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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137)
[망탕산에서 한 고조 유방(劉邦)의 출사표를 보다]
‘귀광두가 소림으로 향했다! 그의 출발지는 안휘성 합비다!’
안휘성 합비로부터 시작된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기연과 영웅의 꿈을 위해 귀광두를 쫓던 무인들은 급거 소림사가 있는 하남으로 방향을 틀었다.
더하여 세력을 갖추고 있는 일부 집단은 합비에서 하남으로 가는 길목인 북쪽과 서북쪽을 차단하며 귀광두의 출현을 기다렸다. 그 대표적인 문파가 중원 무림에서 가장 방대한 조직은 가진 개방과 안휘성 서쪽 천주산에 자리한 남궁세가였다.
“휴우!”
어둠에 잠긴 천주산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남궁세가를 살리는 일이라면 피붙이라도 척결하겠다고 누님에게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갈수록 일은 어려워지고 있다. 귀광두를 잡기 위해 남궁세가를 떠났던 육대신마는 소식이 없고, 귀광두가 소림사로 향했다는 소문만 무성하게 들려왔다. 남궁세가의 최고 고수였던 육대신마마저도 당했다는 말일 터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속 귀광두를 쫓아야 하는가!”
누님이 떠나면서 하는 말이 못내 걸렸다. 광혈지옥비의 주인이고 남궁세가에 혈우창궁검법과 제왕검을 가져온 그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귀광두는 광혈지옥비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귀광두를 상대했던 강호무인들 중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다. 적이라 생각되는 자들은 결코 살려 주지 않았다.
“가주님, 호 방주가 오셨습니다!”
그때 밖에서 수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셔라!”
이내 표정을 바꾼 남궁무는 긴한 손님용으로 개조된 방으로 들어섰다. 비밀 이야기나 은밀한 만남을 가져야 할 때 주로 이용되는 곳으로 세가 내에서도 남궁무만 출입하는 곳이기도 했다.
“어서 오십시오. 방주! 수고가 많습니다.”
내실로 들어서는 호연작을 남궁무는 가벼운 미소로 맞았다. 이번 귀광두 사건으로 인하여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바로 호연작이었다.
“수고랄 게 있습니까.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창밖을 쳐다보며 호연작은 엷게 웃었다.
“소림은.......”
호연작이 자리에 앉자마자 남궁무는 소림의 근황을 물었다.
“당했소이다! 주춧돌 하나 남기지 못했다고 하오. 방장을 비롯한 칠백 승려들은 전부.......”
“나무관세음보살!”
남궁무는 해쓱한 얼굴로 불호를 읊었다. 소림의 멸문이라니. 소림의 멸문에 대해 언급을 하긴 했지만 그 정도까지 강하게 나올 줄은 정녕 생각지 못했다.
“이건 우리들에게 내리는 경고일 뿐입니다. 여차하면 너희들도 소림처럼 될 수 있다는 협박 말입니다. 그리고 동창제독은 우리에게 도망친 승려들을 잡는 데 협조해 달라고 했습니다.”
“허허!”
남궁무는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란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사방이 꽉 막힌 옥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현 상황에서 남궁세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소림을 무림공적으로 선포하겠다고 협박한 것도 부족해 소림을 떠난 승녀들까지 잡으러 다녀야 하다니.
“이게 다 귀광두 때문이오! 그놈만 나타나지 않았으면....... 무호분타원 백 명이 놈에게 당했소이다. 물속에 수장되어 시체도 찾을 수 없게 되었던 말입니다.”
호연작은 분개한 얼굴로 소리쳤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양새가 귀광두가 곁에 있다면 바로 찢어 죽일 것처럼 섬뜩했다. 하지만 남궁무는 호연작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거 아시오? 우린 설 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말이오.”
호연작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남궁무는 한숨처럼 말했다. 귀마겁의 주역으로 삼십 년간 강호의 하늘이 되었던 천붕회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림 멸문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문파를 누가 우러러 볼 것이며, 소림 승려를 잡아들이는 문파를 누가 정파라 하겠는가.
“아니오, 남궁 가주. 일시적인 소낙비일 뿐이오. 이 비가 그치면 천붕회는 다시 예전처럼 될 수 있소이다. 살인마 한 놈 때문에 천붕회가 무너질 수는 없단 말입니다!”
호연작은 단호하게 말했다. 강렬한 눈으로 남궁무를 쳐다보던 호연작은 다시 말을 이었다.
“황실 또한 불타버린 소림사를 저대로 방치하지는 않을 거요. 강호 무림이 잠잠해지면 다시 소림사를 세울 터이고, 그곳은 중으로 채워질 겁니다. 우린 그 시간을 벌어야 하오. 하후장설의 요구를 들어 주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단 말입니다.”
“으음! 알았소이다, 호 방주.”
나직한 신음을 뱉어내며 남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 없다. 가장 빠른 시간에 귀광두 사건을 마무리 짓고 세월이 흐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남궁세가를 살리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일단 남궁세가는 무인을 소림사로 파견해 주십시오.”
“알겠소이다.”
남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호지세(騎虎之勢),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죽지 않기 위해서는 달려야 한다. 설령 호랑기가 달리는 끝에 절벽이 있다 하더라도.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참! 황군의 다음 목표는 무당파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호연작을 배웅하기 위해 일어섰던 남궁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호연작의 마지막 말은 사형선고였다.
“귀광두!”
신음처럼 남궁무는 귀광두를 부르짖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일의 책임은 귀광두에게 있다. 호연작의 말처럼 그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천붕회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어차피 시작된 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남궁무는 출입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길은 한 가지밖에 없는데 그 길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뚫린 길을 따라 가면 그뿐인 것이다.
“시작도 네가 했으니 마무리도 네가 지어야 한다, 귀광두!”
밖으로 나서며 남궁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귀광두는 남궁무만 부르고 있는 건 아니었다. 남궁세가를 나서는 호연작 역시 귀광두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귀광두를 부르는 호연작의 얼굴은 남궁무와는 달랐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보기 힘든 기이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복수를 하겠다며 분노한 자의 얼굴은 결코 아니었다.
“묵안혈마라 했더냐. 난 네놈을 믿는다. 어떻게 살아났는지 모르겠지만 난 묵안혈마 네놈의 생환을 믿는다. 아울러 네놈이 그곳에서 저질렀던 짓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내 가족들의 팔다리를 자르고 빨래 널 듯 나무에 걸쳐두었던 그 일을 말이다.”
놀라운 말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는 백산의 생환을 인정한다고 했고, 그리고 그곳이라 하였다.
“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생존자가 있었다. 그 지옥 속에서 살아난 사람이 말이다. 나 담한(潭恨)이 바로 그다.”
호연작은 자신을 가리켜 담한이라 했다.
담한. 오십 년 전 천신가(天神家)의 가주였던 담운천과 같은 성씨에, 이름자 또한 한스럽다 할 때의 한(恨)이다. 그리고 그는 그곳을 가리켜 지옥이라 하였다.
“아느냐? 북황련 또한 네놈을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는 사실을. 소림사 멸문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단 말이다.”
진득한 살기를 뿌려대던 호연작의 신형이 하남성 방향으로 멀어졌다.
“눈인가? 벌써 겨울이 됐나?”
점점이 떨어지는 눈을 응시하며 위지천악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쿡! 혈삭마령인을 전부 없앨 정도로 강자였다니. 그동안 놈에게 철저히 속았다는 말인데.”
파삭!
쥐고 있던 찻잔이 가루로 흩어졌다. 혈삭마령인의 죽음은 아들인 위지소령이 죽었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혈삭마령인 백 명을 상대로 이길 수 있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가 없다. 북천위지세가에서 키운 혈삭마령인은 그만큼 강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귀광두는 그들을 전부 도륙했다. 아니, 혈사지옥인의 대주이자 북천지옥대 서열 이 위인 반시웅까지 없애버린 것이다. 반시웅의 능력은 북황련을 구성하고 있는 각 가주들보다 한 단계 위가 아니던가.
“광혈지옥비를 가졌다지만....... 결국 얻어야 한다는 말이군.”
“련주님!”
그때 밖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
몸을 돌린 위지천악은 원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여섯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제갈승후를 비롯한 북황련 오대가문 가주들이었다.
“앉게들!”
자리를 권한 위지천악은 시비를 시켜 차를 내오게 했다.
“놈의 정체는 알아보았느냐?”
찻잔과 차주담자가 각자 앞에 놓이자 일행을 둘러보며 위지천악은 말을 꺼냈다.
“네, 련주님! 없습니다. 귀광두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강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희 비서각(秘書閣)에서는 묵안혈마가 죽기 전, 제자를 두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갈승후의 낯빛은 창백했다. 광혈지옥비의 존재가 밝혀지자마자 강호에 깔아두었던 모든 선을 이용하여 귀광두의 정체를 캤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단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광마도 소살우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를 대하는 소림의 태도를 보았을 때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군. 그럼 한 가지만 더. 이제 약관밖에 안 된 녀석이 그렇게 강해진 이유가 뭘까. 내 아들 소령이 죽지 않았다면 그 녀석보다 강할까?”
“광혈지옥비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갈숭후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왜 모를까. 위지천악은 광혈지옥비를 얻고 싶은 것이다. 아니, 자신이라 해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북천위지세가의 소가주였던 위지소령은 북황련의 모든 것을 투자하여 창조된 무인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벌모세수를 시켜 환골탈태하게 하였고, 련에서 가장 강한 무공을 가르쳤음은 물론이고, 어린 시절부터 무공 외에는 한눈을 판 적이 없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위지소령보다 강한 무인은 길러낼 수 없다는 게 위지천악의 결론인 것이다.
결국 비슷한 나이의 귀광두가 혈삭마령인 백여 명을 없앨 정도로 강자가 된 것은 천하제일무공으로 알려진 광혈지옥비 때문이란 말이 된다.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얻어야 하는 매력적인 무기가 바로 광혈지옥비인 것이다.
“대력왕(大力王)께서 수고를 해주셔야겠소. 혈사지옥인을 데리고 가시오.”
“알겠소이다, 련주!”
철혈패씨세가(鐵血覇氏世家) 가주인 패진천(覇震天)이 시원스레 대답했다.
“놈의 이동 경로는 파악했느냐?”
고개를 끄덕인 위지천악은 제갈승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개방 무호분타주인 이대호가 백여 마리의 개를 데리고 망탕산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패 가주는 혈사지옥인을 데리고 안휘성으로 가시오. 신병대는 소림으로 보내도록 하고. 서둘러 주시오. 남천벌에서는 도부각 전원을 출병시켰다고 하오.”
“알겠소이다, 련주!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일행을 향해 포권을 취한 패진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후장설은 어떻게 됐느냐?”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소림을 멸문시킨 것만으로 강호 무림에 충분한 위협이 되었다고 여긴 듯합니다.”
“무당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본 다음 결정하겠다는 말이군. 민심을 걱정하는 모양인데....... 그 일을 우리가 해 주면 어떻겠소?”
고개를 끄덕이던 위지천악은 일행을 보며 물었다.
“우리라면.......”
제갈승후는 깜짝 놀란 얼굴로 위지천악을 쳐다보았다. 무당파. 천붕회에 소원한 관계가 되었다지만 그곳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가진 곳이다. 무당을 없애기 위해서는 적어도 북황련의 전력 이 할은 동원해야 한다. 그런데 그곳을 없애자니. 더구나 그는 우리, 라고 했다.
“남천벌과 합작을 말하는 거다. 무당파를 없애는 건 북황련보다는 남천벌에 더 유리한 일이 아니더냐.”
“좋은 생각입니다, 련주. 그 일은 모용세가에서 맡겠습니다.”
궁왕 모용산정이 눈을 빛내며 말을 받았다. 무당파를 없앨 수 있다면 북황련이나 남천벌은 두 가지를 동시에 얻는다.
우선 천붕회를 유명무실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후장설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게 된다. 북황련과 남천벌에서 일을 하게 되겠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소림을 없앴던 하후장설이 지게 될 터이고, 그의 입지는 훨씬 약해질 것이다.
“그 일 또한 서둘러야 할 거요. 무림의 이목이 귀광두에게 쏠려 있는 지금이 최적기요. 남천벌과 협상은 총사가 맡아서 해라.”
“존명!”
고개를 숙인 제갈승후는 내심 기절할 지경이었다. 천붕회를 없애기 위해 다른 곳도 아니고 가장 호적수라 여기는 적을 끌어들이다니.
물론 그 생각을 해보긴 했다. 현 상황에서 남천벌과의 합작은 많은 이득을 남긴다. 하후장설뿐만 아니라 천붕회 이후로 거의 활동이 없는 마교까지 견제를 할 수 있는 포석으로 이용할 수 있다.
지금은 견원지간처럼 싸우지만 급한 상황에 몰리면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천붕회의 힘을 줄이게 되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는 작전이 무당파 공격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했던 그 생각을 위지천악 또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예전부터 느끼는 바였지만 위지천악은 지장(智將)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다.
“자! 서두릅시다. 귀광두가 소림에 도착하기 전에 죽어 버리면 그나마 얻은 기회도 놓치게 되니까.”
“그럼 먼저 나가 보겠소이다.”
“수고해 주시오.”
모용산정을 필두로 실내에 있던 인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날 밤, 상당수 무인들이 북황련 정문을 빠져나갔다. 그들 속에는 머리를 바싹 밀어버린 혈사지옥인 일백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해가 떠오르면 산은 어지러운 소리로 수선스럽다. 도토리를 찾는 날다람쥐의 사삭거리는 소리, 먹이를 찾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 이름 모를 풀숲에 숨어 울음 우는 풀벌레 소리들로 산은 깨어난다. 살아 있는 대부분의 생명체에게 아침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간인 것이다.
하지만 도망자의 입장에 있어, 타인의 시선을 피해야 하는 이들은 그들처럼 활기차게 움직일 수가 없다. 오히려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들어 몸을 숨겨야 하고, 흔적이 남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사려야 한다.
지금 망탕산(芒湯山)에 들어와 있는 백산과 주하연이 그랬다. 안휘성 북쪽 끝에 있는 망탕산은 원래 하나의 산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서로 가까이 있는 망산과 탕산을 망탕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망산과 탕산은 산이 깊고 골짜기가 많아 도망자가 숨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도망을 칠 때는 사냥을 할 때와는 반대로 움직여야 해.”
언제부터인지 습관처럼 되어 버린 자세. 주하연을 품에 안은 백산은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듯 가만히 눈을 감고 말했다.
“바람과 같이 움직이라는 말이죠? 냄새가 적에게로 흐르지 않도록.”
백산의 말에 주하연은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얼굴은 만개한 꽃을 보는 듯 화사했다. 세인들의 눈을 피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그녀는 활기가 넘쳤다. 대룡호 선실에서 가졌던 백산과의 관계가 그녀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좋았다. 트림을 해도 좋았고, 딸꾹질을 해도 좋았다. 그는 태양이었다.
“맞아, 지금처럼 바람이 계속 안으로 불 때는 거스르지 말고 따르면 돼. 더구나 우리는.......”
“도망치고 있으니까 더더욱 좋지요. 그리고 저 안은 사람이 다니기 힘들 정도로 울창하고.”
주하연은 전면 계곡을 가리켰다. 울창한 수림 때문인지 산은 어두침침했다. 도망자의 입장에서 보면 최적의 장소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계곡일 터였다.
“이제 활만 배우면 사냥해도 되겠다. 한 가지만 주의하면 돼. 우린 사냥꾼이 아니고 무림인이니까 움직일 때도 무림인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대견한 얼굴로 주하연을 보던 백산은 슬쩍 바닥을 찼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무인들을 보았고, 그들을 피해야 했기에 산이라 하여 방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산은 주하연과 자산에게 허락된 유일한 쉼터. 쉬는 시간만큼은 절대로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혈풍뇌전심법을 끌어올린 백산은 계곡 깊숙이 날아 들어갔다. 한 식경 가까이 달렸을까. 두 사람 앞에 미로처럼 보이는 장소가 나타났다. 기이한 곳이었다. 직선으로 길게 이어지던 계곡이 갑자기 꺾여 새로운 계곡을 형성하고, 때로는 곡선으로 휘어진 계곡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계곡 곳곳에 있는 못들은 , 숨고자 한다면 몇 년도 버틸 수 있을 듯했다. 더구나 계곡 위쪽으로는 수많은 동굴들이 뚫려 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백산은 가장 위에 있는 동굴을 향해 몸을 날렸다. 겉보기와는 달리 동굴은 꽤 넓었다. 좌우 폭이 일 장 정도였고, 안쪽에서 바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른 동굴과 연결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음! 신혼집치곤 좀 초라하긴 하지만 쓸 만해요.”
백산의 품을 빠져나온 주하연은 동굴 끝에 서서 밖을 휘둘러보았다. 그가 이곳을 택한 이유를 알 듯했다. 이곳에 서 있자니 계곡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적을 감시하는 데는 최적의 장소였다.
“청소는 안 할 거냐?”
“원래 신혼 때는 신랑이 다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퉁명스런 백산의 목소리에 주하연은 배시시 웃었다.
“그래도 밥은 새색시가 준비해야지.”
“알았어요. 밥이랄 거나 있나, 육포가 전분데.”
입을 삐죽 내밀며 한편에 내려놓은 보퉁이를 풀었다. 육포보다는 싸들고 다니던 옷에 바람이라도 쐬어야 할 것 같았다. 동굴 여기저기 옷가지를 펼쳐 넌 다음 옷을 쌌던 보자기를 활짝 펴서 바닥에 깔자 아담한 보금자리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금 뭐 하세요?”
베개로 쓸 만한 돌을 찾다가 주하연은 화살을 꺼내 손질을 하는 백산을 보며 물었다.
“여기 깃털을 잘 다듬어야 화살이 제대로 날아가거든.”
엉겨 붙은 화살의 깃털을 하나씩 펴며 백산은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비에 젖은 화살 꽁지의 깃털은 엉망으로 엉켜 있었다.
“나도 같이 해요.”
백산 앞으로 다가앉은 주하연은 전통에서 화살을 꺼냈다.
“손으로 살살 털기만 하면 돼!”
“이렇게?”
“잘하네.”
“이게 무슨 일이라고, 잘하고 말고가 있어요. 손으로 탁탁 치면 되는구먼.”
오십 개에 달하는 화살이었지만 두 사람이 정리하자 금방 끝이 났다. 꺼내 놓은 육포를 잘라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바닥에 펼쳐 놓은 보자기 위로 몸을 뉘였다.
“아웅! 좋다!”
고양이처럼 하품을 하며 주하연은 백산의 가슴속으로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
“흐흐흐!”
백산의 가슴을 슬슬 쓰다듬으며 주하연은 묘한 웃음을 흘렸다.
“징그러, 임마!”
“징그럽기는 뭐가 징그러워요. 이제 열여섯 먹은 어린애를 부인으로 삼았으면 춤이라도 춰야지.”
“얘가 어딜?”
주하연의 손이 아래쪽으로 슬금슬금 내려가자 백산은 화들짝 놀라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가만있어 봐요. 남자가 쪼잔하게 왜 그래요. 여긴 우리 둘밖에 없단 말이에요.”
“야!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여자인 네가 할 말이 아니라고!”
“뭘 또 따져요. 어차피 둘밖에 없는데 아무나 하면 어때서. 억울하면 오빠도 날 만지면 되잖아.”
하고 백산의 아랫도리를 더듬으며 주하연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주하연의 미소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컹! 컹컹! 컹!
손을 꼼지락거리는 순간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아는 녀석들이냐?”
일순 표정이 굳어진 주하연의 얼굴을 보며 백산은 나지막이 물었다.
“이대호란 놈이에요. 우리 몸에 천리추종향을 뿌린 모양이네요. 비열한 놈!”
주하연은 미약한 살기를 뿌렸다. 대룡호에서 무인을 선동하여 백산을 곤란하게 하였던 자. 그가 개를 키운다는 사실은 파면신개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개자식! 죽여 버릴 거야.”
저도 모르게 불끈 주먹을 틀어쥐었다.
“욱! 야! 그렇다고 그게 무슨 죄가 있다고.”
백산의 입에서 아픈 신음이 터졌다.
“엥? 미, 미안해요. 괜찮아요?
화들짝 놀란 주하연은 재빨리 손의 힘을 풀었다. 그제야 보니 백산의 그곳을 사정없이 틀어쥐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다 내가 제 명에 못 죽지. 그리고 공주가 돼 가지고 함부로 죽인다는 말하는 거 아니다. 넌 그냥 구경만 하면 돼.”
“피이! 공주는 무슨. 지금이 젤 좋아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다는 듯 주하연은 벌떡 일어났다. 이대호를 생각하면서 은연중에 내공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백산 앞이라 되도록 무공을 쓰지 않았지만 자신 또한 삼 갑자의 공력을 가진 고수가 아닌가.
“괜찮아. 눕기나 해.”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내공을 일으켜 틀어쥐었구먼. 잔말 말고 바지 까 내려 봐요. 의원 말을 들어야지.”
“네가 삼 갑자의 내공을 지녔다면 나는 금강불괴다, 이 녀석아.”
“정말이지? 정말 이상 없는 거지? 확인 안 해도........ 아냐, 확인해 봐야 해. 그게 고장 나면 부인은 평생을 독수공방해야 한다고 했는데.......”
“끄응!”
바짓가랑이를 끄집어 내리는 주하연의 손을 가로막으며 백산은 신음을 내지르고 말았다. 춘서의 폐해를 그녀를 통해 보는 듯했다.
“괜찮다니까. 제발 좀 누워라, 임마!”
별 수 없이 볼멘소리를 하자 그제야 주하연은 미적미적 곁에 와 누웠다. 하지만 여전히 못미더운 듯 아래를 더듬어 보더니 어느 순간 환한 미소를 지었다. 독수공방은 면했다는 얼굴이다.
컹! 컹컹!
“빌어먹을.......”
백산은 나직한 욕설을 뱉어냈다. 멀리서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추적자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의미였다. 백산의 예상대로였다.
그의 뒤를 따르는 자들은 개방 인물뿐만이 아니었다. 무호에서 망탄산까지 오는 무인들이 합세하여 지금은 근 삼백여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이대호가 지금처럼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절정취혼객(切情醉魂客), 개방의 최고 신비라 알려진 그들마저 합세하였던 것이다.
“여긴가!”
상복처럼 검은 옷을 걸인 인물이 눈앞에 망탕산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망탕산 계곡으로 들어간 게 분명합니다.”
이대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겉모습만 보자면 문사라 해도 하등 이상할 것도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절정취혼객의 단주이자, 거지 아닌 거지라고 하여 불개(不?)라 불리는 자였다. 불개를 볼 때마다 이대호는 오금이 저렸다. 말로만 들었을 뿐 절정취혼객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들었던 것보다 더한 강자들이 절정취혼객이었다. 눈앞의 불개를 비롯한 흑개(黑?)로 불리는 이십 명의 절정취혼객은 자신보다 약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들 모두가 측정하기 힘든 공력을 지닌 절대 강자들이었다.
“흠! 귀광두가 장소는 제대로 잡았군. 한 고조 유방이 거병했던 망탕산을 택하다니.”
칼칼한 음성이두 사람의 귓전으로 들려왔다. 뒤이어 두 명이 전면으로 나섰다. 만수존자(萬獸尊子) 노문역(盧文歷)과 만독노조(萬毒老祖) 갈상지(葛相知)란 자였다. 이대호 일행에게 말을 건 자는 어깨에 혈응(血鷹)을 앉히고 다니는 만수존자 노문역이었다.
“사실은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망탕산 계곡은 복잡하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만수존자 말에 이대호는 맞장구를 쳤다.
“별 걱정을 다하는구먼. 귀광두는 한 명일세. 우린 삼백이나 되는 고수들이 있고. 일단 들어가세.”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친 만수존자는 어깨의 혈응을 먼저 날린 후 계곡 안으로 움직였다.
“그 말이 맞네. 그는 벌써 수십 번을 싸웠네. 아무리 강자라 해도 몸이 피곤하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거네. 우리도 들어가지.”
만수존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불개가 절정취혼객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갑시다!”
고개를 끄덕인 이대호는 무인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만수존자와 절정취혼객의 뒤를 따라 삼백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일제히 계곡 안으로 몸을 날렸다.
이대호를 따라왔던 모든 이들이 안쪽으로 들어간 뒤 일 각여 정도 지났을까. 조금 전 무인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일단의 무리들이 귀신같은 신법으로 내려섰다.
“유방의 전설이 서린 곳이라........”
어두침침한 계곡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인물. 일 장에 육박하는 미첨도를 쥐고 있는 대력왕 패진천이었다. 혈사지옥인을 대동하고 북황련을 떠난 그가 드디어 망탕산에 도착한 것이다. 잠시 동안 계곡을 주시하던 패진천과 혈사지옥인 일행은 안쪽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방의 신비라는 절정취혼객 이십 명, 지공의 이단아라는 혈사지옥인 백 명, 그리고 개방 무호분타원을 비롯한 무인 삼백여 명. 거의 오백에 가까운 무인들이 무림공적을 없애고 광혈지옥비를 얻기 위해 망탕산 안으로 들어섰다.
한편.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잠자는 걸 포기한 두 사람은 동굴을 훑어보기로 했다.
“오빠, 이리 와 봐요.”
안쪽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는지 주하연은 백산을 불렀다.
“여기 좀 봐요.”
주하연을 찾아 오 장여를 전진했을까, 그녀는 동굴 벽 한편을 가리켰다.
“나만큼 글을 못 쓰는 놈이 또 있었구먼. 어라? 이건 동굴 지도인 모양이네?”
돌로 새긴 듯 조악하게 새겨진 글을 보며 백산을 빙그레 웃었다. 출사표(出師表) 어쩌고 되어 있는 글은 상당히 조잡한 게, 얼마 전 소림사 지하 장경각에서 자신이 썼던 글처럼 보였다.
그리고 출사표 왼쪽에 새겨진 도형처럼 보이는 복잡한 그림은 각 동굴을 연결한 지도임이 분명했다.
“이건 돌에 새겨서 그런 거야. 오빠보다는 훨씬 잘 쓴 글이라고. 그리고 그건 동굴 지도가 맞아요. 우선 동굴 내부를 먼저 익혀야겠어요. 오빠, 날 안아요.”
기억하려는 듯 몇 번이고 복잡한 선을 쳐다보던 주하연은 백산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백산과 주하연은 바빠 미로 속을 헤집고 다녔다. 자신들만 알아먹을 수 있는 흔적을 이곳저곳에 남기며 탐험하기를 반 시진, 두 사람은 원래의 위치로 돌아왔다.
“기억할 수 있겠냐?”
“지금으로선 구 할 정도. 앞으로 한두 번만 더 가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아 그럼 다시 한 번 가자. 이번에는 하연이 네가 알아서 해라.”
동굴 안쪽으로 재차 몸을 날리며 백산은 말했다. 조금 전에는 두 사람의 머리를 합쳤다. 백산은 동굴 속을 흐르는 바람의 위치를 파악했고, 주하연은 머릿속 기억에 의존하여 길을 찾았다. 두 번째는 처음보다 더욱 빨랐다. 그리고 세 번째.
“이제 됐어요.”
동굴 속 미로를 세 번에 걸쳐 돌고 나서야 대부분 길을 기억했는지 주하연은 백산의 품을 빠져나갔다.
“참! 여기 이 글자 읽을 수 있겠어요?”
갑자기 생각난 듯 주하연은 맨 마지막에 새겨진 두 글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언제부터 물어보자 했는데 동굴 탐험 때문에 늦춰졌던 거였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임마. 유계(劉季)잖아.”
“맞아요, 유계예요. 그럼 유계가 누군지 아세요?”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으며 주하연은 재차 물었다. 하지만 백산은 유계란 이름자를 가진 사람을 알 턱이 없다.
“지금 나 무식하다고 놀리는 거지?”
대뜸 인상을 쓴 백산은 말이 막힐 때마다 상투적으로 써먹는 말을 꺼냈다.
“제가 왜 하늘같은 서방님을 놀려요. 유계에 대해 가르쳐 주려고 그러는 거지. 유계는 한 나라를 세웠던 유방의 본명이에요.”
“유방? 이걸로 나라를 세웠냐?”
유방이란 이름 또한 처음 듣는 말이다. 백산은 주하연의 가슴을 쿡 찌르며 짓궂게 웃었다.
“에이, 그게 아니라니까. 글자가 다르잖아요, 글자가. 유방이란 사람은?”
눈을 흘긴 주하연은 유방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원래 유계는 진시황 능묘 공사의 인부를 호송하던 호송관이었어요, 그런데 호송하던 도중 인부들이 도망치는 사태가 생긴 거예요.”
유계의 일생이 바뀌게 된 사건이었다. 많은 인부들이 도망을 쳐 버리자 목이 떨어질 것을 걱정한 유계는 남은 인부들과 함께 도망을 치고 말았다. 진시황의 추격을 겁낸 유계는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산 속 깊숙이 숨어들었는데, 그곳이 바로 망산과 탕산 사이의 계곡이었다.
“이곳에서 힘을 길러 훗날 한(漢)나라를 세우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이름은 유방으로 바꾸었고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유방이 농사꾼 출신이란 거예요. 농사꾼, 사냥꾼, 어째 비슷하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공주님? 설마 천자문밖에 모르는 나더러 황제가 되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요?”
주하연을 번쩍 안아든 백산은 보자기를 깔아 두었던 곳으로 가며 말했다.
“황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림은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만일 말이에요, 오십 년 전에 오빠랑 도련님들이 무림을 접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하연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백산이 선택한 동굴은 농사꾼에서 한나라라는 절대 국가를 세웠던 유방의 근거지다. 지금 한나라의 시발점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마치 백산과 같이 망탕산으로 들어온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되긴, 백산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서 여태 골골거리고 있을 테고, 어린 요부를 만나지 못했겠지.”
백산은 싱겁게 웃었다. 주하연의 말대로 강호를 접수하고 다스렸더라면 지금과 같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아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비롯한 동생들은 전부가 일자무식, 겨우 이른 석 자 쓸 줄 아는 놈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 설령 누군가 그녀와 같은 말을 했더라도 거절했을 게 분명했다. 자신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직업은 건달이었기에.
“오빤 이제 서른 살이에요. 아니, 관 속에서 잠자던 십 년을 빼면 이제 스물한 살이라고요. 뭔가를 꿈꿀 수 있는 나이라는 거지요. 글은 배우면 되는 거고, 다스리는 건 오빠가 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을 부리는 거지요. 황제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이 나라를 혼자서는 다스릴 수 없잖아요.”
백산의 심드렁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주하연의 얼굴은 심각했다. 반역자의 딸이 된 마당에 어쩌면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무런 잘못도 없이 이렇게 도망치는 게 너무 억울하잖아요! 난 그렇다 쳐도 오빠는 무슨 잘못을 했어요? 무림인들에게 밥을 달랬어요, 아니면 돈을 달랬어요! 가만있는 사람을 죽이겠다고 달려들더니 이제는 무림공적으로 선포했잖아요. 억울해요! 억울해서 미치겠단 말이에요. 반역자의 딸이라서 제가 짐이 된다면 떠날게요.”
급기야 주하연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연아!”
백산은 주하연을 와락 껴안았다.
“약속하세요.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알았어, 녀석아. 기회가 생기면 무림 황제가 돼 볼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하연을 달래기 위해 하는 말일 뿐이다. 예정대로 소림에 들렀다가 남쪽으로 길을 잡을 터이고, 가능하면 다시는 무림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두 여인과 같이 평생을 그곳에서 살기로 예전에 결심했고,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끼야악!
“저런, 빌어먹을 까마귀 새끼!”
“헉! 혈응? 오빠, 짐 챙겨야겠어요. 적이에요.”
얼굴이 굳어진 주하연은 백산의 품에서 빠져나와 주변에 널어두었던 옷을 걷어 보자기를 여몄다.
“오빠?”
“벌써 도망쳤다.”
주하연이 건넨 활을 받아든 백산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요.”
짐을 챙긴 주하연은 백산의 손을 이끌고 안쪽으로 향했다.
“오빠, 저거!”
“알았다.”
주하연이 가리킨 벽면을 향해 슬쩍 손을 저었다. 각 동굴을 표시하는 지도를 없앤 두 사람은 호수에 잠기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백산과 주하연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일단의 무리가 동굴 안으로 뛰어들었다. 혈응을 뒤쫓아 왔던 만수존재와 절정취혼객이었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소이다.”
검은 어둠으로 들어찬 동굴 안쪽을 보며 만수존자는 낮게 말했다.
“굴 안으로 피했다!”
불개는 피식 미소를 흘렸다. 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이 굴 안으로 몸을 피하다니, 내심 어이가 없었다.
“이대호!”
“부르셨습니까!”
“개를 풀어라! 나머진 밖에서 대기하고.”
“알겠습니다.”
잠시 후, 백산과 주하연이 머물렀던 동굴 안으로 개가 운반되어 왔다. 그리고 개들의 코에 천을 들이대며 냄새를 기억하게 한 이대호는 짤막하게 고함을 질렀다.
“놈의 위치를 찾아라! 가라!”
컹! 컹컹컹!
이대호의 명령에 개들은 일제히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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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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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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