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6일 연중 30주간 월요일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안식일일지라도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10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1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12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15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17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베푸는 것이 이기는 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할 때 무슨 이유로 그 사람을 위하고 돌봐주고, 아껴주고, 사랑하는지 생각하면 조금은 답답합니다. 사랑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시 조건 없이 사랑하고 조건 없이 사람들을 대하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지만 조건 없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디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도 집에서 아이들이나 아내가 전과 같이 사랑을 나누지 않습니다. 그건 내가 그들의 욕구에 충족을 시키지 못하고 잘못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불여자시 인지위기불여기지자위야’(恃人不如自恃 人之爲己不如己之自爲也)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의존하는 것은 스스로의 힘에 의존함만 못하고, 남이 나를 위하여 해주는 것은 내가 스스로 하는 것만 못하다.>라는 한비자(韓非子)에 있는 말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남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남에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시(恃)는 믿음을 나타냅니다. 소시(所恃)는 젖가슴에 어린 아기를 품는 모습을 형상하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호시(怙恃)는 아버지의 또 다른 호칭이기 때문에 호(怙)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호시(怙恃)라면 부모에 대한 믿음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나타낼 때도 호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남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남에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탄생하면 다른 사람들일지라도 기뻐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사람은 자기 힘으로 자기문제를 해결하여야 하고, 또 남이 제아무리 나를 위하여 잘 해준다 하여도 내가 내 일을 하는 것만큼 합당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 개인의 경우가 그러하거니와 우리가 우리의 일을 해나갈 때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의 일을 우리가 생각 하는 만큼 우리를 생각해주는 남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8년이나 병고에 시달리며 허리가 굽어 붙어 있는 사람을 안식일에 치료해주신 일을 이론적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미할 일인데 회당 장은 엄청 화를 내며, 예수님을 나무랍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율법의 근거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질시와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서민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여 예수님의 일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쾌한 해석과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인도하여주시기 때문에 우매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 만한 사건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하느님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병을 고쳐주시고, 영혼을 낫게 해 주시고, 죄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우리를 질시하고 미워하며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솔직히 많이 있답니다. 그런데 너무 그들에 연연해서 살 필요는 없답니다.
세상 살면서 어찌 나를 싫어하고 질시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내가 잘나가도 못나가도 질시하거나 질타하는 이웃은 있습니다.
그 문제를 잘 헤아리는 지혜가 그 사람의 인생의 길을 결정해주는 지표인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보는 대개가 남을 칭찬하는 쪽보다 남을 흉보는 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그 치우쳐져 있는 것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교육이요 수련이며 자기 성찰인 것입니다.
그 모든 수단들이 자기에게 도전하는 적을 없애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옛 말에는 이렇게들 말하지요.
“백 명의 친구가 있는 것보다 한명의 적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백 명의 친구가 나를 위해준다 해도 마지막 한명의 적이 나를 무너뜨리기엔 충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사는 것 뒤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강하고 세다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무시했다간 어느 세월에 내 앞에 강한 사람이 서있게 된다는 것 그것은 정말 거짓 없는 현실입니다.
바쁜 당신도 오늘 하루 행여 매듭이 만들어진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풀고 가십시오. 그것은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 매듭이 되어 훗날 아주 풀기 힘든 매듭으로 될 수 있습니다.
꼭! 잊지 마십시오.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베푸는 것이 이기는 길입니다..
【 좋은글 중에서 】
<그리스도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32─5,8
형제 여러분, 3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3 성도들에게 걸맞게, 여러분 사이에서는
불륜이나 온갖 더러움이나 탐욕은 입에 올리는 일조차 없어야 합니다.
4 추잡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상스러운 농담처럼
온당치 못한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감사의 말만 해야 합니다.
5 이것을 꼭 알아 두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에서 받을 몫이 없습니다.
6 여러분은 어느 누구의 허황한 말에도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7 그러므로 그런 자들과 상종하지 마십시오.
8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축일 : 10월 26일 포텐차의 성보나벤투라
Beato Bonaventura da Potenza
BONAVENTURA of Potenza
Den salige Bonaventura av Potenza
Franciscan-conventual at Nocera.
4 January 1651 of Potenza, Naples, Italy -
26 October 1711 of natural causes while singing a psalm during a religious ecstasy
Beatified : 26 November 1775 by Pope Pius VI (cultus confirm!!!!!ed)
보나벤투라는 나폴리의 포덴짜 출신으로 노체라에서 꼰벤뚜알 프란치스칸이 되었다.
그는 순종의 덕행으로 유명하고, 또 장상직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수련장직은 맡았다.
성모님께 대한 보나벤뚜라의 신심은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신심이었다. 그는 라벨로에서 운명했는데, "순종의 모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 Ordo Fratrum Minorum Conventualium - OFMConv 꼰벤뚜알이라는 말은 공동, 집합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를 뜻한다. 이 말은 수도회 초기부터 프란치스코 성인이 세운 ’작은 형제회(OFM)’를 가리키는 말로 써 왔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성인
쿠베르티노의 성 요셉(+1633)축일:9월18일.
순종의 모범인 포텐자의 복자 보나벤뚜라(+1711)축일:10월26일.
아폴리아의 열렬한 사도 성 프란치스코 파사니(+1742)축일:11월29일
트렌트 개혁 뒤의 가장 뛰어난 교황 가운데 한 분이었던 교황 식스토 5세(+1590)와 최악의 종교탄압 시대에 교회의 운명을 짊어졌던 교황 클레멘스 14세(+1774)등이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보나벤투라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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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아멘
항상 감사드립니다. 수산나 자매님