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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140)
[황실과 무림, 너희들이 나에게 해준 게 무엇이더냐?]
깡! 깡깡! 깡!
웃통을 벗어젖힌 인물의 팔이 붉은 쇳덩이를 향해 둥근 호선을 그릴 때마다 쇠는 비명을 질렀다. 쇠는 비단 비명만 지르는 게 아니었다. 검은 광채에 휩싸인 망치질 세례에 일정한 모양을 갖춰 나가고 있었다.
쇠는 커다란 몽둥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몽둥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 척에 달한 길이 중 가운데 일 척만 몽둥이의 원래 모습인 둥근 모양을 하고 있을 뿐, 좌우 일 척씩은 납작 눌려져 칼을 연상케 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쇠를 두드리는 인물, 그는 철가의 철웅이었다. 원하는 형태가 되었다는 듯 철웅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놈은 됐고.”
만족스런 얼굴로 자신이 만든 물건을 쳐다보던 철웅은 옆에 있던 물속으로 몽둥이처럼 생긴 그것을 쑥 밀어 넣었다.
치이익!
부연 수증기와 함께 쇠몽둥이는 급격하게 식어, 본래의 검은색으로 변했다.
“타핫!”
물통에서 더 이상 수증기가 피어오리지 않자 철웅은 나직한 고함을 지르며 오른손을 쭉 내밀었다.
차르르!
철웅의 동체가 검게 물들고 미약한 소성과 함께 주변에 널린 쇠사슬이 딸려왔다. 쇠사슬의 길이는 전부 오 장이었다. 그리고 그 쇠사슬 끝에는 붉은 광채를 흩뿌려대는 물체가 달려 있었다. 가운데를 기준으로 둥글게 흰 갈고리가 달려 있는 그것은 배에 쓰이는 닻이었다.
하지만 철웅이 끌어당긴 닻은 일반 닻과는 달랐다.
고양이 발톱처럼 생겼다고 하여 철묘(鐵猫)라 불리는 그것은 손을 가져다 대면 붉은 핏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날카로웠다. 더구나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라니....... 전율적인 그 기운은 분명 살기였다.
“진정해라, 녀석아! 아직 피를 볼 때가 아니다. 아직은.......”
어루만지듯 닻을 쓰다듬으며 철웅은 중얼거렸다.
“끝났느냐?”
방금 만들었던 이상한 몽둥이를 들어 올리는 순간 밖으로부터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버지. 이제 이놈만 끼워 넣으면 완성됩니다.”
철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철묘라 부르는 닻을 내려다보던 철웅은 들고 있던 쇠몽둥이와 연결된 부위 아래 원형의 홈으로 끼워 넣었다.
철컥!
“이놈은 혈정(血碇), 붉은 닻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완성된 닻을 어깨로 둘러메며 철웅은 환하게 웃었다.
“구분은 어딨습니까?”
“망탕산 근처에 있는 모양이더라. 소림으로 가고 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잘하는 짓인지.......”
“너무 걱정 마십시오. 혈뇌문의 문주라 해서, 칠백년 세월 때문에 가는 게 아닙니다. 그냥 가는 겁니다. 어쩌다 이어진 인연 때문에. 마안철겸을 만들어주었던 인연 때문에 가는 겁니다. 그래서 혼자 가는 것이고요.”
철웅은 편안한 미소를 물었다. 피를 봐야 할 없이 없다고 했던 그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는 혈뇌문이 드러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지난 칠백 년 세월처럼 그저 닻을 만들며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이었다.
무림공적과 반역자로 낙인찍혀 있기에 혈뇌문도들이 나설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가는 길에 날을 제대로 세울 수 있을는지....... 하기야 상관없지요. 날이 있든 없든 혈정은 마병이 될 테니까.”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편에 놓인 연마석을 끌어당겨 품 안으로 집어넣으며 철웅은 고소를 지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몸 조심하거라!”
빠르게 멀어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철야는 오래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백산을 향해 달려가는 자는 철웅뿐만이 아니었다. 철웅이 떠난 우이에서 수천 리 떨어진 남쪽 장사에서도 길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자들이 있었다. 남쪽으로 길을 잡았던 설련 일행이었다.
“주모! 정말 혼자 가시겠습니까?”
걱정스런 얼굴로 유몽은 설련을 쳐다보며 물었다. 하룻밤 묵어가기 위해 객잔에 들른 일행은 놀라 기절할 뻔했다. 무림공적이 된 백산의 소식과 소림사가 멸문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남으로 가는 것보다 백산을 도와주는 게 더 급하다는 판단을 내린 설련은 두 사람에게 떠날 것을 종용했다.
“그분이 광혈지옥비를 뽑았다는 것은 문제가 생겼다는 의밉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올라가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설련은 확고한 얼굴로 말했다. 마안철겸을 만들면서까지 과거를 숨기고자 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광혈지옥비의 주인이라는 사실과 스스로 묵안혈마임을 밝혔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녀가 두 사람을 숭산으로 보내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배를 구하는 즉시 산동반도에 있는 황하구(黃河口)로 가겠습니다. 백랑과 함께 그곳으로 오십시오.”
“하지만.......”
“지금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분에게는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혼자서 전 무림을 상대로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급기야 설련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무공이 강했더라면, 벌써 북으로 길을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천한 실력으로는 그를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떠나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뒤에 남아 그의 퇴로를 확보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고, 힘들게 결정을 내렸다.
“형님, 그렇게 합시다! 지금은 모든 이목이 대장에게 쏠려 있습니다. 대장 사모는 별 문제 없을 겁니다.”
“으음! 알겠네. 그렇게 하도록 하세.”
결국 유몽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주세요. 아니, 제가 먼저 떠나겠습니다.”
유몽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설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 땐 가더라도 돈은 가져가십시오. 배를 구하려면 돈이 많이 들 겁니다.”
광치는 주머니를 꺼내 설련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고개를 숙인 설련은 재빨리 객잔을 나섰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쪽으로 몸을 날렸다.
“허!”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설련의 모습에 유몽은 허탈한 듯 신음을 뱉어냈다.
“서두릅시다, 형님. 대장 사모는 강한 분입니다. 걱정 놓으셔도 됩니다.”
“알았네.”
곧이어 객잔을 나온 두 사람은 북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츄악!
붉은 달이 호선을 긋자 선홍빛 피 무지개가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고, 그 뒤를 눈을 치뜬 목이 따른다. 털썩, 또 하나의 시체가 생겨났다. 길을 만들 듯 길게 너부러진 시체들, 광혈지옥비와 영웅의 자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던 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초라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차디찬 대지로 몸을 뉘일 뿐이었다.
“타핫!”
강렬한 고함소리와 함께 세 명의 무인들이 동시에 혈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혈운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눈은 어떤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한 번의 칼질로 영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리라. 지금껏 백산의 손에 죽어간 오십여 명의 무인들은 전부 그랬다.
혈운 속에서 백산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더욱 붉어진 혈운으로 지금의 심경을 대변했다. 백산의 몸을 감싼 혈운이 확 타오른다 싶은 순간 허공에 혈월(血月)이 떠올랐다.
혈월이 움직이는 방향은 세 곳이었다. 가장 먼저 수직으로 흔적을 남기더니 이어 횡으로 움직였고, 그 다음은 우에서 좌로 사선을 그렸다.
툭! 투툭!
파악!
비처럼 떨어지는 시체를 뒤로하고 혈운은 바람처럼 전진해 나갔다.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던 혈운이 어느 순간 우뚝 멈춰 섰다. 계곡 초입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가공할 기운을 뿌리는 백여 명의 무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패진천이 이끄는 혈사지옥인이었다.
“난, 북황련 철혈패씨세가 가주인 패진천이다. 그리고 이들은 혈사지옥인이다. 만나서 반갑다, 귀광두.”
전면으로 다가온 혈운을 향해 패진천은 낮게 말했다.
“킬! 죽고 죽이는 사이에 인사는 무슨!”
비릿한 미소로 인사를 대신한 백산은 곧바로 혈사지옥인을 향해 돌진했다. 이미 혈삭마령인이 구축했던 진을 겪어본 터라 혈사지옥인들이 진을 구축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꾸만 가슴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마음을 급하게 했던 이유도 있었다.
“막아라!”
흠칫 얼굴이 굳어진 패진천은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놀란 사람은 패진천 혼자였을 뿐, 나머지 혈사지옥인은 진득한 살기를 뿌리며 다가오는 혈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런!”
혈사지옥인들의 표정을 쳐다보던 패진천은 나직한 탄성을 발했다. 혈삭마령인이 귀광두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식을 구축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자신감.
혈삭마령인보다 강하다는 자신감, 혈삭마령인이 하지 못한 일을 혈사지옥인이 처리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 진을 발동시키지 않고 있다. 북천지옥대 네 조직의 단점이었다. 너무 강한 자들이기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난 단점인 것이다.
패진천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혈사지옥인 가장 선두에 있던 네 명이 혈운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혈사지옥인의 무공은 박투술을 근간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징을 붙인 기구가 그들의 전신 관절에 끼워져 있다.
신발 끝에 달린 비수 크기의 송곳도 그 중 한 가지였다. 앞서 나온 두 명의 발이 무서운 기세를 머금고 혈운을 향해 날았다.
캉! 캉캉!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먼저 공격을 했던 자들은 반발력을 이용해 재빨리 물러났고 뒤이어 뒤에서 달려들던 자들의 공격이 혈운의 상층부를 향해 작렬했다. 또다시 쇳소리가 울리고 달려들었던 두 명은 뒤로 물러났다.
“호신강기군. 하지만, 그 정도로는 우리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
물러섰던 혈사지옥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뒤이어 그들의 몸이 붉게 변해가더니 어느 순간 가공할 열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화골지체(火骨之體)?”
고개를 돌려 혈사지옥인을 보고 있던 주하연은 놀라 부르짖었다. 화골지체, 권장의 무공이 극에 이르면 극양수의 일종인 혈옥수를 터득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보다 한 단계 위가 있는데 그 상태가 화골지체라 하였다. 요컨대 혈옥수의 양기가 온몸으로 분산되어 만들어진 신체가 화골지체라는 것이다.
“별것 아냐. 이기어검술을 익히지 못해 병신이 된 것들이지.”
혈사지옥인들을 쳐다보며 백산을 비릿하게 웃었다.
“죽일 놈!”
빈정거리는 듯한 백산의 말에 네 명의 혈사지옥인은 진득한 살기를 흘렸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던 까닭이다.
권이 극에 달하지 혈옥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무공은 더 이상 늘지 않았다. 깨달음만으로 얻을 수 있다는 이기어검의 경지는 요원하기만 했고, 결국 혈옥수를 더욱 강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해서 얻어진 경지가 화골지체였다.
이기어검술을 얻지 못했다지만 화골지체는 엄청났다. 우선 몸이 금강불괴에 가까운 신체로 변했고, 그 신체에 스치는 모든 것은 가루로 변했다. 이기어검술에 버금가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가공할 열기를 뿌리며 네 명은 붉은 혈운을 향해 돌진했다.
바로 그 순간.
붉은 혈운 속에서 막대기처럼 생긴 기다란 물체가 허공으로 쭉 밀려 올라갔다. 일 장에 달하는 기다란 물체는 혈월의 끝에서 나온 강기였다.
“조심하라, 강기다!”
멀리서 지켜보던 패진천은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 혈사지옥인 또한 강기를 터득한 고수들이지만 일 장이나 뻗어 나가는 도강이 심상치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패진천은 이내 표정을 풀었다.
공간을 수직으로 자른 그것은 생각만큼 강한 위력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조차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미약했다. 백산을 향해 달려들던 네 명 또한 패진천과 마찬가지였는지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놈! 그깟 칼 말고 광혈지옥비를 꺼내라. 광혈지옥비를 보고 싶단 말이다!”
“광살소풍이란 무공인데 생각보다 강해! 방심하면 바로 저승으로 가는 수가 있다고.”
그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죽대듯 말한 백산은 광풍도법 일초인 광살소풍을 재차 펼쳤다.
“하연아, 셋까지만 세라!”
“하나! 둘! 셋!”
퍽! 파악! 파팍!
“크윽!”
“컥!”
나직한 소성과 함께 백산을 공격했던 네 명의 몸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어떻게?”
“용왕유권이라고 했잖아. 그리고 이 도는 혈월인데 웬만한 쇠 정도는 두부 자르듯 하는 명도야.”
속삭이듯 말한 백산은 의아한 얼굴로 서 있는 네 명을 향해 돌진했다.
“광혈강풍(狂血强風)!”
우렁찬 일갈과 함께 혈월의 폭풍이 일었다. 허공에 떠 있던 혈월이 가공할 속도로 움직였고, 가는 곳마다 붉은 피를 남겼다.
“카아악!”
“크아악!”
“아악!”
“광마선풍!”
혈사지옥인 네 명의 비명 소리와 함께 동시에 광포한 고함을 지른 백산은 붉은 달이 떠 있는 혈월을 전면으로 던졌다.
휘리링!
낮은 바람소리가 들리고 붉은 달이 사방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실이라도 달린 듯 혈월을 따르는 백산의 신형도 거대한 도(刀) 모양으로 변했다.
광마선풍. 무기를 들고 펼치는 최후경지, 일명 이기어도술이라 불리는 광풍도법 삼 초가 무림에 첫 선을 보인 것이다.
“막아라!”
심상치 않음을 느낀 혈사지옥인들은 고함을 내질렀다. 가공할 화염을 뿌리던 혈사지옥인들은 삼 장 거리를 두고 날아오는 두 자루의 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카앙!
약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혈사지옥인 한 명은 이기어도술로 날아오는 혈월을 막아냈다. 하지만 이기어도술로 날아오는 도는 한 자루가 아니었다. 혈월보다 더 큰 도가 뒤따르고 있었으니.
“크아악!”
도로 변한 백산의 몸에 관통 당한 혈사지옥인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화골지체를 이뤘고, 금강불괴지신에 가까운 신체지만 두 번의 이기어검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카앙!
“커억!”
두 번째 비명 소리가 터졌다. 이번 역시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작은 도를 튕겨내면 뒤따르던 거대한 도에 의해 몸을 관통 당한다. 아니, 잘렸다는 말이 옳다. 백산의 신형이 관통 당한 혈사지옥인의 동체는 상하로 분리된 채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일제히 공격하라!”
질린 얼굴로 패진천은 고함을 내질렀다. 상대는 이기어도술을 성취한 고수, 일대일로 상대하여 그를 이길 수 있는 고수는 혈사지옥인 중 아무도 없다.
혈사지옥인 또한 상대의 강함을 알아차렸는지 십여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전면의 다섯은 앞서는 혈월을 향해 돌진했고, 뒤쪽의 다섯은 백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쿡!”
혈운 속에서 나직한 코웃음 소리가 들리고, 커다란 도에서 다섯 줄기 광선이 무자비하게 솟구쳐 나왔다.
“커억!”
“크윽!”
“아악!”
“광혈지옥비?”
다섯 명의 혈사지옥인이 동시에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한 패진천은 앓는 듯 소리를 질렀다. 기절할 노릇이었다. 광혈지옥비가 천고의 보물이라 했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화골지체를 이룬 혈사지옥인의 몸을 꿰뚫어 버리는 가공할 병기. 천하제일무공이라 알려진 광혈지옥비의 위력이었다.
“혈사지옥인은 내공을 합쳐라!”
“안 된다, 굴소! 너희들은 내공전이를 할 수 없단 말이다!”
혈사지옥인 사이에서 들려온 고함소리에 패진천은 질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내공전이는 수많은 연습을 통해야만 성취 가능한 경지다.
하지만 혈사지옥인은 그런 연습을 한 경험이 없다. 그런 그들이 내공전이를 하다니. 그러나 패진천의 외침과는 달리 혈사지옥인들은 다섯 또는 일곱 명씩 줄을 지어 전면에 있는 동료의 명문혈에 쌍장을 밀착시켰다.
화골지체의 신체마저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가공할 상대 앞에서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구우웅!
일순 기이한 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내공을 받아들인 자의 의복이 팽팽하게 부풀더니 바람 속에 서 있는 듯 거칠게 펄럭였다.
“그렇군!”
패진천의 얼굴이 환해졌다. 생각처럼 혈사지옥인은 무모하게 공격하려는 게 아니었다. 다섯 명씩 한 조를 짠 그들은 귀광두를 포위하고 있다. 귀광두를 빙 둘러싼 여섯 개의 조에서는 중앙으로 내공만 쏟아 붓고 있다. 귀광두의 발을 묶는 게 그들의 목적인 것이다.
공격은 남아 있는 자들이 하게 될 것이다. 패진천의 예상대로였다. 한가운데 갇힌 백산이 멈칫하는 모습을 보이자 배후에 있던 혈사지옥인들은 동료의 키를 넘어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재밌군!”
온몸을 묶어버린 내공에 백산은 피식 웃었다.
“너희들은 날 너무 모른다. 광풍은 모든 것을 쓸어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광풍에는 심검의 기운이 포함될 터이고.”
백산의 몸에서 튀어나온 광혈지옥비가 허공에 수많은 글을 새겼다. 열두 자루의 비도가 동시에 새기는 그것들은 전부가 사(死)자였다. 일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수십 개에 달하는 글자들이 바람을 따라 회전하기 시작했다.
쉬이익!
사(死)자의 수는 점점 늘어났고, 백산의 몸 주변을 회전하는 바람 또한 강풍으로 변했다. 그리고 수백 개에 달하는 사(死)자는 심검의 기운을 동반한 암기가 되었다.
“크아악!”
동료의 몸을 타고 넘어오던 혈사지옥인 한 명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강풍을 타고 돌던 사(死)자가 그의 이마에 틀어박혀 버린 것이었다.
파악!
비명을 내질렀던 자의 머리가 수박처럼 깨지며 허연 뇌수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비명은 시작에 불과했다.
“으악!”
“아악!”
혈사지옥인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어찌 저런 무공이.......!”
폭죽처럼 터져 나가는 혈사지옥인의 모습에 패진천은 넋을 잃고 말았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허공에 새겨진 글자가 생생하게 보이는 것도 믿어지지 않거늘, 그것들이 검보다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하다니. 부정하듯 고개를 거칠게 저었다.
내공전이를 하고 있던 자들은 더욱 쉽게 터졌다. 가장 선두에 있던 자가 사(死)자에 당하자 뒤에 있던 자들은 내공의 역류를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어육으로 변했다.
“심검이었군, 심검(心劍)!”
망연한 얼굴로 패진천은 중얼거렸다. 용왕유권과 심검이 만들어낸 절대적인 무공.
하지만 심검의 기운은 이제 시작이었다.
오십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풍은 경악한 얼굴로 서 있는 혈사지옥인을 향해 말려갔다. 그 빠르기가 또한 섬전(閃電) 같았다.
“오빠!”
백산의 머리기 축축이 젖어들자 주하연은 안타까운 얼굴로 백산을 불렀다. 수십 명의 혈사지옥인을 없앴지만 그 또한 무사하지 못했다. 연신 피를 토해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산은 멈추지 않는다. 무상신법을 펼치며 남아 있는 혈사지옥인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혈월이 돌고, 사(死)자가 돌고, 열두 자루의 비도가 돌고 백산의 신형이 돌았다.
손을 뻗어 백산의 턱에 흐르는 피를 닦아 주었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는 닦고 또 닦았다. 그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입에서 흐르는 피의 양도 많아진다. 그래도 그녀는 닳도록 닦아냈다.
한참 동안 피를 닦아내던 그녀는 백산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 참에 쉰 듯한 목소리가 귓저을 파고들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밥을 달라고 했더냐, 아니면 옷을 달라고 했더냐. 난 무림이나 황실에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놔두면, 그냥 버려두면 혼자 발광하다 죽어갈 놈이었단 말이다. 너희들이 내게 해준 게 뭐 있다고.......! 말해 봐라, 패진천! 말해보란 말이다!”
“그게 무림이다! 그게 세상이다! 그게 삶이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패진천은 바락바락 고함을 질렀다.
그는 어찌할 수 없는 강자였다. 천하제일인이 아니라 고금제일인이라 불러야 마당했다. 그런 자의 운명을 희롱한 곳이 북황련이다. 어쩌면 북황련의 최대 실수는 귀광두를 끌어들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대로 버려두었으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가만있는 날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게 너희들이 삶이란 말이냐? 힘이 없으면 죽어 줘야 하는 게 나의 삶이란 말이냐? 그게 우리들의 삶이란 말이냐! 그게 너희들이 원하는 그런 삶이란 말이냐! 좋다, 그럼 바꿔 주마, 너희들의 머리를 잘라 내서라도 바꿔 주겠단 말이다!”
우두둑!
백산은 쥐고 있던 패지천의 목을 한 바퀴 돌려 버렸다.
“너희들이 이렇게 살아났구나. 너희들이 지금의 나처럼 살았구나.”
하나 둘 떠오른 별을 보며 백산은 짓씹듯 중얼거렸다. 과거 식물인간이 되어 있을 때 광풍대원들은 중원 각처로 도망을 쳤다고 했다. 수천 명의 무인들에게 쫓기며, 시간을 벌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했다.
“오빠, 가요! 일단 이곳을 떠나서 다른 곳에 가서 쉬어요.”
“그러자꾸나! 그리고........ 아니다. 일단 가 보자.”
주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슨 말을 하려던 백산은 이내 입을 닫았다. 혈사지옥인을 전부 없앴지만 불안감의 정체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슴 뛰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빠르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깊게 심호흡을 한 백산은 서쪽으로 몸을 날렸다.
백산과 주하연이 떠난 반 시진 후.
뒤쪽 절벽에서 커다란 폭음 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인물들이 아래로 뛰어 내렸다. 가장 먼저 바닥으로 내려선 이는 절정취혼객 수장인 불개였다.
“귀광두!”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가 사라지 오른손을 보며 불개는 포효하듯 고함을 내질렀다. 이십 명의 절정취혼객 중 동굴 안에서 살아 나온 이는 자신을 포함하여 열 명밖에 되지 않았고, 개방 문도는 대부분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지옥 끝까지라도 네놈을 찾아가겠다. 내 목이 붙어 있는 한 네놈을 잡고 만단 말이다!”
진득한 살기를 뿌리던 불개는 소림사가 있는 하남으로 몸을 날렸다.
이제는 보물이 아닌 복수 때문에 귀광두를 쫓게 되어 버린 자들. 개방의 불개를 비롯한 동굴 아에서 살아 나온 오십여 명의 무인들이었다.
반역자이자 무림공적인 귀광두가 소림으로 갔다!
놈은 동창무인 칠백을 죽인 살인자다. 놈은 남천벌 무인 삼백을 죽인 살인자다. 놈은 북황련 무인 이백을 죽인 살인자다. 놈은 천붕회 무인을 비롯한 일반 무림인 삼백을 죽인 살인자다.
놈은 무림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극악한 악마다.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자, 무림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하는 자는 소림으로 모여라!
그곳에 가면 반역자의 최후를 보게 되리라.
그곳에서 무림공적의 최후를 보게 되리라.
반역자와 무림공적의 마지막을 보고 싶은 무임은 소림으로 가라.
천붕회 이후 텅 비었던 공현은 또다시 무인들로 들끓기 시작했다. 북황련 소속인 철혈패씨세가 신병대 삼백 명이 도착했고, 남천벌 소속 도부각 사백 명이 도착했다. 남궁세가 무인 이백 명이, 하북팽가 무인 이백 명이, 그리고 개방 무인 오백 명이 도착했다.
그리고 중원 각처의 중소문파에서 출발한 무인들 천여 명이 폐허가 된 소림에 도착했다. 이천육백 명. 반역자이자 무림공적이 된 귀광두의 최후를 보기 위해 소림사에 도착한 무림인들의 수였다.
“올 거라 봅니까?”
수백 명의 무인들이 진을 치듯 포진하고 있는 곳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개방 방주 호연작을 보며 말을 꺼낸 이는 남궁세가 부가주 고옹선이었다. 남궁세가의 책임자로 그가 나섰던 것이다.
“소림의 멸문을 알게 되면 놈은 나타날 겁니다. 제 놈 때문에 소림이 멸문 당했는데 나타나지 않을 수 없겠지요.”
호연작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그가 백산이 나타날 거라 여기는 이유는 한가지였다.
“놈은 귀광두가 아닌 묵안혈마이기 때문에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소이다.‘
그 때문이었다. 자신 때문에 타인이 피해를 받는 걸 견디지 못하는 묵안혈마이기 때문에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기에.
‘저자는?’
아래쪽을 주시하던 호연작은 깜짝 놀란 얼굴로 눈을 가늘게 모았다. 파괴된 소림사 산문을 보며 절을 하고 있는 인물. 그는 개방에서 파문된 파면신개였던 것이다.
“빌어먹을 인간!”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자 호연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파면신개 악만금은 더 이상 개방 인물이 아니외다!”
하지만 무인들의 시선은 냉랭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파면신개는 개방 인물이 아니냐는 그런 얼굴들이었다.
“제기랄, 그는 개방에서 파문을.......!”
“귀광두다! 귀광두가 소림으로 오고 있다!”
재차 해명의 말을 둘러치려는 순간 멀리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귀광두, 드디어 기다리던 무림공적이 나타난 것이었다.
호연작은 고개를 들어 소림사로 향하는 길을 쳐다보았다. 주하연을 품안에 안은 한 인물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정말이었구나. 정말 소림이 멸문당하고 말았구나!”
백산은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오면서 들었던 소문. 잘못 들었나 싶었다. 아니, 와전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소문은 사실이었다.
종루와 고루, 단 두 개의 건물만 남아 있는 소림은 전쟁이 할퀴고 간 참화를 보는 듯했다. 수십 채의 건물이 즐비했던 소림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장경각도, 나한전도, 양심당도, 천불전도....... 수천 명의 승려가 살고 있던 소림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들개처럼 모여 있는 무림인들을 제외하면.
“저건?”
소림 산문을 쳐다보던 백산은 일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가장 먼저 자신을 반겼던 배불뚝이 미륵불이었다. 편안한 미소를 머금은 배불뚝이 미륵불을 여전했다.
그때 미륵불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신개 할아버지!”
파면신개임을 알아 본 주하연은 반갑게 소리쳤다.
“오! 군주님! 살아 계셨군요. 살아 계셨어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파면신개는 주하연을 쳐다보았다. 소운의 성격을 그대로 빼 박은 아이가 살아나기를 부처님께 빌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살았는데 부처님의 집안 소림사는 멸문을 당하고 말았다.
“신랑인가? 고맙네, 군주님을 살려 줘서.”
벡산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던 파면신개는 백산의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많이 늙으셨습니다. 정말 많이 늙으셨습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파면신가 악만금, 어린 시절 화상을 당해 제 형체를 잃었던 얼굴은 주름으로 뒤덮여 있다.
“날 아는가?”
파면신개는 의아한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처음 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알은체를 하고 있다. 아니, 눈물을 흘릴 듯한 얼굴로 쳐다보다니.
“절 받으십시오!”
파면신개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백산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오십 년만의 만남이다. 못 볼 줄 알았던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자리가 아닌들 어떠하랴. 수천 무인들이 살기를 흘리며 지켜보는 자리면 또 어떠리. 다시 살아나 그를 만났으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백산입니다. 조카사위 백산입니다. 소운의 못난 남편 백산입니다. 그녀의 가슴에 천비비를 꽂아야 했던 백산입니다. 사랑한다 해놓고 지켜 주지도 못했던 백산입니다. 그녀들을 따라 죽지도 못한 백산입니다!”
급기야 백사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천천히 팔소매를 걷어 올렸다.
“무슨......! 설마, 그란 말인가? 정녕 자네란 말인가? 어찌.......!”
놀란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던 파면신개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걷어 올린 팔목에 채워진 무기. 백산이 아니라면 결코 찰 수 없는 광혈지옥비였다. 더구나 그는 소운의 마지막을 알고 있다. 이 세상에 단 여섯 사람만 알고 있는 조카딸의 마지막을.
“그렇게 돼 버렸습니다. 어쩌다 보니 다시 살아나고 말았습니다.”
“허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그랬구나. 그래서 네가 군주님을 구했구나. 너도 군주님의 모습에서 그 아이를 보았구나.”
또다시 눈물이 흘러나왔다. 믿어지지 않지만 그는 분명 조카딸의 남편인 묵안혈마 백산이었다.
“그들이 잘되기를 바랐습니다. 강호에서 가장 강한 곳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소림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요정이 있고, 요인이 있고, 무광이 있던 이곳을 말입니다.”
“산아......!”
“이제 재회가 끝났으면 우리 일을 하는 건 어떤가!”
파면신개가 무엇인가 물으려는 순간 진득한 살기를 담은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는 개방 방주 호연작이었다.
“이놈! 개방 방주로서 부끄럽지도 않느냐! 중들이 뭐 먹을 게 있다고 황실을 넘보겠느냐! 그건 개방 거지가 역모를 획책했다는 것보다 더 허황된 일임을 진정 모른단 말이더냐?”
파면신개의 목소리가 폐허가 된 소림사 터를 타고 울렸다.
“역사가 소림을 원했소이다. 아니, 저놈 때문에 소림사가 이렇게 되었소이다. 저놈만 아니었던들 소림은 멸문당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외다!”
“닥치거라, 놈! 네놈이 서명했던 글을 보았다. 너희 천붕회가 했던 짓을 보았다! 너희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곳 소림사가 그 증거이니라. 추악한 천붕회가 저지른 죄악의 증거 말이다. 중원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 보거라! 소림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무나 잡고 물어 보란 말이다!”
“그만 두십시오! 저것들은 들개 뗍니다. 제 욕심밖에는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는 비열한 개떼들 말입니다.”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백산은 파면신개를 말렸다. 그러고는 에워싸듯 모여 있는 무인들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내가 무림에 나온 지 이제 이 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내가 했던 일은 봉선군주라 불렸던 이 소녀의 목숨을 구해 주었던 것과, 천붕회 소림 대표로 비무에 참석했던 게 전부다. 그런 나를 두고 반역자라 했더구나. 그리고 반역자를 배출했던 문파라 해서 소림을 없애 버렸더구나. 그런데 말이다, 반역자의 친형님인 황제라는 놈은 여전히 잘 처먹고 잘 살고 있다고 하더구나.”
백산의 말이 계속될수록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던 백산은 재차 말을 이었다.
“이 아이를 반역자라고 하고 싶으면 황제 놈의 목을 먼저 잘라 와라!”
백산의 왼손에서 세 자루의 비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 반역자라 처단하고 싶은 놈은 황제 놈의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묻고 와라!”
뒤이어 오른쪽 다리에서 튀어나온 세 자루의 비도가 허공에 자리했다.
“날 무림공적으로 지목한 놈은 말해라!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해주었던 일이 무림공적으로 지목될 일이었는지!”
왼쪽 다리에서 튀어나온 화천비, 금천비, 토천비가 왼쪽 빈 공간을 점령했다.
“그리고 말해 봐라! 너희들이 이 백산에게 해 준 게 뭐가 있는지 말해 보란 말이다!”
쉬익!
오른팔에서 튀어나온 세 자루의 비도가 백산의 머리 위로 자리를 틀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 자리했던 천비비가 붉은 색으로 변했다.
광혈지안(狂血之眼)!
참을 수 없는 분노는 마침내, 파멸안 마지막 단계인 광혈지안을 불러오고야 말았다.
<5권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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