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 of The World
June 7, 2012 / Vol.22
할리우드 한가운데에 손바닥을 남기게 될 남자. 이병헌이 아시아 배우로선 최초로 할리우드 명예의 광장에 핸드프린팅을 한다. 그는 이에 대한 감회를 말하기에 앞서 장시간의 부연 설명을 필요로 했다.
에디터 김나랑, 오주연 포토그래퍼 김영준
화이트 셔츠 Simon Sourr by 주느세콰. 그레이 팬츠 우영미.
레이스업 슈즈 체사레 파치오티. 옐로 프레임 선글라스 그라픽 플라스틱.
화이트 셔츠 Simon Sourr by 주느세콰. 선글라스 그라픽 플라스틱. 스트로 해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핸드프린팅 소식을 극비로 해달라기에
얼마나 대단한 거냐고 물었죠.
맨스차이니스 극장 앞 명예의 광장은 평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선정 과정이 엄청 까다롭대요. 믿기지 않는 일이었죠.”
이병헌을 위한 케이터링은 달라야지 싶었다. 그의 복근을 위해 닭가슴살 샐러드와 과일들을 촬영장 한편에 늘어놓았다. 꽤나 진중하게 케이터링 테이블을 훑어보던 그가 손댄 메뉴는 예상외로 빵이었다. “어느 집 빵이에요?”라면서 그는 다음 컷 촬영으로 넘어갈 때마다 열심히 베어 먹었다. “병헌 씨는 부드러운 빵을 좋아합니다”란 매니저의 귀띔이 헛말이 아니었다. 그러곤 이내 출출하다며 근처 식당에서 6천원짜리 백반을 주문했다. 1만원을 내고 거스름돈 4천원을 받는 매니저를 보며 월드 스타도 백반을 먹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했고, 더불어 그의 복근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촬영이 끝나고 가진 둘만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빵 한 접시를 가져다 힘차게 먹었다. 닭가슴살로 연명하는 이병헌식 몸짱 추종자들이 기함할 일 아닌가. “식단 조절 안 한 지 꽤 됐어요. 원래 몸 만드는 데 목매달지 않는 편인데, 미디어가 재미있게 꾸민 것 같아요. 음식도, 운동도 심하게 치우치면 부작용이 생겨요. 정도를 지켜야죠.”
우리 앞에서 백반을 시켜 먹은 이 남자는 오는 6월 23일 할리우드 맨스차이니스 극장 앞 명예의 광장에 핸드프린팅과 풋프린팅을 새긴다. 배우 안성기와 함께 아시아 배우로서는 최초이며, 아시아인으로는 오우삼 감독 다음이다. 이것이 어떤 대우인지에 대해서는 그조차도 확인해야 했다. “<지.아이.조 2>를 찍을 때 소식을 들었어요. 극비로 해달라기에 얼마나 대단한 거냐고 물었죠. 할리우드 블러버드에 별 모양으로 늘어선 핸드프린팅은 인기 스타들이 대부분 참여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맨스차이니스 극장 앞 명예의 광장은 평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선정 과정이 엄청 까다롭대요. 믿기지 않는 일이었죠.” 그는 이것의 감회를 말하기 위해 “질문 하나 했는데 답변이 기네요” 했을 정도로 오래 인생을 훑어 내려갔다. 그 대단원의 시작은 “난 늘 꿈이 없었어요”다. 고등학교 시절, 다들 어엿한 꿈 하나씩은 써 내던 때 이병헌은 그렇지 못한 자신에게 열등감까지 느꼈다. 단순히 멋져 보인다는 이유로 불문과에 진학했고, 대학교 1학년 때 어쩌다 보니 공채 탤런트에 합격했다. 아주 잠깐 감독이 되어볼까 했을 뿐 그때도 그는 별다른 목표나 꿈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체크 재킷, 티셔츠 모두 닐 바렛. 행커치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편에 이어 <지.아이.조 2>까지 찍자 할리우드에 제대로 진출한 몇 안 되는 배우,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는 배우라는 기사들이 쏟아지더군요. 어라, 이때부터 꿈이 생기는 거예요.
후배들을 위해 내 세대에서 해야 할 일이 있구나 싶었죠.”
“미쳐야만, 열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직업인데, 난 그렇지 못했죠. 배우 일을 1년 정도 하니 사람들이 TV에 나오는 나를 알아봐 주고, 연기도 제법 한다고 칭찬해 주더군요. 그때부터 이 일을 어설프지 않게 제대로 해보고 싶었죠. 이것이 내 배우의 시작점이에요.” 그 후 이병헌은 일명 ‘실패 없는 배우’로 살아간다. 전반기는 청춘 스타로, 그 후엔 초콜릿 케이크를 먹는 오프닝 신 하나로도 영화 <달콤한 인생>의 새드 엔딩을 예견케 하는 연기파 배우로. 하지만 그는 여전히 꿈을 묻는 인터뷰 때마다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인터뷰마다 향후 5년, 10년 후엔 무엇을 할 것 같냐고 묻곤 하죠. 내가 사업가라면 구체적인 계획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배우는 설사 꿈이 있을지라도 계획을 세우긴 힘들죠. 난 심지어 꿈조차 없었거든요. 막연하게 지금처럼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 있었음 좋겠다 했죠. 그때마다 사람들은 소박하다면서 웃었어요. 영원한 톱은 없기에 이런 위치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고들 하는 말이죠.” 그는 이렇게 20여 분간 꿈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드디어 꿈의 발아를 얘기한 건 <지. 아이. 조 2>를 찍으면서부터다.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을 찍고 사람들이 월드 스타네, 한류 스타네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원래 내가 그래요. 영화 홍보할 때도 ‘우리 영화 안 보면 후회해요’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보고 재미없으면 어떻게 해요? 그냥 난 조용히 내 일을 하고, 쓱 보여드리고, 그것이 성과를 보이면 좋은 거죠. 1편에 이어 <지.아이.조 2>까지 찍자 할리우드에 제대로 진출한 몇 안 되는 배우,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는 배우라는 기사들이 쏟아지더군요. 어라, 이때부터 꿈이 생기는 거예요. 후배들을 위해 내 세대에서 해야 할 일이 있구나 싶었죠.” 그리고 그는 얼마 되지 않아 맨스차이니스 극장에서의 핸드프린팅이라는 꿈의 현실화를 목격한다. “할리우드 진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줄 수 있겠구나 싶어 뿌듯했죠. 꿈이 너무 빨리 이뤄져서 정신 없어요.” 이병헌은 이즈음 꾸게 되었다는 또 하나의 꿈에 대해선 끝내 입을 다물었다.
데님 셔츠, 청명한 블루 슈트 모두 보테가 베네타. 레이스업 슈즈 체사레 파치오티.
대부분의 배우들이 종착지로 꿈꾸는 할리우드. 이병헌은 반대로 그곳에서 꿈을 선물받은 셈이다. 물론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을 찍을 때만 해도 할리우드 입성이 옳은지 혼란을 겪었다. 스톰 쉐도우란 역을 하기 위해 화이트 올인원 복장을 하고 거울 앞에 섰을 때가 그랬다. 그는 ‘캔슬’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한국에서 잘하고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무슨 바보짓인가 싶었죠. 할리우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닌, 무술과 검싸움, 발차기 같은 퍼포먼스를 원했어요. 촬영 내내 태릉 선수촌에 와 있는 것 같았어요. 운동하고 식단 조절하고, 그게 다였죠. 사람이 극도로 단순해져서 같은 식자재로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요리할까만 생각했죠.” 다행히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은 흥행했고, 관계자들은 아시아 티켓이 이병헌에 의해 좌우됨을 깨달았다. 그렇게 <지.아이.조 2> 촬영 때는 스태프들이 그의 트레일러를 찾는 일이 잦아졌고, “병헌, 뭐 필요한 거 없어? 지난번 신 굉장히 좋았어” 같은 공치사도 익숙한 일이 됐다. “입김이 굉장히 세졌달까요. 한국에선 현장 편집을 배우가 확인하지만, 할리우드에선 스태프끼리만 돌려 보죠. 한 번은 프로듀서가 DVD 플레이어를 굳이 설치해서 현장 편집을 보여주더군요. ‘이거 굉장한 특별 대우야’ 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확 바뀐 태도가 무섭기도 해요.”
그는 현재 할리우드에서의 세 번째 영화로 <레드 2>의 출연을 결정했다.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앤서니 홉킨스 등 ‘미친 캐스팅’이 이뤄졌다는 영화 포스터에 그의 이름은 네 번째로 올라와 있다. “<지.아이.조> 같은 액션은 내 전공 분야가 아닌 반면, <레드 2> 같은 블랙 코미디는 시나리오를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요.” 아마 <레드 2>에선 ‘하느님이 내게 주신 기프트’라는 그의 영어 감각을 더 자주 볼 수 있게 될 거다. 이병헌은 브루스 윌리스니, 할리우드니, 월드 투어니 하는 세계적인 단어들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도대체 이런 얘기를 어느 한국 배우와 나눌 수 있겠는가. 그런 이병헌의 촬영 당일 스케줄은 살갑게도 순천행이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을 하기 위해서다. 이는 동화 『왕자와 거지』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광해군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천민 하선이 가짜 왕 역할을 한다는 사극이다. 물론 이병헌이 광해군과 하선의 1인 2역을 연기한다. “이건 1인 3역, 4역이에요. 광해군과 천민 하선, 그리고 천민인데 왕을 흉내 내려는 하선, 그러다 진짜 다른 인물로 변하는 하선을 연기해야 하죠. 감정선을 맞추기가 힘들어요. 또 코믹한 상황을 연기한 지 오래되기도 했고요.”
이병헌은 세계를 돌고 돌아 한국에서의 촬영까지 숨막히게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 즈음 빵도 바닥을 보였다. 그는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따며 배웠다는 커피를 함께 마시지 못해 아쉬워했다. 원두를 사지 못해 커피를 내려오지 못했다면서. 그는 아마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을 끝내고 돌아오면, 드립 커피 한 잔을 내려 가장 좋아한다는 ‘홈시어터 방’에 들어설 거다. “홈시어터로 영화 혹은 TV 프로그램을 보며 커피나 와인을 홀짝이곤 해요. 세상과의 차단을 즐기죠.” 세계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그가 유일하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다. 그리고 6월 23일, 그는 도넛 광고에서 보았던 이병헌식 미소를 지으며 할리우드 중심가에 손바닥을 찍을 거다. 그럼 난 백반을 시켜 먹던 그를 상기하며 기분 좋은 이질감에 따라 웃을지도 모르겠다.
니트 톱 우영미. 라이닝 팬츠 Alexis Mabille by 무이.
첫댓글 헐 진짜 병헌님은 갈수록 젊어지시는 듯 ㄷㄷㄷ
정말 맞아요 ~~~
마지막 사진은 진짜... 미소년인 줄 알았어요.
말씀 대로이네요. 우리 배우는 도대체 몇살인가요?
이 화보 때문에 정말...아침부터 일이 손에 안잡혀요 T_T 너무 멋져요.. 흑
광해군의 모습과 대단하게 다르고 역시 1000의 얼굴을 가지는 꿀님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