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무(139)

[눈동자]

광풍무(139)

[지옥으로 들어온 걸 환영한다!]







본격적인 겨울이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호 무림은 꽁꽁 얼어붙었다. 한 문파의 멸문에 대한 소문 때문이었다.

천 년 전 창건되어 달마선사를 비롯한 수많은 명승들을 배출한 곳. 중원인 정신적 지주로 불렸던 소림사의 멸문 소식은 빠르게 중원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천 년 세월이 지상에서 사라진 시간은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황실의 공격에 그들은 대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수천 발의 포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그들은 불경을 외며 죽어 갔다고 했다.

강호 무림에는 의견이 분분했다.
소림이 천붕회를 떠날 때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소림사를 멸문시킨 황실의 조치는 너무 심했다고 하는 자들도 있었다.

의견이 분분한 그들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소림의 멸문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 의견을 같이했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지 나지 않아 두 번째 소문을 접했다.

소림 멸문의 원인을 제공했고 무림공적으로 선포된 귀광두가 무림인들을 도륙하며 북상 중이라는 소문이었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불탄 잔해밖에 남지 않은 소림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망탕산 동굴 속에서 혈전을 치르고 있는 백산은 소림사의 멸문을 알지 못했다. 강호 소식을 듣기에는 달려드는 적이 너무 많았다.

우두둑!

어둠 속에서 뼈가 부서지는 나직한 소성이 들려왔다.

“백!”

그리고 앳된 음성이 뒤를 따랐다.

“이제 개는 전부 처리한 것 같은데.......”

상단전을 열어 사방을 살피던 백산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줄기차게 들려오던 헐떡이는 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천리추종향은 더 이상 약점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깝다! 몸 약한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보신젠데.”

“너......! 개고기도 먹냐?”

백산은 놀란 얼굴로 주하연을 보며 물었다. 말술을 마시는 주당에 이제는 개고기까지, 왕부의 금지옥엽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즐긴 정도는 아니고 신개 할아버지와 가끔 한 마리씩 잡아먹었지, 뭐. 몸 약한 사람들에게는 개고기 이상 가는 게 없잖아. 약으로 먹었지, 뭐. 정말이라니까!”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백산의 시선을 피하며 주하연은 얼버무렸다.

“너 저번에 술도 약으로 먹었다고 하지 않았냐?”

“술도 약이고 개고기도 약이지, 뭐. 오빤 만두를 약으로 먹었잖아.”

“약이라면서 이 침은 뭐냐?”

“침....... 죽을래?”

화들짝 놀라며 턱을 쓰다듬던 주하연은 눈을 치뜨며 백산의 가슴을 쳤다.

“읏차! 어디로 갈까?”

농담처럼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백산은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얼마나 깊은 곳까지 들어왔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주하연이 가리키는 곳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오른쪽으로 가요.”

“왼쪽으로 가면 어디로 나오지?”

주하연이 가리켰던 동굴로 들어가려던 백산은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아마 지면에 붙은 동굴이 나올 거예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백산은 왼쪽으로 나 있는 동굴을 향해 걸었다.

“사냥하려고?”

“사냥개를 없앴으니까 그 다음은 당연히 주인이지. 그래야 순서가 맞잖아.”

백산의 몸에서 스멀스멀 살기가 풍겨 나왔다.

“그래야 할까 봐요. 연기가 점점 많아지는 걸 보면 불을 많이 피운 모양이에요.”

안개처럼 바람을 타고 흐르는 연기를 쳐다보며 주하연은 백산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참! 머리에서 냄새 안 나요?”

“냄새? 아주 심하게 나네.”

“정말? 미안해요. 씻어야 하는데........”

깜짝 놀란 주하연은 울 듯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향기가 나.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는 사랑의 향기.”

“피이!”

“정말이야, 임마. 향기는 애명환과 같은 거야. 사랑이 식으면 애명환이 울지 않는 것처럼, 사랑이 식으면 향기도 나지 않는 법이야.”

“그건 맞는 것 같아. 오빠 몸에서도 따뜻한 향기가 나는 걸 보면.”

백산의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주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다. 둘은 벌써 삼 일간이나 씻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에서 역한 냄새 같은 건 맡을 수가 없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냄새는 그가 옆에 있다는 증표다. 그 냄새를 맡지 못하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해진다. 백산이 말하는 사랑의 냄새이리라.

“많이 들어와 있나 보네.”

조금씩 동굴이 밝아지자 이곳저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가만히 맥궁을 풀어 내린 백산은 시위를 걸었다.


한편.
동굴 안으로 들어섰던 불개 일행은 곤혹스런 얼굴로 어둠을 주시했다. 밖에서 볼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절벽에 면하여 하나씩 뚫려 있을 뿐 모두가 연결된 통로였다. 자칫 잘못하여 길이라도 잃게 되면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연기를 피웠다. 동굴 안에 숨어 있는 놈을 뛰쳐나오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피운 불이 아니었다. 공기의 흐름을 타고 흐르는 연기를 역으로 따라가다 보면 밖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불을 피운 것이다.

“여기도 죽어 있군.”

발치에 걸린 개를 보며 불개는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몇 마리째인지 모른다. 움직이는 곳마다 개가 죽어 있고, 지금은 개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백 마리에 달했던 모든 개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시체를 쫓아가다 보면 네놈과 마주치게 될 터!”

불개는 뒤를 흘끔 쳐다보았다. 길게 이어진 불빛이 보였다. 개 시체를 따라 화섭자를 든 개방 무인을 배치했다. 지금처럼 계속하여 무인들을 배치한다면 귀광두는 점점 활동 영역이 좁혀질 터이고 결국 어느 동굴 한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가자!”

화섭자를 전면으로 던져 죽어 있는 개 한 마리를 발견한 불개는 뒤따르는 절정취혼객들을 향해 소리쳤다.

“불을 계속 피워라! 나무를 잘라 와라!”

십여 개의 동굴 안에서 활활 타는 불길을 쳐다보며 고함을 내지르는 인물, 그는 개를 몰고 왔던 이대호였다.

“자네는 입으로 귀광두를 잡을 셈인가?”

멀리서 지켜보던 만독노조 갈상지가 언짢은 얼굴로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개가 죽자마자 동굴을 뛰쳐나와 다른 무인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녀석을 보고 있자니 기회주의자의 표본을 보는 듯 했다.

“개방의 신비라는 절정취혼객이 들어갔는데 저까지 나설 필요가 없지요. 조만간 놈이 잡힐 겁니다.”

“그럼 우린 여기서 구경만 해야 한다는 말이군. 자네 명령에 따라 나무를 베어 오면서.......”

“그렇다고 저곳으로 들어갈 것은 아니질 않습니까?”

오십여 개에 달하는 동굴을 가리키며 이대호는 비릿하게 웃었다. 겁이 나서 이곳에 머물고 있는 그가 아닌가. 그런 자가 절정취혼객을 질투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이건 어떻겠나. 불을 피울 게 아니라 동굴 입구를 한두 개만 남겨두는 건 말이네.”

“설마.......!”

“그 설마가 맞다, 애송이. 앞으로 내 앞에서 잘난 척하지 마라, 역겨우니까. 시작합시다!”

이대호의 볼을 툭툭 친 갈상지는 뒤편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무인들은 동굴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잠시 후.
커다란 폭음과 함께 수십 개에 달하는 동굴 입구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입구는 세 개만 있으면 된다, 이대호. 놈이 나올 곳도 세 곳, 우리가 들어갈 곳도 세 곳 말이다.”

“준비합시다!”

이대호를 빤히 쳐다보던 갈상지는 무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며 고함을 질렀다.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연기는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들어간 절정취혼객들은 소식이 없다. 그들에게 광혈지옥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병신 새끼! 어쭙잖은 실력으로 들어가면 전부 죽는단 말이다 자식아. 기다려야 기회가 온단 말이다. 기다리면........”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이십여 장 떨어진 동굴에서 이편을 쳐다보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지면아래 푹 꺼진 그곳에서 백산은 이대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대호!”

두 손을 불끈 틀어쥐고 있는 이대호의 이름을 백산은 짓씹듯 불렀다. 그리고 시위를 먹인 맥궁을 힘차가 당겼다.

“어둠과 함께 죽음이 시작된다.”

퉁!

맥궁이 토해 내는 맑은 소리와 함께 진득한 살기를 머금은 화살이 빛살처럼 날았다.

“허억!”

좌측에서 다가오는 살기에 고개를 돌렸던 이대호는 다급한 비명을 질렀다.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살기, 피할 공간도 여유도 주지 않고 날아오는 그것은 화살이 분명했다.

귀광두가 왼쪽에 있다고 소리를 지를 새도 없이 전 내공을 끌어올려 전면으로 쌍장을 휘둘렀다.

그러나.

“컥!”

가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이대호는 나직한 비명을 내질렀다. 고개를 숙여 가슴을 쳐다보았다. 부르르 떨고 있는 깃털이 눈에 들어왔다.

“빌어먹을........”

[맞아, 빌어먹을 세상이야!]

이대호가 들은 건 이십 장 떨어진 동굴에서 들려온 천리전음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화살이 더 날아왔다.

쉬익!

미약한 소성을 흘리는 화살의 목적지는 이대호의 이마였다.

“크아악!”

“놈이다! 귀광두가 나타났다!”

이대호의 비명 소리에 화들짝 놀란 무인들이 고함을 지르며 분분히 몸을 피했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전방에 보이는 은폐물을 찾아 몸을 숨기며 화살이 날아왔던 동굴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었다.

“의미 없는 짓!”

나무 뒤로 몸을 숨기는 자들을 보며 백산을 비릿하게 웃었다.

“여기요!”

주하연이 건네는 화살을 받아든 백산은 빠르게 세 대의 화살을 연사했다. 그가 겨냥했던 곳은 갈지자로 움직이는 자와, 나무 뒤에 숨어 기회를 엿보는 자, 그리고 나무위로 올라간 자였다.

“컥!”
“아악!”
“으윽!”

몸을 숨겼다고 생각해서 마음을 놓은 게 실수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화살은 그들의 일천한 실력으로 결코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맥궁은 연신 맑은 소리를 질러댔고, 동굴을 향해 나가가던 무인들은 픽픽 쓰러졌다. 어쩌다 화살을 먼저 발견한 자들은 막아보기 위해 검과 도를 휘둘러보았지만 의미가 없었다.

강한 힘을 동반한 화살은 잘리지도 않았고, 방향을 바꾸지도 않았다. 처음 겨냥했던 곳을 향해 무자비하게 박혀 들었다. 그리고 화살의 종착지는 어김없이 무림인들이었다.

하지만, 한 손으로 수십 개의 손을 당할 수는 없는 법. 동료들의 죽음을 뒤로하고 동굴로 접근을 시도한 무인들은 어느새 절벽 아래에 도착해 있었다.

“도망쳤소이다! 들어갑시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동굴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귀광두가 없다는 말에 고무된 무인들은 일제히 동굴 안으로 뛰어들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선 무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다.

“몇 명 정도 될 것 같냐?”

일순 허공이 일렁이는 듯하더니 주하연을 안은 백산의 모습이 나타났다. 백산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환영미로진이었다.

“백여 명 정도 들어갔어요.”

“그래? 좋군!”

고개를 끄덕인 백산은 동굴 천장을 향해 붉은 기운을 천천히 쏘아 올렸다.

그르릉! 꽈앙!

그러자 동굴 천장에 금이 쩍쩍 가는 듯하더니 급기야 무너지기 시작했다.
“개방 놈들하고 맞닥뜨릴 수 있는 곳을 생각해 봐라!”

막혀 버린 동굴을 흘끔 쳐다보던 백산은 다른 통로로 이동하며 주하연에게 물었다.

“어떨 때 보면 오빠가 무서워요.”

백산의 의도를 알아차린 주하연은 놀란 듯 눈을 끔벅였다. 지금 동굴 안은 어둠과 연기로 인하여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상태. 더구나 무인들은 대부분의 동굴을 무너뜨려 버렸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같이 왔던 동료들이 자꾸 죽어나간다면, 무인들은 점점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고, 급기야 이성을 잃은 자도 생겨날 것이다. 그는 자멸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난 밤이 더 무서워, 임마.”

“밤이 왜?”

“팔십 먹은 늙은이가 밤이 무서운 이유가 뭐겠냐? 그건 춘서에 안 나와 있데?”

“애개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하연일 못살게 군 사람이 누군데?”

말뜻을 알아차린 주하연은 입술을 쌜쭉 비틀었다.

“누구군. 너지, 임마. 네가 자꾸 날 자극하니까 그렇게 된 거 아냐.”

“그렇다고 매번 반응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오른쪽!”

“남녀란 원래 그래. 그래서 한 방에 넣어 두면 사고를 치는 거라고.”

“피이! 할 말 없으니까. 이번에는 왼쪽!”

[쉿!]

주하연에게 전음을 보낸 백산은 뚫린 왼편을 따라 화살을 걸었다. 심호흡을 하듯 눈을 감더니 맥궁을 들어 올려 전면을 겨냥했다. 그리고 눈을 뜸과 동시에 가만히 시위를 놓았다. 맥궁을 떠난 화살은 연기와 어둠을 뚫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크아악!”
“아악!”

동시에 들려온 두 마디의 비명 소리는 메아리처럼 동굴을 타고 퍼져 나갔다.

“헉!”

바로 곁에서 들려온 비명 소리에 만독노조 갈상지는 납작 엎드렸다. 전면에서 날아온 화살은 무인 두 명을 동시에 관통해 버린 것이었다.

“노 대협, 어디 있소?”

“여기 있소이다!”

“빌어먹을........”

갈상지는 낮게 욕설을 뱉어냈다. 밖에서 기다릴 것을, 후회막급이었다. 개방의 절정취혼객에게 광혈지옥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에 동굴로 뛰어들었다. 그랬던 것이 실수였다. 좀 더 신중하게 일을 처리했어야 했다.

“하지만 광혈지옥비를 얻을 사람은 한 명. 어차피 한 번은 치러야 하는 일이다.”

주먹을 불끈 틀어쥔 갈상지는 몸을 일으켰다. 광혈지옥비를 찾아 나설 때 이미 각오하지 않았던가. 천하제일인이 되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하고, 운이 따라야 한다. 그 운을 시험할 장소가 바로 이곳 동굴인 것이다.

“이곳에서 나가는 사람이 곧 유방(劉邦)이 된다. 한(漢)나라를 세웠던 행운아 말이다!”

전면 어둠을 응시하는 갈상지는 이를 악물었다.

“갑시다!”

뒤따르는 무인들을 향해 고함을 지른 갈상지는 전 내공을 귀로 집중하며 걸음을 옮겼다.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어둠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천리지청술밖에 없다. 더구나 상대는 활을 쏘고 있는 상황. 미세한 소리를 잡아내야만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갈상지의 생각을 뿐이었다.

“우-아-아!”

“크윽! 우엑!”

일순 동굴을 타고 들려오는 엄청난 함성 소리에 갈상지는 무릎을 꿇으며 한 움큼 피르 토하고 말았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뒤따르던 대부분 무인들이 해쓱한 얼굴로 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전 내공을 귀로 집중한 상황에서 음공을 방불케 한 소리가 들려오자 내상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귀광두!”

자리에서 일어선 갈상지는 전면 어둠을 향해 분노어린 외침을 쏟아냈다.

쉬익!

“크아악!”

“서두릅시다, 갈 대협. 이러다 놈을 만나기도 전에 죽게 생겼소이다.”

뒤편에 있던 노문역이 전면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그 또한 내상을 당했는지 입 주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입구가 막혔다! 이 안에 들어온 놈들은 아무도 살아가지 못한다. 전부 죽을 것이다!”

“신경 쓸 필요 없소이다. 우리가 나가지 못한다면 놈 또한 길이 없다는 뜻이오! 갑시다!”

또다시 동굴을 타고 들려오는 메아리 같은 소리에 갈상지는 무인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굳은 얼굴을 하고 있던 무인들이 갈상지와 노문역을 따라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자들은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갈상지가 있는 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불개 또한 당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밖에서 유입되던 화섭자의 공급이 끊겨 버린 것이었다.

산중의 나무로 대충 만든 화섭자였던 터라 오랫동안 불을 밝혀 주지는 못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도구다. 더구나 동굴을 타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라니.

“가로막는 자는 전부 없애고 간다! 절정취혼객은 앞으로 나서라!”

불이 꺼지고,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불개의 말을 들은 절정취혼객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전면으로 나섰다.

“크아아!”

쿠르릉! 쿠웅! 과앙!

“멈춰!”

비명 소리를 들은 몇몇 수하들이 뒤쪽으로 몸을 날리려고 하자 불개는 다급히 고함을 질렀다.

“놈은 이곳 동굴을 훤히 꿰고 있다. 흩어지면 자멸한다.”

‘놈!’

불개는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비단 개방 제자만 목숨을 잃은 게 아니었다. 들어왔던 동굴이 무너지는 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유일하게 알고 있는 통로가 막혔다는 의미인 것이다.

“쿠억!”
“아하합!”

쿠억! 쿠억! 아아아하하합!

“응?”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함성 소리에 불개의 얼굴이 흠칫 굳어졌다.

쉬익!

“화살?”

전면에서 다가오는 날카로운 소성에 불개는 재빨리 오른손을 내뻗었다.

쿵! 쿵! 쿵! 쿵! 쿵!

“크윽!”

바닥에 깊숙한 족적을 남기며 다섯 걸음을 물러난 불개는 급기야 나직한 신음을 뱉어내고 말았다. 간신히 화살을 잡아내기는 했으나 손바닥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쿠쿠쿠어어억!

슉! 슉!

“또 온다!”

메아리 속에 섞인 미약한 소성을 감지해 낸 불개는 긴장한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그의 고함소리와 함께 절정취혼객 다섯 명이 전면을 향해 무자비하게 쌍장을 뻗어냈다.

우르릉!

번쩍이는 광채가 동굴 안을 가득 채움과 동시에 나직한 우레음이 흘러나왔다. 개방의 절기인 용음십이수의 일초인 용음천강수였다. 개방의 신비라고 했던 절정취혼객의 신위는 놀라웠다. 빛살처럼 날아오던 두 대의 화살은 용음천강수가 만든 강기의 벽을 뚫지 못하고 가루로 흩어졌다.

“저기 놈이 있다!”

긴장된 눈으로 전면을 주시하고 있던 한 명이 고함을 질렀다. 천리지청술을 극성으로 펼치고 있던 그의 귓전으로 펄럭이는 옷자락 소리가 잡혀 들었던 것이었다.

“나를 따르라! 나머지는 이곳에서 대기하라!”

물러섰던 불개가 고함을 지르며 전면으로 몸을 날렸다. 그 또한 다른 자와 마찬가지로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를 들었던 탓이다.

이십 명의 절정취혼객이 나아가는 속도는 빨랐다. 대부분 구불구불 이어진 힘든 길이었지만 그들은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를 따라 정확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서둘러라! 놈이 바로 앞에 있다.”

내공을 더욱 끌어올려 불개는 고함을 질렀다.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로 추츠컨대 많이 떨어져 봐야 십여 장 안팎이었다.

구구구구어어억!

또다시 메아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불개를 비롯한 절정취혼객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십 장 전면에서 가지되는 소리가 멈추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은 불개가 있는 개방 무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다른 편에 있던 갈상지와 노문역을 포함한 무림인 또한 소리의 근원을 쫓아 내달리고 있었다.

“십 장 앞에 놈이 있소이다.”

내공을 가득 실은 갈상지의 목소리가 동굴 속으로 퍼져 나갔다. 동굴 속은 소리의 바다였다. 무인들의 발자국 소리부터 시작하여 귀광두가 지르는 고함소리까지. 그 모든 소리가 메아리 되어 파도처럼 흘러 다녔다.

바로 그 순간.
양편으로 나눠 절정취혼객과 무인들을 유인하던 백산과 주하연은 동굴 안에서 가장 넓은 광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좌우 오 장 정도 폭을 가진 이곳 또한 다른 장소와 마찬가지로 어둠과 연기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턱!

달려들던 탄력으로 서로 하나가 되 두 사람의 신형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두 사라의 신형이 모습을 감추는 순간, 좁은 광장 안으로 무수한 무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멈......”
“죽여라!”

불개의 외침보다 반대편에서 들려온 고함소리가 더욱 컸다. 무공이 강한 불개는 귀광두가 사라졌음을 알아차렸지만, 갈상지와 같이 왔던 무인들은 그럴 경황이 없었다. 진득한 살기를 흘리며 기척이 감지되었던 곳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뿌렸다.

“멈추시오!”

쉬익! 쉭! 슈욱!

“크아악!”
“아악!”
“으아악!”

“놈이 저기 있다, 죽여라!”

불개가 고함을 내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바로 겨에 있던 무인이 가슴을 틀어쥔 채 쓰러지는 상황에서 불개의 고함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더구나 화살의 방향은 조금 전 고함소리가 들려왔던 곳,

“빌어먹을.......”

나직한 욕설을 뱉어낸 불개는 전면으로 다가오는 도를 향해 오른손을 사정없이 쳐냈다.

서걱!

“크윽!”

나직한 비명을 지른 불개는 경악한 얼굴로 오른손을 보았다. 분명 강기를 일으켜 상대의 도를 쳐냈다. 도가 잘리지는 않아도 한편으로 밀리기는 해야 한다.

그런데, 붉은 광채를 뿌리는 도는 계속하여 진행을 하고 있고, 소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더욱 기절할 노릇은 손바닥 하 가운데가 잘려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귀광두? 탓핫!”

지금껏 찾던 귀광두임을 알아차린 불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흘러내리는 피를 암기처럼 날려 상대를 물러나게 하기 위해 엉겁결에 펼친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을 떠난 붉은 핏방울은 귀광두를 잡지 못했다.

“아악!”
“크아악!”

대신 전면에서 달려들던 무인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무상신법의 가공함이 다시 한 번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동굴 한편으로 이동한 백산은 맥궁을 들어올렸다.

[세 대!]

‘도살!’

전음으로 들려온 세 대란 말에 주하연은 이 한마디를 떠올렸다. 오 장 폭밖에 되지 않는 좁은 광장에 백여 명 정도가 몰려 있고, 뒤늦게 따라온 개방 무인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그곳을 향해 백산은 활을 날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또한 한곳으로 쏘지 않을 것이다. 무상신법으로 이리저리 움직여 다니며 적을 향해 쏘아댈 것이고, 한 대의 화살은 적어도 세 명에서 네 명 정도의 몸을 관통해 들어갈 게 분명하다.

동시에 세 대의 화살을 시위에 건 백산은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일순 맥궁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바로 그 순간.

“멈추시오! 우린 개방 무인들이오!”

불개의 목소리가 광장을 강타했다.

“멈추시오! 우린 귀광두에게 속았소이다!”

불개의 말을 들은 갈상지 역시 고함을 질렀다.
일순 정적이 흘렀다. 상대의 가슴으로 무기를 찔러 넣었던 무인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신들의 무기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백산이 기다린 순간이 지금이란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진한 살소를 머금은 백산은 횡으로 눕혔던 맥궁의 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무상신법을 펼쳤다.

쉬익! 쉭! 슉!

“크아악”
“크아악!”
“아아악!”

이미 지옥이었던 광장에 처절한 비명이 더해지며 서로를 향해 도검을 날렸던 무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확인할 새도 없었다.

주하연의 예상과는 달리 한 대의 화살은 적어도 최하 대여섯 명의 몸을 꿰뚫었다. 부챗살처럼 퍼져 나가는 화살은 일거에 십여 명의 몸을 관통하고 반대편 벽으로 틀어박혔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시오!”

들어왔던 곳으로 몸을 날리며 불개는 고함을 질렀다. 다른 무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불개의 고함소리가 들려오자 통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처음 들어왔던 동굴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화살은 끊임없이 날아왔고, 다시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바닥으로 몸을 뉘였다.

“없어?”

“떨어졌어요.”

백산의 손에 손바닥을 포개며 주하연은 말했다.
광장 안에서 이십여 개 남은 화살을 전부 소모한 것이었다.

“운이 좋은 놈들이네.”

“가장 위쪽에 보면 바위로 가려진 동굴이 있어요. 그곳을 통해 빠져나가요.”

동굴 입구가 전부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동굴의 존재 때문이었다. 과거 유방이 있을 때 적을 살피던 망루 역할을 했던 곳으로, 동굴 내부에서는 물론이고 외부에서조차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곳이다.

위쪽으로 길을 잡아 조그마한 동굴에 도착한 백산은 마안철겸을 풀어 주하연의 몸을 꼼꼼히 묶었다. 쉴 틈이 없다. 잔뜩 흥분해 있는 자들이 서로를 향해 공격을 가할 때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주하연의 몸을 점검한 백산은 혈월을 뽑아들었다.

“가자!”

혈풍뇌전심법을 끌어올린 백산은 동굴 밖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전신(戰神)이군!”

대붕처럼 절벽을 날아 내리는 붉은 덩어리를 보며 패진천은 낮게 중얼거렸다. 동굴에서는 연기와 함께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귀광두는 밖으로 나오고 있다.

묵안혈마가 얼마나 강자였는지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귀광두의 능력은 결코 그에 못지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과거 묵안혈마는 도움을 주는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귀광두는 오로지 혈혈단신, 누구 한 명 도와주는 이가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만일 시대를 잘 만났다면 그는 천하제일인이란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넌 죽는다, 귀광두. 이제 네놈이 죽어주기만 하면 천붕오천멸살계는 구 할이 마무리된다. 무당파가 끝장나면 남은 세 곳은 스스로 몰락해 갈 것이다. 굳이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말이다.”

패진천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공연히 신병대를 소림에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있는 일백 명의 혈사지옥인이라면 귀광두를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사지를 잘라 북황련으로 가져가겠다. 네가 차고 있는 광혈지옥비를....... 준비하라!”

빠르게 접근하는 혈광을 보며 패진천은 나직이 고함을 질렀다. 어둠, 연기 그리고 죽음이 있는 이곳은 유방이 출사표를 던졌던 망탕산 계곡이었다.

[청당마을]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용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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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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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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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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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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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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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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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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