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최고의 미덕 중 하나가 ‘은혜’이다. 은혜롭게, 만장일치로 의사 결정이 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꼽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은혜롭게 좋은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되면 좋지만, 교회가 나쁜 방향으로 만장일치가 된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가 자칫 잘못하면 파시즘처럼 개인의 목소리는 묻히고 거대한 권력으로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것도 자칫 집단오류에 빠질 수 있다.
또한, 교회의 방향이나 의사결정에 무관심한 성도들도 문제이다.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되고 토론과 합의를 통해서 가야 한다. 문제를 목회자의 문제로만 탓할 수 없다. 거기에는 무관심하고 무지한 성도들의 잘못도 있다. 무조건 교회의 방향과 담임목사의 결정에만 순종하는 것이 미덕으로 되어 있으니 점점 더 자신들의 지성과 영성의 스위치를 끄고 교회에 가다 보니 사유를 할 수 없는, 안 하는 성도들이 양산되고 있다.
마틴 루터가 거대한 종교권력에 반박하지 않았다면 종교개혁과 개신교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마는 의심하는 믿음 없는 제자로 많은 목사님이 설교하지만, 그는 의심을 통해서 진정 예수님을 만나고 진정한 제자로 거듭난 훌륭한 제자이다.
의심과 질문을 하지 않는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도 자라기 쉽지 않다. 질문을 통해서 지속해서 사유하고 이것이 본인의 신앙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무조건 믿음으로 은혜로 믿으라는 방식은 예전에 교육 못 받고 살기 어려웠던 구시대적 발상이다.
요즘 기업들은 ESG 경영을 도입한다. 사회적(Social), 환경적 (Environmental) 책임을 다하고 지배구조 (Governance)도 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투명한 의사결정과 윤리경영에 힘쓰고 있다.
교회도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 총체적 복음의 구성요소라면 투명한 지배구조도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과 윤리적 경영, 섬기는 지도력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되어도 지배구조나 의사결정 구조는 세상보다 뒤떨어지는 현실이다.
건강한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같이 만들어 가는 교회여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도 영성과 신학이 있어야 한다. 목회자들에게 자신의 영적 생활, 아니 삶의 전체를 맡겨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에 목회자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삶을 헤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려면 삶의 여러 방면에서 영적/신학적 소양이 있는 성도들과 같이 고민하고 교회의 방향과 삶의 대안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요즘은 선악이 불분명한 시대다.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 모르는 시대이다. 나라 간에 그렇고 정치적으로 그렇고 주변에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지와 무관심이 악이 될 수도 있다. 2차 대전시에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했던 충실하고 순하게 생긴 아이히만을 보라. 그냥 생각 없이 자기 일을 한 것뿐이다. 노예로 살 것인가 예수님 제자로 살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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