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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136)
[불타는 소림]
주하연 말대로 두 사람은 남경을 떠난 이후 대룡호에서 가장 편한 시간을 보냈다. 아니 가장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 게 옳았다. 진사인과 장진이 가져다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선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이틀 뒤 장진과 진사인에게 작별 인사를 한 두 사람은 은밀하게 대룡호를 빠져 나와 어둠을 뚫고 과거 파면신개 거처였다는 포공사를 찾았다. 하지만 만나고자 했던 파면신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개방에서 파문되었다는 소식만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림을 내치더니 이제는 파면신개까지.......”
텅 빈 파면신개의 처소를 쳐다보며 백산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파면신개 악만금. 그가 소운의 의숙이란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평생 동안 개방을 위해 살았다.
방주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거 음모를 밝히기 위해 천무맹으로 들어갔었다. 오늘날 개방이 있게 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그다. 그런데 그마저 파문시켰다니.
사문의 어른까지 내치면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싶었다.
“오빠! 북으로 가요. 이곳에 없으면 아마 명교사에 있을 거예요.”
섬뜩한 살기를 뿌리는 백산의 손을 잡고 주하연은 북으로 길을 잡았다. 파면신개를 처음 만난 곳이 명교사였기 때문이었다. 불공을 드리러 명교사에 갔다가 그곳에서 파면신개를 처음 만났다. 처음엔 어색했던 관계가 그의 등창을 치료해 주면서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나중엔 파면신개가 연락을 취해 와 더 자주 만났던 것이다.
“아마 신개 할아버지는 오빠와 소운 언니의 극락왕생을 빌러 왔었나 봐요. 말해 놓고 보니 이상하네.”
백산을 끌고 가던 주하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옆에 백산을 두고 그의 극락왕생을 빌었다는 말을 하다니.
“백산은 죽었으니 당연한 거야. 우리 경공 펼쳐서 갈까?”
인적이 드문 곳으로 나온 백산은 주하연을 번쩍 안아 품 안으로 당긴 후 지면을 찼다.
파면신개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그의 얼굴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백 살이 넘었을 터인데 얼마나 변했을지, 건강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조급증이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달빛을 받고 달리기를 두 시진, 이윽고 명교사에 도착했다. 하지만 명교사에서도 역시 파면신개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파면신개가 향한 목적지를 알아냈다는 정도였다.
“어제 소림사를 향해 떠났대요.”
“바보 같은 사람., 거길 가서 뭘 어쩌겠다고.”
소림사로 떠났다는 주하연의 말에 백산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어쩔 수 없는 개방인이었다. 아마 개방을 용서해 달라고 빌러 갔을 것이다. 개방으로부터 파문당한 주제에 말이다.
“서두르면 따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하연을 번쩍 안아 든 백산은 하남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벌써 뿌옇게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산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걱정 마라, 소림에 도착할 때까지는 싸울 일이 없을 테니까.”
주하연을 안은 백사의 신형은 새벽을 뚫고 질주했다. 주하연의 말대로 되도록 어둠을 틈타 이동하고, 불필요한 싸움을 최대한 줄일 작정이다. 적어도 소림사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래야 하리라.
두 사람이 소림사로 떠난 뒤 두 시진 후.
아침 공양을 준비 중인 명교사로 백여 마리의 개들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공양 준비에 여념이 없던 승려들은 혼비백산하여 넋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 전 떠났던 두 남녀의 행적을 묻는 차가운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남루한 옷을 걸친 인물, 그는 백산의 살수를 피해 도망쳤던 적성권 이대호였다. 이대호는 천리추종향을 추적하는 도구로 개를 이용했다. 개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제 먹을 것도 없이 구걸하는 거지가 개를 기른다며 무던히도 욕을 먹었다.
하지만 이대호는 개 기르는 걸 그만두지 않았다. 분타원 중, 개를 잡아먹는 자들이 나오면 파문을 시킬 정도로 엄격하게 대했고, 어느덧 무호분타에서 기르던 개는 백여 마리에 달했다.
“악 시주를 찾아왔기에 소림으로 갔다고 했소이다. 그런데 그들은?”
개방 무인임을 알아차린 명교사 주지 자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새벽녘에 느닷없이 찾아 들었던 여인은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아니, 가장 반가운 사람이었다.
왕야가 반역자로 몰렸다고 했을 때 그녀의 생환을 위해 불공을 올렸다. 다행히 부처님이 소원을 들어 주신 것 같아 감사하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억만금의 거처를 물었을 때 곧바로 가르쳐 주었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그녀를 걱정했던 사람은 억만금이었다.
서둘러 쫓아가면 따라 잡을 수 있을 거란 말도 함께 길도 세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그들을 찾는 이가 나타날 줄이야.
“그들은 반역자이자 무림공적이다. 너는 돕지 말아야 할 자들을 도왔다.”
“아미타불! 소승은 몰랐소이다. 그분이 봉선군주님인 줄은 정녕.......”
자원은 눈을 감고 말았다. 사내의 몸에서 지독한 살기가 흘러나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으르렁거리는 개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넌 두 가지 죄를 범했다. 반역자의 딸을 군주라 칭했고, 무림공적을 도왔다. 그 죄에 대한 대가는 죽음이다. 없애라!”
이대호는 부하들을 향해 차갑게 명령하고는 몸을 돌렸다.
“시주, 모르고 한 일이었소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으악!”
자원을 필두로 명교사의 새벽은 처절한 비명 소리로 얼룩졌다. 백여 명의 동료를 잃은 무호분타원들은 이미 야수였다. 조그마한 사찰에서 불심에 정진하고 있던 승려들, 세상사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그들을 향해 가차 없이 도검을 날렸다.
“이곳에 팻말을 세워라! 무림공적을 돕게 되면 이들처럼 된다는 사실을 강호 무림인들에게 알게 하라!”
“존명!”
이대호의 명령을 받은 개방 무인들은 방금 죽인 명교사 승려들의 시체를 한 곳으로 모았다. 그리고 명교사 안쪽에 있는 은행나무를 잘라 커다란 팻말을 만들어 세웠다.
부하들이 팻말을 만드는 광경을 지켜보던 이대호는 재차 고함을 질렀다.
“무림공적이자 반역자인 귀광두와 주하연이 소림사로 향했다. 이 사실을 총타와 무림 전역에 알려라! 나머지는 나를 따른다!”
광포한 고함소리와 함께 백여 명의 개방 무인들은 이대호를 따라 몸을 날렸다. 무호분타를 벗어난 그들이 향하는 곳은 소림사가 있는 하남성이었다.
데엥! 데엥!
아침을 알리는 은은한 종소리가 숭산자락을 타고 울려 퍼진다. 늘 그랬듯 소림은 타종 소리와 함께 깨어나곤 했다.
하지만 금일 아침 타종 소리는 여느 날과 달랐다. 왠지 모를 암울한 기운이 종소리 속에 스미어 있었다. 마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인간의 탄성처럼 구슬픈 건, 이곳이 단지 산사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가공할 살기를 토해내는 이백 문의 불랑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소림은 오늘로 사라진다. 지상에서 영원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천태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속을 가득 메운 병사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소림을 쳐다보고 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허연 입김을 쳐다보던 천태진은 좌우를 향해 낮게 소리쳤다.
“포대는 준비하라!”
“포대는 준비하라!”
천태진의 명령을 받은 장철웅이 고함을 내지르자 길게 늘어선 불랑기 주변의 병사들을 바삐 움직였다. 불랑기는 포탄이 나아가는 모포(母砲)와 장정하는 자포(子砲)로 구성되는데 보통 모포 일 문에 자포 다섯 문이나 아홉 문이 기본으로 되어 있다.
이번에 황군에서 준비한 자포는 아홉 문씩이었다. 자포를 한 번씩만 사용해도 전부 천팔백 발을 쏘게 되는 엄청난 화력인 것이다.
“조준하라!”
“조준하라!”
재차 이어지는 명령에 이백 문에 달하는 불랑기에 자포가 일제히 장착되었다. 그리고 수레의 경사각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불랑기는 삼백 장의 유효사거리로 맞춰졌다.
한편.
산문 밖에서는 황군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림은 조용했다. 아니, 조용한 가운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일렬로 줄을 맞춘 행렬은 여섯 곳으로 나뉘어 길게 이어졌다.
요인이 이끄는 백팔 명의 행렬은 소림사 최심처인 천불전으로 향했고, 지객당의 무장과 백의전의 무오가 이끄는 백팔 명의 행렬은 천왕전으로 이어졌다.
팔대호원 수장인 무성 대사와 사대금강 수장인 무창 대사가 이끄는 백팔 명의 행렬은 미륵전으로 무선과 무청이 이끄는 무리는 장경각으로 향했다. 그리고 각 정에 도착한 그들은 일정한 방위를 점하여 그 자리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 호아실의 절대적인 권위에 대한 소림의 대항은 비폭력이었다. 죄가 없음을, 소림이 반역을 시도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은 그것밖에 없었다.
데엥! 데엥!
모든 승려들이 각자의 위치에 자리하자 장경각 앞 종루에서 황금빛 광채가 솟구쳐 오르더니 범종이 울음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범종을 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요정이었다.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그에 화답하듯 목탁 소리가 울렸다. 각각의 진 앞에 있던 이들, 금빛 가사를 걸친 삼십여 명의 소림 수뇌들 역시 전 내공을 끌어올려 목탁을 두드렸다.
“오만한 강호 무림이여, 이제 너희는 보게 되리라. 황실을 거역한 대가는 멸문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범종 소리와 목탁 소리가 끊이지 않는 소림사를 보며 천태진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비릿한 미소를 문 채 소림사를 쳐다보던 천태진은 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곧이어 그의 검에서 푸른 청광이 흘러나오고 반장 길이의 검강이 솟구쳐 나왔다.
그리고.
천지를 울리는 일갈이 아침을 갈랐다.
“발사하라!”
콰앙! 콰앙! 쾅!
이백 문에 달하는 불랑기가 일제히 불길을 토해 내고, 이백 개에 달하는 검은 포탄은 새벽하늘을 가로질러 소림사로 향했다.
“백팔나한진을 발진하라!”
산문 밖에서 포탄 소리가 들려오자 계율원주 무연은 천둥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觀自在菩薩 行心般若波羅蜜多時)!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高厄)!”
장엄한 반야심경의 독경 소리가 소림의 하늘을 뒤덮었다. 칠백 명 소림 승려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반야심경의 독경 소리는 부처님의 음성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철벽이었다.
과앙! 콰광! 광! 광!
이백 발에 달하는 포탄이 동시에 소림의 각 전각으로 떨어졌다. 건물이 부서지고 여기저기서 불꽃이 확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황금빛 광채를 발하는 여섯 곳의 백팔나한진은 포탄이 뚫지 못했다. 백팔 명의 내공이 하나가 되어 형성된 둥근 반구 안은 부처님의 나라였다.
“발사하라!”
콰콰쾅! 콰콰쾅! 콰콰쾅!
산문 밖에서는 커다란 외침 소리와 함께 불랑기가 두 번째 울음을 토해냈다.
데엥! 데엥!
똑! 똑! 또르르. 똑! 똑! 또르르르르!
범종이 울자 목탁이 울고, 뒤이어 소림이 울었다.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칠백 명이 하나가 되어 지르는 외침 소리는 밖에서 들리는 불랑기의 포효 소리마저 삼켜 버린 듯 숭산을 타고 올랐다. 여섯 개의 백팔나한진에서 황금빛 광채가 폭발적으로 솟구쳐 올랐다. 또다시 십여 곳의 전각 위로 포탄이 떨어져 폭발하고 검붉은 불꽃이 확 피워 올랐다.
일부 내공이 약한 승려들은 입가로 붉은 불꽃처럼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들은 반야심경을 멈추지 않았다. 더더욱 큰 소리로 반야심경을 외쳤고, 부처님을 찾았다. 하늘에서는 불랑기의 포탄이 울부짖는 그 순간, 지하에서는 눈물로 울부짖는 자들이 있었다.
“저희들도 같이 죽게 해 주십시오. 소림을 위해 죽게 해 주십시오!”
방장인 무광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들, 그들은 스스로 비겁자의 길을 택했다고 알려진 십팔나한이었다.
광자는 미칠 지경이었다. 사부의 명령으로 지하 장경각으로 들어왔지만 지난 며칠간은 바늘방석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왜 지하 장경각으로 보냈는지 사부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지하 장경각에 들어가 대기하라고만 했다.
당장이라도 장경각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다른 이들과 같이 하고 싶었다. 마지막을 소림과 같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림 최고의 지존신물인 녹옥불장의 명령. 혀를 깨물고 참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화탄 소리가 작렬하는 지금에서야 사부는 굳은 얼굴로 나타난 것이다. 안타까운 얼굴로 십팔나한을 쳐다보던 무광은 두 주먹을 불끈 틀어쥐었다. 그리고 광자를 비롯한 십팔나한을 향해 나지막이 호통을 내질렀다.
“삶이란 무엇이냐?”
느닷없는 호통에 광자는 흠칫 얼굴을 굳혔다. 지금 순간에 물을 말이 아니었던 탓이다. 선문답을 할 때가 아니질 않는가. 하지만 그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삶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번뇌이옵니다.”
비수처럼 머릿속에 박혀 드는 물음에 광자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광자의 외침에 무광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또 물었다.
“죽음이란 무엇이더냐?”
“새로운 탄생입니다.”
광자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광자의 주먹에서는 피가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부님의 말을 왜 모르랴.
당신은 임무를 내리고 있다. 살아야 한다고 하고 계신다. 당신은 죽음을 향해 가면서 제자에게는 삶을 주고 계신다.
“장경각 안에 보면 백산 사조께서 남기신 광풍무란 책자가 있다. 그걸 석판에 새기는 작업을 해라. 일인당 백여덟 번씩 새기면 그때는 나와도 좋다.”
“사부님!”
광자를 비롯한 십팔나한은 바닥에 머리를 찍으며 절규했다. 삶을 선택하라고 하신다. 소림이 멸망하고 있는데, 자신들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계신다. 어찌 살라고....... 사부가 죽고, 사숙이 죽고, 사조가 죽고, 소림이 죽는데, 어찌 살아가란 말인가.
“죽음이란 무엇이더냐!”
바닥을 향해 머리를 찍는 제자들을 보며 무광은 재차 소리를 질렀다.
“새로운 탄생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옵니다. 새로운 소림을 세우는 것입니다.”
광자를 비롯한 십팔나한은 급기야 혈루를 흘리고 말았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와 눈에서 흐르는 피가 그들의 얼굴을 적시고 가사를 적셨다. 하지만 십팔나한은 바닥에 이마를 찍는 행위르 멈추지 않았다.
“맞다!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소림을 만드는 것이다. 권력과 탐욕에 찌든 소림이 아닌, 진정한 불자의 도량으로 소림을 만들어야 한다.”
“사부님!”
“그리고 이걸 백산 사조님께 전하거라.”
피로 범벅이 된 광자에게 무광은 검은 보자기 하나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제자들의 얼굴을 면면히 쳐다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명심하거라! 백산 사조님이 남기신 광풍무를 새기는 데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곳에는 세상에서 버림받았던 그분의 삶이 들어 있다. 부인을 잃고 자식을 잃고, 소림에서 버림받았던 그분의 인생이 들어 있다. 붉어진 눈으로 세상을 심판해야 했던 그분이 들어 있다.”
“사부님!”
“지금부터 광자를 비롯한 시발나한은 석판 새기는 작업이 끝날 때까지 묵언수행을 명하노라!”
쿵! 쿵! 쿵! 쿵쿵쿵!
바닥에 머리를 찍으며 십팔나한은 마음속으로 사부님을 불렀다. 울지도 못하게 하셨다. 마음속에 새기라도 하려는 듯, 머리를 찍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쳐다보다가 무광은 몸을 돌렸다.
잠시 후.
지하 장경각을 나온 무광이 발을 멈춘 곳은 법고 앞이었다.
“왔느냐!”
건너편 종루에 있던 요정이었다.
무광을 쳐다보는 그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새로운 소림은 만들어질 겁니다, 사숙. 녀석들은 반드시 해낼 겁니다.”
싱긋 미소를 지은 무광은 한편에 놓인 북채를 집어 들었다. 하늘을 검게 물들이며 날아오는 포탄을 힐끔 쳐다보던 무광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폭발적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둥둥! 둥둥둥! 둥둥! 둥둥둥!
그의 양손이 번개처럼 움직이자 법고는 요란한 소리를 토해냈다. 놀랍게도 무광이 치는 법고는 기쁨이었다. 마음속에 있는 신명이 법고를 통해 소림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었다.
데엥! 데엥!
똑! 똑! 또르르르! 똑! 똑! 또르르르!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법고가 울리기 시작하자 승려들의 독경 소리도 더욱 커졌다. 법고 소리에 신이라도 들린 듯 그들의 얼굴엔 환희의 감정이 물결쳤다. 입으로, 코로 피를 넘기고 있건만 얼굴을 찡그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 승려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면 대기하고 있던 다른 승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반야심경을 외며 피를 흘렸다. 내공이 약한 승려들이 쓰러지고 백팔나한진이 와해되었지만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반야심경의 독경은 멈추지 않았다.
콰앙! 콰콰광! 쾅! 콰과광!
둥둥! 둥둥둥! 둥둥! 둥둥둥!
데엥! 데엥!
똑! 또르르르! 똑! 또르르르!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숭산을 찢어발기는 포탄 소리는 저녁 무렵까지 이어졌다. 수백 채의 건물이 있던 소림은 대부분 평지로 변했고 하루 동안 울려 퍼졌던 반야심경의 독경 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둥둥! 둥둥둥! 둥둥! 둥둥둥!
데엥! 데엥!
법고 소리와 종소리만이 폐허가 된 소림사 전역을 감싸 안았다.
“신이 납니다, 사숙! 이렇게 신이 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구나. 네 녀석은 성불을 하고 말았구나. 부처가 되고 말았구나!”
온몸이 피투성이인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내공은 진즉에 고갈되어 버렸다. 생명의 원천인 진원지기를 뽑아 쓴 지도 꽤 되었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북을 치는 무광도, 종을 치는 무정도 알지 못했다.
수많은 소림 제자들이 죽었지만 슬프지 않았다.
아니,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었다. 부처님이여, 보살이여, 우리 소림을 굽어 살피소서.
둥둥! 둥둥둥! 둥둥! 둥둥둥!
데엥! 데엥!
신명나게 북이 울면 그 사이로 종소리가 스며든다. 또다시 하늘을 검게 물들이는 포탄은 누에 들어오지 않는다.
힘으로 치는 종이 아니다. 힘으로 치는 북이 아니다. 절로 움직이고 있다. 양손이 절로 움직이고 있다. 부처님의 힘인 것이다. 칠백 제자들의 힘인 것이다.
“힘이 납니다, 사숙! 온몸에서 힘이 솟습니다!”
“오냐, 이 녀석아! 우리 힘껏 쳐보자! 우리가 치는 종소리가, 우리가 치는 북소리가 극락정토에 닿도록 힘껏 쳐보잔 말이다!”
그러나 힘껏 쳐보자 했던 종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힘껏 쳐보자 했던 북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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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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