을 낳은 여자다.
자식들의 마음을 생각하라는 정숙의 마음이 고맙고 인애의 고통을 생각하니 안 된다는 고집만을 내 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인애야!
네 어머니 말대로 아빠는 네가 그러기 원한다면 허락을 하겠다.“
“아빠!
고맙습니다.
되도록 시간을 만들어 제가 보살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이 은혜 죽어서라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인애야!
그런 마음을 가지지 말아라.
네 마음이 편하고 네가 그러기 원한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난 아무렇지도 않다.
설사 네 엄마의 횡포가 아무리 심하다고 해도 모두 견디어 낼 자신이 있으니 너무 마음 쓸 것은 없다.“
인애는 가만히 정숙의 가슴에 안긴다.
참으로 따뜻하고 정겨운 사람이라는 생각에 인애는 눈물을 흘린다.
자신을 낳아준 생모의 마음이 이렇다면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을 것인가.
인애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다.
“어디 갔다 왔어?”
신우림은 인애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한다.
“집이 어디에요?
이제 퇴원을 해야 할 텐데 집을 알아야 모셔다 드리지요.”
인애는 짐짓 다른 말을 한다.
“집?
내 집이 어디긴 어디야?
너희들이 있고 내 남편이 있는 곳이 내 집이지.“
“이제 그런 억지를 부리지 마세요.
자꾸 그러시면 지금 혼자 살고 있는 집으로 모셔다 드릴 것입니다.“
”인애야!
나 정말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
제발, 이렇게 부탁을 한다.
너하고 함께 있게만 해 다오.“
신우림은 또 다시 혼자 남게 된다는 것이 두렵다.
“그럼 내가 하자는 대로 하겠어요?”
“그래!
무엇이든지 모두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그럼 더 이상 아무런 말썽도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세요.
더 이상 우리 어머니께 말 한마디라도 공손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셔야만 해요.“
”응, 그럴게!“
“그리고 더 이상 우리 아버지를 당신 남편이라고 우기지 마세요.”
“......................”
“그런 약속을 하지 않으신다면 이 병원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나를 아는 척도 하지 마세요.
더 이상 나도, 당신이 죽었다고 해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게!“
신우림은 인애와 그렇게 약속을 하고 퇴원을 한다.
그러나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정숙을 보는 신우림의 눈에는 날카로운 시선이 정숙을 잡아먹을 듯하다.
정숙은 그런 신우림의 눈초리는 외면하고 신우림이 머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 방에서 머물면 됩니다.
이브자리도 새로 손을 봐서 마음에 드실 것입니다.“
”이년아!
내가 이 집에 손님인 줄 알아?
난 엄연히 이 집의 안주인이야!
왜 내가 이 방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야?“
신우림의 음성은 날카롭다.
“지금 무슨 말을 해요?”
인애가 들어오면서 신우림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
신우림은 인애를 보자 움찔하며 놀란다.
“아, 아무것도 아냐!”
“더 이상 그런 말들이 내 귀에 들리는 날이면 그날로 우리 집에서 쫓겨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알았어!
다시는 그런 말도 생각도 하지 않을게!“
”어머닌 나가 계세요.
제가 집에 있는 날은 이 방에 들어오시지 마세요.“
인애는 오정숙을 방에서 나가게 한다.
“인애야!
아빠는?“
“왜요?
아빠를 만나실 생각도 버리세요.
아빠는 절대로 당신을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
인애는 확실하게 못을 박는다.
그러나 신우림은 그런 인애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인애의 말처럼 이곳에 머물고 있고 싶은 마음에 인애의 말을 알아듣는 척을 할 뿐이었다.
인애가 집에 있을 때는 신우림은 매우 조용하다.
인애가 하라는 대로 무엇이든 고분고분 잘 따른다.
그러나 인애도 출근을 하고 영우와 경철이 나가기만 하면 그때부터 온 심술과 말도 되지 않은 어거지로 정숙을 괴롭힌다.
“이게 뭐야?
이것을 나더러 먹으라고?
야 이년아!
너는 남의 서방을 꿰어 차고 온갖 아양을 떨어가며 호강을 하고 있고 난 이 구석진 방구석에 쳐 박아 놓고 먹는 것을 이따위로 줘?“
“아무것이나 먹으면 소화를 시키지 못해요.
부드러운 음식으로 위를 달래고 약을 먹어야지요.“
정숙은 신우림의 앙탈과 욕지거리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내가 무슨 죽을병이라도 걸린 줄 알아?
천만에!
난 누구보다 오래오래 살 자신이 있어!
우리 인애 시집가는 것도 보고 우리 인규 의사 돼서 돈 많이 버는 것도 보면서 아들과 딸 효도를 받을 거야!
네년처럼 지지리 복도 없이 새끼 하나도 없는 팔자하고는 달라!“
“네!
그러셔야지요.
그러려면 이 부드러운 음식으로 속을 채우세요.“
정숙은 음식을 떠서 신우림의 입안에 넣어준다.
그러나 신우림은 그것을 쳐 내어 온 방에 죽을 쏟아 엉망을 만든다.
정숙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방을 치운다.
그리고 말없이 나가 다시 죽을 가지고 들어온다.
밥을 주면 소화를 시키지도 못하고 고생을 하는 신우림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죽이다.
“또 쏟아 버리면 다시는 주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인애가 오면 죽을 쏟아버리고 먹지 않았다고 말을 할 것이고요.“
”내가 언제 쏟아?
네년이 나 주기 싫어서 그런 엉뚱한 말을 지어내고 있으면서....“
”그러니까 어서 얌전하게 받아먹어요.“
신우림은 인애한테 이른다는 소리에 기가 꺾인다.
정숙은 신우림에게 죽을 먹이고 나서 약을 챙겨 먹인다.
“열심히 드시고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세요.
인애가 얼마나 걱정을 하고 마음 아파하는지 아세요?“
”그럼 뭐해?
이 애미를 보고도 애미라고 인정도 하지 않고 부르지도 않는데.....“
“그래도 마음 아파하면서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데요.
근무를 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전화를 해서 무엇을 좀 드셨냐고 묻고 아파하지 않으시냐고 묻곤 해요.“
“........................”
“인애를 생각해서라도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열심히 살아야죠.”
“흥!
인애만 나를 생각하면 뭐해?
서방이란 것이 옛날부터 다른 여자를 품어 안고 새끼를 만들고 있었으니 내가 어떻게 온전한 정신으로 살겠어?
난 지금도 경철이 자식을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혀 져!
나보다 먼저 사랑하던 여자가 있다는 생각만으로............“
”이미 다 지난 일입니다.
지나간 옛일을 가지고 화를 낸다는 것은 자신만 초라하게 만들 뿐이지요.“
정숙은 조용한 음성으로 신우림의 마음을 풀려고 노력을 한다.
신우림은 처음과는 달리 많이 양순해져 있었다.
그것은 인애 때문이기도 했지만 신우림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숙은 온 정성을 다해서 신우림을 보살핀다.
매일 따뜻한 물에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약도 열심히 챙겨 먹이곤 한다.
정숙의 하루는 신우림의 뒷바라지를 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신우림은 그런 정숙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이 바뀌어간다.
모든 투정과 악다구리를 부려도 아무런 불평 없이 다 받아내는 정숙을 보면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드는 것이다.
신우림 역시 정숙이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정숙에게 이렇게 대접을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또한 자식이라고 찾아올 염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혼자 있다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던 것이다.
너무 아파 죽을 것만 같은 통증에도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너무 무섭고 두려웠던 것이다.
어떻게 하던 어떤 억지를 쓰든 반드시 자식들이 있는 곳에 함께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정숙은 신우림의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감지한다.
마음뿐만이 아니라 신우림의 병세 또한 눈에 뜨이게 달라져 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신우림이다.
이제 죽을 넘기는 것조차 힘들어 하고 있는 신우림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인애 또한 그런 생모의 모습에서 한없이 불쌍한 생각이 든다.
“하고 싶으신 일이 없어요?”
“인애야!
나를 용서해 주겠니?“
“이미 모든 것을 잊었어요.
마음 편안하게 가지세요.“
인애는 신우림의 손을 꼭 잡아준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편안한밤 되세요 ..
잘 보고 갑니다
즐독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